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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 성동리 산14-2 일원에 위치한다. 서해안 고속 도로 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1995년 목포대학교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였다. [[고인돌|고인돌]]은 너비 1~2m 정도의 조그만 골짜기를 따라 남북으로 열을 지어 가군 4기, 나군 9기, 다군 3기가 군집을 이루면서 분포하며, 다군의 1기를 제외한 15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다. |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 성동리 산14-2 일원에 위치한다. 서해안 고속 도로 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1995년 목포대학교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였다. [[고인돌|고인돌]]은 너비 1~2m 정도의 조그만 골짜기를 따라 남북으로 열을 지어 가군 4기, 나군 9기, 다군 3기가 군집을 이루면서 분포하며, 다군의 1기를 제외한 15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다. | ||
가군은 판돌(板石) 2매가 긴 벽을 이룬 [[탁자식고인돌|탁자식(卓子式)]]과 자연석 4매가 고인 전형적인 [[ | 가군은 판돌(板石) 2매가 긴 벽을 이룬 [[탁자식고인돌|탁자식(卓子式)]]과 자연석 4매가 고인 전형적인 [[기반식고인돌|바둑판식(碁盤式)]], 판돌과 자연석이 받치는 탁자식·바둑판식 혼합형이 있다. 세 유형의 형식이 혼재하면서 같은 시기에 공존하고 있음이 밝혀졌는데, 출토 유물은 없다. | ||
나군은 9기가 골짜기 방향으로 2열로 배치되어 있었다. [[무덤방|무덤방(墓室)]]은 두께 0.2~0.3m의 판돌을 이용한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1호는 [[덮개돌|덮개돌(上石)]]이 길이 5.24m, 두께 1.02m 대형 탁자식이다. 무덤방은 대형 판돌 3매를 이용하여 ‘ㄷ’자 모양으로 세운 지상형으로 길이 2.3m, 너비 1.6m, 두께 0.98m이다. 이 고인돌군 무덤방들은 규모가 작아지고, 높이가 낮아지고, 판돌 두께가 얇아지며 지하화(地下化)되는 다양한 형식이 존재한다. 유물은 주변에서 간 돌살촉 1점과 1호 무덤방 내부에서 적갈색 [[연질토기|연질토기(軟質土器)]] 편이 출토되었다. | 나군은 9기가 골짜기 방향으로 2열로 배치되어 있었다. [[무덤방|무덤방(墓室)]]은 두께 0.2~0.3m의 판돌을 이용한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1호는 [[덮개돌|덮개돌(上石)]]이 길이 5.24m, 두께 1.02m 대형 탁자식이다. 무덤방은 대형 판돌 3매를 이용하여 ‘ㄷ’자 모양으로 세운 지상형으로 길이 2.3m, 너비 1.6m, 두께 0.98m이다. 이 고인돌군 무덤방들은 규모가 작아지고, 높이가 낮아지고, 판돌 두께가 얇아지며 지하화(地下化)되는 다양한 형식이 존재한다. 유물은 주변에서 간 돌살촉 1점과 1호 무덤방 내부에서 적갈색 [[연질토기|연질토기(軟質土器)]] 편이 출토되었다. | ||
다군은 3기 중 2기만 조사되었는데, 각각 [[받침돌|받침돌(支石)]] 6매와 7매가 고인 바둑판식이다. 덮개돌은 길이 4~6m인 대형 덮개돌 아래를 돌아가면서 받침돌이 받치고 있다. 받침돌 안과 밖에 | 다군은 3기 중 2기만 조사되었는데, 각각 [[받침돌|받침돌(支石)]] 6매와 7매가 고인 바둑판식이다. 덮개돌은 길이 4~6m인 대형 덮개돌 아래를 돌아가면서 받침돌이 받치고 있다. 받침돌 안과 밖에 판돌 편을 한 겹 깐 시설(敷石施設)과 길이 2m, 너비 1.6m의 큰 무덤방 등이 특징이다. 2호 고인돌은 무덤방과 받침돌 주위에 판돌 편을 이용하여 지름 4~4.5m의 원형의 돌무지(積石)를 아주 정교하게 축조하였다. 유물은 1호 무덤방 윗면에서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1점이 출토되었다. | ||
성동리 고인돌군은 군집에 따라 각각 다른 형식들이 존재하고 있는 점에서 형식 상호간의 편년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이 외에 이 고인돌군은 형식 간의 공존(가군), 지상 무덤방과 지하 무덤방의 공존(나군), 정교한 원형 적석(다군), 그리고 일반적인 고인돌의 무덤방보다 규모가 큰 점, 출토 유물이 매우 빈약한 점이 특징이다. | 성동리 고인돌군은 군집에 따라 각각 다른 형식들이 존재하고 있는 점에서 형식 상호간의 편년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이 외에 이 고인돌군은 형식 간의 공존(가군), 지상 무덤방과 지하 무덤방의 공존(나군), 정교한 원형 적석(다군), 그리고 일반적인 고인돌의 무덤방보다 규모가 큰 점, 출토 유물이 매우 빈약한 점이 특징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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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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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1995년 3월 3일~1995년 5월 16일 || 무안 성동리 안골 지석묘 || 1997 || 목포대학교박물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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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목포대학교박물관. (1997). <i>무안 성동리 안골 지석묘</i>. https://www.riss.kr/link?id=M5044546 |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4월 2일 (목) 12:22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무안 성동리 고인돌군, 무안 성동리 지석묘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 성동리 산14-2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탁자식 고인돌, 바둑판식 고인돌, 연질토기, 민무늬 토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정영희 |
설명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 성동리 산14-2 일원에 위치한다. 서해안 고속 도로 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1995년 목포대학교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였다. 고인돌은 너비 1~2m 정도의 조그만 골짜기를 따라 남북으로 열을 지어 가군 4기, 나군 9기, 다군 3기가 군집을 이루면서 분포하며, 다군의 1기를 제외한 15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다.
가군은 판돌(板石) 2매가 긴 벽을 이룬 탁자식(卓子式)과 자연석 4매가 고인 전형적인 바둑판식(碁盤式), 판돌과 자연석이 받치는 탁자식·바둑판식 혼합형이 있다. 세 유형의 형식이 혼재하면서 같은 시기에 공존하고 있음이 밝혀졌는데, 출토 유물은 없다.
나군은 9기가 골짜기 방향으로 2열로 배치되어 있었다. 무덤방(墓室)은 두께 0.2~0.3m의 판돌을 이용한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1호는 덮개돌(上石)이 길이 5.24m, 두께 1.02m 대형 탁자식이다. 무덤방은 대형 판돌 3매를 이용하여 ‘ㄷ’자 모양으로 세운 지상형으로 길이 2.3m, 너비 1.6m, 두께 0.98m이다. 이 고인돌군 무덤방들은 규모가 작아지고, 높이가 낮아지고, 판돌 두께가 얇아지며 지하화(地下化)되는 다양한 형식이 존재한다. 유물은 주변에서 간 돌살촉 1점과 1호 무덤방 내부에서 적갈색 연질토기(軟質土器) 편이 출토되었다.
다군은 3기 중 2기만 조사되었는데, 각각 받침돌(支石) 6매와 7매가 고인 바둑판식이다. 덮개돌은 길이 4~6m인 대형 덮개돌 아래를 돌아가면서 받침돌이 받치고 있다. 받침돌 안과 밖에 판돌 편을 한 겹 깐 시설(敷石施設)과 길이 2m, 너비 1.6m의 큰 무덤방 등이 특징이다. 2호 고인돌은 무덤방과 받침돌 주위에 판돌 편을 이용하여 지름 4~4.5m의 원형의 돌무지(積石)를 아주 정교하게 축조하였다. 유물은 1호 무덤방 윗면에서 민무늬 토기 1점이 출토되었다.
성동리 고인돌군은 군집에 따라 각각 다른 형식들이 존재하고 있는 점에서 형식 상호간의 편년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이 외에 이 고인돌군은 형식 간의 공존(가군), 지상 무덤방과 지하 무덤방의 공존(나군), 정교한 원형 적석(다군), 그리고 일반적인 고인돌의 무덤방보다 규모가 큰 점, 출토 유물이 매우 빈약한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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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발굴조사 | 1995년 3월 3일~1995년 5월 16일 | 무안 성동리 안골 지석묘 | 1997 | 목포대학교박물관 |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1997). 무안 성동리 안골 지석묘. https://www.riss.kr/link?id=M50445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