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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도내동·원흥동 유적 | |||
| 이칭별칭=고양 도내동 유적 | | 이칭별칭=고양 도내동 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위치=대한민국 | |||
| 소재지=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원흥동 | |||
| 성격=복합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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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김권중 | | 집필자=김권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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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는 2460~2420 BP로 검출되어 절대 연대로 볼 때 기원전 6~5세기로 판단된다. 도내동 도당·원흥동 나무드머리 유적은 인근의 원흥동 유적, 도내동 유적과 동일 시기의 유적으로, [[인천중산동유적|인천 중산동 유적]]과 같이 중·소형의 집자리로 마을을 구성하는 점이 특징적이다. 고양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 최대의 마을이며, 남한에서 서북 지역의 지역색을 띠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는 2460~2420 BP로 검출되어 절대 연대로 볼 때 기원전 6~5세기로 판단된다. 도내동 도당·원흥동 나무드머리 유적은 인근의 원흥동 유적, 도내동 유적과 동일 시기의 유적으로, [[인천중산동유적|인천 중산동 유적]]과 같이 중·소형의 집자리로 마을을 구성하는 점이 특징적이다. 고양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 최대의 마을이며, 남한에서 서북 지역의 지역색을 띠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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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중앙문화재연구원. (2014). <i>고양 도내동 도당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353048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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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18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고양 도내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원흥동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구덩이, 움무덤, 송국리식 집자리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김권중 |
설명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원흥동에 위치한다. 2011~2012년 고양 원흥 보금자리 주택 지구 개발 사업으로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청동기 시대 집자리 38기를 비롯하여 삼국 시대 구덩이, 고려~조선 시대 집자리와 움무덤(土壙墓) 등이 확인되었다. 주변은 해발 30~70m의 낮은 구릉성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이 구릉의 동쪽 끝 부분에 유적이 위치한다. 동쪽에는 한강의 지류인 창릉천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그 사이에 형성된 충적지가 위치한다. 서북쪽으로 인접하여 고양 도내동 유적이 입지한다.
도당 유적1~3은 도내동 유물 산포지 1~3에 해당하는데 동일 구릉의 북서쪽, 북동쪽, 남쪽에 각각 분포하며 북동쪽으로 약 1㎞ 떨어진 지점에 원흥동 나무드머리 유적이 위치한다. 집자리는 각각 도당 유적1에서 4기, 도당 유적2에서 11기, 도당 유적3에서 14기, 나무드머리 유적에서 9기를 확인하였다. 전반적으로 밀집도가 낮은 편이지만 도당 유적2에서 3~10호가 밀집된 양상을 보인다.
집자리는 30~45m 내외의 구릉 능선 및 사면에 입지하며 장축 방향은 대부분 등고선과 나란하다. 평면 형태는 대략 방형 14기, 장방형 21기, 세장방형 3기 정도이다. 세장방형은 대형, 장방형은 중형이고 소형은 장방형과 방형이다. 크기는 다양한데 길이는 2.2~7.5m 정도이고, 도당2-3호가 길이 13.1m, 너비 4.1m로 가장 크다.
내부 시설은 기둥 구멍, 화덕자리, 저장 구덩이, 벽 도랑(壁溝) 등이 확인되었다. 기둥 구멍은 집자리의 크기에 따라 중·대형인 장방형은 중심 기둥 열과 벽 기둥 열이 확인되고, 소형의 장방형과 방형은 중심 기둥이 1개이거나 없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 화덕 자리는 무시설식(無施設式)과 구덩식(竪穴式)으로 구분되며, 무시설식이 다수를 차지한다. 대체로 1~3개가 설치되어 규모에 비례하는 편이지만, 나무드머리 유적에서는 소형의 방형인 2호와 4호에서 각각 3개와 2개가 설치되기도 한다. 저장 구덩이는 긴 벽 또는 모서리에 열을 이루거나 1개 또는 그 이상이 설치되고, 중형의 방형을 제외하면 대부분 1~2개가 확인된다.
유물은 토기의 경우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와 민무늬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이외에 붉은 간 토기, 대형 항아리(大形壺) 등도 있다. 석기는 간 돌검, 간돌살촉, 돌도끼(石斧), 바퀴날돌도끼(環狀石斧), 별도끼(星形石斧), 반달돌칼, 숫돌(砥石), 가락바퀴등이 출토되었다. 석기 가운데 돌살촉은 통슴베식(一段莖式)과 일체형(一體形)이 다수를 차지한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는 2460~2420 BP로 검출되어 절대 연대로 볼 때 기원전 6~5세기로 판단된다. 도내동 도당·원흥동 나무드머리 유적은 인근의 원흥동 유적, 도내동 유적과 동일 시기의 유적으로, 인천 중산동 유적과 같이 중·소형의 집자리로 마을을 구성하는 점이 특징적이다. 고양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 최대의 마을이며, 남한에서 서북 지역의 지역색을 띠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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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중앙문화재연구원. (2014). 고양 도내동 도당 유적. https://www.riss.kr/link?id=M135304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