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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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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용정동 산100-5 일원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용정동 산100-5 일원
| 성격=무덤유적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묘역식 고인돌]], [[돌널무덤]], [[송국리 문화]]
| 키워드=[[고인돌]], [[돌널무덤]], [[집자리]], [[구덩이]], [[논]], [[송국리 문화]]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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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설명==
전라북도 남원시 용정동 산100-5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은 해발 120m 내외의 능선 하단부와 광치천에 의해 형성된 충적지가 만나는 지점에 입지한다. 2016년 남원 광치천 생태 하천 복원 사업 부지 발굴 조사를 통해 청동기 시대 [[묘역식고인돌|묘역식 고인돌(墓域式支石墓)]], [[석관묘|돌널무덤(石棺墓)]] 각 1기와 신석기 시대 [[돌무지시설|돌무지 시설(集石遺構)]], 통일 신라 시대 [[집자리|집자리]], [[기둥건물터|기둥 건물터(掘立柱建物址)]], [[구덩이|구덩이]], [[도랑|도랑(溝)]], [[논|논(水田)]], 조선 시대 도랑, 논이 확인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용정동 산100-5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은 해발 120m 내외의 능선 하단부와 광치천에 의해 형성된 충적지가 만나는 지점에 입지한다. 2016년 남원 광치천 생태 하천 복원 사업 부지 발굴 조사를 통해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묘역식 고인돌(墓域式支石墓),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각 1기와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 [[돌무지시설|돌무지 시설(集石遺構)]], 통일 신라 시대 [[집자리|집자리]], [[기둥건물터|기둥 건물터(掘立柱建物址)]], [[구덩이|구덩이]], [[도랑|도랑(溝)]], [[논|논(水田)]], 조선 시대 도랑, 논이 확인되었다.


묘역식 고인돌과 돌널무덤 모두 [[뚜껑돌|뚜껑돌(蓋石)]]과 [[덮개돌|덮개돌]]이 유실되어 하부만 남아 있으며, 장축 방향은 광치천의 흐름과 평행하게 동서 방향으로 축조되었다. 묘역식 고인돌의 [[묘역|묘역]]은 가장자리에 너비 0.2~0.4m 정도의 석재를 이용하여 면석이 바깥을 향하도록 조성하였다. [[매장주체부|매장 주체부]]와 묘역 사이는 일부 자갈이 포함된 흙으로 내부를 채웠다. 매장 주체부는 판돌을 이용해 축조하였으며, 일부는 자연석을 이용하였다. 길이 1.84m, 너비 0.7m, 잔존 깊이 0.2m이다. 돌널무덤은 장축이 파괴되었고 뚜껑돌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벽석|벽석]] 1단만이 남아 있다. 규모는 잔존 길이 1.5m, 너비 0.8m, 깊이 0.5m로 여러 매의 판돌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묘역식 [[고인돌|고인돌]]과 돌널무덤 모두 [[뚜껑돌|뚜껑돌(蓋石)]]과 [[덮개돌|덮개돌]]이 유실되어 하부만 남아 있으며, 장축 방향은 광치천의 흐름과 평행하게 동서 방향으로 축조되었다. 묘역식 고인돌의 묘역은 가장자리에 너비 0.2~0.4m 정도의 석재를 이용하여 면석이 바깥을 향하도록 조성하였다. [[매장주체부|매장 주체부]]와 묘역 사이는 일부 자갈이 포함된 흙으로 내부를 채웠다. 매장 주체부는 판돌을 이용해 축조하였으며, 일부는 자연석을 이용하였다. 길이 1.84m, 너비 0.7m, 잔존 깊이 0.2m이다. 돌널무덤은 장축이 파괴되었고 뚜껑돌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벽석 1단만이 남아 있다. 규모는 잔존 길이 1.5m, 너비 0.8m, 깊이 0.5m로 여러 매의 판돌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구체적인 시기와 특징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묘역식 고인돌이 소형이고 단독이며, 돌널무덤과 함께 조성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송국리 문화 단계로 판단된다.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구체적인 시기와 특징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묘역식 고인돌이 소형이고 단독이며, 돌널무덤과 함께 조성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단계로 판단된다.


용정동 유적은 남원시에서 확인된 최초의 청동기 시대 무덤으로, 자료가 전무했던 남원시 내 청동기 시대 집단의 존재를 엿볼 수 있는 중요 유적이다.
용정동 유적은 남원시에서 확인된 최초의 청동기 시대 무덤으로, 자료가 전무했던 남원시 내 청동기 시대 집단의 존재를 엿볼 수 있는 중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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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class="list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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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굴조사 || 2016년~2017년 || 남원 용정동유적 || 2018 || 전라문화유산연구원
|}
==참고문헌==
* 전라문화유산연구원. (2018). <i>남원 용정동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5097765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4 기준 최신판


용정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남원 용정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용정동 산100-5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고인돌, 돌널무덤, 집자리, 구덩이, , 송국리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박서현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용정동 산100-5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은 해발 120m 내외의 능선 하단부와 광치천에 의해 형성된 충적지가 만나는 지점에 입지한다. 2016년 남원 광치천 생태 하천 복원 사업 부지 발굴 조사를 통해 청동기 시대 묘역식 고인돌(墓域式支石墓), 돌널무덤(石棺墓) 각 1기와 신석기 시대 돌무지 시설(集石遺構), 통일 신라 시대 집자리, 기둥 건물터(掘立柱建物址), 구덩이, 도랑(溝), 논(水田), 조선 시대 도랑, 논이 확인되었다.

묘역식 고인돌과 돌널무덤 모두 뚜껑돌(蓋石)덮개돌이 유실되어 하부만 남아 있으며, 장축 방향은 광치천의 흐름과 평행하게 동서 방향으로 축조되었다. 묘역식 고인돌의 묘역은 가장자리에 너비 0.2~0.4m 정도의 석재를 이용하여 면석이 바깥을 향하도록 조성하였다. 매장 주체부와 묘역 사이는 일부 자갈이 포함된 흙으로 내부를 채웠다. 매장 주체부는 판돌을 이용해 축조하였으며, 일부는 자연석을 이용하였다. 길이 1.84m, 너비 0.7m, 잔존 깊이 0.2m이다. 돌널무덤은 장축이 파괴되었고 뚜껑돌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벽석 1단만이 남아 있다. 규모는 잔존 길이 1.5m, 너비 0.8m, 깊이 0.5m로 여러 매의 판돌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구체적인 시기와 특징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묘역식 고인돌이 소형이고 단독이며, 돌널무덤과 함께 조성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송국리 문화 단계로 판단된다.

용정동 유적은 남원시에서 확인된 최초의 청동기 시대 무덤으로, 자료가 전무했던 남원시 내 청동기 시대 집단의 존재를 엿볼 수 있는 중요 유적이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16년~2017년 남원 용정동유적 2018 전라문화유산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