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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은 2호 2550±20 BP(보정 연대 기원전 798~566년), 3호 2475±20~2460±20 BP(보정 연대 기원전 764~415년), 9호 2725±20 BP(보정 연대 기원전 912~820년), 12호 2585±20~2550±25 BP(보정 연대 기원전 806~559년)로 확인되었다. 유적의 시기는 집자리의 형태와 출토된 유물,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를 통해 볼 때, [[검단리유형|검단리 유형]] 단계로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에 해당한다. | 유적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은 2호 2550±20 BP(보정 연대 기원전 798~566년), 3호 2475±20~2460±20 BP(보정 연대 기원전 764~415년), 9호 2725±20 BP(보정 연대 기원전 912~820년), 12호 2585±20~2550±25 BP(보정 연대 기원전 806~559년)로 확인되었다. 유적의 시기는 집자리의 형태와 출토된 유물,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를 통해 볼 때, [[검단리유형|검단리 유형]] 단계로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에 해당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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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 ==조사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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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08년 12월 1일~2009년 10월 26일 || 울산 명산리 유적 || 2011 || 울산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08년 12월 1일~2009년 10월 26일 || 울산 명산리 유적 || 2011 || 울산문화재연구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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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울산문화재연구원. (2011). <i>울산 명산리 유적</i>. |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5월 4일 (월) 17:02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울주 명산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명산리 488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환호, 도랑, 화덕 자리,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독 모양 토기, 그물추, 간 돌살촉, 돌도끼, 반달 돌칼, 숫돌, 공이, 돌대팻날, 홈자귀, 검단리 유형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황창한 |
설명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명산리 488 일원에 위치한다. 영어 마을 조성으로 2008~2009년 조사하여, 집자리 17기, 환호 1기, 도랑 1기 및 삼국~통일 신라 시대, 조선 시대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평탄한 구릉부(해발 27~36m)와 완만한 사면부에 조성되었다. 이중 삼국 시대 고분군은 정선부의 평탄면에, 청동기 시대의 집자리와 환호는 완만한 사면부에 조성되었다.
집자리는 방형, 장방형으로 구분되며, 방형 중 규모가 가장 큰 17호는 길이 4.08m, 너비 3.5m, 장방형 중 규모가 가장 큰 15호는 길이 6.14m, 너비 4m이다. 일반적으로 방형은 4주식(柱式), 장방형은 6주식이다. 집자리의 내부에는 벽 도랑(壁溝),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등이 설치되었고, 아래쪽 모서리 한 쪽에는 외부로 연결된 배수구가 설치되었다. 벽 도랑은 3호를 제외하고 모든 집자리에서 확인되었는데 내부에 벽 기둥 구멍(壁柱穴)이 확인되는 경우도 있다. 벽 기둥 구멍은 9·12호 벽 도랑 내부, 10호는 벽 도랑이 없는 곳의 벽면과 바닥이 만나는 모서리에 설치되었다. 9호의 벽 기둥 구멍은 형태가 길쭉하다는 점에서 벽 마감재로 판재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덕 자리는 5·16호를 제외하고 모두 확인되었다. 형태는 원형 또는 타원형이며, 대부분 집자리 중앙에서 한쪽 짧은 벽에 치우쳐 설치되었다.
화덕 자리는 평지식(8·10·15·17호)과 구덩식(竪穴式)으로 구분된다. 집자리의 폐기 양상은 자연적인 것과 화재(1·9·12호)로 추정되며, 일부는 내부에 돌무지(積石)가 확인된다.
출토 유물은 토기류 19점, 토제품 2점, 석기류 26점이다. 토기는 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 독 모양 토기(甕形土器) 등이 확인되었다. 14호에서 출토된 바닥 편에서는 곡물 알갱이로 추정되는 흔적이 확인되었다. 13호에서는 그물추 2점이 출토되었는데 형태는 공 모양(球形)이다. 석기류는 간 돌살촉, 돌도끼, 반달 돌칼, 숫돌(砥石), 공이, 미완성 석기가 출토되었다. 간 돌살촉 중 8호 출토품 2점은 미완성품인데, 슴베식(有莖式)으로 추정된다. 13호 출토품은 슴베가 없는 형식(無莖式)이며, 나머지 5점은 슴베식으로 추정된다. 돌도끼는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이 많으며, 13호에서 홈자귀(有溝石斧) 1점이 출토되었다. 날 부분이 결실되어 몸통만 남아 있으나, 일부 떼기 흔적이 관찰되어 홈자귀를 재가공하여 다른 석기를 제작하려고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반달 돌칼은 물고기 모양과 배 모양(舟形)이다. 돌칼은 돌무지에서 출토되어 의례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에서 미완성품을 가공하여 석기를 제작한 흔적으로 볼 때 가구(家口)별로 석기를 제작하여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환호는 유적의 남쪽 사면(해발 31~35m)에 위치하며 평면 형태는 물방울 모양이다. 출입구는 3곳에서 확인되었으며 토층에서 기반토와 유사한 층이 퇴적되어 안쪽에 토루(土壘)가 존재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목책(木柵) 등의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환호 내부에 집자리 2기가 각각 남·북쪽에 인접하여 위치한다. 울산 검단리 마을 유적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환호로 둘러싸인 마을이 조사되었고, 이후 연암동 환호 유적, 천상리 유적, 창평동 환호 유적, 교동리 유적 등이 조사되었다. 명산리 유적의 평면과 출입구의 형태는 검단리 마을 유적과 유사하다. 환호의 내부에는 토기 편과 깬돌(割石)이 깔려 있는데 특히 서쪽 구간에 집중되어 있다.
출토 유물은 토기류 64점, 석기류 3점, 그물추 8점이다. 토기는 깊은 바리 토기와 항아리 모양 토기이며, 무늬는 외면에서 내면으로 반관통된 구멍무늬, 종 방향 낟알무늬가 확인되었다. 석기는 간 돌살촉, 공이, 격지(薄片) 등이다.
환호의 기능은 방어, 경계, 배수와 집수, 의례 등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유적의 환호는 의례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추정된다. 환호는 내부를 외부와 구별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는데 내부에서 확인된 집자리 2기는 환호와 너무 인접하여 배치가 어색하다. 따라서 환호와 집자리는 동 시기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이 환호 내부에 아무런 시설이 없고, 목책 등 특별한 시설이 확인되지 않는 점으로 볼 때 방어보다는 의례와 같은 특수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환호 일부 구간에서 다량의 토기 편이 확인되는 양상은 특수한 공간에 대한 의례적인 행위로 판단된다.
유적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은 2호 2550±20 BP(보정 연대 기원전 798~566년), 3호 2475±20~2460±20 BP(보정 연대 기원전 764~415년), 9호 2725±20 BP(보정 연대 기원전 912~820년), 12호 2585±20~2550±25 BP(보정 연대 기원전 806~559년)로 확인되었다. 유적의 시기는 집자리의 형태와 출토된 유물,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를 통해 볼 때, 검단리 유형 단계로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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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시굴조사 | 2007년 10월 17일~2007년 12월 18일 | 울산 명산리 유적 | 2011 | 울산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08년 12월 1일~2009년 10월 26일 | 울산 명산리 유적 | 2011 | 울산문화재연구원 |
참고문헌
- 울산문화재연구원. (2011). 울산 명산리 유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