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1231: 두 판 사이의 차이
보이기
dkamaster 600-1231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
dkamaster 600-1231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
||
|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2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 |||
| 2번째 줄: | 2번째 줄: | ||
{{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부흥리 유적 | |||
| 이칭별칭=연안 부흥리 유적 | | 이칭별칭=연안 부흥리 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위치=북한 | |||
| 소재지=황해남도 연안군 부흥리 금곡동 | |||
| 성격=집자리 | |||
| 키워드=[[비파형동검]], [[돌도끼]], [[민무늬 토기]], [[간 돌살촉]], [[청동 투겁창]], [[집자리]] | | 키워드=[[비파형동검]], [[돌도끼]], [[민무늬 토기]], [[간 돌살촉]], [[청동 투겁창]], [[집자리]] | ||
|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장호수 | | 집필자=장호수 | ||
}} | }} | ||
==설명== | ==설명== | ||
황해남도 연안군 부흥리 금곡동에 위치한다. 금곡동은 니탄층(泥炭層)이 깔린 작은 골짜기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인 채 서쪽으로 바다를 향해 있다. 유물은 니탄층에서 토탄을 채취하던 중 지표로부터 1.4~1.8m 아래에서 [[비파형동검|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 1점, [[돌도끼|돌도끼]] 2점,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1점, [[간돌살촉|간 돌살촉]]이 나왔다. 그곳에서 20~30m 동쪽의 니탄층에서도 [[청동투겁창|청동 투겁창(銅棠)]] 1점이 출토되었다. 유적을 조사하면서 유물 출토 지점에서 굵고 가는 통나무들이 여러 개 나와 [[집자리|집자리]]로 추정하였다. 통나무들은 굵은 것은 지름 0.12~0.16m, 길이 1.74m, 작은 것은 길이 1m 정도 된다. 돌도끼에는 [[나무자루|나무 자루(木柄)]]가 달린 채 출토된 것이 있으며, 기장 껍질로 보이는 곡물 자료도 나왔다. 비파형동검은 전형적인 형식으로 길이 24.4㎝이다. 투겁창은 백동질(白銅質)에 날 끝 부분이 일부 떨어져 나갔으나 전체적인 형태는 전형적인 것으로, 날 부분에는 등대와 피 홈(血溝)이 있고 잔존 길이는 21㎝이다. | 황해남도 연안군 부흥리 금곡동에 위치한다. 금곡동은 니탄층(泥炭層)이 깔린 작은 골짜기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인 채 서쪽으로 바다를 향해 있다. 유물은 니탄층에서 토탄을 채취하던 중 지표로부터 1.4~1.8m 아래에서 [[비파형동검|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 1점, [[돌도끼|돌도끼]] 2점,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1점, [[간돌살촉|간 돌살촉]]이 나왔다. 그곳에서 20~30m 동쪽의 니탄층에서도 [[청동투겁창|청동 투겁창(銅棠)]] 1점이 출토되었다. 유적을 조사하면서 유물 출토 지점에서 굵고 가는 통나무들이 여러 개 나와 [[집자리|집자리]]로 추정하였다. 통나무들은 굵은 것은 지름 0.12~0.16m, 길이 1.74m, 작은 것은 길이 1m 정도 된다. 돌도끼에는 [[나무자루|나무 자루(木柄)]]가 달린 채 출토된 것이 있으며, 기장 껍질로 보이는 곡물 자료도 나왔다. 비파형동검은 전형적인 형식으로 길이 24.4㎝이다. 투겁창은 백동질(白銅質)에 날 끝 부분이 일부 떨어져 나갔으나 전체적인 형태는 전형적인 것으로, 날 부분에는 등대와 피 홈(血溝)이 있고 잔존 길이는 21㎝이다. | ||
==참고문헌== | |||
* 황기덕. (1974). 최근에 새로 알려진 비파형단검과 좁은 놋단검 관계의 유적유물. <i>고고학자료집, 4</i>.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39841 |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4월 2일 (목) 12:20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연안 부흥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북한 |
| 소재지 | 황해남도 연안군 부흥리 금곡동 |
| 관련 정보 | |
| 성격 | 집자리 |
| 키워드 | 비파형동검, 돌도끼, 민무늬 토기, 간 돌살촉, 청동 투겁창, 집자리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장호수 |
설명
황해남도 연안군 부흥리 금곡동에 위치한다. 금곡동은 니탄층(泥炭層)이 깔린 작은 골짜기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인 채 서쪽으로 바다를 향해 있다. 유물은 니탄층에서 토탄을 채취하던 중 지표로부터 1.4~1.8m 아래에서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 1점, 돌도끼 2점, 민무늬 토기 1점, 간 돌살촉이 나왔다. 그곳에서 20~30m 동쪽의 니탄층에서도 청동 투겁창(銅棠) 1점이 출토되었다. 유적을 조사하면서 유물 출토 지점에서 굵고 가는 통나무들이 여러 개 나와 집자리로 추정하였다. 통나무들은 굵은 것은 지름 0.12~0.16m, 길이 1.74m, 작은 것은 길이 1m 정도 된다. 돌도끼에는 나무 자루(木柄)가 달린 채 출토된 것이 있으며, 기장 껍질로 보이는 곡물 자료도 나왔다. 비파형동검은 전형적인 형식으로 길이 24.4㎝이다. 투겁창은 백동질(白銅質)에 날 끝 부분이 일부 떨어져 나갔으나 전체적인 형태는 전형적인 것으로, 날 부분에는 등대와 피 홈(血溝)이 있고 잔존 길이는 21㎝이다.
참고문헌
- 황기덕. (1974). 최근에 새로 알려진 비파형단검과 좁은 놋단검 관계의 유적유물. 고고학자료집, 4.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39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