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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유적정보
| 이칭별칭=화순 대초리 고인돌군, 영산강 수몰 지구 유적
| 한글표제어=대초리 고인돌군
| 키워드=[[고인돌]], [[바둑판식 고인돌]], [[덮개식 고인돌]], [[간 돌살촉]], [[민무늬 토기]]
| 이칭별칭=화순 대초리 고인돌군, 화순 대초리 지석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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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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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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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남대마을에 위치한다. 영산강유역 개발 사업의 일환인 나주호(대초댐) 수몰 지구 건설로 인하여 1975년에 전남대학교가 발굴 조사하였다.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남대마을에 위치한다. 영산강유역 개발 사업의 일환인 나주호(대초댐) 수몰 지구 건설로 인하여 1975년에 전남대학교가 발굴 조사하였다.


밭 가운데에 14기가 군집되어 배치되어 있었으며, 조사된 [[고인돌|고인돌]]은 11기였으나 [[묘실|무덤방(墓室)]]이나 [[받침돌|받침돌(支石)]] 등은 대부분 파괴되었다. 4호 [[덮개돌|덮개돌(上石)]]은 길이 2.5m, 너비 1.9m, 두께 0.9m이고, 6호 덮개돌은 길이 2.4m, 너비 2.2m, 두께 1.7m, 받침돌은 길이 0.6m, 너비 0.4m, 두께 0.4m이다. 5·6호는 받침돌이 있는 [[바둑판식고인돌|바둑판식 고인돌]]이고 7·9호는 받침돌이 없는 [[덮개식고인돌|덮개식 고인돌]]이다. 바둑판식 고인돌은 무덤방의 바닥에 잔자갈을 깔거나 판돌(板石)을 깔고 부정형 깬돌(割石)을 이용하여 무덤방을 구축하였으며, 덮개식 고인돌은 바닥에 편평석을 깔고 주위에 부정형 깬돌을 쌓아 무덤방을 구축한 뒤 덮개돌을 뚜껑으로 이용한 형식으로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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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은 4호에서 [[숫돌|숫돌(砥石)]] 2점이 출토되었는데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여 위아래 면을 간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남대부락 뒤쪽 야산인 안심골에서 [[간돌살촉|간 돌살촉]] 편 2점, 미완성 석재(石材) 1점, 미완성 [[가락바퀴|가락바퀴]] 1점,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1점 등이 지표 채집되었는데 이들은 남대부락 고인돌군과 직선거리로 500m 밖에 되지 않아 남대부락 고인돌 축조인들과 깊은 관계가 있는 유물로 추정된다. 호남에서 최초의 수몰 지구 고인돌 발굴 중 하나이며, 대초리 2호 고인돌은 조선대학교로 이전·복원되었으며, 나머지는 조사 후 댐 건설로 수몰되었다.
 
==조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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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1975년 || 영산강 수몰지구 유적 발굴조사보고서 || 1976 || 전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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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전라남도. (1976). <i>영산강 수몰지구 유적 발굴조사보고서-대초·담양댐 수몰지구 유적 발굴조사보고-</i>.  https://www.riss.kr/link?id=M10053934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5월 4일 (월) 11:21 기준 최신판


대초리 고인돌군
기본 정보
동의어 화순 대초리 고인돌군, 화순 대초리 지석묘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남대마을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바둑판식 고인돌, 덮개식 고인돌, 숫돌, 간 돌살촉, 가락바퀴, 민무늬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영문



설명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남대마을에 위치한다. 영산강유역 개발 사업의 일환인 나주호(대초댐) 수몰 지구 건설로 인하여 1975년에 전남대학교가 발굴 조사하였다.

밭 가운데에 14기가 군집되어 배치되어 있었으며, 조사된 고인돌은 11기였으나 무덤방(墓室)이나 받침돌(支石) 등은 대부분 파괴되었다. 4호 덮개돌(上石)은 길이 2.5m, 너비 1.9m, 두께 0.9m이고, 6호 덮개돌은 길이 2.4m, 너비 2.2m, 두께 1.7m, 받침돌은 길이 0.6m, 너비 0.4m, 두께 0.4m이다. 5·6호는 받침돌이 있는 바둑판식 고인돌이고 7·9호는 받침돌이 없는 덮개식 고인돌이다. 바둑판식 고인돌은 무덤방의 바닥에 잔자갈을 깔거나 판돌(板石)을 깔고 부정형 깬돌(割石)을 이용하여 무덤방을 구축하였으며, 덮개식 고인돌은 바닥에 편평석을 깔고 주위에 부정형 깬돌을 쌓아 무덤방을 구축한 뒤 덮개돌을 뚜껑으로 이용한 형식으로 구별된다.

유물은 4호에서 숫돌(砥石) 2점이 출토되었는데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여 위아래 면을 간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남대부락 뒤쪽 야산인 안심골에서 간 돌살촉 편 2점, 미완성 석재(石材) 1점, 미완성 가락바퀴 1점, 민무늬 토기 1점 등이 지표 채집되었는데 이들은 남대부락 고인돌군과 직선거리로 500m 밖에 되지 않아 남대부락 고인돌 축조인들과 깊은 관계가 있는 유물로 추정된다. 호남에서 최초의 수몰 지구 고인돌 발굴 중 하나이며, 대초리 2호 고인돌은 조선대학교로 이전·복원되었으며, 나머지는 조사 후 댐 건설로 수몰되었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1975년 영산강 수몰지구 유적 발굴조사보고서 1976 전남대학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