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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유적정보
| 이칭별칭=여수 웅천동 유적, 모전 유적, 송현 유적, 웅동 유적·고인돌군, 웅서 고인돌군
| 한글표제어=웅천동 유적
| 키워드=[[고인돌]], [[송국리식 집자리]], [[송국리 문화]], [[돌살촉]], [[돌검]], [[민무늬 토기]], [[돌도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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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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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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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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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오세미
| 집필자=오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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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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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설명==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 일원에 위치한다. 여수 용천 지구 택지 개발 사업 지구에 포함되어 2009년과 2011~2013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모전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유구 17기와 삼국 시대 유구 5기, 웅동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유구 14기와 삼국 시대 유구 14기, 웅동 고인돌군Ⅱ에서 고인돌 15기, 웅서 고인돌군에서 [[고인돌|고인돌]] 8기, 송현 유적에서 고인돌 4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해발 191m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해발 37m 정도의 산자락 끝부분에 위치한다. 그래서 마을에서 비교적 높은 지역에 해당하며, 남쪽으로 500m정도 떨어져 있는 바다를 한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곳이다. 모전·웅동·웅동Ⅱ·웅서 유적은 서로 100~200m 정도씩 떨어져 있어 전체적으로 보면 500m의 범위 안에 분포하여 하나의 유적군으로 판단된다. 다만, 송현 유적은 모전 유적에서 남쪽으로 900m 정도 떨어져 있다.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 일원에 위치한다. 여수 용천 지구 택지 개발 사업 지구에 포함되어 2009년과 2011~2013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모전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유구 17기와 삼국 시대 유구 5기, 웅동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유구 14기와 삼국 시대 유구 14기, 웅동 고인돌군Ⅱ에서 고인돌 15기, 웅서 고인돌군에서 [[고인돌|고인돌]] 8기, 송현 유적에서 고인돌 4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해발 191m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해발 37m 정도의 산자락 끝부분에 위치한다. 그래서 마을에서 비교적 높은 지역에 해당하며, 남쪽으로 500m정도 떨어져 있는 바다를 한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곳이다. 모전·웅동·웅동Ⅱ·웅서 유적은 서로 100~200m 정도씩 떨어져 있어 전체적으로 보면 500m의 범위 안에 분포하여 하나의 유적군으로 판단된다. 다만, 송현 유적은 모전 유적에서 남쪽으로 900m 정도 떨어져 있다.


모전 유적(웅천동 1825)은 고락산성에서 흘러내린 남사면의 평지(해발 23m)에 위치한다. 고인돌 16기, [[묘역시설|묘역 시설]] 1기가 확인되었다. 고인돌의 [[덮개돌|덮개돌(上石)]]은 평면 제형, 괴석형, 장방형, 오각형으로 다양하다. 묘역 시설은 대부분의 고인돌에서 확인되었는데 장방형 8기, 방형 1기이다. [[뚜껑돌|뚜껑돌(蓋石)]]은 10기에서 확인되는데, 5기는 뚜껑돌이 이중으로 덮여 있었다. 무덤방(墓室)의 장축 방향은 대부분 북서-남동이며, 3열로 배치되어 있다. [[돌덧널형무덤방|돌덧널형(石槨形)]]이 10기로 가장 많이 확인되었고, [[돌널형무덤방|돌널형(石棺形)]] 3기, [[혼축형무덤방|혼축형(混築形)]] 1기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간돌살촉|간 돌살촉]], [[간돌검|간 돌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돌도끼|돌도끼(石斧)]] 등이 출토되었다.
모전 유적(웅천동 1825)은 고락산성에서 흘러내린 남사면의 평지(해발 23m)에 위치한다. 고인돌 16기, 묘역 시설 1기가 확인되었다. 고인돌의 [[덮개돌|덮개돌(上石)]]은 평면 제형, 괴석형, 장방형, 오각형으로 다양하다. 묘역 시설은 대부분의 고인돌에서 확인되었는데 장방형 8기, 방형 1기이다. [[뚜껑돌|뚜껑돌(蓋石)]]은 10기에서 확인되는데, 5기는 뚜껑돌이 이중으로 덮여 있었다. 무덤방(墓室)의 장축 방향은 대부분 북서-남동이며, 3열로 배치되어 있다. 돌덧널형(石槨形)이 10기로 가장 많이 확인되었고, 돌널형(石棺形) 3기, 혼축형(混築形) 1기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간돌살촉|간 돌살촉]], [[간돌검|간 돌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돌도끼|돌도끼(石斧)]] 등이 출토되었다.


웅동 유적(웅천동 1814-21)은 웅동 마을 동쪽 구릉 말단부(해발 23m)에 위치한다. 고인돌 12기, [[집자리|집자리]] 1기, [[토광묘|움무덤(土壙墓)]] 1기가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1~3호에서만 덮개돌이 확인되었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부정형과 제형이다. 묘역 시설은 2기에서 확인되었는데, 1호는 장방형이며 4호는 타원형이다. 뚜껑돌은 4기에서 확인되었는데, 1호와 2호 고인돌은 이중으로 덮여 있었다. 무덤방은 12기 모두 돌덧널형이다. 장축 방향은 대부분 북서-남동이며, 3열로 배치되어 있다. 민무늬 토기, 돌도끼 등이 출토되었다. 집자리는 평면 타원형의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이다. 길이 6.8m, 남은 너비 5.12m, 깊이 0.21m이다. 내부 시설로는 양 끝 바깥쪽에 [[기둥구멍|기둥 구멍(柱孔)]]이 1기씩 파져 있는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된다.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서 미완성 [[돌도끼|돌도끼]] 등이 출토되었다. 움무덤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길이 2.42m, 너비 0.9m, 깊이 0.32~0.59m로 규모가 작은 편이다. 바닥 중앙에서 [[세형동검|세형동검]] 1점이 출토되었다.
웅동 유적(웅천동 1814-21)은 웅동 마을 동쪽 구릉 말단부(해발 23m)에 위치한다. 고인돌 12기, [[집자리|집자리]] 1기, [[움무덤|움무덤(土壙墓)]] 1기가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1~3호에서만 덮개돌이 확인되었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부정형과 제형이다. 묘역 시설은 2기에서 확인되었는데, 1호는 장방형이며 4호는 타원형이다. 뚜껑돌은 4기에서 확인되었는데, 1호와 2호 고인돌은 이중으로 덮여 있었다. 무덤방은 12기 모두 돌덧널형이다. 장축 방향은 대부분 북서-남동이며, 3열로 배치되어 있다. 민무늬 토기, 돌도끼 등이 출토되었다. 집자리는 평면 타원형의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이다. 길이 6.8m, 남은 너비 5.12m, 깊이 0.21m이다. 내부 시설로는 양 끝 바깥쪽에 [[기둥구멍|기둥 구멍(柱孔)]]이 1기씩 파져 있는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된다.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서 미완성 돌도끼 등이 출토되었다. 움무덤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길이 2.42m, 너비 0.9m, 깊이 0.32~0.59m로 규모가 작은 편이다. 바닥 중앙에서 [[세형동검|세형동검]] 1점이 출토되었다.


웅동 고인돌군Ⅱ(웅천동 1802-4)에서는 남북 30m, 동서 15m의 범위에서 15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다. 북쪽에 있는 고인돌들은 열상으로 분포하고, 남쪽에 있는 고인돌들은 연접 배치의 양상을 보인다. 고인돌 15기 중 덮개돌만 확인되는 것이 7기, 덮개돌이 없이 무덤방만 확인되는 것이 3기, 덮개돌과 무덤방 모두가 확인되는 것이 5기이다. 덮개돌은 일정한 형태는 보이지 않으며, 2호와 11호를 제외한 나머지 덮개돌은 소형에 속한다. 묘역 시설은 모두 장방형을 띠며, 묘역 안에 무덤방이 하나씩 있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9호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연접해 있다. 받침돌은 중앙에 있는 11호 고인돌에서만 확인된다. 무덤방은 대부분 판돌(板石)을 세운 돌널형이며, 돌덧널형 1기와 혼축형 1기도 확인되었다. 무덤방 가운데 큰 것은 길이 1.6m, 너비 0.4m이고, 작은 것은 길이 0.57m, 너비 0.23m 정도이다. 바닥 시설은 맨바닥인 것 외에 작은 깬돌(割石)을 바닥에 깐 것 2기와 판돌을 바닥에 깐 것 3기가 있다. 무덤방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은 없지만, 묘역 시설에서 [[간돌검|돌검]]과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웅동 고인돌군Ⅱ(웅천동 1802-4)에서는 남북 30m, 동서 15m의 범위에서 15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다. 북쪽에 있는 고인돌들은 열상으로 분포하고, 남쪽에 있는 고인돌들은 연접 배치의 양상을 보인다. 고인돌 15기 중 덮개돌만 확인되는 것이 7기, 덮개돌이 없이 무덤방만 확인되는 것이 3기, 덮개돌과 무덤방 모두가 확인되는 것이 5기이다. 덮개돌은 일정한 형태는 보이지 않으며, 2호와 11호를 제외한 나머지 덮개돌은 소형에 속한다. 묘역 시설은 모두 장방형을 띠며, 묘역 안에 무덤방이 하나씩 있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9호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연접해 있다. 받침돌은 중앙에 있는 11호 고인돌에서만 확인된다. 무덤방은 대부분 판돌(板石)을 세운 돌널형이며, 돌덧널형 1기와 혼축형 1기도 확인되었다. 무덤방 가운데 큰 것은 길이 1.6m, 너비 0.4m이고, 작은 것은 길이 0.57m, 너비 0.23m 정도이다. 바닥 시설은 맨바닥인 것 외에 작은 깬돌(割石)을 바닥에 깐 것 2기와 판돌을 바닥에 깐 것 3기가 있다. 무덤방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은 없지만, 묘역 시설에서 간 돌검과 민무늬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웅서 고인돌군(웅천동 1803)은 발굴 조사 당시 화단에 7기, 집터에 1기가 분포한다. 고인돌은 남북 15m, 동서 25m 범위에 동서로 열을 이루고 있었다. 고인돌 8기 중에서 덮개돌만 있는 것이 5기이고, 덮개돌과 하부 구조가 모두 확인되는 것이 3기이다. 덮개돌은 일정한 평면 형태를 띠지 않지만 단면 형태는 6기가 장방형이다. 장축 방향은 대부분 등고선과 나란한 동서이다. 덮개돌은 대부분 길이 2m 이하이고, 무게도 5톤 이하인 소형이지만 1호 고인돌은 길이 3.73m, 무게 25톤에 달하는 대형이다. 무덤방은 1~3호 고인돌에서만 확인되었는데 대부분 판돌(板石)을 세워 만든 돌널형이다. 무덤방 내부에 출토된 유물은 없지만, 묘역 시설에서 [[간돌살촉|간 돌살촉]], 민무늬 토기, [[돌도끼|돌도끼]] 등이 출토되었다.
웅서 고인돌군(웅천동 1803)은 발굴 조사 당시 화단에 7기, 집터에 1기가 분포한다. 고인돌은 남북 15m, 동서 25m 범위에 동서로 열을 이루고 있었다. 고인돌 8기 중에서 덮개돌만 있는 것이 5기이고, 덮개돌과 하부 구조가 모두 확인되는 것이 3기이다. 덮개돌은 일정한 평면 형태를 띠지 않지만 단면 형태는 6기가 장방형이다. 장축 방향은 대부분 등고선과 나란한 동서이다. 덮개돌은 대부분 길이 2m 이하이고, 무게도 5톤 이하인 소형이지만 1호 고인돌은 길이 3.73m, 무게 25톤에 달하는 대형이다. 무덤방은 1~3호 고인돌에서만 확인되었는데 대부분 판돌(板石)을 세워 만든 돌널형이다. 무덤방 내부에 출토된 유물은 없지만, 묘역 시설에서 간 돌살촉, 민무늬 토기, 돌도끼 등이 출토되었다.


송현 유적(웅천동 1853)은 송현 마을 남쪽 구릉의 서사면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해발 124m의 산을 경계로 신월동과 구분되고, 서쪽으로는 바다로 열려 있다. 4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지만 하부 구조는 확인되지 않았다.
송현 유적(웅천동 1853)은 송현 마을 남쪽 구릉의 서사면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해발 124m의 산을 경계로 신월동과 구분되고, 서쪽으로는 바다로 열려 있다. 4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지만 하부 구조는 확인되지 않았다.


웅천동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를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웅동 유적 2호 고인돌은 2530±40 BP, 송국리식 집자리는 2490±40 BP로 측정되어서 고인돌과 집자리가 비슷한 시기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방사성 탄소 연대와 더불어 유구의 구조와 출토 유물을 토대로 보면, 웅천동 유적의 고인돌과 집자리는 서로 비슷한 시기에 조영되었으며, 그 시기는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웅천동 유적은 약간씩 떨어져 있는 여러 개의 유적들이지만 고인돌의 구조와 출토 유물로 보아 동일한 집단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권을 파악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웅천동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를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웅동 유적 2호 고인돌은 2530±40 BP, 송국리식 집자리는 2490±40 BP로 측정되어서 고인돌과 집자리가 비슷한 시기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방사성 탄소 연대와 더불어 유구의 구조와 출토 유물을 토대로 보면, 웅천동 유적의 고인돌과 집자리는 서로 비슷한 시기에 조영되었으며, 그 시기는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웅천동 유적은 약간씩 떨어져 있는 여러 개의 유적들이지만 고인돌의 구조와 출토 유물로 보아 동일한 집단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권을 파악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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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여수_웅천동_유적(웅동_고인돌군II)_유구_배치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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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9년~2010년 || 여수 웅천동 –웅서·웅동·모전·송현유적- || 2013 || 동북아지석묘연구소
|-
| 발굴조사 || 2012년 1월 30일~2012년 2월 24일 (웅동지석묘군Ⅱ) || 여수 웅천동 -웅동Ⅱ·웅서 지석묘군- || 2016 || 동북아지석묘연구소
|-
| 발굴조사 || 2012년 4월 23일~2012년 5월 30일 (웅서지석묘군) || 여수 웅천동 -웅동Ⅱ·웅서 지석묘군- || 2016 || 동북아지석묘연구소
|}
==참고문헌==
* 동북아지석묘연구소. (2013). <i>여수 웅천동 –웅서·웅동·모전·송현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3310208
* 동북아지석묘연구소. (2016). <i>여수 웅천동 -웅동Ⅱ·웅서 지석묘군-</i>.  https://www.riss.kr/link?id=M14187149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4 기준 최신판


웅천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여수 웅천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고인돌, 간 돌살촉, 간 돌검, 민무늬 토기, 돌도끼, 집자리, 움무덤, 송국리식 집자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오세미



설명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 일원에 위치한다. 여수 용천 지구 택지 개발 사업 지구에 포함되어 2009년과 2011~2013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모전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유구 17기와 삼국 시대 유구 5기, 웅동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유구 14기와 삼국 시대 유구 14기, 웅동 고인돌군Ⅱ에서 고인돌 15기, 웅서 고인돌군에서 고인돌 8기, 송현 유적에서 고인돌 4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해발 191m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해발 37m 정도의 산자락 끝부분에 위치한다. 그래서 마을에서 비교적 높은 지역에 해당하며, 남쪽으로 500m정도 떨어져 있는 바다를 한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곳이다. 모전·웅동·웅동Ⅱ·웅서 유적은 서로 100~200m 정도씩 떨어져 있어 전체적으로 보면 500m의 범위 안에 분포하여 하나의 유적군으로 판단된다. 다만, 송현 유적은 모전 유적에서 남쪽으로 900m 정도 떨어져 있다.

모전 유적(웅천동 1825)은 고락산성에서 흘러내린 남사면의 평지(해발 23m)에 위치한다. 고인돌 16기, 묘역 시설 1기가 확인되었다. 고인돌의 덮개돌(上石)은 평면 제형, 괴석형, 장방형, 오각형으로 다양하다. 묘역 시설은 대부분의 고인돌에서 확인되었는데 장방형 8기, 방형 1기이다. 뚜껑돌(蓋石)은 10기에서 확인되는데, 5기는 뚜껑돌이 이중으로 덮여 있었다. 무덤방(墓室)의 장축 방향은 대부분 북서-남동이며, 3열로 배치되어 있다. 돌덧널형(石槨形)이 10기로 가장 많이 확인되었고, 돌널형(石棺形) 3기, 혼축형(混築形) 1기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간 돌살촉, 간 돌검, 민무늬 토기, 돌도끼(石斧) 등이 출토되었다.

웅동 유적(웅천동 1814-21)은 웅동 마을 동쪽 구릉 말단부(해발 23m)에 위치한다. 고인돌 12기, 집자리 1기, 움무덤(土壙墓) 1기가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1~3호에서만 덮개돌이 확인되었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부정형과 제형이다. 묘역 시설은 2기에서 확인되었는데, 1호는 장방형이며 4호는 타원형이다. 뚜껑돌은 4기에서 확인되었는데, 1호와 2호 고인돌은 이중으로 덮여 있었다. 무덤방은 12기 모두 돌덧널형이다. 장축 방향은 대부분 북서-남동이며, 3열로 배치되어 있다. 민무늬 토기, 돌도끼 등이 출토되었다. 집자리는 평면 타원형의 송국리식이다. 길이 6.8m, 남은 너비 5.12m, 깊이 0.21m이다. 내부 시설로는 양 끝 바깥쪽에 기둥 구멍(柱孔)이 1기씩 파져 있는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된다.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서 미완성 돌도끼 등이 출토되었다. 움무덤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길이 2.42m, 너비 0.9m, 깊이 0.32~0.59m로 규모가 작은 편이다. 바닥 중앙에서 세형동검 1점이 출토되었다.

웅동 고인돌군Ⅱ(웅천동 1802-4)에서는 남북 30m, 동서 15m의 범위에서 15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다. 북쪽에 있는 고인돌들은 열상으로 분포하고, 남쪽에 있는 고인돌들은 연접 배치의 양상을 보인다. 고인돌 15기 중 덮개돌만 확인되는 것이 7기, 덮개돌이 없이 무덤방만 확인되는 것이 3기, 덮개돌과 무덤방 모두가 확인되는 것이 5기이다. 덮개돌은 일정한 형태는 보이지 않으며, 2호와 11호를 제외한 나머지 덮개돌은 소형에 속한다. 묘역 시설은 모두 장방형을 띠며, 묘역 안에 무덤방이 하나씩 있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9호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연접해 있다. 받침돌은 중앙에 있는 11호 고인돌에서만 확인된다. 무덤방은 대부분 판돌(板石)을 세운 돌널형이며, 돌덧널형 1기와 혼축형 1기도 확인되었다. 무덤방 가운데 큰 것은 길이 1.6m, 너비 0.4m이고, 작은 것은 길이 0.57m, 너비 0.23m 정도이다. 바닥 시설은 맨바닥인 것 외에 작은 깬돌(割石)을 바닥에 깐 것 2기와 판돌을 바닥에 깐 것 3기가 있다. 무덤방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은 없지만, 묘역 시설에서 간 돌검과 민무늬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웅서 고인돌군(웅천동 1803)은 발굴 조사 당시 화단에 7기, 집터에 1기가 분포한다. 고인돌은 남북 15m, 동서 25m 범위에 동서로 열을 이루고 있었다. 고인돌 8기 중에서 덮개돌만 있는 것이 5기이고, 덮개돌과 하부 구조가 모두 확인되는 것이 3기이다. 덮개돌은 일정한 평면 형태를 띠지 않지만 단면 형태는 6기가 장방형이다. 장축 방향은 대부분 등고선과 나란한 동서이다. 덮개돌은 대부분 길이 2m 이하이고, 무게도 5톤 이하인 소형이지만 1호 고인돌은 길이 3.73m, 무게 25톤에 달하는 대형이다. 무덤방은 1~3호 고인돌에서만 확인되었는데 대부분 판돌(板石)을 세워 만든 돌널형이다. 무덤방 내부에 출토된 유물은 없지만, 묘역 시설에서 간 돌살촉, 민무늬 토기, 돌도끼 등이 출토되었다.

송현 유적(웅천동 1853)은 송현 마을 남쪽 구릉의 서사면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해발 124m의 산을 경계로 신월동과 구분되고, 서쪽으로는 바다로 열려 있다. 4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지만 하부 구조는 확인되지 않았다.

웅천동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 탄소 연대를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웅동 유적 2호 고인돌은 2530±40 BP, 송국리식 집자리는 2490±40 BP로 측정되어서 고인돌과 집자리가 비슷한 시기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방사성 탄소 연대와 더불어 유구의 구조와 출토 유물을 토대로 보면, 웅천동 유적의 고인돌과 집자리는 서로 비슷한 시기에 조영되었으며, 그 시기는 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웅천동 유적은 약간씩 떨어져 있는 여러 개의 유적들이지만 고인돌의 구조와 출토 유물로 보아 동일한 집단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권을 파악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9년~2010년 여수 웅천동 –웅서·웅동·모전·송현유적- 2013 동북아지석묘연구소
발굴조사 2012년 1월 30일~2012년 2월 24일 (웅동지석묘군Ⅱ) 여수 웅천동 -웅동Ⅱ·웅서 지석묘군- 2016 동북아지석묘연구소
발굴조사 2012년 4월 23일~2012년 5월 30일 (웅서지석묘군) 여수 웅천동 -웅동Ⅱ·웅서 지석묘군- 2016 동북아지석묘연구소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