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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죽청리 유적
| 이칭별칭=보령 죽청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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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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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죽청리 산167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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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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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현숙
| 집필자=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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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죽청리 산167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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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은 덮개돌(上石)의 크기는 길이 4.78m, 너비 4m, 두께 0.56m이다. 그 아래에 길이 2.35m 범위에 깬돌이 확인되고 주변에 크기 1m 내외의 석재 2매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지상에 무덤방(墓室)이 있는 고인돌로 판단된다. 주변에서 민무늬 토기, 가락바퀴가 수습되었다.
고인돌은 덮개돌(上石)의 크기는 길이 4.78m, 너비 4m, 두께 0.56m이다. 그 아래에 길이 2.35m 범위에 깬돌이 확인되고 주변에 크기 1m 내외의 석재 2매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지상에 무덤방(墓室)이 있는 고인돌로 판단된다. 주변에서 민무늬 토기, 가락바퀴가 수습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00). <i>서해안고속도로(남포-웅천)건설구간 내 문화유적 발굴조사보고서</i>.  https://www.riss.kr/link?id=M7915479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6 기준 최신판


죽청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보령 죽청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죽청리 산167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도랑, 돌더미, 고인돌, 구덩이, 돌덧널무덤, 움무덤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현숙



설명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죽청리 산167 일원에 위치한다. 서해안 고속 도로 건설 구간에 포함되어 1998~1999년에 가 유적과 나 유적으로 구분하여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가 유적에서는 집자리 12기, 도랑(溝) 5기, 돌더미(積石遺構), 고인돌 1기와 나 유적에서는 돌더미 1기, 구덩이 1기가 확인되었다. 그 밖에 통일 신라 시대 돌덧널무덤(石槨墓) 1기, 고려~조선 시대 움무덤(土壙墓) 4기, 조선 시대 집자리 4기가 조사되었다. 해발 116m 내외의 산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2개의 구릉에 입지한다.

집자리는 대부분 파괴되어 평면 형태를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말각 (장)방형, 원형 등으로 추정되며, 2기를 제외하면 바닥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송국리식이다. 12호는 평면 말각 장방형으로 길이 4.78m, 너비 4m, 깊이 0.56m이며 타원형 구덩이와 그 내부 양 끝에 기둥 구멍이 있다. 11호는 바닥 내부에 타원형 구덩이 없이 무시설식 화덕자리(無施設式爐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다량의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편, 민무늬 토기 편, 붉은 간 토기 편, 돌살촉 편, 돌끌(石鑿), 돌검(石劍) 편, 숫돌(砥石), 흙으로 만든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도랑은 12호 집자리를 관통하는 4호를 제외하면 모두 집자리 남서쪽에 분포하고 있으며 서로 중복 관계에 있지는 않다. 전체가 조사된 1호는 장축이 남북 방향으로 길이 17m, 최대 너비 3m, 깊이 0.23m 정도이다. 길이 방향으로 내부에 0.25m 내외의 깬돌(割石)이 바닥에 1~3열로 약 9m 정도 깔려있는데, 그 주변의 모래가 단단하게 다져진 것으로 보아 배수 시설(排水施設)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한다. 유물은 집자리 출토 유물과 유사하며, 달도끼(環狀石斧), 갈돌(碾石棒), 갈판(碾石)이 더 확인된다.

돌더미 가 1호는 바리토기(鉢形土器)사발모양토기(燔形石器)가 출토되어 공방지로 추정하며, 나 1호는 토기 편들이 의도적으로 파괴되어 있어 제사(祭祀) 및 의례(儀禮)와 같은 시설로 추정된다. 가 1호는 길이 11m, 너비 9m 범위, 가 2호는 길이 4.15m, 너비 9m 범위, 나 1호는 길이 5m, 너비 3.3m 범위에 형성되어 있다. 출토 유물은 골아가리 토기 편을 비롯한 다량의 민무늬 토기 편, 돌살촉, 달도끼, 간 돌검 편, 숫돌, 돌로 만든 가락바퀴, 추형 석기(錘形石器) 등이 있다.

고인돌은 덮개돌(上石)의 크기는 길이 4.78m, 너비 4m, 두께 0.56m이다. 그 아래에 길이 2.35m 범위에 깬돌이 확인되고 주변에 크기 1m 내외의 석재 2매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지상에 무덤방(墓室)이 있는 고인돌로 판단된다. 주변에서 민무늬 토기, 가락바퀴가 수습되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