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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원북리·정지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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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북리 9-6 및 정지리 238-8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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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박양진
| 집필자=박양진
| 조성 시기=청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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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북리 9-6 및 정지리 238-8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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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북리·정지리 유적은 삼국 시대 백제의 대규모 마을이 확인되었으며 청동기가 출토된 유적으로, 인접한 [[논산원북리유적|원북리 유적]]과 더불어 선사 시대부터 역사 시대에 이르는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원북리·정지리 유적은 삼국 시대 백제의 대규모 마을이 확인되었으며 청동기가 출토된 유적으로, 인접한 [[논산원북리유적|원북리 유적]]과 더불어 선사 시대부터 역사 시대에 이르는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 가경고고학연구소. (2013). <i>논산 정지리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3365419
* 충남대학교박물관. (2000). <i>논산 정지리 백제 취락지</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4 기준 최신판


원북리·정지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논산 원북리·정지리 유적, 논산 정지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북리 9-6 및 정지리 238-8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저장 구덩이, 독무덤, 움무덤, 돌뚜껑움무덤, 돌널무덤, 함정, 송국리식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박양진



설명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북리 9-6 및 정지리 238-8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 주변에는 구릉 지대를 중심으로 서북쪽에는 석성천, 남동쪽에는 논산천이 흐르며, 유적은 해발 40~60m외의 저구릉성 산지에 입지한다. 천안-논산 간 고속 도로 건설 구간에 포함되어 1999~2000년 충남대학교박물관이 집자리 5기, 저장 구덩이 1기, 독무덤(甕棺墓)2기, 움무덤 1기, 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2기, 돌널무덤(石棺墓) 1기와 그 밖에 초기 철기 시대의 움무덤과 백제 시대 집자리 116기 등을 조사하였다. 이후, 2011년에는 가경고고학연구소가 호남 고속 철도 지역 유물 산포지1에 대한 발굴 조사를 진행하여 청동기 시대 집자리 3기, 기둥 건물터 2기, 구덩이 1기, 구멍 기둥 열(柱孔列) 2기, 함정 1기, 독무덤 1기와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 3기를 비롯하여 백제 시대 집자리 등을 확인하였다.

충남대학교박물관에서 조사한 집자리는 4기가 평면 타원형이며, 1기는 말각 방형 형태이며 원래의 형태가 많이 훼손되었다. 집자리의 중앙에는 타원형 구덩이와 벽 도랑(壁溝) 등이 확인되었다. 평면 타원형은 지름 4.1~5.3m, 깊이 0.6m이며 AⅡ-1은 평면 말각방형으로 길이 4.7m, 너비 3.14m, 깊이 0.4m이다. AⅡ-19는 평면 원형으로 지름 4.14m, 깊이 0.6m이다. 집자리와 저장 구덩이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소량의 민무늬 토기와 붉은 간 토기, 숫돌(砥石) 등이 있다.

돌뚜껑움무덤 1호는 길이 1.8m, 너비 0.76m, 깊이 0.5m, 11호 1.32m, 너비 0.5m, 깊이 0.5m이며, 유물은 1호에서 송국리식 토기, 11호에서 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이 출토되었다. 돌널무덤은 길이1.34m, 너비 0.4m, 깊이 1m, 움무덤은 길이 1.24m, 너비 0.38m, 깊이 0.56m이다.

가경고고학연구소에서 조사한 집자리는 3기 모두 원형으로, 지름은 4~5m 내외로 비슷하다. 이 가운데 2기는 내부에 타원형 구덩이와 중심 기둥 구멍이 있는 송국리식이다. 출토 유물은 송국리식의 바리 토기(鉢形土器), 삼각돌칼, 배 모양 돌칼 등이다.

집자리로부터 25m 정도 떨어진 곳에 구덩이와 함정이 1기씩 위치한다. 구덩이는 방형으로, 안에서 삼각 돌칼 한 점이 출토되었다. 함정은 말각 세장방형이며 바닥에 2열의 기둥 구멍이 있다.

독무덤은 유적 동쪽 사면 하단부에 단독으로 위치한다. 지름 0.38m, 깊이 0.24m이다. 무덤 구덩이는 토기의 모양에 맞추어 굴착하고 벽면은 토기를 묻은 기울기에 맞추어 비스듬하게 사선 형태를 이룬다. 독널은 바닥에 몸통~아랫 부분만 남아 있다.

기둥 건물터 2기는 모두 북서쪽 능선 정상부에 위치하며, 백제 시대 집자리와 중복 관계를 이룬다. 1호는 4×1칸의 구조로 일부 후대 무덤에 의해 유실되었으며, 2호는 3×2칸으로 기둥 구멍 안에서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움무덤은 3기로, 모두 무덤 구덩이를 판 후 나무널(木棺)을 안치하고 널과 벽 사이를 흙으로 채웠다. 1~2호는 무덤 구덩이가 길이 2.3~2.33m, 너비 0.7m, 깊이 1.2~1.22m 정도로 너비에 비해 깊이가 1m 이상으로 매우 깊다. 내부에서는 세형동검쇠손칼(鐵刀子), 청동 지우개(銅鍦), 긴 목 항아리 등이 출토되었다. 3호는 길이 1.53m, 너비 0.55m, 깊이 0.42m이며, 내부에서 긴 목 항아리가 출토되었다.

원북리·정지리 유적은 삼국 시대 백제의 대규모 마을이 확인되었으며 청동기가 출토된 유적으로, 인접한 원북리 유적과 더불어 선사 시대부터 역사 시대에 이르는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