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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봉계동 대곡 고인돌군 | | 한글표제어=봉계동 대곡 고인돌군 | ||
| 이칭별칭=여수 봉계동 대곡 고인돌군, 봉계동 | | 이칭별칭=여수 봉계동 대곡 고인돌군, 여수 봉계동 대곡 지석묘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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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전라남도 여수시 봉계동 162-7 일원 | | 소재지=전라남도 여수시 봉계동 162-7 일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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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워드=[[자루 간 돌검]], [[슴베 간 돌살촉 | | 키워드=[[고인돌]], [[자루 간 돌검]], [[슴베 간 돌살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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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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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봉계동 162-7 일원에 위치한다. 농지 정리 작업으로 인하여 1988년에 전남대학교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였다. 광양만 남서단에 형성된 평지와 구릉 등에 수 개의 군집을 이루면서 60여 기 이상이 분포한다. [[고인돌|고인돌]]의 분포는 계곡 사이를 흐르는 하천의 방향과 일치하고 남북 쪽의 산줄기와도 같은 방향을 이룬다. 이 고인돌군은 일제 시대 사진에는 20여 기 이상이 분포하고 있었다. | 전라남도 여수시 봉계동 162-7 일원에 위치한다. 농지 정리 작업으로 인하여 1988년에 전남대학교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였다. 광양만 남서단에 형성된 평지와 구릉 등에 수 개의 군집을 이루면서 60여 기 이상이 분포한다. [[고인돌|고인돌]]의 분포는 계곡 사이를 흐르는 하천의 방향과 일치하고 남북 쪽의 산줄기와도 같은 방향을 이룬다. 이 고인돌군은 일제 시대 사진에는 20여 기 이상이 분포하고 있었다. | ||
산기슭에 인접한 계곡 평지에 계곡 방향으로 4기가 열을 이루고 있었고 [[덮개돌|덮개돌(上石)]]의 장축 방향도 동서이다. [[무덤방|무덤방(墓室)]]은 5기가 조사되었는데, 깬돌(割石)로 쌓아 축조한 | 산기슭에 인접한 계곡 평지에 계곡 방향으로 4기가 열을 이루고 있었고 [[덮개돌|덮개돌(上石)]]의 장축 방향도 동서이다. [[무덤방|무덤방(墓室)]]은 5기가 조사되었는데, 깬돌(割石)로 쌓아 축조한 돌덧널형(石槨形)이 4기이고 판돌(板石)을 세운 돌널형(石棺形)이 1기이다. 이 중 4호 고인돌은 길이 3.7m, 너비 3.1m, 두께 1.5m로 외관상 가장 크고 잘 다듬어진 덮개돌이었는데, [[받침돌|받침돌(支石)]] 없이 무덤방 상단의 [[뚜껑돌|뚜껑돌(蓋石)]]과 [[돌무지|돌무지(積石)]]가 직접 덮개돌을 받치고 있는 덮개식(蓋石式)이다. 무덤방은 깬돌을 쌓아 만들고 바닥에 잔 자갈을 깔았는데, 바닥석 위에서 [[자루간돌검|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1점과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6점이 공반되어 출토되었다. 이러한 공반 관계는 보성강 유역의 고인돌에서도 나타나며 경남 남해안이나 합천댐 등지에서도 보여 남해안을 통해 상호교류를 시사한다. 또한 돌널형으로 보이는 판돌로 무덤방을 짜 맞춘 2-1호는 긴 벽을 깬돌 3매씩 세워 만든 돌덧널형 무덤방 밖에 판돌로 구획된 형식이어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고인돌의 무덤방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봉계동 대곡 고인돌군은 전남에서 농지 정리 사업으로 고인돌이 발굴된 최초의 사례이다. | ||
==조사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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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1988년 3월 7일~1988년 4월 4일 || 여천시 봉계동 지석묘 || 1990 || 전남대학교박물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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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전남대학교박물관. (1990). <i>여천시 봉계동 지석묘</i>. https://www.riss.kr/link?id=M70313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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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0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여수 봉계동 대곡 고인돌군, 여수 봉계동 대곡 지석묘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라남도 여수시 봉계동 162-7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자루 간 돌검, 슴베 간 돌살촉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영문 |
설명
전라남도 여수시 봉계동 162-7 일원에 위치한다. 농지 정리 작업으로 인하여 1988년에 전남대학교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였다. 광양만 남서단에 형성된 평지와 구릉 등에 수 개의 군집을 이루면서 60여 기 이상이 분포한다. 고인돌의 분포는 계곡 사이를 흐르는 하천의 방향과 일치하고 남북 쪽의 산줄기와도 같은 방향을 이룬다. 이 고인돌군은 일제 시대 사진에는 20여 기 이상이 분포하고 있었다.
산기슭에 인접한 계곡 평지에 계곡 방향으로 4기가 열을 이루고 있었고 덮개돌(上石)의 장축 방향도 동서이다. 무덤방(墓室)은 5기가 조사되었는데, 깬돌(割石)로 쌓아 축조한 돌덧널형(石槨形)이 4기이고 판돌(板石)을 세운 돌널형(石棺形)이 1기이다. 이 중 4호 고인돌은 길이 3.7m, 너비 3.1m, 두께 1.5m로 외관상 가장 크고 잘 다듬어진 덮개돌이었는데, 받침돌(支石) 없이 무덤방 상단의 뚜껑돌(蓋石)과 돌무지(積石)가 직접 덮개돌을 받치고 있는 덮개식(蓋石式)이다. 무덤방은 깬돌을 쌓아 만들고 바닥에 잔 자갈을 깔았는데, 바닥석 위에서 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1점과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6점이 공반되어 출토되었다. 이러한 공반 관계는 보성강 유역의 고인돌에서도 나타나며 경남 남해안이나 합천댐 등지에서도 보여 남해안을 통해 상호교류를 시사한다. 또한 돌널형으로 보이는 판돌로 무덤방을 짜 맞춘 2-1호는 긴 벽을 깬돌 3매씩 세워 만든 돌덧널형 무덤방 밖에 판돌로 구획된 형식이어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고인돌의 무덤방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봉계동 대곡 고인돌군은 전남에서 농지 정리 사업으로 고인돌이 발굴된 최초의 사례이다.
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발굴조사 | 1988년 3월 7일~1988년 4월 4일 | 여천시 봉계동 지석묘 | 1990 | 전남대학교박물관 |
참고문헌
- 전남대학교박물관. (1990). 여천시 봉계동 지석묘. https://www.riss.kr/link?id=M7031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