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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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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佐賀県教育委員会. (1977). <i>佐賀県農業基盤整備事業に係る文化財確認調査報告書</i>. 佐賀県教育委員会.  https://ndlsearch.ndl.go.jp/books/R100000136-I1130000794805961216
* 片岡宏二. (1999). <i>弥生時代 渡来人と土器·青銅器</i>. 雄山閣.  https://ndlsearch.ndl.go.jp/books/R100000002-I000002801400


[[분류: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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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31 기준 최신판


하부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오기 하부 유적, 소성 토생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일본
소재지 일본 사가현(佐賀県) 오기시(小城市) 미카쓰키정(三日月町)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농경 문화, 청동기 제작의 거점 취락, 청동 지우개의 거푸집, 동검의 거푸집, 청동 투겁창의 거푸집, 절충형의 토기, 하부타입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창희



설명

국가 사적. 일본 사가현(佐賀県) 오기시(小城市) 미카쓰키정(三日月町)에 위치한다. 유적은 야요이 시대 전기부터 후기까지의 취락 유적으로, 사가평야의 취락 유적 중 최대 규모이다. 1973년 야요이 시대의 초기 농경 문화를 나타내는 중요성이 인정되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조사를 통해 한반도와의 교류 관계를 증명하는 청동 지우개(銅鉇)의 거푸집(사가현 중요문화재)동검청동 투겁창의 거푸집도 출토되어, 청동기 제작의 거점 취락으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한반도 남부에서 출토되는 둥근 덧띠 토기(圓形粘土帶土器)와는 다른, 절충형의 토기가 다량 출토되었다. 절충형 토기가 출토된 후쿠오카시 모로오카 유적모로오카형 토기와는 차이가 있어 가타오카 고지(片岡宏二)는 이 토기를 하부 타입(土生タイプ)으로 설정하였다. 이러한 절충형 타입 토기의 존재는 한반도 남부로부터 이주한 둥근 덧띠 토기인들의 2~3세대에 의해 제작된 토기로 해석되며, 점차 야요이 사회로 동화되고 있는 현상으로 판단된다. 한편, 최근 자료가 추가로 보고되면서, 한반도 남부와 동일한 둥근 덧띠 토기도 다수 출토된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항아리 중에서는 한반도에서 출토되고 있는 쇠뿔 손잡이 항아리(組合式牛角形把手附壺)와는 달리 대형이고, 야요이 시대 전기의 토기에 나타나는 문양이 시문되어 있어, 토기를 통해 한일 양 문화의 접변 현상을 엿볼 수 있다.

현재 ‘하부유적공원(土生遺跡公園)’으로 정비되었으며, 그중 집자리 3기, 굴립주 건물(高床倉庫建物) 1기는 복원되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