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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는 오동 유적의 1문화층과 2문화층은 기원전 2000년기에 해당하고, 3문화층은 기원전 1000년기 초로 보았다. 그러나 이웃한 두만강 유역과 연해주의 자료가 증가함에 따라서 이와 비교해 볼 수 있다. 두만강 내륙의 [[싱청문화|흥성 문화(興城文化)]]와 연해주의 마르가리톱카 문화와 비교해 볼 때 오동식 토기도 3500~3000년 전에 존재했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오동 유적의 1문화층과 2문화층은 기원전 2000년기에 해당하고, 3문화층은 기원전 1000년기 초로 보았다. 그러나 이웃한 두만강 유역과 연해주의 자료가 증가함에 따라서 이와 비교해 볼 수 있다. 두만강 내륙의 [[싱청문화|흥성 문화(興城文化)]]와 연해주의 마르가리톱카 문화와 비교해 볼 때 오동식 토기도 3500~3000년 전에 존재했을 것이다.
==참고문헌==
* 김재윤. (2011). 동북한 청동기 시대 형성과정. <i>동북아역사논총, 32</i>, 281-332. https://www.riss.kr/link?id=A104524536
* 도유호. (1959). <i>회령 오동원시 유적 발굴보고</i>. 과학원출판사. https://unibook.unikorea.go.kr/material/view?uid=CAT-00000000000039201
* 황기덕. (1975). 무산범의구석유적 발굴보고. <i>고고민속론문집, 6</i>.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69509


[[분류: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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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3 기준 최신판


오동식 토기
기본 정보
시대 청동기 시대
관련 정보
유적 나선 굴포리 유적, 회령 오동 유적
키워드 붉은 간 토기, 갈색 간 토기, 검은 간 토기, 겹아가리 토기, 마르가리톱카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재윤



설명

오동식 토기는 회령 오동 유적의 청동기 시대층에서 나온 것을 일컫는다. 8기의 집자리가 확인되었는데, 철기 시대 6호를 제외하고는 청동기 시대 유구이다. 문화층에서는 신석기 시대 유물도 발견되었다. 토기를 제외하고도 흑요석으로 제작된 석기가 많이 출토되었다. 매부리형 석기 및 곰배괭이 뿐만 아니라 콩·팥·기장 등과 사람·새·짐승의 뼈화석 등 다양한 자료가 확인되었다.

오동 유적에서 보고된 토기는 갈색 토기, 채색 토기, 간 토기인데, 이 중에서 채색 토기는 붉은 간 토기(赤色磨硏土器), 갈색 간 토기(褐色磨硏土器)를 일컫는다. 그런데 범의구석 보고서에서 오동 유적의 토기 가운데 5호에는 검은 간 토기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8호에서는 갈색 토기, 1호와 2호에서는 붉은 간 토기와 갈색 토기, 4호에서는 갈색 토기가 출토되어서 집자리 마다 주요 토기의 종류가 약간씩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갈색 간 토기 중에는 입술 부위를 덧띠로 붙이고 그 위 새김 문양이 남아 있는 토기도 있다. 또한 토기 입술 아래에 구멍무늬 혹은 입술 끝에 톱날처럼 새긴 문양도 있다. 토기의 높이와 바닥 지름의 비율이 매우 커서 불안정해 보이는 생김새도 있다. 붉은 간 토기는 대접, 보시기 등 낮은 생김새의 토기가 많다. 이들 토기의 생김새는 바리 토기, 보시기, 대접, 잔 등이 있다.

오동식 토기가 출토되는 집자리는 중복 관계와 토기의 출토 양상에 따라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기는 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와 붉은 간 토기가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1·2·7·8호이다. 2기는 입술 부위가 두겹으로 처리된 갈색 토기와 대형 토기가 4호에서 집중 출토된다. 이들 토기는 서포항 유적의 청동기 시대층과 연해주의 마르가리톱카 문화(Маргаритовская культура)에서 출토되는 것과 유사점이 많다.

북한에서는 오동 유적의 1문화층과 2문화층은 기원전 2000년기에 해당하고, 3문화층은 기원전 1000년기 초로 보았다. 그러나 이웃한 두만강 유역과 연해주의 자료가 증가함에 따라서 이와 비교해 볼 수 있다. 두만강 내륙의 흥성 문화(興城文化)와 연해주의 마르가리톱카 문화와 비교해 볼 때 오동식 토기도 3500~3000년 전에 존재했을 것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