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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유적정보
| 이칭별칭=진안 삼락리 풍암 고인돌군, 용담댐 수몰 지구 내 유적, 풍암 유적
| 한글표제어=삼락리 풍암 고인돌군
| 키워드=[[고인돌]], [[단독무덤]], [[연접무덤]], [[깊은 바리 토기]], [[직립 구연 항아리]], [[슴베 없는 돌살촉]], [[송국리식 외반 구연 토기]], [[통자루 간 돌검]], [[슴베 돌살촉]]
| 이칭별칭=진안 삼락리 풍암 고인돌군, 진안 삼락리 풍암 지석묘군
| 시대=청동기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433-9 일원
| 성격=고인돌
| 키워드=[[고인돌]], [[항아리 모양 토기]], [[송국리식 토기]], [[바리 토기]], [[통자루 간 돌검]], [[돌살촉]], [[돌자귀]], [[돌끌]], [[갈돌]]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승옥
| 집필자=김승옥
| 성격=고인돌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433-9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설명==
==설명==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433-9 일원에 위치한다. 용담댐 수몰 지구 발굴 조사의 일환으로 2000년에 발굴 조사하여 16기의 [[고인돌|고인돌]]이 확인되었다. 장등마을로부터 흘러오는 개천과 안천면 백화리에서부터 흘러오는 작은 하천이 만나 안자천과 합류하는 지점에 형성되어 있다. 유적이 자리하는 구릉은 2개의 작은 하천에 의해 계속적인 침식작용이 일어나 결국 남북으로 길게 뻗은 구릉을 형성하게 되었다. 길게 뻗어 있는 구릉의 정상면에 고인돌군이 자리하고 있으며, 장등으로부터 내려오는 개천을 경계로 [[삼락리안자동고인돌군|삼락리 안자동 고인돌군]]과 구분된다.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433-9 일원에 위치한다. 용담댐 수몰 지구 발굴 조사의 일환으로 2000년에 발굴 조사하여 16기의 [[고인돌|고인돌]]이 확인되었다. 장등마을로부터 흘러오는 개천과 안천면 백화리에서부터 흘러오는 작은 하천이 만나 안자천과 합류하는 지점에 형성되어 있다. 유적이 자리하는 구릉은 2개의 작은 하천에 의해 계속적인 침식작용이 일어나 결국 남북으로 길게 뻗은 구릉을 형성하게 되었다. 길게 뻗어 있는 구릉의 정상면에 고인돌군이 자리하고 있으며, 장등으로부터 내려오는 개천을 경계로 [[진안삼락리안자동고인돌군|삼락리 안자동 고인돌군]]과 구분된다.
 
고인돌은 크게 단독무덤(單獨墓)과 여러 기가 일렬로 조성되어 있는 연접무덤(連接墓)으로 구분할 수 있고, 묘역(墓域)의 형태는 모두 방형계이다. 일부는 파괴가 심하여 형식 설정의 어려움이 있지만 단독무덤 중에서 형식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무덤은 14호와 16호이다. 이들 단독무덤의 [[무덤방|무덤방(墓室)]]은 모두 돌덧널형(石槨形)을 하고 있고 장축은 동서 방향으로 능선과 직교한다. 각각 길이 1.85m, 너비 0.6m, 깊이 0.3m, 길이 2.1m, 너비 0.65m, 깊이 0.3m이다. 묘역의 규모는 길이 11.5m, 너비 8.5m와 길이 11m, 너비 5.6m로 다른 고인돌보다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또한 묘역의 적석부(積石部)가 저분구(低墳丘) 형태로 축조되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단독무덤과 달리 연접무덤은 무덤방의 장축 방향이 남북이고 묘역부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으며 무덤이 2열로 조성되어 있으며 각 열이 연접하여 2개의 소군으로 구분된다. 이들 1군과 2군 연접무덤은 능선 방향을 따라 2열로 나란하게 조성되어 있는데, 중복 관계상 단독무덤이 연접무덤보다 이른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아가리의 형태에 따라 직립 구연(直立口緣)의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외반 구연(外反口緣)의 [[송국리식토기|송국리식 토기]], 내만 구연(內灣口緣)의 [[바리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직립 구연의 바리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석기류는 [[통자루간돌검|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삼각오목돌살촉|삼각 오목 돌살촉(三角灣入石鏃)]], [[통슴베돌살촉|통슴베 돌살촉(一段莖式石鏃)]], [[턱슴베돌살촉|턱 슴베 돌살촉(二段莖式石鏃)]], [[돌자귀|돌자귀(石手斧)]], [[돌끌|돌끌(石鑿)]], [[갈돌|갈돌(耉石棒)]] 등이 출토되었다. 단독무덤의 출토 유물은 내만 구연의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나 [[직립구연항아리|직립 구연 항아리]], [[슴베없는돌살촉|슴베 없는 돌살촉]] 등으로 연접무덤보다 앞선 시기로 편년되며, 연접무덤에서는 송국리식 외반 구연 토기와 통자루 간 돌검, 슴베 돌살촉 등의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단계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고인돌군은 조사 이후 용담댐 건설로 수몰되었다.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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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진안_삼락리_풍암_고인돌군_출토_간_돌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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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은 크게 [[단독무덤|단독무덤(單獨墓)]]과 여러 기가 일렬로 조성되어 있는 [[연접무덤|연접무덤(連接墓)]]으로 구분할 수 있고, [[묘역|묘역(墓域)]]의 형태는 모두 방형계이다. 일부는 파괴가 심하여 형식 설정의 어려움이 있지만 단독무덤 중에서 형식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무덤은 14호와 16호이다. 이들 단독무덤의 [[무덤방|무덤방(墓室)]]은 모두 [[돌덧널형무덤방|돌덧널형(石槨形)]]을 하고 있고 장축은 동서 방향으로 능선과 직교한다. 각각 길이 1.85m, 너비 0.6m, 깊이 0.3m, 길이 2.1m, 너비 0.65m, 깊이 0.3m이다. 묘역의 규모는 길이 11.5m, 너비 8.5m와 길이 11m, 너비 5.6m로 다른 고인돌보다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또한 묘역의 [[적석부|적석부(積石部)]]가 [[저분구|저분구(低墳丘)]] 형태로 축조되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단독무덤과 달리 연접무덤은 무덤방의 장축 방향이 남북이고 묘역부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으며 무덤이 2열로 조성되어 있으며 각 열이 연접하여 2개의 소군으로 구분된다. 이들 1군과 2군 연접무덤은 능선 방향을 따라 2열로 나란하게 조성되어 있는데, 중복 관계상 단독무덤이 연접무덤보다 이른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0년 || 진안 용담댐 수몰지구 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보고서X-풍암 유적- || 2001 || 전북대학교박물관
|}


유물은 아가리의 형태에 따라 [[직립구연의항아리모양토기|직립 구연(直立口緣)의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외반구연의송국리식토기|외반 구연(外反口緣)의 송국리식 토기]], [[내만구연의바리토기|내만 구연(內灣口緣)의 바리 토기(鉢形土器)]], [[직립구연의바리토기|직립 구연의 바리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석기류는 [[통자루간돌검|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삼각오목돌살촉|삼각 오목 돌살촉(三角灣入石鏃)]], [[통슴베돌살촉|통슴베 돌살촉(一段莖式石鏃)]], [[턱슴베돌살촉|턱 슴베 돌살촉(二段莖式石鏃)]], [[돌자귀|돌자귀(石手斧)]], [[돌끌|돌끌(石鑿)]], [[갈돌|갈돌(耉石棒)]] 등이 출토되었다. 단독무덤의 출토 유물은 내만 구연의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나 [[직립구연항아리|직립 구연 항아리]], [[슴베없는돌살촉|슴베 없는 돌살촉]] 등으로 연접무덤보다 앞선 시기로 편년되며, 연접무덤에서는 송국리식 외반 구연 토기와 통자루 간 돌검, 슴베 돌살촉 등의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단계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고인돌군은 조사 이후 용담댐 건설로 수몰되었다.
==참고문헌==
* 전북대학교박물관. (2001). <i>진안 용담댐 수몰지구 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보고서X-풍암 유적-</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1 기준 최신판


삼락리 풍암 고인돌군
기본 정보
동의어 진안 삼락리 풍암 고인돌군, 진안 삼락리 풍암 지석묘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433-9 일원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항아리 모양 토기, 송국리식 토기, 바리 토기, 통자루 간 돌검, 돌살촉, 돌자귀, 돌끌, 갈돌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승옥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433-9 일원에 위치한다. 용담댐 수몰 지구 발굴 조사의 일환으로 2000년에 발굴 조사하여 16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었다. 장등마을로부터 흘러오는 개천과 안천면 백화리에서부터 흘러오는 작은 하천이 만나 안자천과 합류하는 지점에 형성되어 있다. 유적이 자리하는 구릉은 2개의 작은 하천에 의해 계속적인 침식작용이 일어나 결국 남북으로 길게 뻗은 구릉을 형성하게 되었다. 길게 뻗어 있는 구릉의 정상면에 고인돌군이 자리하고 있으며, 장등으로부터 내려오는 개천을 경계로 삼락리 안자동 고인돌군과 구분된다.

고인돌은 크게 단독무덤(單獨墓)과 여러 기가 일렬로 조성되어 있는 연접무덤(連接墓)으로 구분할 수 있고, 묘역(墓域)의 형태는 모두 방형계이다. 일부는 파괴가 심하여 형식 설정의 어려움이 있지만 단독무덤 중에서 형식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무덤은 14호와 16호이다. 이들 단독무덤의 무덤방(墓室)은 모두 돌덧널형(石槨形)을 하고 있고 장축은 동서 방향으로 능선과 직교한다. 각각 길이 1.85m, 너비 0.6m, 깊이 0.3m, 길이 2.1m, 너비 0.65m, 깊이 0.3m이다. 묘역의 규모는 길이 11.5m, 너비 8.5m와 길이 11m, 너비 5.6m로 다른 고인돌보다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또한 묘역의 적석부(積石部)가 저분구(低墳丘) 형태로 축조되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단독무덤과 달리 연접무덤은 무덤방의 장축 방향이 남북이고 묘역부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으며 무덤이 2열로 조성되어 있으며 각 열이 연접하여 2개의 소군으로 구분된다. 이들 1군과 2군 연접무덤은 능선 방향을 따라 2열로 나란하게 조성되어 있는데, 중복 관계상 단독무덤이 연접무덤보다 이른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아가리의 형태에 따라 직립 구연(直立口緣)의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외반 구연(外反口緣)의 송국리식 토기, 내만 구연(內灣口緣)의 바리 토기(鉢形土器), 직립 구연의 바리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석기류는 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삼각 오목 돌살촉(三角灣入石鏃), 통슴베 돌살촉(一段莖式石鏃), 턱 슴베 돌살촉(二段莖式石鏃), 돌자귀(石手斧), 돌끌(石鑿), 갈돌(耉石棒) 등이 출토되었다. 단독무덤의 출토 유물은 내만 구연의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직립 구연 항아리, 슴베 없는 돌살촉 등으로 연접무덤보다 앞선 시기로 편년되며, 연접무덤에서는 송국리식 외반 구연 토기와 통자루 간 돌검, 슴베 돌살촉 등의 송국리 문화 단계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고인돌군은 조사 이후 용담댐 건설로 수몰되었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0년 진안 용담댐 수몰지구 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보고서X-풍암 유적- 2001 전북대학교박물관

참고문헌

  • 전북대학교박물관. (2001). 진안 용담댐 수몰지구 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보고서X-풍암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