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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한반도 중동부 지역의 신석기 마을 | |||
| 이칭별칭=한반도 중동부 지역의 신석기 취락, 강원 영서 지역의 신석기 마을, 한반도 동해안 지역의 신석기 마을 | |||
| 시대=신석기 시대 | |||
| 관련 유적=고성 철통리 유적, 양양 오산리 유적, 양양 지경리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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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1일 (수) 12:03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한반도 중동부 지역의 신석기 취락, 강원 영서 지역의 신석기 마을, 한반도 동해안 지역의 신석기 마을 |
| 시대 | 신석기 시대 |
| 관련 정보 | |
| 유적 | 고성 철통리 유적, 양양 오산리 유적, 양양 지경리 유적 |
| 키워드 | 신석기 시대 마을, 한반도 중동부 지역의 신석기 문화, 한반도 중동부 지역의 신석기 토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24 |
| 집필자 | 구자진 |
설명
한반도 중동부 지역은 경상북도의 태백산맥 이동 지역으로, 경상북도에서 강원도에 이르는 해안 지역에 해당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신석기 시대 유물 산포지만이 일부 보고되었을 뿐 집자리 유적이 확인되지 않아 중동부 지역은 신석기 시대 집자리 연구의 공백 지역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시기를 달리하는 신석기 시대 마을이 조사되면서 중동부 지역만의 집자리 구조와 특징이 드러나게 되었다. 특히 양양 오산리 C유적에서 조사된 집자리 6기는 덧무늬 토기 단계와 오산리식 토기 단계의 집자리나 토기 양상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고성 철통리 유적에서는 중동부 지역 최초로 구릉지에서 신석기 시대 집자리가 확인되었는데, 해안가 사구 지대에서 조사된 기존의 집자리와 비교할 만한 유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중동부 지역에서 조사된 신석기 시대 마을을 검토해 보면 집자리 간의 규칙성이나 정형성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발굴 조사의 대상이 유적 전체가 아니었고, 대부분 유적의 극히 일부만을 조사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강릉 초당동 유적에서는 발굴 조사가 6차례에 걸쳐 이루어지면서 집자리가 위치한 지역과 대형 야외 화덕 자리가 위치한 지역이 따로 확인되었다. 경포호수에 인접한 강릉 안현동 유적에서는 집자리는 조사되지 않았으며 야외 화덕 자리 등만 62기가 조사된 것으로 보아 집자리와 음식물 처리 시설이 별도의 공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후기 유적인 고성 철통리 유적에서는 방형의 집자리 7기가 구릉 정상부에 2∼7m의 거리를 두고 있지만 조리 시설이나 생산 시설이 확인되지 않아, 주요 생활 공간인 집자리와 식량 획득 장소의 관계를 고려한 공간 배치로도 판단할 수 있다. 또한 화재와 화목(火木)의 조달과도 관계가 있으리라고 추정된다.
전기에 해당하는 고성 문암리 유적과 양양 오산리 유적에서는 집자리가 대부분 원형과 방형이며, 중기와 후기의 집자리는 원형은 거의 사라지고 방형으로 정형화되어 간다. 특히 후기에 해당하는 고성 철통리 유적에서 조사된 집자리는 모두 방형이었는데, 중동부 지역에서 조사된 신석기 시대 마을 중 유일하게 구릉지에 위치한다. 전기의 양양 오산리 A·B유적과 고성 문암리 유적은 집자리가 지름 3~4m 내외로 비교적 소형이고, 양양 오산리 C유적은 집자리가 지름 7m 내외로 기존에 확인된 집자리보다 크다. 중기의 집자리는 지름 5~6m 내외가 대부분이며, 후기에 이르면 집자리의 입지가 변화하고 규모도 다시 작아져 한 변의 길이가 3~4m 내외가 주류를 이룬다.
전기의 고성 문암리와 양양 오산리 유적은 화덕 자리가 모두 돌두름식[圍石式] 구조를 띠며, 집자리의 중앙에 원형, 방형, 장방형, 오각형 등의 다양한 형태로 확인된다. 화덕 자리의 규모는 90~100cm 내외로 비교적 중대형에 해당한다. 양양 오산리 C유적에서는 장방형이고 중간에 격벽 시설(格壁施設)이 갖추어진 화덕 자리가 확인되어 주목된다. 중동부 지역의 중기 유적 역시 화덕 자리는 대부분 돌두름식이지만, 양양 가평리와 양양 지경리 일부 집자리(5호·9호), 후기의 고성 철통리 유적에서는 구덩식[竪穴式] 구조인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앞 시기와 양상은 유사하지만, 후기에 이르면 지름 50cm 내외의 원형이 되어 집자리의 규모와 함께 화덕 자리의 규모도 작아진다.
전기의 유적 중에서는 양양 오산리 A유적 2호 집자리와 오산리 C유적 3호 집자리에서만 기둥 구멍이 확인되는데, 모두 벽 가장자리 배열을 이루고 있다. 중기 유적은 기둥 구멍이 없거나 배열이 불규칙한 것이 대다수이며, 벽 가장자리 배열(양양 가평리 유적 1호 집자리, 강릉 초당동 유적 3호 집자리)도 일부 확인된다. 후기의 고성 철통리 유적에서는 기본적으로 4주식(4柱式)의 기둥 배치를 보인다. 전기의 집자리 유적에서는 점토 다짐과 불처리를 모두 하거나 점토 다짐만을 하여 바닥 처리를 하는 형태가 다수를 차지하나, 중기의 유적에서는 점토 다짐만 확인된다. 후기에 이르면 집자리의 입지가 변화하면서 바닥 처리를 하지 않고 생토를 그대로 이용하는 양상을 보인다. 출입구 시설은 중기의 양양 가평리 유적 1호 집자리에서는 돌출된 형태가 확인되고 있으나, 1기에 불과하여 전체적인 양상을 파악하기에는 어렵다. 그밖에 일부 집자리에서는 저장 구덩이나 작업 구덩이로 추정되는 내부 시설이 확인된다.
중동부 지역에서 조사된 신석기 마을은 대부분 사구 지대에 위치한다. 전기 유적은 사구 지대가 시작되는 구릉 지역에 가까운 곳, 중기 유적은 사구 지대의 중간이나 전기 유적의 상층에 위치한다. 후기 유적은 구릉지에 있어 시기에 따라 집자리의 입지 선정에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집자리 입지의 변화는 청동기 시대로 이어지는데, 중동부 지역의 청동기 시대 유적은 모두 구릉 지역에 위치한다.
중동부 지역 신석기 마을은 전기에는 양양 오산리 유적과 고성 문암리 유적과 같이 10여 기의 집자리가 마을 하나를 형성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중기에 이르면 양양 지경리 유적과 강릉 초당동 유적처럼 집자리 10~20여 기가 마을 하나를 이루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기의 후기부터는 집자리 7~8기가 구릉 지역의 능선 상부를 따라 일렬로 배치된 마을 구조를 보인다. 즉, 중기에 중동부 지역은 강릉 지역을 중심으로 생업 활동이 활발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대규모 마을을 이루어 장기간 거주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전 시기부터 바다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초보적인 농경 기술이 유입된 결과이다. 또한 중기와 후기로 가면서 해안 사구 지역을 벗어나 구릉 지역으로 생활 터전을 옮기는 변화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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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구자진. (2007). 영동지역 신석기시대 집자리 연구. 강원고고학보, 10, 35-58. https://www.riss.kr/link?id=A108267060
- 구자진. (2010). 한국 신석기시대의 집자리와 마을 연구. (박사 학위 논문). 숭실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12885018
- 이수진. (2010). 강원도 동해안지역의 신석기문화. (석사 학위 논문). 강원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12130271
- 지현병. (2004). 강원지방의 선사시대 주거구조에 대한 고찰. 한국대학박물관협회(편저), 강원지역의 역사와 문화: 제50회 춘계학술발표회 자료집(pp.1-38). https://www.riss.kr/link?id=A105369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