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600-0555: 두 판 사이의 차이

한국고고학사전
dkamaster 600-0555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dkamaster 600-0555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2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2번째 줄: 2번째 줄:


{{유적정보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대곡리 유적
| 이칭별칭=포항 대곡리 유적
| 이칭별칭=포항 대곡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북면 대곡리 198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독무덤]], [[화덕 자리]], [[울산식 집자리]],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낟알무늬 토기]], [[슴베 돌살촉]], [[간 돌검]], [[조갯날 돌도끼]], [[숫돌]], [[구슬옥]]
| 키워드=[[집자리]], [[독무덤]], [[화덕 자리]], [[울산식 집자리]],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낟알무늬 토기]], [[슴베 돌살촉]], [[간 돌검]], [[조갯날 돌도끼]], [[숫돌]], [[구슬옥]]
| 시대=청동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군열
| 집필자=배군열
| 조성 시기=기원전 7세기
| 성격=복합유적
| 크기=999㎡ (조사면적)
| 소재지=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북면 대곡리 198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5번째 줄: 24번째 줄: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2호 252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620년), 3호 249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645년)로 확인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2호 252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620년), 3호 249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645년)로 확인되었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200px>
File:포항_대곡리_유적_5호_집자리.jpg
File:포항_대곡리_유적_집자리_출토_토기.jpg
</gallery>
==참고문헌==
* 성림문화재연구원. (2011). <i>포항 대곡리 청동기시대 취락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2823634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18 기준 최신판


대곡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포항 대곡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북면 대곡리 198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독무덤, 화덕 자리, 울산식 집자리,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낟알무늬 토기, 슴베 돌살촉, 간 돌검, 조갯날 돌도끼, 숫돌, 구슬옥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배군열



설명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북면 대곡리 198 일원에 위치한다. 포항시 북구 기계면 인비리~기북면 용기리 도로 확장 공사로 2008·2009년 조사하여, 집자리 5기, 독무덤(甕棺墓) 1기, 소성유구(燒土遺構) 1기를 확인되었다. 유적은 북서쪽의 침곡산(해발 725.4m)과 북동쪽의 비학산(해발 762.3m) 사이에 형성된 충적평야에 입지하며, 서쪽으로 기계천이 남류(南流)하여 형산강에 합류한다.

집자리는 기계천을 따라 남북 방향으로 조성되었으며, 집자리 간 거리는 거의 동일하다.1호 독무덤은 5호 집자리를 파괴하고 축조되었다. 집자리는 장방형이며, 길이 4.5~9m, 너비 3.8~5.5m, 깊이 0.3m 내외이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벽 도랑(壁溝), 기둥 구멍이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한쪽 짧은 벽으로 치우쳐진 전형적인 울산식(蔚山式) 집자리로, 길이 0.6m이다. 형태는 구덩식(竪穴式)으로 목탄(木炭)이나 불탄 흙이 채워져 있으며, 2호는 바닥면(床面)에서 민무늬 토기 1점이 출토되었다. 3호 화덕 자리는 바닥면에서 피열흔이 부분적으로 확인되어 단기간 또는 일회적으로 사용된 임시적인 화덕으로 판단된다. 화덕 자리의 수는 5호 집자리만 2개이고 나머지 집자리는 모두 1개이다. 1호에서는 주춧돌(礎石)이 확인되었고, 6호는 기둥 구멍이 6주식(柱式)으로 배치되었다. 기둥 구멍은 지름 0.13~0.2m, 깊이 0.15~0.21m이며, 기둥 간격(柱間距離)은 1.06~1.7m이다. 벽 도랑은 2·3호에서 ‘ᄆ’자 모양으로 확인되며, 너비 0.1~0.25m, 깊이 0.15~0.32m이다. 벽 도랑 내부의 기둥 구멍은 정형성 없다. 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벽 도랑은 배수보다는 벽체 시설 구축과 방습(防濕)의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바닥 시설은 다양하게 확인된다. 1호는 점토를 다진 후 사용, 4호는 점토 다짐 후 불로 다졌으며, 나머지는 맨땅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집자리의 폐기는 1호 집자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화재로 폐기되어 내부에 다량의 불탄 흙과 목탄, 탄화된 목재 등이 남아 있었다.

출토 유물은 붉은 간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낟알무늬 토기(橫線紋土器), 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 간 돌검,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숫돌(砥石), 구슬옥(丸玉) 등이 확인되었다.

독무덤은 횡치식(橫置式)으로 안치된 홑독널식(單甕式)으로, 독널의 아가리(口脣)에는 입구를 막기 위해 길이 30㎝의 막음석이 확인된다. 독널로 사용된 손잡이 달린 그릇(把手附鉢)의 구연단에는 낟알무늬가 새겨져 있다.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2호 252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620년), 3호 249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645년)로 확인되었다.

이미지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