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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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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설명==
평양직할시 강동군 순창리에 위치한다. 무덤방(墓室)은 판돌(板石)을 세워 ‘ㅍ’자 모양으로 벽체를 만들고 2~3장의 판돌로 천장을 덮었다. 1·2·4·6·7호는 무덤방이 1기이며, 8·9호 무덤은 무덤방이 2기이다. 1호 무덤은 길이 2.12m, 너비 1.2m, 깊이 1.7m로 가장 크며, 3호는 길이 1.24m, 너비 0.64m, 깊이 0.6m로 가장 작다. 널안에서는 [[사람뼈|사람 뼈]]도 나왔는데 모두 굽혀묻기(屈身葬)를 하였다. 5·9호 무덤에서는 한 사람분의 뼈가 니왔고, 1·2·4·7·8호 무덤에서는 두 명 분의 뼈가 나와서 부부 [[합장|합장 무덤]]인 것으로 보인다. 6호 무덤에서는 세 명분의 뼈가 나왔다. 이들 뼈의 나이를 추정하면 30~50대에 걸친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8호 무덤에서는 18세 정도되는 젊은 여성이, 6호에서는 60대 여성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무덤 [[껴묻거리|부장품]]으로는 2호와 5호 무덤에서 [[금동귀걸이|금동 귀걸이]]가 나왔다. 귀걸이는 고리(環部), 중간 장식, 연결 고리(連結具), 드림 장식(垂下飾)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리는 반지처럼 생겼고 굵기는 0.3㎝이다. 드림 장식은 구멍뚫린 연결부와 그 아래 3단으로 된 꿴 구슬 모양의 장식이다. 사람 뼈에 대한 [[절대연대측정법|절대연대 측정]]치는 2호의 것이 4376±239 BP, 5호의 것이 4425±158 BP이다.
평양직할시 강동군 순창리에 위치한다. 무덤방(墓室)은 판돌(板石)을 세워 ‘ㅍ’자 모양으로 벽체를 만들고 2~3장의 판돌로 천장을 덮었다. 1·2·4·6·7호는 무덤방이 1기이며, 8·9호 무덤은 무덤방이 2기이다. 1호 무덤은 길이 2.12m, 너비 1.2m, 깊이 1.7m로 가장 크며, 3호는 길이 1.24m, 너비 0.64m, 깊이 0.6m로 가장 작다. 널안에서는 [[사람뼈|사람 뼈]]도 나왔는데 모두 굽혀묻기(屈身葬)를 하였다. 5·9호 무덤에서는 한 사람분의 뼈가 니왔고, 1·2·4·7·8호 무덤에서는 두 명 분의 뼈가 나와서 부부 [[합장|합장 무덤]]인 것으로 보인다. 6호 무덤에서는 세 명분의 뼈가 나왔다. 이들 뼈의 나이를 추정하면 30~50대에 걸친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8호 무덤에서는 18세 정도되는 젊은 여성이, 6호에서는 60대 여성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무덤 [[껴묻거리|부장품]]으로는 2호와 5호 무덤에서 [[금동귀걸이|금동 귀걸이]]가 나왔다. 귀걸이는 고리(環部), 중간 장식, 연결 고리(連結具), 드림 장식(垂下飾)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리는 반지처럼 생겼고 굵기는 0.3㎝이다. 드림 장식은 구멍뚫린 연결부와 그 아래 3단으로 된 꿴 구슬 모양의 장식이다. 사람 뼈에 대한 [[절대연대측정법|절대연대 측정]]치는 2호의 것이 4376±239 BP, 5호의 것이 4425±158 BP이다.
==참고문헌==
* 고광렬. (1995). 강동군 순창리 돌관무덤에서 나온 유골의 성별관계와 년령구성에 대하여. <i>조선고고연구, 3</i>.
* 한인호. (1995). 고조선초기의 금제품에 대한 고찰. <i>조선고고연구, 1</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2 기준 최신판


순창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평양 순창리 유적, 평양 순창리 돌널무덤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북한
소재지 평양직할시 강동군 순창리
관련 정보
성격 고분
키워드 사람 뼈, 합장 무덤, 금동 귀걸이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장호수



설명

평양직할시 강동군 순창리에 위치한다. 무덤방(墓室)은 판돌(板石)을 세워 ‘ㅍ’자 모양으로 벽체를 만들고 2~3장의 판돌로 천장을 덮었다. 1·2·4·6·7호는 무덤방이 1기이며, 8·9호 무덤은 무덤방이 2기이다. 1호 무덤은 길이 2.12m, 너비 1.2m, 깊이 1.7m로 가장 크며, 3호는 길이 1.24m, 너비 0.64m, 깊이 0.6m로 가장 작다. 널안에서는 사람 뼈도 나왔는데 모두 굽혀묻기(屈身葬)를 하였다. 5·9호 무덤에서는 한 사람분의 뼈가 니왔고, 1·2·4·7·8호 무덤에서는 두 명 분의 뼈가 나와서 부부 합장 무덤인 것으로 보인다. 6호 무덤에서는 세 명분의 뼈가 나왔다. 이들 뼈의 나이를 추정하면 30~50대에 걸친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8호 무덤에서는 18세 정도되는 젊은 여성이, 6호에서는 60대 여성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무덤 부장품으로는 2호와 5호 무덤에서 금동 귀걸이가 나왔다. 귀걸이는 고리(環部), 중간 장식, 연결 고리(連結具), 드림 장식(垂下飾)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리는 반지처럼 생겼고 굵기는 0.3㎝이다. 드림 장식은 구멍뚫린 연결부와 그 아래 3단으로 된 꿴 구슬 모양의 장식이다. 사람 뼈에 대한 절대연대 측정치는 2호의 것이 4376±239 BP, 5호의 것이 4425±158 BP이다.

참고문헌

  • 고광렬. (1995). 강동군 순창리 돌관무덤에서 나온 유골의 성별관계와 년령구성에 대하여. 조선고고연구, 3.
  • 한인호. (1995). 고조선초기의 금제품에 대한 고찰. 조선고고연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