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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용주리 창무 고인돌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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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동북아지석묘연구소. (2016). <i>여수 용주리 웅동·창무리 창무지석묘군</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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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4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여수 용주리 창무 고인돌군, 여수 용주리 창무 지석묘군, 여수 창무리 창무 고인돌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 1548-2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무지석식 고인돌, 송국리 문화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오세미 |
설명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 1548-2 일원에 위치한다. 여수 나진-소라간 국지도 확포장 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2013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고인돌 5기, 고인돌 덮개돌(上石) 1기, 덮개돌 없이 확인된 무덤방(石槨·石棺) 19기와 조선 시대 도랑(溝) 2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해발 15m 정도의 평지에 위치한다. 지형은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으며, 일부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었다.
고인돌은 모두 25기인데, 그 중에는 덮개돌만 확인되거나 무덤방만 확인된 것이 다수이다. 고인돌은 모두 무지석식(無支石式)으로 확인되었다. 덮개돌은 6기가 확인되었는데, 장축 방향은 대부분 등고선과 나란한 남북이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 3기, 삼각형 1기, 타원형 1기, 괴석형 1기로 장방형이 많다. 단면 형태는 6기 모두 장방형이다. 덮개돌의 크기가 다양한 편이어서 무게도 2~9톤으로 다양하다. 묘역 시설은 확인되지 않는다. 1·2·5호 고인돌에서는 이중으로 덮인 뚜껑돌(蓋石)이 확인되었다. 덮개돌이 없이 무덤방만 확인된 것 중에서 뚜껑돌이 확인된 것은 9기이다. 무덤방의 장축 방향은 대부분 덮개돌과 같은 남북이다. 무덤방은 대부분 깬돌(割石)이나 자연석을 세우거나 쌓아 1~3단으로 축조하였다. 그래서 돌덧널형(石槨形)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밖에 다른 형식으로는 8호 돌널은 돌널형(石棺形)이며, 6호 고인돌과 6-1호 돌덧널은 돌돌림형(圍石形)이다. 바닥 시설은 대부분 맨바닥을 그대로 이용하였지만 1·4·5호 고인돌은 잔자갈로 듬성듬성 깔았다. 9호 돌덧널은 4매의 판돌(板石)을 바닥 전면에 깔고 나서 중간에 작은 깬돌(割石)을 깔았다. 출토 유물은 총 6점으로 간 돌살촉, 간 돌검, 민무늬 토기 등이 있다.
용주리 창무 고인돌은 연대를 추정할 만한 직접적인 자료는 없지만 인근에 위치한 용주리 웅동 고인돌의 방사성 탄소 연대가 기원전 5세기를 전후한 시기로 측정된 것으로 보아 이 유적 역시 송국리 문화 단계에 속할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 동북아지석묘연구소. (2016). 여수 용주리 웅동·창무리 창무지석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