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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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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인 동시에 추모 장소이기도 한 아르잔 2호 고분의 편년은 재갈(轡)과 재갈멈치(鏡板), 화살촉 등을 통해 기원전 7세기 중반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호분과 무덤의 외형이 유사하지만, 부의 집중 및 구조의 차이는 뚜렷하게 확인된다. 무덤의 수는 20여개로 줄었으나, 중심 무덤 구덩이에서 12㎏의 황금이 출토되는 등 무덤의 집중화가 현격하게 진행된다. 아르잔의 대형 고분 유적은 대부분 기원전 5세기대를 기점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의 알타이(Алтай) 지역에 서는 [[몽골의파지리크문화|파지리크 문화(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의 대형 고분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즉, 남부 시베리아 사얀-알타이산맥 일대 유목 문화의 헤게모니가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무덤인 동시에 추모 장소이기도 한 아르잔 2호 고분의 편년은 재갈(轡)과 재갈멈치(鏡板), 화살촉 등을 통해 기원전 7세기 중반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호분과 무덤의 외형이 유사하지만, 부의 집중 및 구조의 차이는 뚜렷하게 확인된다. 무덤의 수는 20여개로 줄었으나, 중심 무덤 구덩이에서 12㎏의 황금이 출토되는 등 무덤의 집중화가 현격하게 진행된다. 아르잔의 대형 고분 유적은 대부분 기원전 5세기대를 기점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의 알타이(Алтай) 지역에 서는 [[몽골의파지리크문화|파지리크 문화(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의 대형 고분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즉, 남부 시베리아 사얀-알타이산맥 일대 유목 문화의 헤게모니가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강인욱 , 조소은. (2015). 기원전 9~7세기 초기 스키토-시베리아문화와 비파형동검문화권의 대형무덤 비교연구. <i>인문학연구, 28</i>, 7-42. https://www.riss.kr/link?id=A101802503
* 중앙문화재연구원. (2018). <i>북방고고학개론</i>. 진인진. https://www.riss.kr/link?id=M14876098
* 콘스탄틴 추구노프. (2016). Результаты раскопок кургана Аржан-2 в Туве. <i>중앙아시아연구, 21(2)</i>, 123-161. https://www.riss.kr/link?id=A103632399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9 기준 최신판


아르잔 2호 고분
기본 정보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러시아
소재지 러시아 투바공화국(Республика Тыва) 북쪽 우유크(Уюк)강에 인접한 해발 1,000m의 투란(Туран)-우유크고원 지대
관련 정보
성격 고분
키워드 고분, 우유크 문화, 적석목곽묘, 스키토-시베리아 유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조소은



설명

러시아 투바공화국(Республика Тыва) 북쪽 우유크(Уюк)강에 인접한 해발 1,000m의 투란(Туран)-우유크고원 지대에 위치한다. 아르잔 유적은 우유크 문화의 대표 유적이다. 이 지역에는 대형의 고분 3기가 분포하는데, 그중 1971~1974년에 조사된 아르잔 1호 고분스키토-시베리아 문화(Скифо-сибирская культура)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중국 다롄 강상 유적과 아르잔 유적은 약 200년간 무덤을 축조하고, 주변에는 유사한 새로운 집단 무덤을 만들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무덤은 내부의 무덤 구덩이 수는 감소하지만, 개인에 집중되는 양상이 두드러진다. 투란-우유크 계곡의 고분은 대부분 봉분은 돌을 쌓아 만들었으며, 고리 모양으로 둘레돌(護石)을 둘렀다. 아르잔-2호 고분은 2001~2003년 에르미타주박물관(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발굴단의 추구노프(Чугунов К.В.)와 독일 고고학연구소(Deutsches Archäologisches Institut)가 합동으로 조사하였다.

아르잔-2호 고분은 1호분에서 북동쪽으로 9㎞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며, 1호분이 축조된 이후에 조영되었다. 규모는 지름 80m, 높이 2m의 대형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이다. 고분은 5개 이상의 무덤 구덩이를 설치하였으며, 무덤의 중심이 아닌 바깥쪽에 위치한다. 중심 무덤 구덩이의 크기는 길이 5.5m, 너비 4.5m, 깊이는 4m이며, 내부에는 이중으로 덧널을 설치하였다. 고분의 외부에는 둘레돌을 담장처럼 원형으로 쌓아 올렸고, 가장자리에는 판돌(板石)을 수직으로 세워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였다. 이 담장열의 지름은 약 75m이다. 담장열 아래와 판돌 사이에서 암컷 양, 새끼 양의 뼈, 개의 이빨 등이 출토되어 제례를 위한 구조로 추정된다. 맞은편 담장에서는 말이 매장되었는데, 상부에서 그림이나 문양을 새긴 사슴돌이 확인되었다.

중심 나무관(木棺)의 바닥에는 화려한 황금 장식을 매단 의복을 입은 남성과 여성 두 명의 뼈가 발견되었다. 의복에는 황금을 덧댄 장식이 있고, 남성의 목에서는 금제 목걸이(頸飾)가 발견 되어 당시 유목 사회의 최상위층으로 추정된다. 또한, 바지에서는 금구슬, 장화는 금제 잎, 머리장식은 금박을 덧댄 말, 사슴, 양의 모형이 장식되어 있다. 이외에도 5천여 점에 달하는 황금 장식, 철제 투부(鬪斧·Чекан), 철촉(鐵鏃), 철제 화살, 금제 목걸이, 귀걸이(耳飾), 허리띠(銙帶), 곡물이 들어있는 가죽 그릇, 청동 거울(銅鏡), 스키토-시베리아 유형(Скифо-сибирский тип)의 동물양식을 가진 금박 장식, 직물편, 구슬, 단추 등의 의복 장식이 발굴되었다. 이외에 17명이 묻힌 11개 의 추가장 및 14개의 말 무덤, 말갖춤(馬具)을 매장한 5개의 유구도 확인되었다.

무덤인 동시에 추모 장소이기도 한 아르잔 2호 고분의 편년은 재갈(轡)과 재갈멈치(鏡板), 화살촉 등을 통해 기원전 7세기 중반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호분과 무덤의 외형이 유사하지만, 부의 집중 및 구조의 차이는 뚜렷하게 확인된다. 무덤의 수는 20여개로 줄었으나, 중심 무덤 구덩이에서 12㎏의 황금이 출토되는 등 무덤의 집중화가 현격하게 진행된다. 아르잔의 대형 고분 유적은 대부분 기원전 5세기대를 기점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의 알타이(Алтай) 지역에 서는 파지리크 문화(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의 대형 고분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즉, 남부 시베리아 사얀-알타이산맥 일대 유목 문화의 헤게모니가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