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2459: 두 판 사이의 차이
dkamaster 600-2459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
dkamaster 600-2459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
||
| 26번째 줄: | 26번째 줄: | ||
유적은 청동기 시대 전 시기의 다양한 생활 유적이 확인되었으며, 특히 서하 유적은 생활 의례가 확인되어 학술적으로 중요한 자료가 된다. | 유적은 청동기 시대 전 시기의 다양한 생활 유적이 확인되었으며, 특히 서하 유적은 생활 의례가 확인되어 학술적으로 중요한 자료가 된다. | ||
==이미지== | |||
<gallery mode=packed heights=200px> | |||
File:울주_인보리_유적_5호_집자리_출토_토기.jpg | |||
File:울주_인보리_유적_7호_집자리.jpg | |||
</gallery> | |||
==조사정보== | ==조사정보== | ||
| 35번째 줄: | 41번째 줄: | ||
| 발굴조사 || 2005년 7월 20일~2006년 2월 4일 || 울산 인보리 번답들 유적 || 2008 || 울산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05년 7월 20일~2006년 2월 4일 || 울산 인보리 번답들 유적 || 2008 || 울산문화재연구원 | ||
|} | |} | ||
==참고문헌== | |||
* 울산문화재연구원. (2008). <i>울산 인보리 번답들 유적</i>. | |||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2006). <i>울산 서하리 서하유적</i>. https://excavation.co.kr/bookList/view?idx=6385 |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4월 2일 (목) 12:25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울주 인보리 유적, 울주 서하리 서하 유적, 울주 인보리 번답들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인보리 산26-3, 312-8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구덩이, 기둥 구멍, 깊은 바리 토기, 구멍무늬 토기, 가로줄무늬 토기, 조갯날 돌도끼, 돌대팻날, 그물추, 화덕 자리, 저장 구덩이, 연암동식 집자리, 항아리 모양 토기, 붉은 간 토기, 간 돌살촉, 간 돌칼, 기둥 모양 외날 돌자귀, 반달 돌칼, 가락바퀴, 흔암리 유형, 검단리 유형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정대봉, 유병일 |
설명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인보리 산26-3, 312-8 일원에 위치한다. 국도35호선 확·포장 공사로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에서 2002~2004년 조사하여(서하리 서하 유적), 집자리 2기, 구덩이 1기, 기둥 구멍군(柱穴群), 옛하천(舊河道) 2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상수도 시설 건립으로 울산문화재연구원이 2005~2006년 조사하여(인보리 번답들 유적), 집자리 30기 및 삼국~조선 시대 유구를 다수 확인하였다. 유적은 대곡천의 북쪽에 입지하며, 주변에는 인보리 고인돌군이 위치한다. 두 유적은 350m 떨어져 위치한다.
서하리 서하 유적(인보리 312-8)의 집자리는 장방형이며, 벽 도랑(壁溝), 6주식(柱式) 기둥 구멍, 배수구가 설치되었다. 배수구는 2호의 모서리 부분에서 확인되었다. 유물은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편이 출토되었다. 기둥 구멍군은 옛 하천 주변에 밀집 분포하며, 크기에 따라 대형은 지름 0.5m 이상, 중형은 0.3~0.5m, 소형은 0.3m 이하로 구분된다. 기둥 구멍은 대부분 원형이며, 기둥을 세우고 흙을 넣은 것, 기둥을 한쪽으로 붙어 세우고 흙을 다져 넣는 것으로 구분된다. 기둥 구멍의 분포는 대형은 일부 정형성이 보이고 있으나 중형 및 소형은 서로 혼재되어 있는 양상이다.
옛 하천은 등고선 흐름과 직교방향으로, 조사 구역에서는 약 35m 떨어져 있지만 구릉 윗부분에서는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규모는 길이 36m, 너비 0.55~2m, 깊이 0.6m로 윗부분은 넓지만 아랫부분은 좁다. 옛 하천은 퇴적된 흙을 통해 4번에 걸쳐 유로가 변경되었고, 일부 구간에서는 삼국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된다. 유물은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편, 가로줄무늬 토기(橫線文土器) 편,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흙으로 만든 그물추 등이 수습되었다. 유적에서 확인된 집자리, 기둥 구멍, 옛 하천은 중복 관계가 없이 일정한 장소에 배치되어 있어 같은 시기에 형성된 취락 유적이다. 또한 집자리 주변에 옛 하천과 기둥 구멍이 배치되어 있는 것은 청동기 시대 마을의 생활 의례(生活儀禮)와 관련된 것으로 판단된다.
인보리 번답들 유적(인보리 산26-3)의 집자리는 14·19호를 제외한 대부분이 등고선과 평행한다. 화재로 폐기된 집자리는 9기이며 나머지는 자연적으로 폐기되었다. 집자리의 구조는 기둥 구멍, 화덕 자리, 벽 도랑, 저장 구덩이(貯藏穴), 배수구 등이 확인되었다. 기둥 구멍은 4·6주식이 대부분이다. 화덕 자리는 14기에서만 확인되며, 구덩식(竪穴式)과 평지식으로 구분된다. 화덕 자리는 바닥 중앙부에서 한쪽 벽으로 치우쳐 1개씩 설치되었다. 벽 도랑은 경사면 위쪽 벽을 중심으로 ‘ㄷ’, ‘ㄴ’, ‘ㅁ’자 모양으로 설치하였다. 대부분 벽 쪽에 설치하였지만 7호는 바닥을 대각으로 가로질러 설치된 것이 특징으로, 공간을 분할하는 기능으로 추정된다. 저장 구덩이는 주로 식료의 저장을 위해 바닥 가장자리에 구덩이를 파서 만든 시설로 9·20호에서 확인되었다. 일부 집자리에는 벽 기둥 구멍(壁柱穴)이 설치되었는데 벽면에 나무판을 대고 벽과 나무판 사이는 점토로 채워 벽면을 보강한 것으로 추정된다. 배수구는 대부분의 집자리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판단되나 대부분 삭평되어 2·7호 집자리에서만 확인된다. 또한 12호와 같이 집자리 외부에 반달 모양의 도랑을 설치한 연암동식 집자리도 확인된다. 집자리 내부에는 돌무지(積石)를 쌓아 폐기하였다. 특히 26호 돌무지 내에서는 조, 콩류 등의 곡물이 확인되어 집자리 폐기 후 일종의 의례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붉은 간 토기등이 출토되었으며, 무늬는 골아가리(口脣刻目)+구멍무늬, 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구멍무늬 등이 새겨진 복합무늬와, 짧은 빗금, 구멍무늬, 골아가리, 낟알무늬 등의 단순무늬가 새겨진 토기가 확인된다. 석기류는 간 돌살촉, 간 돌칼, 조갯날 돌도끼, 돌대팻날, 기둥 모양 외날 돌자귀(柱狀片刃石斧), 반달 돌칼, 원판 모양 석기(環狀石器),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시기는 화덕 자리 2개가 설치된 15호와 세장방형인 20호는 흔암리 유형 단계에 해당하고, 나머지 집자리는 검단리 유형 단계에 해당한다.
유적은 청동기 시대 전 시기의 다양한 생활 유적이 확인되었으며, 특히 서하 유적은 생활 의례가 확인되어 학술적으로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미지
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발굴조사 | 2002년 11월 12일~2004년 3월 26일 | 울산 서하리 서하 유적 | 2006 | 울산발전연구원문화재센터 |
| 발굴조사 | 2005년 7월 20일~2006년 2월 4일 | 울산 인보리 번답들 유적 | 2008 | 울산문화재연구원 |
참고문헌
- 울산문화재연구원. (2008). 울산 인보리 번답들 유적.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2006). 울산 서하리 서하유적. https://excavation.co.kr/bookList/view?idx=63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