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2420: 두 판 사이의 차이
dkamaster 600-2420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
dkamaster 600-2420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
||
|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하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 |||
| 2번째 줄: | 2번째 줄: | ||
{{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율하동 유적 | | 한글표제어=율하동 유적 | ||
| 이칭별칭=김해 율하동 유적, 김해 율하리 유적 | | 이칭별칭=김해 율하동 유적, 김해 율하리 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시대=청동기 시대 | ||
| 32번째 줄: | 32번째 줄: | ||
유적은 집자리와 저장 구덩이 및 무덤과 의례공간으로 이루어진 마을로 무덤과 집자리가 공간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된다. 무덤은 고인돌과 돌널무덤이 중심이며 D지구를 제외한 모든 구역에서 확인된다. 무덤의 입지는 구릉과 저지대로 구분되는데, A지구는 저지대 입지하고 B·C·E·F지구는 구릉에 입지한다. 전체적인 배치 양상은 소규모로 군집을 이룬 모습이다. A지구는 무덤이 가장 밀집 분포하는 곳으로 해발 8~15m에 해당하며 평탄면과 작은 계곡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평탄면보다 계곡부에 무덤의 밀집도가 높은 특징을 보인다. 특히 A2지구는 묘역식 고인돌이 13기로 가장 많이 분포한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큰 A2-19호 묘역식 고인돌을 중심으로 원형과 방형의 묘역식 고인돌이 연접해 있다. 이러한 모습은 다른 여러 유적들과 비교할 때 매우 특이하기 때문에 장소에 대한 어떤 특별한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B지구의 무덤도 한정된 공간에만 분포하며, A지구와 B지구의 무덤공간 사이에는 기둥 건물터와 의례용으로 추정되는 집자리 2기가 배치되었다. C지구와 E지구의 무덤은 열을 이루어 배치되었다. 집자리는 3~4기가 하나의 무리를 이루기도 하고, 1기씩 떨어져서 개별적으로 분포하기도 한다. 구덩이도 서로 무리를 이루거나 집자리 사이에 개별적으로 분포한다. 무덤이 없는 D지구는 집자리·움·도랑·기둥 건물터 등의 생활 유구가 분포한다. 이와 같이 율하리 유적은 A지구와 B지구를 중심으로 무덤공간과 의례 공간이 조성되고, B·C·D1·D2·E지구를 중심으로 집자리 공간이 조성되었다. 시기는 집자리의 경우 이른 시기로 추정되는 것이 몇 기 있지만, 대부분은 송국리 단계에 해당한다. 무덤에서도 가지무늬 토기가 부장된 이른 시기의 무덤은 2기 뿐이며, 이후 송국리 단계에 와서 무덤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또 세형동검이 출토된 점을 고려하면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송국리 단계를 거쳐 [[덧띠토기단계|덧띠 토기 단계]]까지 존속된 것으로 판단된다. | 유적은 집자리와 저장 구덩이 및 무덤과 의례공간으로 이루어진 마을로 무덤과 집자리가 공간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된다. 무덤은 고인돌과 돌널무덤이 중심이며 D지구를 제외한 모든 구역에서 확인된다. 무덤의 입지는 구릉과 저지대로 구분되는데, A지구는 저지대 입지하고 B·C·E·F지구는 구릉에 입지한다. 전체적인 배치 양상은 소규모로 군집을 이룬 모습이다. A지구는 무덤이 가장 밀집 분포하는 곳으로 해발 8~15m에 해당하며 평탄면과 작은 계곡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평탄면보다 계곡부에 무덤의 밀집도가 높은 특징을 보인다. 특히 A2지구는 묘역식 고인돌이 13기로 가장 많이 분포한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큰 A2-19호 묘역식 고인돌을 중심으로 원형과 방형의 묘역식 고인돌이 연접해 있다. 이러한 모습은 다른 여러 유적들과 비교할 때 매우 특이하기 때문에 장소에 대한 어떤 특별한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B지구의 무덤도 한정된 공간에만 분포하며, A지구와 B지구의 무덤공간 사이에는 기둥 건물터와 의례용으로 추정되는 집자리 2기가 배치되었다. C지구와 E지구의 무덤은 열을 이루어 배치되었다. 집자리는 3~4기가 하나의 무리를 이루기도 하고, 1기씩 떨어져서 개별적으로 분포하기도 한다. 구덩이도 서로 무리를 이루거나 집자리 사이에 개별적으로 분포한다. 무덤이 없는 D지구는 집자리·움·도랑·기둥 건물터 등의 생활 유구가 분포한다. 이와 같이 율하리 유적은 A지구와 B지구를 중심으로 무덤공간과 의례 공간이 조성되고, B·C·D1·D2·E지구를 중심으로 집자리 공간이 조성되었다. 시기는 집자리의 경우 이른 시기로 추정되는 것이 몇 기 있지만, 대부분은 송국리 단계에 해당한다. 무덤에서도 가지무늬 토기가 부장된 이른 시기의 무덤은 2기 뿐이며, 이후 송국리 단계에 와서 무덤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또 세형동검이 출토된 점을 고려하면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송국리 단계를 거쳐 [[덧띠토기단계|덧띠 토기 단계]]까지 존속된 것으로 판단된다. | ||
==이미지== | |||
<gallery mode=packed heights=200px> | |||
File:김해_율하동_유적_A1-11호_고인돌.jpg | |||
File:김해_율하동_유적_A2-19호_묘역식_고인돌.jpg | |||
</gallery> | |||
==조사정보== | ==조사정보== | ||
| 42번째 줄: | 48번째 줄: | ||
==한국고고학저널== | ==한국고고학저널== | ||
* "[http://portal.nrich.go.kr/kor/journalUsrDtlView.do?menuIdx=801&idx=2&d_idx=39 청동기시대의 대형분묘 군집유적]", <i>2006 한국고고학저널</i>. | * "[http://portal.nrich.go.kr/kor/journalUsrDtlView.do?menuIdx=801&idx=2&d_idx=39 청동기시대의 대형분묘 군집유적]", <i>2006 한국고고학저널</i>. | ||
==참고문헌== | |||
*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09). <i>김해 율하리 유적 II</i>. https://www.riss.kr/link?id=M11767457 |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4월 2일 (목) 12:25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김해 율하동 유적, 김해 율하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상남도 김해시 율하동 1316 일대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구덩이, 기둥 건물터, 도랑, 고인돌, 돌널무덤, 널무덤, 움무덤, 독무덤, 항아리 모양 토기, 붉은 간 토기, 민무늬 토기, 가지무늬 토기, 돌대팻날, 돌끌, 세형동검, 덧띠 토기, 구멍무늬 토기, 송국리식 집자리, 바리 토기, 간 돌검, 간 돌살촉, 반달 돌칼, 돌낫, 조갯날 돌도끼, 숫돌, 가락바퀴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배진성 |
설명
경상남도 김해시 율하동 1316 일대에 위치한다. 김해 율하 택지 개발 사업에 의해 2005~2006년 조사하여 무덤 106기, 집자리 51기, 구덩이 33기, 기둥 건물터(高床柱建物址) 6기, 도랑(溝) 2기가 확인되었다. 조사 구역은 A~F지구로 구분되고 A지구는 A1~A4, D지구는 D1과 D2, F지구는 F와 F1으로 나누어지며, 조사 면적은 126,634㎡이다. 율하천의 범람이나 고김해만의 기수역 환경에 의해 형성된 충적지, 굴암산의 북동쪽 사면 말단부, 반룡산의 남쪽 사면 말단부에 입지한다. 고인돌 관련 주변 유적으로는 무계리 고인돌과 유하리 고인돌이 있다. 무덤은 고인돌, 돌널무덤(石棺墓), 널무덤(木棺墓), 움무덤(土壙墓) 독무덤(甕棺墓) 등 다양하다. 율하리 유적은 덮개돌(上石)이 없더라도 묘역 시설(墓域施設)과 다단무덤 구덩이(多段墓壙)가 확인되거나, 무덤 구덩이의 길이가 2.8m 이상이거나, 돌널무덤과 구별된 공간에 무리(群集)지어 있는 것은 고인돌로 판단된다. 이렇게 구분하면 고인돌은 33기이고 돌널무덤은 49기이다.
고인돌은 이른바 묘역식(墓域式) 고인돌 또는 구획묘(區劃墓)로 불리는 것과 묘역이 없는 것이 있다. A2-7호의 덮개돌은 무덤 구덩이의 중앙부에 있었지만, A1-1·3·11와 C-1호의 덮개돌은 후대의 경작 등으로 위치가 이동되었다. 묘역식 고인돌은 깬돌(割石)로 방형, 장방형, 원형, 타원형의 묘역을 만들고, 묘역 내에는 주로 1기의 매장 주체부가 축조되었다. 이에 비해 B-4~6호는 하나의 장방형 묘역 내에 3기의 매장 주체부가 등 간격으로 축조되었다. 가장자리의 구획석은 최하단석 위에서부터는 안쪽으로 들여쌓기 하였으며, 묘역 바깥쪽에는 둘레 도랑(周溝)이 설치되었다. 뚜껑돌(蓋石)은 대부분 1~2겹이며, 일부는 6겹까지 중첩되는 경우도 있다. 뚜껑돌 최상단의 경우 가장자리 및 판돌 모양 깬돌(板狀割石) 사이에 작은 깬돌들을 채우거나 쌓았다. 무덤 구덩이는 1~3단으로 굴착되었고, 매장 주체부는 깬돌으로 쌓은 것, 판돌(板石)을 세운 것, 두 가지를 혼용한 것, 나무널(木棺)을 사용한 것이 있다. 묘역식 고인돌은 주로 무덤 구덩이를 2단 이상으로 굴착하고 매장 주체부를 판돌로 조립한 후 4겹 이상 뚜껑돌을 덮어 밀폐한 구조이다. 한편, A1-3호의 매장 주체부 내부에는 잡석(雜石)과 점토가 가득 차 있었고 벽석이 없으며 바닥면도 고르지 않아 일반적인 고인돌의 내부와는 차이가 있다.
돌널무덤은 1열 또는 2열로 열을 지어 배치(列狀配置)되었으며, 매장 주체부를 깬돌로 쌓은 것, 판돌을 세운 것, 두 가지 방식이 혼용된 것이 있는데, 깬돌을 이용한 것이 많다. 뚜껑돌은 1겹만 확인되거나 후대에 결실되었으며, 고인돌과는 달리 다단무덤 구덩이는 확인되지 않는다. 바닥에는 깬돌을 깔았고, 한쪽 긴 벽은 무덤 구덩이를 그대로 이용한 것도 있다. 널무덤은 14기가 확인되었는데 벽면 전체 또는 일부에서 널과 무덤 구덩이 사이에 채운 판돌이나 깬돌이 확인되었다. 뚜껑돌은 일부 2겹도 있지만 주로 1겹이며, 무덤 구덩이는 E-2호만 2단이며 나머지는 1단으로 굴착되었다. 내부 토층은 ‘U’자 모양의 함몰 양상을 보인다.
움무덤은 8기가 확인되었는데, 뚜껑돌은 1~2겹이며 무덤 구덩이는 A1-17호만 2단이며 나머지는 1단이다. 독무덤은 F지구 구릉의 사면부에서만 1기가 확인되었으며, 그 주위에 다른 무덤은 분포하지 않는다. 무덤구덩이는 원형에 가까운 부정형이며, 내부에는 손잡이 달린 항아리 모양 토기를 눕혀 놓았으며 바닥(低部)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무덤 출토 유물 중 붉은 간 토기 항아리는 긴 벽 중앙부, 긴 벽과 무덤 구덩이 사이, 짧은 벽과 채움돌 사이, 뚜껑돌 옆, 중앙부의 바닥면, 짧은 벽 부근 또는 모서리 부근 등에서 확인되었다. 바닥에서 약간 뜬 채로 출토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는 나무널 위에 부장된 것이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짧은 벽과 무덤 구덩이 사이 또는 짧은 벽 가장자리에 마련된 껴묻거리 공간에서 출토되기도 하며, 긴 벽의 벽석 사이에 공간을 마련하여 껴묻은 후 작은 판돌 모양 깬돌을 덮은 사례도 있다. 민무늬 토기 바닥이 긴 벽과 무덤 구덩이 사이에서 출토되기도 하였다. A1-14호에서는 가지무늬 토기(彩文土器)가 서쪽 짧은 벽 쪽에 1점, 동쪽 짧은 벽과 무덤 구덩이 사이에 1점 출토되었는데, 진주·사천 일대의 유적에서 2점이 나란히 껴묻어진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이외에 홈 자루식(二段柄式)·통자루식(一段柄式)·슴베식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슴베식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도 매장 주체부 내부에서 출토되었으며, 내부 퇴적토에서는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과 돌끌(石鑿)이 출토되었다. 한편, B-9호에서는 세형동검과 석제 칼자루 끝 장식(劍把頭飾)이 출토되어 덧띠 토기(粘土帶土器) 단계의 무덤임을 알 수 있다.
집자리는 형태와 출토 유물을 통해 이른 시기와 송국리 단계로 구분된다. 이른 시기의 집자리는 2~4기 정도로 추정되며 형태는 방형, 장방형, 원형에 가까운 부정형(C-3호)이다. B-6호의 경우 중앙에서 짧은 벽 쪽으로 약간 치우친 곳에 화덕 자리가 있고, 한쪽 긴 벽 아래에 도랑이 설치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편,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편,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편, 바닥 편 등이 있다. 집자리 대부분을 차지하는 송국리식 집자리는 말각 방형 또는 원형이다.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만 있는 것과 타원형 구덩이 내부의 양쪽 가장자리에 기둥 구멍이 있는 것도 일부 있지만, 타원형 구덩이와 그 바깥의 양쪽에 기둥 구멍이 있는 것이 가장 많다. 이것을 중심으로 보조 기둥 구멍이 원형으로 배치된 사례도 있다. 벽가에 기둥 구멍이 있는 사례도 있는데, D1-5호는 지름 0.1m 내외의 작은 기둥 구멍이 0.4~0.6m 정도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안쪽을 향해 비스듬하게 설치되었다. 벽가의 도랑은 일부분에만 설치된 것과 타원형 구덩이에서 사방으로 뻗은 도랑이 벽가의 도랑으로 연결되는 것이 있다. 후자(後者)에 대해서는 타원형 구덩이 내에 물을 모으는 기능으로 파악되기도 하였다. D2-6호는 감실(龕室)처럼 벽면 안쪽으로 비스듬하게 굴착된 저장 구덩이가 있는데, 이와 유사한 사례는 진주 대평리 어은 1지구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E-1호의 타원형 구덩이 주위에는 맨땅을 굴착하여 조성된 반원상(半圓狀)의 단(段) 시설이 확인되었다. 바닥면은 대부분 맨땅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이와 같은 송국리 단계의 집자리에서는 구멍무늬 토기편, 바리 토기(鉢形土器), 손잡이 달린 바리 토기(把手附深鉢形土器), 간 돌검, 간 돌살촉, 반달 돌칼, 돌낫(石鎌),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숫돌(砥石), 토제 및 석제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구덩이의 형태는 원형, 방형, 장방형, 부정형 등 다양하다. 성격은 입지·규모·폐기 양상·출토 유물 등을 통해 야외 화덕 자리, 소성 유구, 저장 구덩이, 폐기장, 작업장 등으로 추정된다. 원형의 야외 화덕 자리로 추정되는 A1-3호는 바닥 중앙에 불탄 흙과 흔적이 남아 있으며, C-9호는 벽면에 단(段)이 있어 비스듬하고 불탄 흙층이 형성되어 토기 가마로 추정된다. 폐기장으로 추정되는 것은 평면 형태가 다양하고, 한쪽 벽면과 중앙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량의 민무늬 토기 편과 깬돌이 출토되었다. 내부의 중앙이나 가장자리에 작은 구덩이가 설치된 것도 있다. 저장 구덩이로 추정되는 것은 집자리에 인접해서 분포하는 특징이 있다. 작업장으로 추정되는 것은 장방형이며 바닥이 편평하다. B-14호 구덩이는 원형이며 2단으로 굴착한 후 내부에 잡석과 점토를 채우고 중앙을 비워둔 채 깬돌 4개를 ‘+’자 모양으로 배치하고, 중앙에 나무 기둥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군의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어 집자리 공간과 구분되는 신성한 공간임을 표시하는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은 바리 토기, 바닥 편, 토제 가락바퀴와 그물추 등이 있는데, 유물이 출토되지 않은 구덩이가 더 많다.
기둥 건물터는 A1-1호 외에는 모두 D1과 D2지구의 집자리 주위에 위치한다. A1-1호는 17개의 기둥 구멍이 2열로 배치되어 정면 8칸, 측면 1칸의 구조이다. A지구 무덤군과 B지구 무덤군 사이에 배치되어 있어 관련된 의례시설로 추정된다. D1-1호는 기둥 구멍 9개로 이루어진 2×2칸, D1-2호와 D2-3호는 기둥 구멍 4개로 이루어진 1×1칸, D2-1호·2호는 기둥 구멍 6개로 이루어진 2×1칸의 구조이다. D지구의 기둥 건물터는 집자리 주위에 배치된 점에서 저장 시설 등으로 추정된다. 도랑은 D1지구에서만 2기가 확인되었는데, 길이 6.2m와 4.3m, 너비 0.8m과 1.6m, 깊이 0.2m 내외이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유적은 집자리와 저장 구덩이 및 무덤과 의례공간으로 이루어진 마을로 무덤과 집자리가 공간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된다. 무덤은 고인돌과 돌널무덤이 중심이며 D지구를 제외한 모든 구역에서 확인된다. 무덤의 입지는 구릉과 저지대로 구분되는데, A지구는 저지대 입지하고 B·C·E·F지구는 구릉에 입지한다. 전체적인 배치 양상은 소규모로 군집을 이룬 모습이다. A지구는 무덤이 가장 밀집 분포하는 곳으로 해발 8~15m에 해당하며 평탄면과 작은 계곡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평탄면보다 계곡부에 무덤의 밀집도가 높은 특징을 보인다. 특히 A2지구는 묘역식 고인돌이 13기로 가장 많이 분포한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큰 A2-19호 묘역식 고인돌을 중심으로 원형과 방형의 묘역식 고인돌이 연접해 있다. 이러한 모습은 다른 여러 유적들과 비교할 때 매우 특이하기 때문에 장소에 대한 어떤 특별한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B지구의 무덤도 한정된 공간에만 분포하며, A지구와 B지구의 무덤공간 사이에는 기둥 건물터와 의례용으로 추정되는 집자리 2기가 배치되었다. C지구와 E지구의 무덤은 열을 이루어 배치되었다. 집자리는 3~4기가 하나의 무리를 이루기도 하고, 1기씩 떨어져서 개별적으로 분포하기도 한다. 구덩이도 서로 무리를 이루거나 집자리 사이에 개별적으로 분포한다. 무덤이 없는 D지구는 집자리·움·도랑·기둥 건물터 등의 생활 유구가 분포한다. 이와 같이 율하리 유적은 A지구와 B지구를 중심으로 무덤공간과 의례 공간이 조성되고, B·C·D1·D2·E지구를 중심으로 집자리 공간이 조성되었다. 시기는 집자리의 경우 이른 시기로 추정되는 것이 몇 기 있지만, 대부분은 송국리 단계에 해당한다. 무덤에서도 가지무늬 토기가 부장된 이른 시기의 무덤은 2기 뿐이며, 이후 송국리 단계에 와서 무덤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또 세형동검이 출토된 점을 고려하면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송국리 단계를 거쳐 덧띠 토기 단계까지 존속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미지
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발굴조사 | 2005년~2006년 | 김해 율하리 유적Ⅱ | 2009 |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
한국고고학저널
- "청동기시대의 대형분묘 군집유적", 2006 한국고고학저널.
참고문헌
-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09). 김해 율하리 유적 II. https://www.riss.kr/link?id=M117674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