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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신현동 황토전 유적 | | 한글표제어=신현동 황토전 유적 | ||
| 이칭별칭=울산 신현동 황토전 유적 | | 이칭별칭=울산 신현동 황토전 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시대=청동기 시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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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돌널무덤을 조성하여 매장 공간이 신성시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는 8주식의 대형 집자리 비율이 가장 적고, 그 중 2기는 외곽에 입지한다. 8주식 집자리 주변으로 4주식 또는 6주식 집자리가 분포한다는 점에서 세대 공동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도 추정된다. | 유적 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돌널무덤을 조성하여 매장 공간이 신성시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는 8주식의 대형 집자리 비율이 가장 적고, 그 중 2기는 외곽에 입지한다. 8주식 집자리 주변으로 4주식 또는 6주식 집자리가 분포한다는 점에서 세대 공동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도 추정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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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01년 4월 30일~2001년 12월 20일 || 울산 신현동 황토전 유적 || 2003 || 울산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01년 4월 30일~2001년 12월 20일 || 울산 신현동 황토전 유적 || 2003 || 울산문화재연구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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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울산문화재연구원. (2003). <i>울산 신현동 황토전유적</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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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3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울산 신현동 황토전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울산광역시 북구 신현동 314-1일대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돌널무덤, 도랑, 민무늬 토기, 바리 토기, 붉은 간 토기, 그물추, 조갯날 돌도끼, 간 돌살촉, 돌창, 자루 간 돌검, 반달 돌칼, 슴베 간 돌살촉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황창한 |
설명
울산광역시 북구 신현동 314-1일대에 위치한다. 군부대 이전 건립으로 2001년 조사하여, 집자리 34기, 돌널무덤(石棺墓) 2기, 도랑(溝) 2기 및 삼국~조선 시대 유구 다수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무룡산에서 동쪽으로 뻗은 여러 구릉 가운데,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에 위치한다. A·B·C 3개 지구로 구획하여 조사하였는데, 청동기 시대 유구는 A지구에서만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장방형, 방형으로 구분된다. 장방형인 11호는 길이 7.4m, 너비 4.1m, 깊이 0.66m, 31호는 길이 6.1m, 너비 4.1m, 깊이 0.3m이다. 내부 시설로는 기둥 구멍,벽 도랑(壁溝), 화덕 자리 등이 확인되었다. 기둥 구멍은 배치에 따라 4·6·8주식(柱式)으로 구분되며, 4주식은 대부분 방형이다. 벽 도랑은 ‘ㅁ’, ‘ㄱ’자 모양이 확인되며, 일부는 모서리에서 바깥으로 연장되는 배수구가 확인되었다. 벽 도랑 내부에서 지름 5㎝ 내외의 소형 기둥 구멍이 비교적 규칙적으로 확인되는 예가 있어 벽체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과 맨바닥을 이용한 무시설식(無施設式)으로, 구덩식 화덕 자리의 내부에는 불탄 흙(燒土)과 숯이 남아 있으며, 받침돌(支脚)가 확인되는 경우도 있다. 출입구로 추정되는 것은 1기에서만 확인된다. 화재 집자리에 남아 있는 숯으로 볼 때 벽체 시설에 나무 판재를 사용한 것도 확인되었다.
돌널무덤은 남쪽 구릉 정상부에서 확인되었다. 무덤 구덩이(墓壙)를 파고 돌널을 ‘ㅁ’자 모양으로 조립하여 설치하였고, 바닥에는 특별한 시설을 하지 않았다. 1기는 덮개돌(蓋石)이 없는 상태로 확인되었으나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크기는 길이 0.76m, 너비 0.65m, 깊이 0.2m이다. 뚜껑돌이 있는 무덤은 길이 0.45m, 너비 0.25m, 깊이 0.2m이며 판돌(板石) 1매 씩을 두 겹(二重)로 덮었는데 윗돌이 아랫돌보다 크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도랑은 남쪽 구릉 정상에서 확인되었는데 2열이 1m의 간격을 두고 나란하게 위치하며, 내부에서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도랑은 길이 7m, 너비 1.6m, 깊이 0.2m이다. 도랑의 성격은 알 수 없지만, 돌널무덤과 관련된 입지로 볼 때 제사나 의례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유물은 바리 토기(鉢形土器), 주전자 모양(注形) 붉은 간 토기, 그물추,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간 돌살촉, 돌창(石槍), 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배 모양(舟形) 반달 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조갯날 돌도끼의 비율이 높고, 일부는 인근에서 구할 수 없는 화강편마암(花崗片麻岩)으로 제작하여 원거리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간 돌살촉은 슴베 없는 것(無莖式) 1점을 제외하면 대부분 뿌리가 뾰족한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이며 크기는 2~5㎝ 내외로 작다.
유적 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돌널무덤을 조성하여 매장 공간이 신성시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는 8주식의 대형 집자리 비율이 가장 적고, 그 중 2기는 외곽에 입지한다. 8주식 집자리 주변으로 4주식 또는 6주식 집자리가 분포한다는 점에서 세대 공동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도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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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시굴조사 | 2000년 8월 28일~2000년 10월 30일 | 울산 신현동 황토전 유적 | 2003 | 울산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01년 4월 30일~2001년 12월 20일 | 울산 신현동 황토전 유적 | 2003 | 울산문화재연구원 |
참고문헌
- 울산문화재연구원. (2003). 울산 신현동 황토전유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