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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산하동 유적
| 이칭별칭=울산 산하동 유적, 울산 산하동 37 유적, 울산 산하동 산음 유적, 울산 산하동 화암 유적, 울산 산하동 화암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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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울산광역시 북구 산하동 산116, 1002, 1051, 1102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검단리식 집자리]], [[구덩이]], [[돌널무덤]], [[검단리 유형]], [[연암동식 둘레 도랑]], [[조갯날 돌도끼]], [[돌대팻날]], [[돌끌]], [[돌도끼]], [[가락바퀴]], [[배 모양 석기]], [[바리 토기]], [[독 모양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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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황창한
| 집필자=황창한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복합유적
| 크기=368,209㎡
| 소재지=울산광역시 북구 산하동 산116, 1002, 1051, 1102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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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북구 산하동 산116, 1002, 1051, 1102 일원에 위치한다. 울산-강동 간 도로 확·포장 공사로 울산문화재연구원(산하동 산음 유적)이 2003년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16기, [[구덩이|구덩이]] 1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강동 지구 택지 개발 사업으로 2007~2012년 4개 기관이 구역을 나누어 조사하였다. Ⅰ구역은 4개 지구로 세분하였으며, Ⅰ(산하동 유적)·Ⅱ지구(산하동 화암 유적, 화암 고분군)는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Ⅲ지구는 우리문화재연구원(산하동 37 유적), Ⅳ지구는 동서문물연구원(산화동 화암 유적)이 조사하였다. Ⅱ구역은 A~G지구로 세분하여 울산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하였다(산하동 유적Ⅰ~Ⅴ). 유적은 반경 850m 거리에 분포한다.
울산광역시 북구 산하동 산116, 1002, 1051, 1102 일원에 위치한다. 울산-강동 간 도로 확·포장 공사로 울산문화재연구원(산하동 산음 유적)이 2003년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16기, [[구덩이|구덩이]] 1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강동 지구 택지 개발 사업으로 2007~2012년 4개 기관이 구역을 나누어 조사하였다. Ⅰ구역은 4개 지구로 세분하였으며, Ⅰ(산하동 유적)·Ⅱ지구(산하동 화암 유적, 화암 고분군)는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Ⅲ지구는 우리문화재연구원(산하동 37 유적), Ⅳ지구는 동서문물연구원(산화동 화암 유적)이 조사하였다. Ⅱ구역은 A~G지구로 세분하여 울산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하였다(산하동 유적Ⅰ~Ⅴ). 유적은 반경 850m 거리에 분포한다.


[[울산산하동산음유적|산하동 산음 유적]](울산문화재연구원)의 집자리는 구릉의 남사면에 축조되었다. 집자리는 남아 있는 상태가 좋지 않다. [[기둥구멍|기둥 구멍]]의 배치가 4주식인 방형 집자리와 6주식인 장방형 집자리가 5기씩 확인되었다. 6기는 기둥 구멍이 없는 방형으로 추정된다. 내부 시설로는 [[화덕자리|화덕 자리]], [[벽도랑|벽 도랑(壁溝)]] 등이 확인되는 [[검단리식집자리|검단리식 집자리]]다. 12·14호에서는 내부에 [[돌무지|돌무지(積石)]]가 확인되었다. 12호에서 확인된 석기에서 미완성품을 가공하여 석기를 제작한 흔적이 확인되며, 특히 14호 돌무지 내부에는 [[갈돌|갈돌(碾石棒)]]을 4조각으로 파괴하여 뿌린 현상이 확인된다. 집자리 내부에서 확인되는 돌무지에 대해 가옥 무덤 또는 주거 폐기 의례라는 견해가 있다. 유물은 석기 중에서 [[숫돌|숫돌(砥石)]]과 갈돌류의 비중이 높은 반면, 수렵구인 [[돌살촉|돌살촉]] 및 [[돌창|돌창(石槍)]]류가 한 점도 출토되지 않은 점이 이례적이다. 토기의 문양은 [[구멍무늬|구멍무늬(孔列文)]]로, 취락의 중심 연대는 [[검단리유형|검단리 유형]] 단계로 추정된다.
'''산하동 산음 유적'''(울산문화재연구원)의 집자리는 구릉의 남사면에 축조되었다. 집자리는 남아 있는 상태가 좋지 않다. [[기둥구멍|기둥 구멍]]의 배치가 4주식인 방형 집자리와 6주식인 장방형 집자리가 5기씩 확인되었다. 6기는 기둥 구멍이 없는 방형으로 추정된다. 내부 시설로는 [[화덕자리|화덕 자리]], [[벽도랑|벽 도랑(壁溝)]] 등이 확인되는 [[검단리식집자리|검단리식 집자리]]다. 12·14호에서는 내부에 [[돌무지|돌무지(積石)]]가 확인되었다. 12호에서 확인된 석기에서 미완성품을 가공하여 석기를 제작한 흔적이 확인되며, 특히 14호 돌무지 내부에는 [[갈돌|갈돌(碾石棒)]]을 4조각으로 파괴하여 뿌린 현상이 확인된다. 집자리 내부에서 확인되는 돌무지에 대해 가옥 무덤 또는 주거 폐기 의례라는 견해가 있다. 유물은 석기 중에서 [[숫돌|숫돌(砥石)]]과 갈돌류의 비중이 높은 반면, 수렵구인 [[돌살촉|돌살촉]] 및 [[돌창|돌창(石槍)]]류가 한 점도 출토되지 않은 점이 이례적이다. 토기의 문양은 [[구멍무늬|구멍무늬(孔列文)]]로, 취락의 중심 연대는 [[검단리유형|검단리 유형]] 단계로 추정된다.


Ⅰ구역 Ⅰ지구 산하동 유적(울산발전연구원)에서는 집자리 19기,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4기, [[구|도랑(溝)]] 7기, [[주구|둘레 도랑(周溝)]] 10기, 석렬(石列) 6기, [[기둥건물터|기둥 건물터(高床式建物址)]] 6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의 배치는 2~3기가 군집을 이루는 것과, 개별로 배치된 것으로 구분된다. 군집을 이루는 2~4호 집자리는 장방형 1기와 방형 2기로 구성되며, 3호는 일반 주거용과는 구조적 차이가 있다. 9·10호, 17·19호는 장방형 1기와 방형 1기로 구성되며 19호는 벽면 아래를 깬돌(割石)을 이용하여 높이 0.2m로 축조하였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벽 도랑, 배수구(排水溝) 등이다. 집자리의 면적이 30㎡를 전후한 16·17호는 내부에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 화덕 자리]] 2개가 등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유물은 토기류 62점, 석기류 12점, [[그물추|그물추]] 4점 등이다. 토기는 구멍무늬, [[단사선문|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 민무늬 등 단순문양의 비중이 높다. 석기는 돌살촉, [[돌도끼|돌도끼(石斧)]], [[가락바퀴|가락바퀴]], [[배모양석기|배 모양 석기(船形石器)]] 등 미완성품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을 통해 검단리 유형 단계의 취락으로 판단된다. 돌널무덤 1호는 길이 1.59m, 너비 0.74m, 깊이 0.56m로 가장 크고 나머지는 길이 0.92m 이하의 소형이다. 내부에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주변 취락으로 볼 때 검단리 유형 단계로 추정된다. 이외에 원형으로 설치된 둘레 도랑 내부에는 아무런 시설이 없는 [[연암동식둘레도랑|연암동식 둘레 도랑]]으로, 의례 시설 또는 매장 시설로 추정된다.
Ⅰ구역 Ⅰ지구 '''산하동 유적''''(울산발전연구원)에서는 집자리 19기,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4기, [[구|도랑(溝)]] 7기, [[주구|둘레 도랑(周溝)]] 10기, 석렬(石列) 6기, [[기둥건물터|기둥 건물터(高床式建物址)]] 6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의 배치는 2~3기가 군집을 이루는 것과, 개별로 배치된 것으로 구분된다. 군집을 이루는 2~4호 집자리는 장방형 1기와 방형 2기로 구성되며, 3호는 일반 주거용과는 구조적 차이가 있다. 9·10호, 17·19호는 장방형 1기와 방형 1기로 구성되며 19호는 벽면 아래를 깬돌(割石)을 이용하여 높이 0.2m로 축조하였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벽 도랑, 배수구(排水溝) 등이다. 집자리의 면적이 30㎡를 전후한 16·17호는 내부에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 화덕 자리]] 2개가 등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유물은 토기류 62점, 석기류 12점, [[그물추|그물추]] 4점 등이다. 토기는 구멍무늬, [[단사선문|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 민무늬 등 단순문양의 비중이 높다. 석기는 돌살촉, [[돌도끼|돌도끼(石斧)]], [[가락바퀴|가락바퀴]], [[배모양석기|배 모양 석기(船形石器)]] 등 미완성품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을 통해 검단리 유형 단계의 취락으로 판단된다. 돌널무덤 1호는 길이 1.59m, 너비 0.74m, 깊이 0.56m로 가장 크고 나머지는 길이 0.92m 이하의 소형이다. 내부에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주변 취락으로 볼 때 검단리 유형 단계로 추정된다. 이외에 원형으로 설치된 둘레 도랑 내부에는 아무런 시설이 없는 [[연암동식둘레도랑|연암동식 둘레 도랑]]으로, 의례 시설 또는 매장 시설로 추정된다.


Ⅰ구역 Ⅱ지구 [[울산산하동화암유적|산하동 화암 유적]](울산발전연구원)에서는 집자리 15기, 도랑 3기, 연암동식 둘레 도랑 4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방형, 장방형으로 구분된다. 내부 구조는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 배수구가 확인된다. 기둥 구멍은 대부분 정연하게 확인되는 경우가 드물고 기둥 구멍이 없는 것도 많아 바닥에 바로 기둥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가 폐기되는 시점에 형성된 돌무지 현상도 확인된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구멍무늬와 짧은 빗금무늬가 결합된 것(2호)을 제외하면 대부분 구멍무늬 또는 [[낟알무늬|낟알무늬]]가 단독으로 시문되거나 민무늬가 대부분이다. 석기류는 [[합인석부|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돌끌|돌끌(石鑿)]], 화살촉, 미완성 석기 등이며, 반달 돌칼이 확인되지 않는 점이 특징이다. 이외에 용도를 알 수 없는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연암동식 둘레 도랑은 한 쪽이 트여져 있으며 내부에서 특별한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대부분 입지가 좋은 취락의 중앙부에 위치한다.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너비가 약 12m이다. 일부 도랑 내부에서 토기 편 및 그물추가 확인되었다.
Ⅰ구역 Ⅱ지구 '''산하동 화암 유적'''(울산발전연구원)에서는 집자리 15기, 도랑 3기, 연암동식 둘레 도랑 4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방형, 장방형으로 구분된다. 내부 구조는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 배수구가 확인된다. 기둥 구멍은 대부분 정연하게 확인되는 경우가 드물고 기둥 구멍이 없는 것도 많아 바닥에 바로 기둥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가 폐기되는 시점에 형성된 돌무지 현상도 확인된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구멍무늬와 짧은 빗금무늬가 결합된 것(2호)을 제외하면 대부분 구멍무늬 또는 [[낟알무늬|낟알무늬]]가 단독으로 시문되거나 민무늬가 대부분이다. 석기류는 [[합인석부|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돌끌|돌끌(石鑿)]], 화살촉, 미완성 석기 등이며, 반달 돌칼이 확인되지 않는 점이 특징이다. 이외에 용도를 알 수 없는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연암동식 둘레 도랑은 한 쪽이 트여져 있으며 내부에서 특별한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대부분 입지가 좋은 취락의 중앙부에 위치한다.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너비가 약 12m이다. 일부 도랑 내부에서 토기 편 및 그물추가 확인되었다.


[[울산산하동화암고분군|산하동 화암 고분군]](울산발전연구원)에서는 집자리 3기, 구덩이 2기, 도랑 4기가 확인되었다. 2호 구덩이는 형태가 장방형이며, 길이 4.6m, 너비 1.75m, 깊이 0.2m이며, 내부에서 재가공 또는 제작 과정 중인 간 돌검 편이 확인되었다. 형태로 볼 때 무덤으로 추정되지만, 의례와 관련된 유구일 가능성도 있다. 주변에서 확인된 부정형의 도랑도 이와 관련된 의례 시설로 추정된다.
'''산하동 화암 고분군'''(울산발전연구원)에서는 집자리 3기, 구덩이 2기, 도랑 4기가 확인되었다. 2호 구덩이는 형태가 장방형이며, 길이 4.6m, 너비 1.75m, 깊이 0.2m이며, 내부에서 재가공 또는 제작 과정 중인 간 돌검 편이 확인되었다. 형태로 볼 때 무덤으로 추정되지만, 의례와 관련된 유구일 가능성도 있다. 주변에서 확인된 부정형의 도랑도 이와 관련된 의례 시설로 추정된다.


Ⅰ구역 Ⅲ지구 [[울산산하동37유적|산하동 37 유적]](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는 집자리 12기, 기둥 건물터(堀立柱建物) 24기, 연암동식 둘레 도랑 21기, 구덩이 6기, 도랑 12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유적의 남동쪽과 서쪽에 분포하며, 중심부에 위치하는 기둥 건물터와 연암동식 둘레 도랑이 분포하는 범위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입지적 특징을 보인다. 또한 집자리는 장축 방향이 남북으로 구릉 사면의 등고선과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고, 외부로 연결되는 배수구는 주로 경사가 낮은 북서쪽을 향하는데, 이는 지형 변화에 따라 가장 효율적 배치의 방식을 취한 것으로 판단된다. 내부 시설은 기둥 구멍, 화덕 자리, 벽 도랑, 배수구를 갖춘 전형적인 검단리식 집자리다. 고상식 건물은 청동기 시대로 파악하였으나 내부토 외에는 근거가 부족해 주변의 삼국 시대 유적과 동 시기의 유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암동식 둘레 도랑은 전체적인 배치가 집자리와는 분리된 공간에 형성되어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지면서 배치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내부에서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유적의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골아가리|골아가리(口脣刻目)]], 골아가리+반관통 구멍무늬+짧은 빗금무늬, 구멍무늬, 낟알무늬 등이 시문되어 검단리 유형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석기는 조갯날 돌도끼, [[달도끼|달도끼(環狀石斧)]], 반달 돌칼, [[슴베돌살촉|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 토제·석제 가락바퀴, 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집자리에서 미완성 석기가 출토되어 가구 단위로 석기를 제작하여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Ⅰ구역 Ⅳ지구 울산 산하동 화암 유적(동서문물연구원)은 산하동 37유적에서 고지대로 연접된 구간이다. 집자리 2기, 도랑 20기, 구덩이 2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검단리식 집자리에 해당한다. 도랑은 부정형으로 토기 편과 토제 그물추가 다수 확인되어 의례와 관련된 시설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구덩이 1·2·4호는 타원형으로, 1호는 길이 1.72m, 너비 0.92m, 깊이 0.55m이다. 이러한 형태는 울산지역 청동기 시대의 유적에서 확인되는 [[함정유구|함정 유구]]와 유사하지만, 바닥에 나무 창(木槍)의 흔적이 확인되지 않아 불분명하다. 3호는 지름 0.36m, 깊이 0.36m로 구덩이를 파고 내부에 [[바리모양민무늬토기|바리 모양 민무늬 토기]]를 넣었다. [[독무덤|독무덤(甕棺墓)]] 또는 매납 유구로 추정된다. 출토된 토기류는 단독 무늬 또는 민무늬로 검단리 유형 단계로 인접한 다른 유적과 같다.
Ⅰ구역 Ⅲ지구 '''산하동 37 유적'''(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는 집자리 12기, 기둥 건물터(堀立柱建物) 24기, 연암동식 둘레 도랑 21기, 구덩이 6기, 도랑 12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유적의 남동쪽과 서쪽에 분포하며, 중심부에 위치하는 기둥 건물터와 연암동식 둘레 도랑이 분포하는 범위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입지적 특징을 보인다. 또한 집자리는 장축 방향이 남북으로 구릉 사면의 등고선과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고, 외부로 연결되는 배수구는 주로 경사가 낮은 북서쪽을 향하는데, 이는 지형 변화에 따라 가장 효율적 배치의 방식을 취한 것으로 판단된다. 내부 시설은 기둥 구멍, 화덕 자리, 벽 도랑, 배수구를 갖춘 전형적인 검단리식 집자리다. 고상식 건물은 청동기 시대로 파악하였으나 내부토 외에는 근거가 부족해 주변의 삼국 시대 유적과 동 시기의 유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암동식 둘레 도랑은 전체적인 배치가 집자리와는 분리된 공간에 형성되어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지면서 배치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내부에서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유적의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골아가리|골아가리(口脣刻目)]], 골아가리+반관통 구멍무늬+짧은 빗금무늬, 구멍무늬, 낟알무늬 등이 시문되어 검단리 유형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석기는 조갯날 돌도끼, [[달도끼|달도끼(環狀石斧)]], 반달 돌칼, [[슴베돌살촉|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 토제·석제 가락바퀴, 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집자리에서 미완성 석기가 출토되어 가구 단위로 석기를 제작하여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Ⅰ구역 Ⅳ지구 울산 산하동 화암 유적(동서문물연구원)은 산하동 37유적에서 고지대로 연접된 구간이다. 집자리 2기, 도랑 20기, 구덩이 2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검단리식 집자리에 해당한다. 도랑은 부정형으로 토기 편과 토제 그물추가 다수 확인되어 의례와 관련된 시설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구덩이 1·2·4호는 타원형으로, 1호는 길이 1.72m, 너비 0.92m, 깊이 0.55m이다. 이러한 형태는 울산지역 청동기 시대의 유적에서 확인되는 [[함정유구|함정 유구]]와 유사하지만, 바닥에 나무 창(木槍)의 흔적이 확인되지 않아 불분명하다. 3호는 지름 0.36m, 깊이 0.36m로 구덩이를 파고 내부에 [[바리모양민무늬토기|바리 모양 민무늬 토기]]를 넣었다. [[독무덤|독무덤(甕棺墓)]] 또는 매납 유구로 추정된다. 출토된 토기류는 단독 무늬 또는 민무늬로 검단리 유형 단계로 인접한 다른 유적과 같다.


Ⅱ구역 울산 산하동 유적(울산문화재연구원)에서 집자리는 A지구 13기, B지구 2기, C지구 27기, D지구 41기, F지구 46기로 총 129기이다. 이외에 도랑 22기, 구덩이 1기가 확인되었다. 취락의 배치 양상은 A·B지구는 구릉 능선의 집자리 밀집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며 구릉의 사면에 2~4기가 군집하여 조영되었다. C지구는 정상부가 조사되지 않아 정확한 취락 구조를 알 수 없지만, 구릉 사면에 집자리와 연암동식 둘레 도랑이 집중되어 있다. 집자리와 연암동식 둘레 도랑은 서로 중복되지 않았다. D·F지구도 구릉 사면에 집자리가 소규모로 군집을 이루며 능선을 둘러싸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집자리는 세장방형 집자리가 소멸하고 장방형의 검단리식 집자리가 일반화되는 단계로, 구릉의 능선부를 비워두고 사면에 열상 또는 소규모로 군집하여 배치되는 것이 특징이다. 집자리의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벽 도랑, 기둥 구멍 등이 있고, 외부 한쪽 모서리에 배수구가 설치되었다. 벽 도랑은 전체 집자리 중에서 약 90% 이상에서 확인된다. 특히 A·B지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릉의 경사도가 가파른 D·F지구는 모든 집자리에서 확인된다. 또한 배수구가 확인된 집자리는 18기지만, 대부분 삭평으로 유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화덕 자리는 방형, 장방형 집자리에는 1개, 세장방형 집자리에서는 2개 이상이 설치되었다. 화덕 자리는 70% 이상이 구덩식이고 나머지는 평지식이다.
Ⅱ구역 울산 산하동 유적(울산문화재연구원)에서 집자리는 A지구 13기, B지구 2기, C지구 27기, D지구 41기, F지구 46기로 총 129기이다. 이외에 도랑 22기, 구덩이 1기가 확인되었다. 취락의 배치 양상은 A·B지구는 구릉 능선의 집자리 밀집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며 구릉의 사면에 2~4기가 군집하여 조영되었다. C지구는 정상부가 조사되지 않아 정확한 취락 구조를 알 수 없지만, 구릉 사면에 집자리와 연암동식 둘레 도랑이 집중되어 있다. 집자리와 연암동식 둘레 도랑은 서로 중복되지 않았다. D·F지구도 구릉 사면에 집자리가 소규모로 군집을 이루며 능선을 둘러싸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집자리는 세장방형 집자리가 소멸하고 장방형의 검단리식 집자리가 일반화되는 단계로, 구릉의 능선부를 비워두고 사면에 열상 또는 소규모로 군집하여 배치되는 것이 특징이다. 집자리의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벽 도랑, 기둥 구멍 등이 있고, 외부 한쪽 모서리에 배수구가 설치되었다. 벽 도랑은 전체 집자리 중에서 약 90% 이상에서 확인된다. 특히 A·B지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릉의 경사도가 가파른 D·F지구는 모든 집자리에서 확인된다. 또한 배수구가 확인된 집자리는 18기지만, 대부분 삭평으로 유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화덕 자리는 방형, 장방형 집자리에는 1개, 세장방형 집자리에서는 2개 이상이 설치되었다. 화덕 자리는 70% 이상이 구덩식이고 나머지는 평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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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을 통해 해안가에 인접한 검단리 유형 단계의 대규모 취락이 확인되었다. 또한, 집자리 뿐만 아니라 연암동식 둘레 도랑, 돌널무덤, 구덩이 등 취락을 구성하는 다양한 생활 유구가 확인되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복원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확보되었다.
유적을 통해 해안가에 인접한 검단리 유형 단계의 대규모 취락이 확인되었다. 또한, 집자리 뿐만 아니라 연암동식 둘레 도랑, 돌널무덤, 구덩이 등 취락을 구성하는 다양한 생활 유구가 확인되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복원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확보되었다.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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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울산_산하동_유적(산하동_37_유적)_8호_집자리_및_16호_둘레_도랑.jpg
File:울산_산하동_유적(산하동_화암_유적)_2호_집자리.jpg
File:울산_산하동_유적_II구역_A지구_10_11호_집자리_출토_유물.jpg
File:울산_산하동_유적_II구역_A지구_10호_집자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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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조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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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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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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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03년 3월 14일~2003년 7월 24일 || 울산 산하동 산음 유적 || 2005 || 울산문화재연구원
| 발굴조사 || 2003년 3월 14일~2003년 7월 24일 || 울산 산하동 산음 유적 || 2005 || 울산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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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08년 1월 14일~2012년 6월 20일 || 울산 산하동 유적 Ⅰ || 2014 || 울산문화재연구원
| 발굴조사 || 2008년 1월 14일~2012년 6월 20일 || 울산 산하동 유적 Ⅰ || 2014 || 울산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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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동서문물연구원. (2012). <i>울산 산하동 화암 유적</i>.
* 우리문화재연구원. (2011). <i>울산 산하동 37번지 유적</i>.
* 울산문화재연구원. (2005). <i>울산 산하동 산음 유적</i>.
* 울산문화재연구원. (2014). <i>울산 산하동 유적 II</i>.
* 울산문화재연구원. (2014). <i>울산 산하동 유적 III</i>.
* 울산문화재연구원. (2014). <i>울산 산하동 유적 IV</i>.
* 울산문화재연구원. (2014). <i>울산 산하동 유적 Ⅰ~Ⅴ</i>.
* 울산문화재연구원. (2014). <i>울산 산하동 유적 Ⅴ</i>.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2010). <i>울산 산하동 유적</i>.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2011). <i>울산 산하동 화암 고분군</i>.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2011). <i>울산 산하동 화암 유적</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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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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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6일 (수) 11:19 기준 최신판


산하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울산 산하동 유적, 울산 산하동 37 유적, 울산 산하동 산음 유적, 울산 산하동 화암 유적, 울산 산하동 화암 고분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울산광역시 북구 산하동 산116, 1002, 1051, 1102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검단리식 집자리, 구덩이, 돌널무덤, 검단리 유형, 연암동식 둘레 도랑, 조갯날 돌도끼, 돌대팻날, 돌끌, 돌도끼, 가락바퀴, 배 모양 석기, 바리 토기, 독 모양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황창한



설명

울산광역시 북구 산하동 산116, 1002, 1051, 1102 일원에 위치한다. 울산-강동 간 도로 확·포장 공사로 울산문화재연구원(산하동 산음 유적)이 2003년 조사하여 집자리 16기, 구덩이 1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강동 지구 택지 개발 사업으로 2007~2012년 4개 기관이 구역을 나누어 조사하였다. Ⅰ구역은 4개 지구로 세분하였으며, Ⅰ(산하동 유적)·Ⅱ지구(산하동 화암 유적, 화암 고분군)는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Ⅲ지구는 우리문화재연구원(산하동 37 유적), Ⅳ지구는 동서문물연구원(산화동 화암 유적)이 조사하였다. Ⅱ구역은 A~G지구로 세분하여 울산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하였다(산하동 유적Ⅰ~Ⅴ). 유적은 반경 850m 거리에 분포한다.

산하동 산음 유적(울산문화재연구원)의 집자리는 구릉의 남사면에 축조되었다. 집자리는 남아 있는 상태가 좋지 않다. 기둥 구멍의 배치가 4주식인 방형 집자리와 6주식인 장방형 집자리가 5기씩 확인되었다. 6기는 기둥 구멍이 없는 방형으로 추정된다. 내부 시설로는 화덕 자리, 벽 도랑(壁溝) 등이 확인되는 검단리식 집자리다. 12·14호에서는 내부에 돌무지(積石)가 확인되었다. 12호에서 확인된 석기에서 미완성품을 가공하여 석기를 제작한 흔적이 확인되며, 특히 14호 돌무지 내부에는 갈돌(碾石棒)을 4조각으로 파괴하여 뿌린 현상이 확인된다. 집자리 내부에서 확인되는 돌무지에 대해 가옥 무덤 또는 주거 폐기 의례라는 견해가 있다. 유물은 석기 중에서 숫돌(砥石)과 갈돌류의 비중이 높은 반면, 수렵구인 돌살촉돌창(石槍)류가 한 점도 출토되지 않은 점이 이례적이다. 토기의 문양은 구멍무늬(孔列文)로, 취락의 중심 연대는 검단리 유형 단계로 추정된다.

Ⅰ구역 Ⅰ지구 산하동 유적'(울산발전연구원)에서는 집자리 19기, 돌널무덤(石棺墓) 4기, 도랑(溝) 7기, 둘레 도랑(周溝) 10기, 석렬(石列) 6기, 기둥 건물터(高床式建物址) 6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의 배치는 2~3기가 군집을 이루는 것과, 개별로 배치된 것으로 구분된다. 군집을 이루는 2~4호 집자리는 장방형 1기와 방형 2기로 구성되며, 3호는 일반 주거용과는 구조적 차이가 있다. 9·10호, 17·19호는 장방형 1기와 방형 1기로 구성되며 19호는 벽면 아래를 깬돌(割石)을 이용하여 높이 0.2m로 축조하였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벽 도랑, 배수구(排水溝) 등이다. 집자리의 면적이 30㎡를 전후한 16·17호는 내부에 구덩식 화덕 자리 2개가 등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유물은 토기류 62점, 석기류 12점, 그물추 4점 등이다. 토기는 구멍무늬, 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 민무늬 등 단순문양의 비중이 높다. 석기는 돌살촉, 돌도끼(石斧), 가락바퀴, 배 모양 석기(船形石器) 등 미완성품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을 통해 검단리 유형 단계의 취락으로 판단된다. 돌널무덤 1호는 길이 1.59m, 너비 0.74m, 깊이 0.56m로 가장 크고 나머지는 길이 0.92m 이하의 소형이다. 내부에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주변 취락으로 볼 때 검단리 유형 단계로 추정된다. 이외에 원형으로 설치된 둘레 도랑 내부에는 아무런 시설이 없는 연암동식 둘레 도랑으로, 의례 시설 또는 매장 시설로 추정된다.

Ⅰ구역 Ⅱ지구 산하동 화암 유적(울산발전연구원)에서는 집자리 15기, 도랑 3기, 연암동식 둘레 도랑 4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방형, 장방형으로 구분된다. 내부 구조는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 배수구가 확인된다. 기둥 구멍은 대부분 정연하게 확인되는 경우가 드물고 기둥 구멍이 없는 것도 많아 바닥에 바로 기둥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가 폐기되는 시점에 형성된 돌무지 현상도 확인된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구멍무늬와 짧은 빗금무늬가 결합된 것(2호)을 제외하면 대부분 구멍무늬 또는 낟알무늬가 단독으로 시문되거나 민무늬가 대부분이다. 석기류는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돌끌(石鑿), 화살촉, 미완성 석기 등이며, 반달 돌칼이 확인되지 않는 점이 특징이다. 이외에 용도를 알 수 없는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연암동식 둘레 도랑은 한 쪽이 트여져 있으며 내부에서 특별한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대부분 입지가 좋은 취락의 중앙부에 위치한다.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너비가 약 12m이다. 일부 도랑 내부에서 토기 편 및 그물추가 확인되었다.

산하동 화암 고분군(울산발전연구원)에서는 집자리 3기, 구덩이 2기, 도랑 4기가 확인되었다. 2호 구덩이는 형태가 장방형이며, 길이 4.6m, 너비 1.75m, 깊이 0.2m이며, 내부에서 재가공 또는 제작 과정 중인 간 돌검 편이 확인되었다. 형태로 볼 때 무덤으로 추정되지만, 의례와 관련된 유구일 가능성도 있다. 주변에서 확인된 부정형의 도랑도 이와 관련된 의례 시설로 추정된다.

Ⅰ구역 Ⅲ지구 산하동 37 유적(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는 집자리 12기, 기둥 건물터(堀立柱建物) 24기, 연암동식 둘레 도랑 21기, 구덩이 6기, 도랑 12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유적의 남동쪽과 서쪽에 분포하며, 중심부에 위치하는 기둥 건물터와 연암동식 둘레 도랑이 분포하는 범위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입지적 특징을 보인다. 또한 집자리는 장축 방향이 남북으로 구릉 사면의 등고선과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고, 외부로 연결되는 배수구는 주로 경사가 낮은 북서쪽을 향하는데, 이는 지형 변화에 따라 가장 효율적 배치의 방식을 취한 것으로 판단된다. 내부 시설은 기둥 구멍, 화덕 자리, 벽 도랑, 배수구를 갖춘 전형적인 검단리식 집자리다. 고상식 건물은 청동기 시대로 파악하였으나 내부토 외에는 근거가 부족해 주변의 삼국 시대 유적과 동 시기의 유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암동식 둘레 도랑은 전체적인 배치가 집자리와는 분리된 공간에 형성되어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지면서 배치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내부에서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유적의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골아가리(口脣刻目), 골아가리+반관통 구멍무늬+짧은 빗금무늬, 구멍무늬, 낟알무늬 등이 시문되어 검단리 유형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석기는 조갯날 돌도끼, 달도끼(環狀石斧), 반달 돌칼, 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 토제·석제 가락바퀴, 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집자리에서 미완성 석기가 출토되어 가구 단위로 석기를 제작하여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Ⅰ구역 Ⅳ지구 울산 산하동 화암 유적(동서문물연구원)은 산하동 37유적에서 고지대로 연접된 구간이다. 집자리 2기, 도랑 20기, 구덩이 2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검단리식 집자리에 해당한다. 도랑은 부정형으로 토기 편과 토제 그물추가 다수 확인되어 의례와 관련된 시설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구덩이 1·2·4호는 타원형으로, 1호는 길이 1.72m, 너비 0.92m, 깊이 0.55m이다. 이러한 형태는 울산지역 청동기 시대의 유적에서 확인되는 함정 유구와 유사하지만, 바닥에 나무 창(木槍)의 흔적이 확인되지 않아 불분명하다. 3호는 지름 0.36m, 깊이 0.36m로 구덩이를 파고 내부에 바리 모양 민무늬 토기를 넣었다. 독무덤(甕棺墓) 또는 매납 유구로 추정된다. 출토된 토기류는 단독 무늬 또는 민무늬로 검단리 유형 단계로 인접한 다른 유적과 같다.

Ⅱ구역 울산 산하동 유적(울산문화재연구원)에서 집자리는 A지구 13기, B지구 2기, C지구 27기, D지구 41기, F지구 46기로 총 129기이다. 이외에 도랑 22기, 구덩이 1기가 확인되었다. 취락의 배치 양상은 A·B지구는 구릉 능선의 집자리 밀집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며 구릉의 사면에 2~4기가 군집하여 조영되었다. C지구는 정상부가 조사되지 않아 정확한 취락 구조를 알 수 없지만, 구릉 사면에 집자리와 연암동식 둘레 도랑이 집중되어 있다. 집자리와 연암동식 둘레 도랑은 서로 중복되지 않았다. D·F지구도 구릉 사면에 집자리가 소규모로 군집을 이루며 능선을 둘러싸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집자리는 세장방형 집자리가 소멸하고 장방형의 검단리식 집자리가 일반화되는 단계로, 구릉의 능선부를 비워두고 사면에 열상 또는 소규모로 군집하여 배치되는 것이 특징이다. 집자리의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벽 도랑, 기둥 구멍 등이 있고, 외부 한쪽 모서리에 배수구가 설치되었다. 벽 도랑은 전체 집자리 중에서 약 90% 이상에서 확인된다. 특히 A·B지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릉의 경사도가 가파른 D·F지구는 모든 집자리에서 확인된다. 또한 배수구가 확인된 집자리는 18기지만, 대부분 삭평으로 유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화덕 자리는 방형, 장방형 집자리에는 1개, 세장방형 집자리에서는 2개 이상이 설치되었다. 화덕 자리는 70% 이상이 구덩식이고 나머지는 평지식이다.

토기는 전반적으로 완형이 드물지만 기형으로 볼 때 바리 토기(鉢形土器)독 모양 토기(甕形土器)가 주를 이룬다. 토기의 문양은 크게 복합무늬(14%, 단독문(86%)로 구분된다. 복합무늬는 모두 구멍무늬에 골아가리, X자문, 짧은 빗금무늬 등이 추가된 형태로 A~D지구에서만 확인된다. 단독문은 구멍무늬(63%)가 가장 많고, 짧은 빗금 무늬(30%), 낟알무늬(5%), X자 무늬(2%) 등이다. 이중 C지구 6호 집자리의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역삼동식 토기로 알려져 있는데 다소 늦은 검단리식 집자리에서 출토되어, 역삼동식 토기의 하한이 검단리 유형 단계 전반까지 지속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9점의 복합무늬 토기는 집자리의 형태나 공반 유물을 통해 일반적으로 복합무늬가 이르다는 시간성과는 무관하게 구멍무늬를 기본으로 토기에 단순히 X자 무늬나 짧은 빗금무늬가 추가된 형태로 복합무늬가 소멸하는 과도기적인 현상으로 파악된다. 한편 F지구 22호 집자리에서 출토된 깊은 바리 토기는 검단리 유형 단계로 편년되는 검단리식 토기로 손잡이에 낟알무늬가 시문되어 있다.

석기는 간 돌살촉, 반달 돌칼, ‘ㄱ’자 돌칼(東北型石刀), 돌도끼, 찰절석기(擦切石器), 돌낫, 간 돌검 등이 확인되었다. 일반적으로 석기는 대동소이하지만 간 돌검 중에서 손잡이에 소혈이 장식된 장식 간 돌검은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유물이다. 또한 F지구 27호 집자리에서 출토된 편마암제 조갯날 돌도끼는 원거리에서 확인되는 석재로서 교류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이다.

유적을 통해 해안가에 인접한 검단리 유형 단계의 대규모 취락이 확인되었다. 또한, 집자리 뿐만 아니라 연암동식 둘레 도랑, 돌널무덤, 구덩이 등 취락을 구성하는 다양한 생활 유구가 확인되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복원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확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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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3년 3월 14일~2003년 7월 24일 울산 산하동 산음 유적 2005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7년 11월 26일~2009년 4월 30일 울산 산하동 37번지 유적 2011 우리문화재연구원
시굴조사 2006년 3월~2006년 6월 울산 산하동 화암 유적 2011 울산발전연구원문화재센터
발굴조사 2007년 12월 4일~2010년 1월 29일 울산 산하동 화암 유적 2011 울산발전연구원문화재센터
발굴조사 2008년 7월 7일~2010년 7월 8일 울산 산하동 화암 유적 2012 동서문물연구원
발굴조사 2008년 1월 14일~2012년 6월 20일 울산 산하동 유적 II 2014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8년 1월 14일~2012년 6월 20일 울산 산하동 유적 III 2014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8년 1월 14일~2012년 6월 20일 울산 산하동 유적 IV 2014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8년 1월 14일~2012년 6월 20일 울산 산하동 유적 V 2014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8년 1월 14일~2012년 6월 20일 울산 산하동 유적 Ⅰ 2014 울산문화재연구원

참고문헌

  • 동서문물연구원. (2012). 울산 산하동 화암 유적.
  • 우리문화재연구원. (2011). 울산 산하동 37번지 유적.
  • 울산문화재연구원. (2005). 울산 산하동 산음 유적.
  • 울산문화재연구원. (2014). 울산 산하동 유적 II.
  • 울산문화재연구원. (2014). 울산 산하동 유적 III.
  • 울산문화재연구원. (2014). 울산 산하동 유적 IV.
  • 울산문화재연구원. (2014). 울산 산하동 유적 Ⅰ~Ⅴ.
  • 울산문화재연구원. (2014). 울산 산하동 유적 Ⅴ.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2010). 울산 산하동 유적.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2011). 울산 산하동 화암 고분군.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2011). 울산 산하동 화암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