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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서호리 435-22 일원에 위치한다. 영암 국도 대체 우회 도로(청호-삼호) 건설과 관련하여 2005~2006년에 조사가 이루어졌다. 주변 환경은 삼호읍에서 학산면 독천까지 저평하고 세장한 구릉이 발달한 지형이다. 북쪽은 영산호와 인접하며, 남쪽은 과거 해안선이 발달하였던 곳으로 현재는 영암호로 인해 농경지로 변화가 이루어진 곳이다.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서호리 435-22 일원에 위치한다. 영암 국도 대체 우회 도로(청호-삼호) 건설과 관련하여 2005~2006년에 조사가 이루어졌다. 주변 환경은 삼호읍에서 학산면 독천까지 저평하고 세장한 구릉이 발달한 지형이다. 북쪽은 영산호와 인접하며, 남쪽은 과거 해안선이 발달하였던 곳으로 현재는 영암호로 인해 농경지로 변화가 이루어진 곳이다.


조사 결과,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고인돌을 포함한 [[무덤방|무덤방(石室)]]들이 북서-남동 방향으로 18기가 확인되었다. 무덤방은 [[돌널형|돌널형(石棺形)]], [[돌덧널형|돌덧널형(石槨形)]], [[혼축형|혼축형(混築形)]] 등 여러 형태가 확인된다.
조사 결과,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고인돌|고인돌]]을 포함한 [[무덤방|무덤방(石室)]]들이 북서-남동 방향으로 18기가 확인되었다. 무덤방은 돌널형(石棺形), 돌덧널형(石槨形), 혼축형(混築形) 등 여러 형태가 확인된다.


가지구는 배치 및 축조 상태를 고려하여, A·B지역으로 구분하였다. A지역은 가지구 북쪽 일대에 해당하며, 소형의 [[석관묘|돌널무덤(石棺墓)]]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묘역시설|묘역 시설]]은 방형으로 확인된다. B지역은 훼손이 심하며,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 9~11호 무덤방에서 사면부의 18호로 내려오면서 돌널형에서 돌덧널형의 비중이 높아지는 변화상이 파악된다. 묘역 시설은 파괴되어 흔적만 남아 있으며, 남쪽으로 갈수록 묘역 시설은 확인되지 않는다.
가지구는 배치 및 축조 상태를 고려하여, A·B지역으로 구분하였다. A지역은 가지구 북쪽 일대에 해당하며, 소형의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묘역 시설은 방형으로 확인된다. B지역은 훼손이 심하며,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 9~11호 무덤방에서 사면부의 18호로 내려오면서 돌널형에서 돌덧널형의 비중이 높아지는 변화상이 파악된다. 묘역 시설은 파괴되어 흔적만 남아 있으며, 남쪽으로 갈수록 묘역 시설은 확인되지 않는다.


나지구는 유물 산포지로서 2기의 도랑이 조사되었다. 1호 도랑 주변에서 [[간돌살촉|간 돌살촉]] 1점, [[숫돌|숫돌(砥石)]]과 흙으로 만든 [[그물추|그물추]] 1점이 수습되었다.
나지구는 유물 산포지로서 2기의 도랑이 조사되었다. 1호 도랑 주변에서 [[간돌살촉|간 돌살촉]] 1점, [[숫돌|숫돌(砥石)]]과 흙으로 만든 [[그물추|그물추]] 1점이 수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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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침돌|받침돌(支石)]]은 단면 장타원형의 덮개돌을 괴석형 받침돌 5매가 받치고 있으며, 단면 형태가 불완전한 남쪽과 서쪽으로는 받침돌을 약간 세워 덮개돌을 고이고, 단면 형태가 편평한 곳은 눕혀서 받치고 있다. 길이 0.3~0.4m, 너비 0.25~0.4m, 두께 0.15~0.4m이고, 각 받침돌 간의 거리는 0.4m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다. 덮개돌 제거 후 무덤방은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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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 유물은 무덤방 내부가 아닌 주변에서 [[간돌살촉|간 돌살촉]] 편,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삼각돌칼|삼각 돌칼]] 편, [[가락바퀴|가락바퀴]], [[돌끌|돌끌(石鑿)]] 등의 석기류와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편,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등의 토기류가 수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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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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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05년 10월 24일~2005년 12월 31일 || 영암 서호리 소서호 가군 지석묘 || 2008 || 동북아지석묘연구소
|-
| 발굴조사 || 2006년 9월 12일~2006년 11월 15일 || 영암 서호리 소서호 가군 지석묘 || 2008 || 동북아지석묘연구소
|}
 
==참고문헌==
* 동북아지석묘연구소. (2008). <i>영암 서호리 소서호 가군 지석묘</i>.  https://www.riss.kr/link?id=M12168288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1 기준 최신판


서호리 고인돌군
기본 정보
동의어 영암 서호리 고인돌군, 영암 서호리 지석묘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서호리 435-22 일원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돌널무덤, 간 돌살촉, 숫돌, 그물추, 홈자귀, 삼각 돌칼, 가락바퀴, 돌끌, 붉은 간 토기, 민무늬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재언



설명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서호리 435-22 일원에 위치한다. 영암 국도 대체 우회 도로(청호-삼호) 건설과 관련하여 2005~2006년에 조사가 이루어졌다. 주변 환경은 삼호읍에서 학산면 독천까지 저평하고 세장한 구릉이 발달한 지형이다. 북쪽은 영산호와 인접하며, 남쪽은 과거 해안선이 발달하였던 곳으로 현재는 영암호로 인해 농경지로 변화가 이루어진 곳이다.

조사 결과,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고인돌을 포함한 무덤방(石室)들이 북서-남동 방향으로 18기가 확인되었다. 무덤방은 돌널형(石棺形), 돌덧널형(石槨形), 혼축형(混築形) 등 여러 형태가 확인된다.

가지구는 배치 및 축조 상태를 고려하여, A·B지역으로 구분하였다. A지역은 가지구 북쪽 일대에 해당하며, 소형의 돌널무덤(石棺墓)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묘역 시설은 방형으로 확인된다. B지역은 훼손이 심하며,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 9~11호 무덤방에서 사면부의 18호로 내려오면서 돌널형에서 돌덧널형의 비중이 높아지는 변화상이 파악된다. 묘역 시설은 파괴되어 흔적만 남아 있으며, 남쪽으로 갈수록 묘역 시설은 확인되지 않는다.

나지구는 유물 산포지로서 2기의 도랑이 조사되었다. 1호 도랑 주변에서 간 돌살촉 1점, 숫돌(砥石)과 흙으로 만든 그물추 1점이 수습되었다.

1호 고인돌은 조사 지역 서쪽에 치우쳐 위치하며, 덮개돌(上石)이 없이 확인된 3·6·7·8호 무덤방의 묘역 시설과 인접하고 있다. 덮개돌은 길이 1.6m, 너비 1.5m, 두께 0.8m이며 장축은 북서-남동 방향이다. 덮개돌 주변 정리 후 노출된 묘역 시설은 북서쪽에 치우쳐 위치하며, 덮개돌의 남쪽 외곽 경계부에 장방형의 깬돌(割石)을 세우거나 소형 깬돌을 돌려 조성하였다. 북쪽 구획석 내부에는 깬돌형 석재가 쌓여있지만, 남쪽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받침돌(支石)은 단면 장타원형의 덮개돌을 괴석형 받침돌 5매가 받치고 있으며, 단면 형태가 불완전한 남쪽과 서쪽으로는 받침돌을 약간 세워 덮개돌을 고이고, 단면 형태가 편평한 곳은 눕혀서 받치고 있다. 길이 0.3~0.4m, 너비 0.25~0.4m, 두께 0.15~0.4m이고, 각 받침돌 간의 거리는 0.4m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다. 덮개돌 제거 후 무덤방은 확인되지 않았다.

출토 유물은 무덤방 내부가 아닌 주변에서 간 돌살촉 편, 홈자귀(有溝石斧), 삼각 돌칼 편, 가락바퀴, 돌끌(石鑿) 등의 석기류와 붉은 간 토기 편, 민무늬 토기 등의 토기류가 수습되었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5년 10월 24일~2005년 12월 31일 영암 서호리 소서호 가군 지석묘 2008 동북아지석묘연구소
발굴조사 2006년 9월 12일~2006년 11월 15일 영암 서호리 소서호 가군 지석묘 2008 동북아지석묘연구소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