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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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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죽림리 차동 유적
| 이칭별칭=여수 죽림리 차동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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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워드=[[묘역식 고인돌]], [[돌덧널형 무덤방]], [[돌창]], [[간 돌살촉]], [[삼각돌칼]], [[통슴베 간 돌살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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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 435-3·1111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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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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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설명==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 435-3·1111 일원에 위치한다. 여수 죽림지구 택지 개발 사업에 앞서 2008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산지가 만나는 곡부를 기준으로 동서 2구간으로 나뉜다. 1지구는 무선산(해발 217m)에서 뻗은 구릉 서사면(해발 121m)에 위치하고, 2지구는 동쪽의 곡부를 지나 새롭게 형성된 구릉 동사면(해발 120m)에 입지한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와 [[고인돌|고인돌]]은 1지구와 2지구에서 확인된다. 그밖에 삼국 시대 집자리, [[토광묘|움무덤(土壙墓)]], [[석곽묘|돌덧널무덤(石槨墓)]], 고려 시대 돌덧널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 435-3·1111 일원에 위치한다. 여수 죽림지구 택지 개발 사업에 앞서 2008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산지가 만나는 곡부를 기준으로 동서 2구간으로 나뉜다. 1지구는 무선산(해발 217m)에서 뻗은 구릉 서사면(해발 121m)에 위치하고, 2지구는 동쪽의 곡부를 지나 새롭게 형성된 구릉 동사면(해발 120m)에 입지한다.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와 [[고인돌|고인돌]]은 1지구와 2지구에서 확인된다. 그밖에 삼국 시대 집자리, [[움무덤|움무덤(土壙墓)]], [[돌덧널무덤|돌덧널무덤(石槨墓)]], 고려 시대 돌덧널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구릉 사면 하단부에 위치하고, 무덤은 집자리가 있는 생활 구역에서 약간 동떨어진 곳에 별도로 위치한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1지구에서 1기, 2지구에서 2기로 총 3기가 확인되었다. 1지구 50호 집자리는 서사면 끝 해발 52m 내외에 입지하는데 장축 방향이 등고선 방향과 평행한다. 잔존 길이 9.12m의 세장방형 집자리로 구릉 하단부는 유실되었고, 내부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내부에서 민무늬 토기 편, 반달 돌칼, 돌도끼가 출토되었다. 2지구 2호와 7호 집자리는 해발 54~57m에 각각 단독으로 입지한다. 구릉 하단부쪽이 유실되었지만, 남아 있는 형태로 보아 평면 형태는 원형계이다. 2호에서는 내부 시설이 확인되지 않았고, 7호에서는 [[벽구|벽 도랑(壁溝)]]이 있고, 장타원형의 구덩이가 확인된다. 내부에서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을 비롯하여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편, [[숫돌|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구릉 사면 하단부에 위치하고, 무덤은 집자리가 있는 생활 구역에서 약간 동떨어진 곳에 별도로 위치한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1지구에서 1기, 2지구에서 2기로 총 3기가 확인되었다. 1지구 50호 집자리는 서사면 끝 해발 52m 내외에 입지하는데 장축 방향이 등고선 방향과 평행한다. 잔존 길이 9.12m의 세장방형 집자리로 구릉 하단부는 유실되었고, 내부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내부에서 민무늬 토기 편, 반달 돌칼, 돌도끼가 출토되었다. 2지구 2호와 7호 집자리는 해발 54~57m에 각각 단독으로 입지한다. 구릉 하단부쪽이 유실되었지만, 남아 있는 형태로 보아 평면 형태는 원형계이다. 2호에서는 내부 시설이 확인되지 않았고, 7호에서는 벽 도랑(壁溝)이 있고, 장타원형의 구덩이가 확인된다. 내부에서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을 비롯하여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편, [[숫돌|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이 분명하지 않지만, 50호 집자리는 세장방형이고, 주변에서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편이 수습되어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로 판단되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975년으로 확인되었다. 2호와 7호 집자리는 원형 집자리로, 출토 유물로 보아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한다.
출토 유물이 분명하지 않지만, 50호 집자리는 세장방형이고, 주변에서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편이 수습되어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로 판단되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975년으로 확인되었다. 2호와 7호 집자리는 원형 집자리로, 출토 유물로 보아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한다.


청동기 시대 무덤은 1지구에서 집자리와 동떨어진 곳에 별도로 입지한다. 무덤은 일명 [[묘역식고인돌|묘역식 고인돌(墓域式支石墓)]]로 불리는 형태이다. 묘역 시설은 4기가 확인되었는데, 3호 묘역식 고인돌만 원형이고, 나머지는 장방형 구획이다. 묘역은 형태가 완전하지 않지만, 잔존하는 형태로 보아 길이는 1호 5.3m, 2호 9.7m, 4호 18m, 3호 지름 4.5m 정도이다. 장방형 묘역의 장축 방향은 등고선 방향과 직교한다. 1~3호 묘역까지는 내부에서 각각 1기의 무덤방만 확인되었고, 4호 묘역식 고인돌에서는 묘역 시설 안에 5기, 묘역 시설 밖에 인근하여 1기의 무덤방이 확인되었다. 묘역식 고인돌은 깬돌(割石)로 원형 내지 장방형으로 구획하고 내부에 부정형의 깬돌을 채워 넣었다. 무덤방 위로는 [[덮개돌|덮개돌(上石)]]이 확인되지 않는다. 덮개돌이 있어야 할 곳이 묘역을 채운 것과 동일한 깬돌로 뒤덮여 있는 점으로 보아 원래 덮개돌이 없었다고 추정된다.
청동기 시대 무덤은 1지구에서 집자리와 동떨어진 곳에 별도로 입지한다. 무덤은 일명 묘역식 고인돌(墓域式支石墓)로 불리는 형태이다. 묘역 시설은 4기가 확인되었는데, 3호 묘역식 고인돌만 원형이고, 나머지는 장방형 구획이다. 묘역은 형태가 완전하지 않지만, 잔존하는 형태로 보아 길이는 1호 5.3m, 2호 9.7m, 4호 18m, 3호 지름 4.5m 정도이다. 장방형 묘역의 장축 방향은 등고선 방향과 직교한다. 1~3호 묘역까지는 내부에서 각각 1기의 무덤방만 확인되었고, 4호 묘역식 고인돌에서는 묘역 시설 안에 5기, 묘역 시설 밖에 인근하여 1기의 무덤방이 확인되었다. 묘역식 고인돌은 깬돌(割石)로 원형 내지 장방형으로 구획하고 내부에 부정형의 깬돌을 채워 넣었다. 무덤방 위로는 [[덮개돌|덮개돌(上石)]]이 확인되지 않는다. 덮개돌이 있어야 할 곳이 묘역을 채운 것과 동일한 깬돌로 뒤덮여 있는 점으로 보아 원래 덮개돌이 없었다고 추정된다.
 
묘역식 고인돌의 무덤방은 대부분 돌덧널형(石槨形)으로 지하에 깊게 이단으로 굴착하여 조성한 것과 무덤방만 겨우 지하에 마련한 구조의 2종류가 확인된다. 무덤방 규모는 장축 길이 2m를 기준으로 전후로 나뉜다. 바닥은 작은 깬돌을 깐 것과 판돌을 전체 혹은 짧은 벽에 깐 것,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은 것 등이 있다. 유물은 무덤방 안에서 확인된 것은 1호가 유일한데, [[돌창|돌창(石槍)]]과 [[간돌살촉|간 돌살촉]]이 확인되었고, 나머지는 묘역 주변에서 [[돌끌|돌끌(石鑿)]], 간 돌살촉, 민무늬 토기 편 등이 수습되었다. 특히 간 돌살촉은 슴베가 없고 기부가 편평한 형태로 청동기 시대 송국리 문화 단계에 유행한다. 또한 주변에서 [[삼각돌칼|삼각 돌칼]], 통슴베 간 돌살촉(一段莖式磨製石鏃) 등이 출토되는 점으로 보아 묘역식 고인돌의 조성 시기는 송국리 문화 단계인 기원전 600~400년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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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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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식 고인돌의 무덤방은 대부분 [[돌덧널형무덤방|돌덧널형(石槨形)]]으로 지하에 깊게 이단으로 굴착하여 조성한 것과 무덤방만 겨우 지하에 마련한 구조의 2종류가 확인된다. 무덤방 규모는 장축 길이 2m를 기준으로 전후로 나뉜다. 바닥은 작은 깬돌을 깐 것과 판돌을 전체 혹은 짧은 벽에 깐 것,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은 것 등이 있다. 유물은 무덤방 안에서 확인된 것은 1호가 유일한데, [[돌창|돌창(石槍)]]과 [[간돌살촉|간 돌살촉]]이 확인되었고, 나머지는 묘역 주변에서 [[돌끌|돌끌(石鑿)]], 간 돌살촉,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등이 수습되었다. 특히 간 돌살촉은 슴베가 없고 기부가 편평한 형태로 청동기 시대 송국리 문화 단계에 유행한다. 또한 주변에서 [[삼각돌칼|삼각 돌칼]], 통슴베 간 돌살촉(一段莖式磨製石鏃) 등이 출토되는 점으로 보아 묘역식 고인돌의 조성 시기는 송국리 문화 단계인 기원전 600~400년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 마한문화연구원. (2011). <i>여수 죽림리 차동유적Ⅰ·Ⅱ</i>. https://www.riss.kr/link?id=M12711256


[[분류: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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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5 기준 최신판


죽림리 차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여수 죽림리 차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 435-3·1111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고인돌, 움무덤, 돌덧널무덤, 민무늬 토기, 바리 토기, 숫돌, 송국리 문화, 간 돌살촉, 돌끌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천선행



설명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 435-3·1111 일원에 위치한다. 여수 죽림지구 택지 개발 사업에 앞서 2008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산지가 만나는 곡부를 기준으로 동서 2구간으로 나뉜다. 1지구는 무선산(해발 217m)에서 뻗은 구릉 서사면(해발 121m)에 위치하고, 2지구는 동쪽의 곡부를 지나 새롭게 형성된 구릉 동사면(해발 120m)에 입지한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고인돌은 1지구와 2지구에서 확인된다. 그밖에 삼국 시대 집자리, 움무덤(土壙墓), 돌덧널무덤(石槨墓), 고려 시대 돌덧널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구릉 사면 하단부에 위치하고, 무덤은 집자리가 있는 생활 구역에서 약간 동떨어진 곳에 별도로 위치한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1지구에서 1기, 2지구에서 2기로 총 3기가 확인되었다. 1지구 50호 집자리는 서사면 끝 해발 52m 내외에 입지하는데 장축 방향이 등고선 방향과 평행한다. 잔존 길이 9.12m의 세장방형 집자리로 구릉 하단부는 유실되었고, 내부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내부에서 민무늬 토기 편, 반달 돌칼, 돌도끼가 출토되었다. 2지구 2호와 7호 집자리는 해발 54~57m에 각각 단독으로 입지한다. 구릉 하단부쪽이 유실되었지만, 남아 있는 형태로 보아 평면 형태는 원형계이다. 2호에서는 내부 시설이 확인되지 않았고, 7호에서는 벽 도랑(壁溝)이 있고, 장타원형의 구덩이가 확인된다. 내부에서 민무늬 토기 편을 비롯하여 바리 토기(鉢形土器) 편, 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이 분명하지 않지만, 50호 집자리는 세장방형이고, 주변에서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편이 수습되어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로 판단되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975년으로 확인되었다. 2호와 7호 집자리는 원형 집자리로, 출토 유물로 보아 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한다.

청동기 시대 무덤은 1지구에서 집자리와 동떨어진 곳에 별도로 입지한다. 무덤은 일명 묘역식 고인돌(墓域式支石墓)로 불리는 형태이다. 묘역 시설은 4기가 확인되었는데, 3호 묘역식 고인돌만 원형이고, 나머지는 장방형 구획이다. 묘역은 형태가 완전하지 않지만, 잔존하는 형태로 보아 길이는 1호 5.3m, 2호 9.7m, 4호 18m, 3호 지름 4.5m 정도이다. 장방형 묘역의 장축 방향은 등고선 방향과 직교한다. 1~3호 묘역까지는 내부에서 각각 1기의 무덤방만 확인되었고, 4호 묘역식 고인돌에서는 묘역 시설 안에 5기, 묘역 시설 밖에 인근하여 1기의 무덤방이 확인되었다. 묘역식 고인돌은 깬돌(割石)로 원형 내지 장방형으로 구획하고 내부에 부정형의 깬돌을 채워 넣었다. 무덤방 위로는 덮개돌(上石)이 확인되지 않는다. 덮개돌이 있어야 할 곳이 묘역을 채운 것과 동일한 깬돌로 뒤덮여 있는 점으로 보아 원래 덮개돌이 없었다고 추정된다.

묘역식 고인돌의 무덤방은 대부분 돌덧널형(石槨形)으로 지하에 깊게 이단으로 굴착하여 조성한 것과 무덤방만 겨우 지하에 마련한 구조의 2종류가 확인된다. 무덤방 규모는 장축 길이 2m를 기준으로 전후로 나뉜다. 바닥은 작은 깬돌을 깐 것과 판돌을 전체 혹은 짧은 벽에 깐 것,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은 것 등이 있다. 유물은 무덤방 안에서 확인된 것은 1호가 유일한데, 돌창(石槍)간 돌살촉이 확인되었고, 나머지는 묘역 주변에서 돌끌(石鑿), 간 돌살촉, 민무늬 토기 편 등이 수습되었다. 특히 간 돌살촉은 슴베가 없고 기부가 편평한 형태로 청동기 시대 송국리 문화 단계에 유행한다. 또한 주변에서 삼각 돌칼, 통슴베 간 돌살촉(一段莖式磨製石鏃) 등이 출토되는 점으로 보아 묘역식 고인돌의 조성 시기는 송국리 문화 단계인 기원전 600~400년으로 판단된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8년~2009년 여수 죽림리 차동유적Ⅰ·Ⅱ 2011 마한문화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