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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오상리 고인돌군 | |||
| 이칭별칭=강화 오상리 고인돌군, 강화 오상리 지석묘군, 강화 내가 오상리 고인돌 | | 이칭별칭=강화 오상리 고인돌군, 강화 오상리 지석묘군, 강화 내가 오상리 고인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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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유산 || UNESCO 세계유산 ||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 <span class="plainlinks">[https://www.heritage.go.kr/heri/html/HtmlPage.do?pg=/unesco/Heritage/Heritage_07.jsp&pageNo=5_2_2_0 🔗]</span> | | 세계유산 || UNESCO 세계유산 ||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 <span class="plainlinks">[https://www.heritage.go.kr/heri/html/HtmlPage.do?pg=/unesco/Heritage/Heritage_07.jsp&pageNo=5_2_2_0 🔗]</sp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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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선문대학교 고고연구소, 강화군. (2002). <i>강화 오상리 지석묘</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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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3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강화 오상리 고인돌군, 강화 오상리 지석묘군, 강화 내가 오상리 고인돌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오상리 산125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탁자식 고인돌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하문식 |
설명
세계 문화유산 강화 고인돌 유적. 인천광역시 기념물.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오상리 산125 일원에 위치한다. 이 중 내가 고인돌이 먼저 알려져 1995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2000년에 조사를 진행하여 11기의 탁자식(卓子式) 고인돌을 발굴하였다. 고인돌은 구릉의 끝부분에 낙타 등처럼 생긴 좁은 지역에 밀집 분포하고 있다.
덮개돌(上石)은 부분적으로 손질한 흔적이 있고, 평면 형태는 모두 판돌형(板石形)이다. 덮개돌은 내가 고인돌이 길이 3.35m로 가장 크고 나머지는 길이가 1.3~2.6m로 다양한 편이다. 무덤방(墓室)은 복원 결과 돌널(石棺) 형태의 ‘Ⅱ’자 모습이고, 받침돌(支石)이나 막음돌(閉塞石)을 세울때 튼튼하게 하기 위하여 주변에 쐐기돌을 사용하였다. 무덤방의 바닥은 거의 대부분 맨바닥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1·4·9호 고인돌은 판돌이나 깬돌(割石)이 깔려 있었다. 또한 무덤방의 주변에는 돌을 깔거나 쌓아서 하나의 묘역(墓域)을 형성하며 동시에 무덤방을 보호하는 역할도 하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무덤방 주위에 돌을 깔거나 쌓은 것이 고인돌 사이에 서로 연결되어 있어 축조 선후 관계나 이곳에 묻힌 사람들의 관계에 대하여 시사하는 점이 많다. 탁자식 고인돌에도 돌을 깔아 놓은 것은 연천 학곡리 유적에서도 조사되었다. 한편 이 유적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받침돌의 높이가 0.5m 안팎으로 덮개돌의 크기에 비해 고인돌의 전체 높이가 비교적 낮다는 것이다.
출토 유물 가운데 석기류는 간 돌검, 돌살촉(石鏃), 달도끼(環狀石斧), 반달 돌칼, 돌자귀, 갈판(碾石) 등 비교적 다양하다. 돌살촉은 대부분 버들잎 모양(柳葉形)이며, 몸통의 단면은 마름모꼴이고 슴베(莖部)는 육각형, 사각형, 원형 등이다. 토기는 민무늬 토기와 붉은 간 토기, 그리고 팽이 토기(角形土器) 편이 있다.
지정정보
| 구분 | 지정 종목 | 지정 명칭 | 자세히 보기 |
|---|---|---|---|
| 국가유산 | 인천광역시 기념물 | 강화 오상리 고인돌군 (江華 鰲上里 고인돌群) | 🔗 |
| 세계유산 | UNESCO 세계유산 |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 🔗 |
참고문헌
- 선문대학교 고고연구소, 강화군. (2002). 강화 오상리 지석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