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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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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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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장덕리 장덕 고인돌군[高興 掌德里掌德支石墓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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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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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설명==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장덕리 1117-3 일원에 위치한다. 동강농공단지 건설에 따라 2009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청동기 시대 유구로는 [[집자리|집자리]] 13기, [[구덩이|구덩이]] 3기, [[환호|환호]]가 확인되었으며, 그 밖에 삼국 시대 집자리 2기, 구덩이 2기, [[도랑|도랑(溝)]] 3기, 무덤 12기, 고려~조선 시대 무덤 11기가 조사되었다.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장덕리 702-40 일원에 위치한다. 국도 27호선(고흥-벌교 간) 확·포장 공사 구역에 포함되어 1999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고인돌|고인돌]] 7기와 [[덮개돌|덮개돌[上石]]]이 없는 무덤방[墓室] 1기가 확인되었다. 6호는 덮개돌이 이동되었다. 고인돌은 첨산의 동북쪽에 형성된 해발 고도 50m 정도의 산능선에 등고선 방향으로 분포되어 있다.


집자리는 환호 안쪽에서 장방형 3기, 원형의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 10기가 확인되었다. 장방형 집자리는 구릉 평탄면과 사면부에 위치하며, 중복 또는 급경사면에 축조되어 많이 훼손되었다. 내부 시설로 6호와 13호에서 장타원형 구덩이, [[벽구|벽 도랑(壁溝)]], [[기둥구멍|기둥 구멍]]이 확인된다. 7호 집자리에는 벽 도랑과 기둥 구멍만 있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달도끼|달도끼(環狀石斧)]], [[간돌살촉|간 돌살촉]], [[돌칼|돌칼]]이 출토되었다. 송국리식 집자리의 내부 시설로는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이 확인된다. 타원형 구덩이는 8기에서 조사되었으며, 안쪽과 바깥쪽에 기둥 구멍 없이 타원형 구덩이만 있는 집자리는 2기이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간 돌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대부분 장방형으로 장축 1.4~3.2m, 단축 0.9~2.3m, 두께 0.4~1.5m 내외이다. 하부 시설은 지상식과 지하식으로 구분된다. [[받침돌|받침돌[支石]]]의 모양에 맞춰 덮개돌 하단을 떼어내고 받침돌을 사용하였고, 기둥 모양[柱形]의 받침돌도 확인된다. 묘역 시설은(墓域施設)은 판돌[板石] 등을 깐 것 1기와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은 것으로 구분된다. 무덤방은 돌덧널형[石槨形]이며, 벽석은 판돌을 2~3단으로 눕혀쌓은 것, 판돌을 잇대어 세워서 축조한 것, 깬돌[割石]을 2~3단 쌓은 것, 판돌과 깬돌을 섞어 쌓은 것 등이 있다. 바닥은 일부 판돌제를 전면에 깐 것이 있으나 맨땅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 대부분이다. 뚜껑돌[蓋石]은 대형 판돌 1매를 사용하였으며, 0.5m 내외의 판돌을 2중으로 덮은 것도 있다.     유물은 [[간돌검|간 돌검]] , [[숫돌|숫돌[砥石]]] , [[그물추|그물추]], [[구슬옥|구슬옥[丸玉]]] 1점, 석재(石材) , 미완성 석기 편 등이 출토되었다.


환호는 구릉 평탄면에서 남서쪽 사면 그리고 동쪽과 서쪽 사면 해발 47.6~55.2m에 구릉을 감싸면서 조성되었다. 평면 형태는 장타원형이고, 총 길이 150.9m, 평균 너비 1.8~4m, 최대 깊이 1m이다. 바닥은 완만한 ‘U’자 또는 ‘V’자 모양이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9년~2010년 || 고흥 장덕리 장동유적 || 2011 || 대한문화유산연구센터
|}


집자리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2500±20 BP(보정 연대 기원전 695~540년)와 2480±20 BP(보정 연대 기원전 766~511년)로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3). <i>고흥 장덕·운교 지석묘</i>.  https://www.riss.kr/link?id=M9882230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5 기준 최신판


장덕리 장덕 고인돌군
기본 정보
동의어 고흥 장덕리 장덕 고인돌군, 고흥 장덕리 장덕 지석묘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장덕리 702-40 일원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간 돌검, 숫돌, 그물추, 구슬옥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진영



설명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장덕리 702-40 일원에 위치한다. 국도 27호선(고흥-벌교 간) 확·포장 공사 구역에 포함되어 1999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고인돌 7기와 덮개돌[上石]이 없는 무덤방[墓室] 1기가 확인되었다. 6호는 덮개돌이 이동되었다. 고인돌은 첨산의 동북쪽에 형성된 해발 고도 50m 정도의 산능선에 등고선 방향으로 분포되어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대부분 장방형으로 장축 1.4~3.2m, 단축 0.9~2.3m, 두께 0.4~1.5m 내외이다. 하부 시설은 지상식과 지하식으로 구분된다. 받침돌[支石]의 모양에 맞춰 덮개돌 하단을 떼어내고 받침돌을 사용하였고, 기둥 모양[柱形]의 받침돌도 확인된다. 묘역 시설은(墓域施設)은 판돌[板石] 등을 깐 것 1기와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은 것으로 구분된다. 무덤방은 돌덧널형[石槨形]이며, 벽석은 판돌을 2~3단으로 눕혀쌓은 것, 판돌을 잇대어 세워서 축조한 것, 깬돌[割石]을 2~3단 쌓은 것, 판돌과 깬돌을 섞어 쌓은 것 등이 있다. 바닥은 일부 판돌제를 전면에 깐 것이 있으나 맨땅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 대부분이다. 뚜껑돌[蓋石]은 대형 판돌 1매를 사용하였으며, 0.5m 내외의 판돌을 2중으로 덮은 것도 있다. 유물은 간 돌검 편, 숫돌[砥石] 편, 그물추, 구슬옥[丸玉] 1점, 석재(石材) 편, 미완성 석기 편 등이 출토되었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9년~2010년 고흥 장덕리 장동유적 2011 대한문화유산연구센터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