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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설명==

2026년 1월 20일 (화) 13:09 기준 최신판


신석기 문화의 기원
기본 정보
시대 신석기 시대
관련 정보
키워드 신석기 시대 농경, 간석기, 토기 발생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4
집필자 소상영



설명

신석기라는 용어는 처음에는 뗀석기를 사용한 구석기와 구분하여 간석기를 사용한 시대라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화적 특징으로는 농경의 시작토기의 출현을 들 수 있다. 영국의 러벅(Lubbock, J.)은 기존에 석기 시대 후기로 불렸던 시기를 신석기 시대라 명명하였으며, 토기와 간석기를 사용하고 농경이라는 생산 경제가 출현한 단계로 설명하였다. 이에 고고학에서는 흔히 농경, 토기, 간석기를 신석기 시대의 3대 요소라고 부른다.

특히 농경의 발생은 구석기 시대 식량을 획득하는 경제(수렵·채집 경제)에서 식량을 생산하는 경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는 사회 경제사적으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영국의 고고학자 차일드(Childe, G.)는 이를 ‘신석기 혁명’이라 불렀고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여겼다.

기술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토기 발생은 농경 못지않은 중요성을 가진다. 구석기 시대까지 인간은 돌이나 나무 등을 깨거나 다듬어서 도구를 만들었다. 이미 모양을 갖추고 있는 물건에 물리적인 힘을 가해 원하는 형태의 도구를 만들어서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토기는 흙을 빚어 모양을 만든 후 불에 구워 완성한 것으로, 인간이 처음 의도적으로 물질의 화학적 변화를 이용해 만든 도구이다. 토기 발생은 이후 청동기철기 발생에도 큰 영향을 주었으며, 좀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첨단 문명도 토기의 발생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뗀석기의 사용이 중지된 것은 아니며, 농경과 토기가 모든 지역에서 동시에 출현한 것도 아니다. 농경이 가장 먼저 출현한 것으로 알려진 서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오랜 기간 토기 없는 신석기 시대가 지속되었다. 또한 토기가 가장 먼저 출현한 것으로 알려진 동북아시아 일대에서 농경은 비교적 늦게 시작되었다. 여전히 서구 학계에서는 농경의 시작을 신석기 시대의 주요 지표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동북아시아에서는 토기의 출현을 신석기 시대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토기는 기원전 10,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세계 각지에서 출현하는데, 특히 동북아시아는 다른 지역보다 이른 시기에 토기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오다이 야마모토(大平山元) 유적의 가장 이른 탄소 연대는 13,780±170 BP가 측정되었고 러시아 아무르강 유역의 그로마투하(Громатухa) 유적 하층에서는 13,310±110 BP, 심지어 중국의 셴런(仙人) 동굴 유적에서는 17,720±90 BP의 연대가 측정되었다. 물론 이는 각 유적에서 측정된 가장 이른 탄소 연대이지만 12,000~13,000 BP 사이의 연대가 다수 측정되어 신뢰도는 안정적이다. 이를 보정 연대로 환산하면 14,000~1500cal BC에 해당한다. 중국 셴런 동굴의 가장 이른 탄소 연대의 보정 연대는 20,000cal BC에 근접한다.

이 시기는 플라이스토세 말 최후 빙하 극성기에 해당하여 신석기 시대의 시작을 기후가 온난해지는 홀로세의 시작과 병행하는 것으로 보는 기존 생각에 의문을 던진다. 신석기 시대의 주요 지표를 농경으로 생각하는 서구의 관점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토기의 출현을 지표로 생각하는 동아시아 학계에서는 신석기 문화의 기원과 시작에 대한 새로운 기준 제시가 필요해 보인다.

한반도에서는 1960년대까지 빗살무늬 토기가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였으며, 출현 시기도 기원전 4,000년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강원도 양양 오산리 유적 발굴 조사로 편평한 바닥의 덧무늬 토기아가리 무늬 토기(오산리식 토기) 가 빗살무늬 토기보다 먼저 발생한 것이 밝혀졌다. 이들 토기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따라 늦어도 기원전 6,000년경에는 출현한 것으로 인정되어 한반도 토기의 발생은 2,000년 정도 소급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구석기 시대가 끝나는 기원전 10,000년부터 6,000년까지 한반도의 선사 시대 문화상을 알 수 있는 유적 은 발견되지 않은 실정이었다.

1990년대 이후 이러한 공백을 설명할 수 있는 유적이 제주 고산리 에서 발견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구석기 시대의 전통을 간직한 뗀석기 수만 점과 풀잎을 섞어 만든 토기(고산리식 토기)들이 함께 출토되었다. 고산리 유적의 토기와 석기 는 러시아와 일본의 가장 이른 시기 신석기 시대 유적들의 출토품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어 늦어도 기원전 10,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러시아에서 측정된 1개의 탄소 연대가 10,180±65 BP로 측정된 것도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이후 발굴 조사에서 측정된 수십 개의 탄소 연대와 광 여기 루미네선스(optically stimulated luminescence, OSL) 연대 지질학적 분석 결과, 기원전 8,000년을 상회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고산리식 토기와 석기들은 제주도 전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육지에서 덧무늬[隆起文] 토기가 유입될 때까지 장기간 존속된 것으로 판단된다. 한반도 내륙에서는 아직 고산리와 비슷한 시기의 유적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청도 오진리 바위 그늘 유적 에서 발견된 민무늬 토기가 고산리식 토기와 같은 시기에 발생한 것으로 주장하기도 하지만 근거는 희박하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의 토기 출현이 인접한 지역에 비해 늦은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문화적으로 뒤처져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몇 가지 가설을 생각해 보자.

첫 번째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경우이다. 신석기 시대 이른 시기의 유적은 일본이나 러시아에서도 많은 수는 아니며 발견된 토기도 유적당 수 점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는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한반도 남한 지역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발굴 조사가 많이 이루어진 지역이기에 토기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만 상대적으로 발굴 조사가 부진한 북한 지역의 토기 발견 가능성은 열려 있다.

다음으로 바다 밑에 수장 되어 있을 가능성이다. 기원전 10,000년 이전에는 오랫동안 추운 기후가 이어졌기 때문에 서해와 남해는 육지였고 동해도 바다가 아니라 호수였다. 이후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해수면이 상승하여 바다로 변해 신석기 시대 유적은 현재 바다 아래 잠겨 있다는 견해이다. 동남해안의 이른 시기 신석기 유적이 해안과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발견된다는 점에서 이는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현재 바다로 변한 지역에만 당시 사람들이 살았다는 가정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세 번째도 환경 변화와 관련된 가설이다. 현재 서해안에 갯벌이 형성되고 동남해안이 현재와 유사한 지형을 갖춘 것은 기원전 6,00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이다. 그 이전까지는 해수면이 급상승하는 시기로 그 영향을 받은 내륙 지역의 식생과 환경이 매우 불안정하여 식량 자원도 부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작은 무리를 이루고 이동 생활을 하는 방식으로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갔을 것이다. 잦은 이동 생활에 크고 무거울 뿐만 아니라 부서지기도 쉬운 토기는 굳이 필요한 물건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토기는 현재와 유사한 지형이 갖춰지는 기원전 6,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이동의 빈도가 줄어들고 한곳에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가설이다.

이 중 세 번째 가설이 가장 설득력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간다. 물론 환경이 동일하다고 해도 삶의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인간 집단은 대체로 최적화된 생활 방식을 찾아 나간다. 잦은 이동 생활이 당시 한반도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선택한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이었다면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해도 토기를 사용하는 것은 결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토기 발생과 농경 시작은 지역에 따라 시기를 달리하여 나타난다. 비교적 환경이 유사한 동아시아 일대에서도 각자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에 따라 토기 제작과 사용이 시기적인 차이를 보인다. 즉 신석기 문화의 기원은 토기나 농경 같은 요소에서 찾기보다 후빙기 환경 변화에 대처하는 인간의 다양한 적응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