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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는 고인돌의 덮개돌(上石) 아래 무덤방에서 확인된 숯으로 측정한 결과 3900±200 BP로 도출되었다. 양수리 유적은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대규모 취락과 무덤들이 한 곳에 있어 당시 중부 지역의 문화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는 고인돌의 덮개돌(上石) 아래 무덤방에서 확인된 숯으로 측정한 결과 3900±200 BP로 도출되었다. 양수리 유적은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대규모 취락과 무덤들이 한 곳에 있어 당시 중부 지역의 문화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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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조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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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저널==
==한국고고학저널==
* "[http://portal.nrich.go.kr/kor/journalUsrDtlView.do?menuIdx=801&idx=36&d_idx=576 두물머리에 위치한 청동기 시대 마을]", <i>2020 한국고고학저널</i>.
* "[http://portal.nrich.go.kr/kor/journalUsrDtlView.do?menuIdx=801&idx=36&d_idx=576 두물머리에 위치한 청동기 시대 마을]", <i>2020 한국고고학저널</i>.
==참고문헌==
* 기전문화재연구원. (2001). <i>기전고고 창간호</i>.
* 문화재관리국. (1974). <i>팔당·소양댐 수몰지구 유적발굴 종합조사보고</i>.  https://www.riss.kr/link?id=M1134544
* 서해문화재연구원. (2016). <i>양평 양수리 유적 Ⅰ</i>.  https://www.riss.kr/link?id=M14376180
* 서해문화재연구원. (2017). <i>양평 양수리 유적 Ⅱ</i>.  https://www.riss.kr/link?id=M16982622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3 기준 최신판


양수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양평 양수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665(기전), 579-1(서해1), 578(서해2)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고인돌, 집자리, 돌방무덤군, 기둥 구멍, 혹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뗀석기, 탁자식고인돌, 개석식고인돌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강병학



설명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665(기전), 579-1(서해1), 578(서해2)에 위치한다. 1972년 팔당댐 수몰 지역 조사의 일환으로 5기의 고인돌을, 2001년 광역 지표 조사의 일환으로 2기의 집자리를, 2014년과 2015년 주택 건설 사업의 일환으로 소형 돌방무덤군 3기의 집자리를 발굴하였다. 양수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하중도(河中島)이며, 북한강 쪽에 연접하여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양수리 665 유적(기전)에서는 집자리 2기가 조사되었지만, 시굴 결과 수십 기가 전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부분 평면 방형이고 크기는 장축이 10m를 넘는 대형 집자리(1호)와 4m 정도의 소형 집자리(2호)가 있지만 대부분 6~8m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 시설은 조사된 2기 모두 화덕 자리가 발견되지 않았고 기둥 구멍은 2호 집자리에서 2×3열로 확인되었다. 유물은 혹무늬 토기(突瘤文土器)가 대부분인데 뚫은 방향은 일정하지 않다. 기형은 바리 모양(鉢形), 항아리 모양(壺形)이며, 붉은 간 토기가 출토되었다. 석기는 뗀석기(打製石器)와 반제품이 많은 것이 특징이고 통슴베 돌살촉(一段莖式石鏃) 및 뿌리가 오목하지 않고 직선으로 처리된 슴베 없는 돌살촉(無莖式石鏃) 등이 출토되었다.

고인돌은 탁자식(卓子式)덮개식(蓋石式)이 함께 있으며, 특히 탁자식의 무덤방(墓室) 주변에 냇돌(川石)을 깔아 놓은 점이 특이하다. 출토 유물 중 토기는 바리나 항아리 모양의 민무늬 토기, 구멍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가 있다. 석기류는 대부분 완전히 떼거나 반쯤 떼어낸 것이며, 일부 돌살촉과 배 모양(舟形)의 반달 돌칼처럼 간석기도 있다.

양수리 579-1 유적(서해1)에서는 평면 장방형의 구덩이 북벽(16기)과 서벽(1기)에 편재하여 소위 ‘소형 돌방무덤군(小形石室墓群)’이 조사되었다. 형태나 구조로 볼때 소형 돌방보다는 작은 돌널(小形石棺)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소형 석실은 두 가지 형태가 보이는데 평면 방형 또는 장방형의 구덩이를 파고 네 벽에 냇돌을 세우고 구덩이와 벽 사이, 그리고 바닥은 점토를 발랐으며 상부는 냇돌로 덮었다. 또 다른 형태는 평면 원형으로 구덩이를 파고 벽면과 바닥은 원형, 혹은 방형으로 점토를 발랐으며, 상부에 냇돌을 덮었다. 규모는 다양하지만 주로 길이 0.15~0.25m, 너비 0.1~0.15m, 깊이 0.5~0.15m가 대부분이다. 규모가 가장 큰 5호는 길이 0.36m, 너비 0.13m, 깊이 0.22m이고, 가장 작은 8호는 길이 0.9m, 너비 0.5m, 깊이 0.05m이다. 유물은 구덩이 내부에서 삼각 오목 돌살촉(三角灣入扁平鏃), 돌로 만든 장신구, 미완성 반달 돌칼이 출토되었다.

양수리 578 유적(서해2)에서는 집자리 3기가 조사되었다. 평면 형태는 모두 장방형이며, 규모는 10~20㎡의 소형이다. 이 중 가장 큰 3호 집자리는 길이 6.1m, 너비 3.74m,깊이 0.18m이다. 화덕 자리는 2호에서만 확인되었는데, 무시설식(無施設式)으로 집자리의 중앙에서 1기가 조사되었다. 기둥 구멍은 벽가를 따라 배치되어 있으며, 모든 집자리에서 확인된다. 유물은 3호에서만 구멍무늬 토기 아가리 편이 출토되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는 고인돌의 덮개돌(上石) 아래 무덤방에서 확인된 숯으로 측정한 결과 3900±200 BP로 도출되었다. 양수리 유적은 청동기 시대 대규모 취락과 무덤들이 한 곳에 있어 당시 중부 지역의 문화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1972년 7월~1972년 10월 팔당·소양댐 수몰지구 유적발굴 종합조사보고 1974 문화재관리국
발굴조사 2014년 03월 27일~2014년 04월 09일 양평 양수리 유적Ⅰ 2016 서해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14년 05월 28일~2014년 06월 03일 양평 양수리 유적Ⅰ 2016 서해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15년 04월 15일~2015년 05월 29일 양평 양수리 유적Ⅱ 2017 서해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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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