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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은 행정구역상으로는 함안군에 해당하지만 지리적으로 마산만에서 남지쪽 낙동강변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하여 마산권에 포함된다. 연대는 집자리 및 고인돌, 간 돌살촉의 생김새 등을 고려해서 [[송국리단계|송국리 단계]]로 판단된다. | 유적은 행정구역상으로는 함안군에 해당하지만 지리적으로 마산만에서 남지쪽 낙동강변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하여 마산권에 포함된다. 연대는 집자리 및 고인돌, 간 돌살촉의 생김새 등을 고려해서 [[송국리단계|송국리 단계]]로 판단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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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1994년 05월 19일~1994년 07월 31일 || 함안 오곡리유적 || 1995 || 창원대학교 | | 발굴조사 || 1994년 05월 19일~1994년 07월 31일 || 함안 오곡리유적 || 1995 || 창원대학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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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경남고고학연구소. (2002). <i>합천영창리무문시대 집락</i>. https://www.riss.kr/link?id=M4211788 | |||
* 창원대학교박물관. (1995). <i>함안 오곡리유적</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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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3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함안 오곡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오곡리 산25, 576-2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지상 건물터, 고인돌, 의례 행위, 송국리 단계, 움무덤, 돌덧널무덤, 돌널무덤, 붉은 간 토기, 간 돌살촉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김재윤, 김형곤 |
설명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오곡리 산25, 576-2 일원에 위치한다. 구마 고속 도로 확장 공사로 1994년 조사하여(오곡리 유적), 집자리 4기, 무덤 34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내서-냉정간 도로 확장 공사로 1997년 조사하여(가마실 유적), 집자리 5기, 지상 건물터(地上建物址) 1기, 고인돌 3기를 확인하였다. 오곡리 유적(오곡리 산25)은 충적대지 위에 입지하고, 가마실 유적(오곡리 576-2)은 구릉 정상부와 완사면에 위치하며 두 유적은 1.2㎞ 떨어져 있다.
오곡리 유적은 타원형 집자리가 폐기된 후 무덤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집자리의 지름은 6m로 큰 편이다. 바닥 중앙부에는 타원형 구덩이와 그 바깥에 대칭되는 기둥 구멍이 있으며, 작은 기둥 구멍도 정형성 없이 여러 개 있다. 출토 유물은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가락바퀴, 짧은 배 모양(短舟形) 반달 돌칼, 돌도끼(石斧), 돌낫(石鎌), 돌보삽(有肩石斧), 숫돌(砥石) 등으로 대부분 석기류이다. 가마실 유적의 집자리는 원형 1기, 방형 4기로 서로 인접하여 위치한다. 크기는 비슷하며, 원형 집자리는 중앙 가운데 구덩이를 중심으로 4~6개의 기둥 구멍이 대칭적으로 배열되었다. 방형 집자리는 작업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깊은 바리 토기,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편, 숫돌(砥石), 갈판(碾石)이 확인되었다.
오곡리 유적의 무덤은 대부분 하부 구조만 남아 있는데, 움형(土壙形) 18기, 돌덧널형(石槨形) 15기, 돌널형(石棺形)은 1기(10호)이고, 상부 구조가 남아 있는 것은 1호만 덮개돌(上石)이 확인되었다. 특히 17호는 무덤 구덩이(墓壙)의 길이 2.19m, 너비 0.84m, 깊이 0.14m로 토층에서 'U'자 모양의 통나무널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널의 크기는 길이 1.73m, 너비 0.5m로 추정되며, 창원 다호리 1호의 통나무널과 연결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돌덧널형 중 3호는 북쪽 긴 벽과 서쪽 짧은 벽 쪽은 뚜껑돌(蓋石)을 걸치기 위해 무덤 구덩이를 2단으로 조성하였다. 돌덧널은 길이 2.15m, 너비 0.58m, 깊이 0.49m로 세 벽만 석벽을 쌓고 한쪽 벽은 다른 시설을 하지 않았으며, 바닥은 판돌(板石)을 깔았다.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은 붉은 간 토기, 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등이다. 특히 붉은 간 토기는 무덤 바닥, 뚜껑돌, 측벽 상부 등 다양한 곳에서 출토되고 있어, 무덤 축조 시 의례(儀禮) 행위를 나타낸다. 가마실 유적의 고인돌도 매장 주체부인 하부 구조만 남아 있다. 무덤은 구덩이를 수직으로 파고 깬돌(割石)로 4벽을 쌓았는데, 2호에는 짧은 벽 없이 3벽만 있다. 돌널무덤의 뚜껑돌(蓋石)은 2·3호에서는 3~4겹으로 덮었다. 유물은 붉은 간 토기, 반달 돌칼, 간 돌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붉은 간 토기는 무덤에서 1점씩 출토되었고, 2호 무덤에서는 짧은 벽이 없는 곳에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부장하였다.
유적은 행정구역상으로는 함안군에 해당하지만 지리적으로 마산만에서 남지쪽 낙동강변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하여 마산권에 포함된다. 연대는 집자리 및 고인돌, 간 돌살촉의 생김새 등을 고려해서 송국리 단계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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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발굴조사 | 1994년 05월 19일~1994년 07월 31일 | 함안 오곡리유적 | 1995 | 창원대학교 |
참고문헌
- 경남고고학연구소. (2002). 합천영창리무문시대 집락. https://www.riss.kr/link?id=M4211788
- 창원대학교박물관. (1995). 함안 오곡리유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