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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나 남한 학계의 일부 연구자는 유적에서 출토된 동검이 [[세형동검|세형동검]]과 형태적으로 유사하여 ‘[[초기세형동검|초기 세형동검]]’으로 구분하였다. 이는 [[비파형동검|비파형동검]]에서 세형동검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적 형태로 인식되었고, ‘[[다칭산식동검|다칭산식]]’으로 분류되어 연구사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초기 형식이 지역적 특성을 지닌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유적의 연대는 출토된 동검과 단경호, 채집된 토기의 연대를 종합해 보았을 때, 기원전 3세기경으로 추정된다. | 북한이나 남한 학계의 일부 연구자는 유적에서 출토된 동검이 [[세형동검|세형동검]]과 형태적으로 유사하여 ‘[[초기세형동검|초기 세형동검]]’으로 구분하였다. 이는 [[비파형동검|비파형동검]]에서 세형동검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적 형태로 인식되었고, ‘[[다칭산식동검|다칭산식]]’으로 분류되어 연구사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초기 형식이 지역적 특성을 지닌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유적의 연대는 출토된 동검과 단경호, 채집된 토기의 연대를 종합해 보았을 때, 기원전 3세기경으로 추정된다. | ||
==참고문헌== | |||
* 박진욱. (1987). 길림, 장춘 지방의 좁은놋단검관계유적유물의 성격(1). <i>조선고고연구, 3</i>.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39471 | |||
* 박진욱. (1988). 길림·장춘 지방의 좁은놋단검관계 유적유물의 성격(2). <i>조선고고연구, 1</i>.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39472 | |||
* 이청규. (1982). 세형동검의 형식분류 및 그 변천에 관하여. <i>한국고고학보, 13</i>, 1-37. https://www.riss.kr/link?id=A105312355 | |||
* 이후석. (2014). 요동~서북한지역의 세형동검문화와 고조선. <i>동북아역사논총, 44</i>, 149-205. https://www.riss.kr/link?id=A104528471 | |||
* 吉林省文物管理委员会. (1974). 吉林怀德大青山发现青铜短剑. <i>考古, 4</i>, 276. https://oversea.cnki.net/KCMS/detail/detail.aspx?dbcode=CJFD&dbname=CJFD7984&filename=KAGU197404011&uniplatform=OVERSEA&v=ALFLCgEqexjjImCY8N2LBBSH9Wh3f9SLAIp69FqHPtG1_hfQ2G1wmeslQqtB6MZ4 | |||
* 怀德县文物志编写组. (1984). <i>大靑山遗址</i>. 怀德县文物志.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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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4월 2일 (목) 12:28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궁주린 다칭산 유적, 공주령 대청산 유적(公主嶺 大靑山遺蹟)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중국 |
| 소재지 | 중국 지린성(吉林省) 장춘시(長春市) 궁주링시(公主嶺市) 솽룽진(雙龍鎭) 다칭산촌(大靑山村)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분 |
| 키워드 | 움무덤, 합장묘, 석부, 돌도끼, 초기 세형동검, 다칭산식 동검, 단경호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정현승 |
설명
중국 지린성(吉林省) 장춘시(長春市) 궁주링시(公主嶺市) 솽룽진(雙龍鎭) 다칭산촌(大靑山村)에 위치한다. 유적은 시 소재지에서 서북쪽으로 약 65㎞ 떨어진 다칭산촌 서남쪽에 수이취안둔(水泉屯)이라 불리는 낮은 구릉 위에 입지한다. 둥랴오강(東遼河) 중류의 북쪽 구릉 지대로, 마을은 하천이 휘돌아 나가는 곳의 북쪽 구릉 사면에 해당한다.
1971년에 선양-창춘간 고속 도로 공사 과정에서 유구가 노출되었다. 이후 현문물지(縣文物志) 편찬을 위해 유적을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수습 조사가 이루어졌다. 움무덤(土壙墓) 1기가 확인되었고, 이후 동검, 석부, 토기 편 등이 수습되었다. 움무덤 주변으로 유물이 흩어져있어 조사된 움무덤 이외에도 무덤들이 더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무덤 주축은 북서-남동 방향이며, 두 사람을 함께 묻은 합장묘(合葬墓)이다. 피장자의 머리는 북서 방향이다. 두 사람 뼈의 허리 사이에서 동검 1점, 우측 사람 뼈의 다리 사이에서 단경호 4점이 확인되었다. 동검의 전체 길이는 37.2㎝, 너비 3.4㎝이다. 검신의 아랫 부분과 등대 양쪽으로 원형의 구멍이 하나씩 확인되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와 유사한 동검은 지린 창서산 유적, 화뎬 시황산툰 유적 등의 지린 서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확인된다.
북한이나 남한 학계의 일부 연구자는 유적에서 출토된 동검이 세형동검과 형태적으로 유사하여 ‘초기 세형동검’으로 구분하였다. 이는 비파형동검에서 세형동검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적 형태로 인식되었고, ‘다칭산식’으로 분류되어 연구사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초기 형식이 지역적 특성을 지닌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유적의 연대는 출토된 동검과 단경호, 채집된 토기의 연대를 종합해 보았을 때, 기원전 3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박진욱. (1987). 길림, 장춘 지방의 좁은놋단검관계유적유물의 성격(1). 조선고고연구, 3.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39471
- 박진욱. (1988). 길림·장춘 지방의 좁은놋단검관계 유적유물의 성격(2). 조선고고연구, 1.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39472
- 이청규. (1982). 세형동검의 형식분류 및 그 변천에 관하여. 한국고고학보, 13, 1-37. https://www.riss.kr/link?id=A105312355
- 이후석. (2014). 요동~서북한지역의 세형동검문화와 고조선. 동북아역사논총, 44, 149-205. https://www.riss.kr/link?id=A104528471
- 吉林省文物管理委员会. (1974). 吉林怀德大青山发现青铜短剑. 考古, 4, 276. https://oversea.cnki.net/KCMS/detail/detail.aspx?dbcode=CJFD&dbname=CJFD7984&filename=KAGU197404011&uniplatform=OVERSEA&v=ALFLCgEqexjjImCY8N2LBBSH9Wh3f9SLAIp69FqHPtG1_hfQ2G1wmeslQqtB6MZ4
- 怀德县文物志编写组. (1984). 大靑山遗址. 怀德县文物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