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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동촌리 유적
| 이칭별칭=보성 동촌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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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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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자=신상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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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 동촌리 311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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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설명==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 동촌리 311 일원에 위치한다. 밭 경작지 조성을 하던 중 발견되어 2001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1기와 [[고인돌|고인돌]] 2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방장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설상대지(舌狀坮地)를 형성하는 해발 38m의 가지구릉 남사면에 위치한다.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 동촌리 311 일원에 위치한다. 밭 경작지 조성을 하던 중 발견되어 2001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1기와 [[고인돌|고인돌]] 2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방장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설상대지(舌狀坮地)를 형성하는 해발 38m의 가지구릉 남사면에 위치한다.


집자리는 고인돌 2호 [[무덤방|무덤방(墓室)]]에 의해 서벽쪽이 파괴되었으나 평면 형태 타원형으로 긴 지름 4.8~5.8m, 깊이 0.55~0.88m로 추정된다.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이 설치된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이다. 타원형 구덩이 가장자리 안쪽과 중앙에 기둥 구멍이 각각 1기가 확인되나 한 쪽이 고인돌에 의해 파괴된 부분이기 때문에 평면상 3개의 기둥 구멍이 1열로 배치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삼각돌칼|삼각 돌칼]], [[돌낫|돌낫(石鎌)]],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돌도끼|돌도끼(石斧)]], [[숫돋ㄹ|숫돌(砥石)]],[[갈판|갈판(耉石)]] 등이 출토되었다.
집자리는 고인돌 2호 [[무덤방|무덤방(墓室)]]에 의해 서벽쪽이 파괴되었으나 평면 형태 타원형으로 긴 지름 4.8~5.8m, 깊이 0.55~0.88m로 추정된다.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이 설치된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이다. 타원형 구덩이 가장자리 안쪽과 중앙에 기둥 구멍이 각각 1기가 확인되나 한 쪽이 고인돌에 의해 파괴된 부분이기 때문에 평면상 3개의 기둥 구멍이 1열로 배치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삼각돌칼|삼각 돌칼]], [[돌낫|돌낫(石鎌)]],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돌도끼|돌도끼(石斧)]], [[숫돌|숫돌(砥石)]],[[갈판|갈판(耉石)]] 등이 출토되었다.


고인돌 1호는 [[덮개돌|덮개돌上石]]을 확인할 수 없으며, 2호 덮개돌은 오봉산(五峯山) 각력응회암(角礫凝灰岩) 재질로 길이 3m, 너비 2.5m, 두께 0.4m이고, 무게는 5.5톤이다. 1호 고인돌의 장축은 능선과 동일하나 2호 고인돌은 직교하고 무덤방은 모두 능선 방향과 동일하다. [[무덤구덩이|무덤 구덩이(墓壙)]]는 1호가 3단, 2호가 2단으로 파서, 1단에는 돌과 흙을 번갈아 채우고 2~3단에는 대형 판돌(板石)을 이용한 [[돌널형무덤발|돌널형(石棺形)의 무덤방]]을 갖추었다. 바닥에는 깬돌(割石)과 자갈돌을 섞어 깔았다. 1호 무덤 구덩이는 1단 길이 10.4m, 너비 9.5m, 깊이 1.54m이고, 2단 길이 4.8m, 너비 3.65m, 깊이 0.36m, 3단 길이 3.54m, 너비 2.36m, 깊이 1.32m이고, 돌널은 길이 1.95m, 너비 1.05m, 깊이 0.8m이다. 특히 [[뚜껑돌|뚜껑돌(蓋石)]]을 덮고 그 윗부분에 황갈색 마사토와 돌무지층(積石層)을 겹겹으로 3단의 층을 이루며 채운 점이 특이하다. 1차 돌무지층은 대형 판돌을 무덤방 주변에 깔고 소형 깬돌과 자연석을 채워 마무리하였고, 2·3차 돌무지층은 소형 깬돌을 채웠다. 대형 판돌 윗면에는 [[알구멍|알 구멍(性穴)]]이 있다. 유물은 1호 돌무지층에서 민무늬 토기 편, 벽석 바닥에서 슴베 간 돌살촉, 무덤방 내부 서쪽에 치우쳐 [[대롱옥|대롱옥(管玉)]]이 약 80여 점 출토되었다. 2호에서는 돌무지층에서 민무늬 토기 편과 대롱옥 1점이 수습되었다.
고인돌 1호는 [[덮개돌|덮개돌(上石)]]을 확인할 수 없으며, 2호 덮개돌은 오봉산(五峯山) 각력응회암(角礫凝灰岩) 재질로 길이 3m, 너비 2.5m, 두께 0.4m이고, 무게는 5.5톤이다. 1호 고인돌의 장축은 능선과 동일하나 2호 고인돌은 직교하고 무덤방은 모두 능선 방향과 동일하다. [[무덤구덩이|무덤 구덩이(墓壙)]]는 1호가 3단, 2호가 2단으로 파서, 1단에는 돌과 흙을 번갈아 채우고 2~3단에는 대형 판돌(板石)을 이용한 돌널형(石棺形)의 무덤방을 갖추었다. 바닥에는 깬돌(割石)과 자갈돌을 섞어 깔았다. 1호 무덤 구덩이는 1단 길이 10.4m, 너비 9.5m, 깊이 1.54m이고, 2단 길이 4.8m, 너비 3.65m, 깊이 0.36m, 3단 길이 3.54m, 너비 2.36m, 깊이 1.32m이고, 돌널은 길이 1.95m, 너비 1.05m, 깊이 0.8m이다. 특히 [[뚜껑돌|뚜껑돌(蓋石)]]을 덮고 그 윗부분에 황갈색 마사토와 돌무지층(積石層)을 겹겹으로 3단의 층을 이루며 채운 점이 특이하다. 1차 돌무지층은 대형 판돌을 무덤방 주변에 깔고 소형 깬돌과 자연석을 채워 마무리하였고, 2·3차 돌무지층은 소형 깬돌을 채웠다. 대형 판돌 윗면에는 [[알구멍|알 구멍(性穴)]]이 있다. 유물은 1호 돌무지층에서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벽석 바닥에서 슴베 간 돌살촉, 무덤방 내부 서쪽에 치우쳐 [[대롱옥|대롱옥(管玉)]]이 약 80여 점 출토되었다. 2호에서는 돌무지층에서 민무늬 토기 편과 대롱옥 1점이 수습되었다.


동촌리 유적의 고인돌은 무덤 구덩이를 2~3단 파고 매장 시설을 갖춘 것으로 [[창원덕천리고인돌|창원 덕천리 고인돌]], [[보령평라리고인돌|보령 평라리 고인돌]], [[사천이금동유적|사천 이금동 유적]] 등과 유사하지만 돌무지층과 황갈색 마사토를 번갈아 채운 [[돌무지시설|돌무지 시설(積石施設)]]은 출토 예가 없어 주목된다.
동촌리 유적의 고인돌은 무덤 구덩이를 2~3단 파고 매장 시설을 갖춘 것으로 [[창원덕천리고인돌|창원 덕천리 고인돌]], [[보령평라리고인돌|보령 평라리 고인돌]], [[사천이금동유적|사천 이금동 유적]] 등과 유사하지만 돌무지층과 황갈색 마사토를 번갈아 채운 [[돌무지시설|돌무지 시설(積石施設)]]은 출토 예가 없어 주목된다.


고인돌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값은 1호 무덤방과 2호 돌무지층 모두 247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640년)로 측정되었다.
고인돌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값은 1호 무덤방과 2호 돌무지층 모두 247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640년)로 측정되었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1년~2002년 || 보성 동촌리 유적 || 2003 || 국립광주박물관
|}
==참고문헌==
* 국립광주박물관 , 보성군. (2003). <i>보성 동촌리유적</i>. https://www.riss.kr/link?id=M9183868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19 기준 최신판


동촌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보성 동촌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 동촌리 311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고인돌, 송국리식 집자리, 삼각 돌칼, 돌낫, 슴베 간 돌살촉, 돌도끼, 숫돌, 갈판, 대롱옥, 알 구멍, 민무늬 토기, 알 구멍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신상효



설명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 동촌리 311 일원에 위치한다. 밭 경작지 조성을 하던 중 발견되어 2001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집자리 1기와 고인돌 2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방장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설상대지(舌狀坮地)를 형성하는 해발 38m의 가지구릉 남사면에 위치한다.

집자리는 고인돌 2호 무덤방(墓室)에 의해 서벽쪽이 파괴되었으나 평면 형태 타원형으로 긴 지름 4.8~5.8m, 깊이 0.55~0.88m로 추정된다.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이 설치된 송국리식이다. 타원형 구덩이 가장자리 안쪽과 중앙에 기둥 구멍이 각각 1기가 확인되나 한 쪽이 고인돌에 의해 파괴된 부분이기 때문에 평면상 3개의 기둥 구멍이 1열로 배치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삼각 돌칼, 돌낫(石鎌),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돌도끼(石斧), 숫돌(砥石),갈판(耉石) 등이 출토되었다.

고인돌 1호는 덮개돌(上石)을 확인할 수 없으며, 2호 덮개돌은 오봉산(五峯山) 각력응회암(角礫凝灰岩) 재질로 길이 3m, 너비 2.5m, 두께 0.4m이고, 무게는 5.5톤이다. 1호 고인돌의 장축은 능선과 동일하나 2호 고인돌은 직교하고 무덤방은 모두 능선 방향과 동일하다. 무덤 구덩이(墓壙)는 1호가 3단, 2호가 2단으로 파서, 1단에는 돌과 흙을 번갈아 채우고 2~3단에는 대형 판돌(板石)을 이용한 돌널형(石棺形)의 무덤방을 갖추었다. 바닥에는 깬돌(割石)과 자갈돌을 섞어 깔았다. 1호 무덤 구덩이는 1단 길이 10.4m, 너비 9.5m, 깊이 1.54m이고, 2단 길이 4.8m, 너비 3.65m, 깊이 0.36m, 3단 길이 3.54m, 너비 2.36m, 깊이 1.32m이고, 돌널은 길이 1.95m, 너비 1.05m, 깊이 0.8m이다. 특히 뚜껑돌(蓋石)을 덮고 그 윗부분에 황갈색 마사토와 돌무지층(積石層)을 겹겹으로 3단의 층을 이루며 채운 점이 특이하다. 1차 돌무지층은 대형 판돌을 무덤방 주변에 깔고 소형 깬돌과 자연석을 채워 마무리하였고, 2·3차 돌무지층은 소형 깬돌을 채웠다. 대형 판돌 윗면에는 알 구멍(性穴)이 있다. 유물은 1호 돌무지층에서 민무늬 토기 편, 벽석 바닥에서 슴베 간 돌살촉, 무덤방 내부 서쪽에 치우쳐 대롱옥(管玉)이 약 80여 점 출토되었다. 2호에서는 돌무지층에서 민무늬 토기 편과 대롱옥 1점이 수습되었다.

동촌리 유적의 고인돌은 무덤 구덩이를 2~3단 파고 매장 시설을 갖춘 것으로 창원 덕천리 고인돌, 보령 평라리 고인돌, 사천 이금동 유적 등과 유사하지만 돌무지층과 황갈색 마사토를 번갈아 채운 돌무지 시설(積石施設)은 출토 예가 없어 주목된다.

고인돌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값은 1호 무덤방과 2호 돌무지층 모두 247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640년)로 측정되었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1년~2002년 보성 동촌리 유적 2003 국립광주박물관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