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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는 세장방형 또는 장방형 집자리가 기원전 11~9세기, 타원형 집자리가 기원전 8~6세기로 측정되었다. 수영리 유적은 [[송국리유형|송국리 유형]] 또는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의 형성과 전개 과정 연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유적이 발굴 조사되기 전까지 서울·경기 지역에는 송국리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으나, 이 유적에서 최초로 송국리식 집자리가 확인됨으로써 새로운 학문적 논의가 촉발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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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이형원. (2010). 청동기시대 조기설정과 송국리유형 형성 논쟁에 대한 비판적 검토. <i>고고학, 9(2)</i>, 43-75.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508169
* 한신대학교박물관. (2006). <i>화성 천천리 청동기시대 취락</i>.  https://www.riss.kr/link?id=M10523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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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6 기준 최신판


천천리·수영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화성 천천리·수영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천천리 91-2·봉담읍 수영리 402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화덕 자리, 저장 구덩이, 깊은 바리모양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붉은 간 토기, 골아가리 토기, 구멍무늬 토기, 민무늬 토기, 굽다리 토기, 구슬옥, 홈 자루 간 돌검, 간 돌살촉, 반달 돌칼, 간 도끼, 별도끼, 곰배괭이, 가락바퀴, 숫돌, 송국리식 집자리, 송국리 유형, 송국리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형원



설명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천천리 91-2·봉담읍 수영리 402 일원에 위치한다. 2002년 지방도 84호선 가운데 본오-오목천 간 도로 확·포장 공사 구간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청동기 시대 집자리 12기와 돌무지 유구(積石遺構) 1기, 삼국 시대 백제 집자리 1기와 독무덤(甕棺墓) 1기, 통일 신라 시대 돌덧널무덤(石槨墓) 1기, 조선 시대 집자리 1기, 시대 미상 돌덧널무덤 1기 등을 확인하였다. 유적은 칠보산(해발 238.5m)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가지 능선의 말단부에 해당하며, 동쪽으로 1.2㎞거리에 황구지천이, 남서쪽으로 1.1㎞ 거리에 동화천이 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해발 85m 구릉의 남사면에 자리잡고 있으며, 해발 51~59m 높이에 분포한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세장방형, 또는 장방형 10기와 타원형 2기가 있다. 세장방형 집자리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7호는 길이 29.1m, 너비 4m, 가장 깊은 곳은 0.6m이며 116.4㎡의 면적을 가진 초대형 집자리이다. 7호 집자리의 내부 시설로는 화덕 자리, 저장 구덩이, 기둥 구멍 등이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무시설식(無施設式)이거나 구덩식(竪穴式)으로 11기가 집자리 중앙부에 대체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다. 모든 화덕이 동시에 사용된 것은 아니며 일부는 사용 시기에 차이가 있다. 9기가 확인된 저장 구덩이는 주로 곡물 등 식료품을 담은 토기를 안치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저장 구덩이 가운데 집자리 남쪽 모서리에 있는 것은 지름 2.4m, 깊이 0.4m로 규모가 큰 편이다. 기둥 구멍은 벽선을 따라 배치되어 있는데, 일정한 규칙성은 보이지 않는다. 7호 가옥은 화덕 자리, 저장 구덩이와 기둥 구멍의 배치 등으로 볼 때, 한 두 차례의 확장 과정을 거쳐 초대형 가옥으로 변화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것은 가구 구성원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규모가 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규모가 작은 11호 집자리는 길이 5.1m, 너비 3m, 최대 깊이 0.42m에 면적은 15.3㎡로 소형이다. 화덕 자리는 동쪽으로 치우친 곳에 1기만 있는데 평면 형태는 원형이며 지름 0.5m에 깊이 0.12m의 구덩식이다.

세장방형 또는 장방형 집자리에서 나온 토기는 깊은 바리모양 토기(深鉢形土器)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가 대부분이며, 붉은 간 토기도 일부 있다. 토기의 무늬는 골아가리 구멍무늬(口脣刻目孔列文)가 가장 많으며, 골아가리(口脣刻目), 구멍무늬(孔列文), 골아가리 구멍 ‘X’자무늬, 민무늬 토기 등이 있다. 붉은 간 토기 중에는 굽다리 토기(臺附土器)도 있다. 석기는 구슬옥(丸玉), 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간 돌살촉, 반달 돌칼, 간 도끼, 별도끼(星形石斧), 곰배괭이, 가락바퀴, 숫돌(砥石) 등이 나왔다. 석기 가운데에는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미완성품도 있다.

타원형 집자리 2기는 넓은 의미의 송국리식 집자리에 해당하는 것이다. 하나는 집자리 내부의 중앙부에 타원형 구덩이와 그 바깥 양쪽에 기둥 구멍이 있으며, 그 위쪽과 아래쪽에 모두 4개의 기둥 구멍이 있는 형태이다. 다른 하나는 중앙에서 구릉 쪽으로 약간 치우친 곳에 타원형 구덩이가 위치하며, 2개의 중심 기둥이 있는 형태이다. 집자리에서는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토기, 구멍무늬 토기, 민무늬 토기와 붉은 간토기 등의 토기류와 함께 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홈자귀(有溝石斧) 등이 나왔다.

유적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는 세장방형 또는 장방형 집자리가 기원전 11~9세기, 타원형 집자리가 기원전 8~6세기로 측정되었다. 수영리 유적은 송국리 유형 또는 송국리 문화의 형성과 전개 과정 연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유적이 발굴 조사되기 전까지 서울·경기 지역에는 송국리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으나, 이 유적에서 최초로 송국리식 집자리가 확인됨으로써 새로운 학문적 논의가 촉발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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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