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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선제리 유적(群山 船堤里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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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구읍 선제리 108-16 일원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구읍 선제리 108-16 일원
| 성격=무덤유적
| 성격=복합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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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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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설명==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선제리 108-16 일원에 위치하며 옥구읍 선제리의 북동쪽 해발 17.5m 내외의 독립 구릉상에 입지한다. 유적 주변으로 [[고인돌|고인돌]], 청동기~삼국시 시대 [[패총|패총]] , 유물 산포지, 고분군 등이 분포하고, 주변으로 낮은 구릉과 너른 평지가 펼쳐져 있다. 유적이 형성될 당시에는 유적 가까이까지 바닷물이 유입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제 강점기에 간척 사업으로 대부분 농경지로 변했다. 선제리에서는 [[적석목관묘|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 1기와 시대 미상의 구덩이, 조선 시대 [[목관묘|나무널무덤(木棺墓)]] 이 확인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구읍 선제리 108-16 일원에 위치하며 옥구읍 선제리의 북동쪽 해발 17.5m 내외의 독립 구릉상에 입지한다. 유적 주변으로 [[고인돌|고인돌]], 청동기~삼국 시대 [[조개더미|패총]], 유물 산포지, 고분군 등이 분포하고, 주변으로 낮은 구릉과 너른 평지가 펼쳐져 있다. 유적이 형성될 당시에는 유적 가까이까지 바닷물이 유입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제 강점기에 간척 사업으로 대부분 농경지로 변했다. 선제리에서는 [[돌무지널무덤|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 1기와 시대 미상의 구덩이, 조선 시대 [[나무널무덤|나무널무덤(木棺墓)]]이 확인되었다.


[[적석목관묘|돌무지나무널무덤(積石木棺墓)]] 의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하는 남북 방향에 가깝고, 평면 형태는 말각 장방형이다. 무덤은 생토층인 회백색 및 적갈색 풍화 암반층을 수직에 가깝게 판 후 바닥에 판판한 깬돌(割石)을 깔고 부장품을 넣고 4벽에 판판한 깬돌을 놓은 후 그 위에 장방형 판돌(板石) 여러 매를 이용하여 뚜껑을 덮었다.
돌무지나무널무덤(積石木棺墓)의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하는 남북 방향에 가깝고, 평면 형태는 말각 장방형이다. 무덤은 생토층인 회백색 및 적갈색 풍화 암반층을 수직에 가깝게 판 후 바닥에 판판한 깬돌(割石)을 깔고 부장품을 넣고 4벽에 판판한 깬돌을 놓은 후 그 위에 장방형 판돌(板石) 여러 매를 이용하여 뚜껑을 덮었다.


무덤 구덩이의 규모는 길이 2.19m, 너비 0.54~0.64m, 깊이 0.3~0.54m이다. 뚜껑돌과 바닥 면에 깔려 있는 돌 사이의 공간은 0.1m 정도로 토층상에서 나무널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무덤구덩이|무덤 구덩이]] 가장자리를 따라 판판한 깬돌이 놓여 있고 상부에 석재들이 전체적으로 중앙부로 함몰된 것으로 보아 [[목관|나무널(木棺]])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벽 가장자리에 돌들이 놓여있는 상태에서 종단면이 ‘U’자 모양을 띠어, 통나무로 만든 널이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닥 면에 깔린 판판한 깬돌 위에는 일부 유기물 흔적이 확인되었다.
무덤 구덩이의 규모는 길이 2.19m, 너비 0.54~0.64m, 깊이 0.3~0.54m이다. 뚜껑돌과 바닥 면에 깔려 있는 돌 사이의 공간은 0.1m 정도로 토층상에서 나무널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무덤구덩이|무덤 구덩이]] 가장자리를 따라 판판한 깬돌이 놓여 있고 상부에 석재들이 전체적으로 중앙부로 함몰된 것으로 보아 나무널(木棺)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벽 가장자리에 돌들이 놓여있는 상태에서 종단면이 ‘U’자 모양을 띠어, 통나무로 만든 널이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닥 면에 깔린 판판한 깬돌 위에는 일부 유기물 흔적이 확인되었다.


부장품은 대부분 바닥에서 출토되었는데 [[검파형청동기|검파형 청동기(劍把形銅器)]] 3점, [[청동검|청동 검(靑銅劍)]] 8점, [[청동도끼|청동 도끼(銅斧)]] 1점, [[청동지우개|청동 지우개(銅釶)]] 1점, [[청동끌|청동 끌(銅鑿)]] 1점, 미상 청동기 1점 등의 청동기류와 [[검은간토기|검은 간 토기(黑色磨硏土器)]] 1점, [[덧띠토기|덧띠 토기(粘土帶土器)]] 1점 등의 토기류, 천하석제 [[환옥|구슬(丸玉)]] 113점이 출토되었다.
부장품은 대부분 바닥에서 출토되었는데 [[검파형청동기|검파형 청동기(劍把形銅器)]] 3점, [[청동검|청동 검(靑銅劍)]] 8점, [[청동도끼|청동 도끼(銅斧)]] 1점, [[청동지우개|청동 지우개(銅釶)]] 1점, [[청동끌|청동 끌(銅鑿)]] 1점, 미상 청동기 1점 등의 청동기류와 [[검은간토기|검은 간 토기(黑色磨硏土器)]] 1점, [[덧띠토기|덧띠 토기(粘土帶土器)]] 1점 등의 토기류, 천하석제 [[환옥|구슬(丸玉)]] 113점이 출토되었다.


검파형 청동기는 중앙부와 서쪽 긴 벽에 인접하여 출토되었는데 가운데가 절단된 상태로 출토되었으며, 청동 검은 검파형 청동기가 출토된 중앙부에 집중적으로 놓여 있었으며, 일부 청동 검은 일부러 파쇄하여 매납하였다. 또한 벽석 해체 과정에 서쪽 긴 벽석과 무덤 구덩이면 사이에서 청동 검 편 1점이 수습되었다. 청동 도끼와 청동 지우개는 검은 간 토기와 덧띠 토기가 껴묻어진 북쪽 짧은 벽에 인접하여 출토되었다. 청동 지우개의 경우 흩어져서 편으로 출토되어 의도적으로 파쇄하여 부장한 것으로 판단된다. 구슬은 바닥 면에 전체적으로 깔려서 출토되었다.
검파형 청동기는 중앙부와 서쪽 긴 벽에 인접하여 출토되었는데 가운데가 절단된 상태로 출토되었으며, 청동 검은 검파형 청동기가 출토된 중앙부에 집중적으로 놓여 있었으며, 일부 청동 검은 일부러 파쇄하여 매납하였다. 또한 벽석 해체 과정에 서쪽 긴 벽석과 무덤 구덩이면 사이에서 청동 검 편 1점이 수습되었다. 청동 도끼와 청동 지우개는 검은 간 토기와 덧띠 토기가 껴묻어진 북쪽 짧은 벽에 인접하여 출토되었다. 청동 지우개의 경우 흩어져서 편으로 출토되어 의도적으로 파쇄하여 부장한 것으로 판단된다. 구슬은 바닥 면에 전체적으로 깔려서 출토되었다.


검파형 청동기는 부식이 심하게 진행되어 전체적으로 청동녹혹이 남아 있으며, 잔존 상태가 좋지 않다. 길이 24.5㎝, 중앙부 너비(상단5.9㎝, 하단 5.7㎝), 마디 복원 너비 7.7㎝, 상단부 복원 길이 15.3㎝, 너비 2.2㎝, 하단부 복원 길이 11.5㎝, 너비 2㎝, 전면 꼭지 길이 1.8㎝, 꼭지 너비 1㎝, 꼭지 높이 1~2.7㎝, 꼭지 고리 지름 2.7㎝, 내면 꼭지 길이 0.9~1.1㎝, 꼭지 너비 0.5~0.7㎝, 꼭지 높이 0.7㎝이다. 잔존 상태가 양호한 검파형 청동기는 중앙에 마디가 형성되어 있으며 마디를 경계로 상·하단으로 구분된다. 마디 부분은 약간 돌출되어 있으며 상·하단 중앙부가 최소 너비가 형성되어 있고, 양쪽 가장자리는 나팔상으로 벌어져 있다. 상·하단 양쪽 가장자리는 초승달 모양 에 가깝다. 중앙의 마디를 중심으로 상·하단에 각각 주연의 윤곽과 병행하게 내구와 외구로 나누어 2조의 선문대를 돌리고 각 선문대에는 다시 외구와 내구로 나누어 [[빗금무늬|빗금무늬斜線文]] 와 [[삼열점선문|삼열점선문]] 이 새겨져 있다. 상단부와 하단부 문양은 외구와 내구에 동일하게 밖에는 [[단사집선문|단사집선문]] , 안쪽에는 삼열 점선문이 표현되어 있다. 단사집선문대에는 좌·우 대칭하여 ‘Z’자 문양대로 구획되었고, 상·하단에도 ‘Z’자 문양이 반복적으로 구획되었다. 상·하 양단 중앙에서 약간 위쪽으로 치우쳐 반원형 꼭지가 부착되어 있다. 꼭지는 반원형이고 상·하단 모두 꼭지의 표면에 수평의 집선문이 있다. 꼭지에는 새끼를 꼬아 만든 것같은 원형 고리가 달려 있는데 상단은 대부분 결실되었으나, 하단은 완벽하게 남아 있다. 상단에 부착된 꼭지를 중심으로 ‘Y’자 문양대가 형성되었고, 꼭지 위쪽에는 2열 방형의 점열문, 꼭지 아래쪽은 2조의 2열 방형 점열문이, 꼭지 표면에는 수평의 집선문이 새겨져 있다. 하단부에도 꼭지를 중심으로 아래쪽에 하단이 넓은 ‘I’자 문양대가 있으며 위쪽은 수평의 2열의 방형점열문, 아래는 4열의 이등변 삼각형 무늬가 하단으로 가면서 넓어지게 새겨져 있다. 내면은 주연부를 따라 4조 선문이 확인되며 안쪽은 비교적 매끄럽지만, 마연흔이 확인되지 않는다. 내면에는 상단 2개, 하단 1개의 반원형 꼭지가 부착되어 있다. 내면의 꼭지는 전면에 부착된 꼭지에 비해 소형이며 문양은 없다.
검파형 청동기는 부식이 심하게 진행되어 전체적으로 청동녹혹이 남아 있으며, 잔존 상태가 좋지 않다. 길이 24.5㎝, 중앙부 너비(상단5.9㎝, 하단 5.7㎝), 마디 복원 너비 7.7㎝, 상단부 복원 길이 15.3㎝, 너비 2.2㎝, 하단부 복원 길이 11.5㎝, 너비 2㎝, 전면 꼭지 길이 1.8㎝, 꼭지 너비 1㎝, 꼭지 높이 1~2.7㎝, 꼭지 고리 지름 2.7㎝, 내면 꼭지 길이 0.9~1.1㎝, 꼭지 너비 0.5~0.7㎝, 꼭지 높이 0.7㎝이다. 잔존 상태가 양호한 검파형 청동기는 중앙에 마디가 형성되어 있으며 마디를 경계로 상·하단으로 구분된다. 마디 부분은 약간 돌출되어 있으며 상·하단 중앙부가 최소 너비가 형성되어 있고, 양쪽 가장자리는 나팔상으로 벌어져 있다. 상·하단 양쪽 가장자리는 초승달 모양 에 가깝다. 중앙의 마디를 중심으로 상·하단에 각각 주연의 윤곽과 병행하게 내구와 외구로 나누어 2조의 선문대를 돌리고 각 선문대에는 다시 외구와 내구로 나누어 [[빗금무늬|빗금무늬(斜線文)]]와 삼열점선문이 새겨져 있다. 상단부와 하단부 문양은 외구와 내구에 동일하게 밖에는 단사집선문, 안쪽에는 삼열 점선문이 표현되어 있다. 단사집선문대에는 좌·우 대칭하여 ‘Z’자 문양대로 구획되었고, 상·하단에도 ‘Z’자 문양이 반복적으로 구획되었다. 상·하 양단 중앙에서 약간 위쪽으로 치우쳐 반원형 꼭지가 부착되어 있다. 꼭지는 반원형이고 상·하단 모두 꼭지의 표면에 수평의 집선문이 있다. 꼭지에는 새끼를 꼬아 만든 것같은 원형 고리가 달려 있는데 상단은 대부분 결실되었으나, 하단은 완벽하게 남아 있다. 상단에 부착된 꼭지를 중심으로 ‘Y’자 문양대가 형성되었고, 꼭지 위쪽에는 2열 방형의 점열문, 꼭지 아래쪽은 2조의 2열 방형 점열문이, 꼭지 표면에는 수평의 집선문이 새겨져 있다. 하단부에도 꼭지를 중심으로 아래쪽에 하단이 넓은 ‘I’자 문양대가 있으며 위쪽은 수평의 2열의 방형점열문, 아래는 4열의 이등변 삼각형 무늬가 하단으로 가면서 넓어지게 새겨져 있다. 내면은 주연부를 따라 4조 선문이 확인되며 안쪽은 비교적 매끄럽지만, 마연흔이 확인되지 않는다. 내면에는 상단 2개, 하단 1개의 반원형 꼭지가 부착되어 있다. 내면의 꼭지는 전면에 부착된 꼭지에 비해 소형이며 문양은 없다.


청동 검은 모두 8점이 출토되었는데 부식이 심하여 상태가 좋지 않다. 동검은 결입부와 절대가 형성되어 있다. 잘 남아 있는 동검은 길이 30.3~31.7㎝로 대체로 30㎝ 내외로 추정된다. 청동 도끼는 길이 4.6㎝, 견부 너비 3.5㎝, 신부 너비 2.55㎝, 신부 두께 0.8㎝, 공부 너비 3㎝, 공부 두께 1.4㎝, 인부 너비 0.4㎝로 소형이다. 날刃部은 반달 모양을 이루고 있다. 공부에는 3조의 돌선으로 만들어진 돌대부로 마무리하였다. 돌대부와 경부 사이가 최소 너비가 형성되어 있다. 날은 한쪽에만 날을 세웠으며 공부와 신부 측면은 합범 흔이 잘 남아 있다. 청동 지우개는 신부 일부만 남아 있으며 신부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으로 추정된다. 중앙부는 등날이 돌출되어 있으며 양 측면에 인부가 형성되어 있다. 단면은 등면이 볼록하고 뒷면은 직선을 이룬다. 청동 끌은 공부와 인부가 결실되었다. 전체적으로 부식이 심하게 진행되어 잔존 상태가 좋지 않다. 신부 측면은 합범흔이 잘 남아 있다. 관상형 청동기는 한쪽 부분이 결실되고 전체적으로 부식이 심하게 진행되어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중앙부가 넓고 양쪽 가장자리로 가면서 좁아져 있고. 평면 형태는 원통형이며 단면 형태는 원형이다. 천하석제 환옥은 모두 131점이 출토되었다. 크기는 길이 0.4~0.7㎝, 지름 0.1~0.65㎝이다. 가운데 원공은 한 쪽에서 뚫은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양쪽에서 투공하였으며 크기에 비해 구멍이 넓다.
청동 검은 모두 8점이 출토되었는데 부식이 심하여 상태가 좋지 않다. 동검은 결입부와 절대가 형성되어 있다. 잘 남아 있는 동검은 길이 30.3~31.7㎝로 대체로 30㎝ 내외로 추정된다. 청동 도끼는 길이 4.6㎝, 견부 너비 3.5㎝, 신부 너비 2.55㎝, 신부 두께 0.8㎝, 공부 너비 3㎝, 공부 두께 1.4㎝, 인부 너비 0.4㎝로 소형이다. 날刃部은 반달 모양을 이루고 있다. 공부에는 3조의 돌선으로 만들어진 돌대부로 마무리하였다. 돌대부와 경부 사이가 최소 너비가 형성되어 있다. 날은 한쪽에만 날을 세웠으며 공부와 신부 측면은 합범 흔이 잘 남아 있다. 청동 지우개는 신부 일부만 남아 있으며 신부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으로 추정된다. 중앙부는 등날이 돌출되어 있으며 양 측면에 인부가 형성되어 있다. 단면은 등면이 볼록하고 뒷면은 직선을 이룬다. 청동 끌은 공부와 인부가 결실되었다. 전체적으로 부식이 심하게 진행되어 잔존 상태가 좋지 않다. 신부 측면은 합범흔이 잘 남아 있다. 관상형 청동기는 한쪽 부분이 결실되고 전체적으로 부식이 심하게 진행되어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중앙부가 넓고 양쪽 가장자리로 가면서 좁아져 있고. 평면 형태는 원통형이며 단면 형태는 원형이다. 천하석제 환옥은 모두 131점이 출토되었다. 크기는 길이 0.4~0.7㎝, 지름 0.1~0.65㎝이다. 가운데 원공은 한 쪽에서 뚫은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양쪽에서 투공하였으며 크기에 비해 구멍이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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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띠 토기는 바닥은 편평하고 약하게 굽이 형성되었다.  약간 사선으로 벌어져 올라가 몸통 아래쪽에서 가장 넓고 거의 수직에 직립에 가깝게 완만하게 내만하여 올라가 그대로 아가리를 형성한다. 아가리에 둥근 덧띠를 부착하였으나 덧띠 두께는 일정하지 않다. 높이 14.5㎝, 구경 10.3㎝, 바닥 지름 6.8㎝, 몸통의 최대 지름 11.8㎝이다.
덧띠 토기는 바닥은 편평하고 약하게 굽이 형성되었다.  약간 사선으로 벌어져 올라가 몸통 아래쪽에서 가장 넓고 거의 수직에 직립에 가깝게 완만하게 내만하여 올라가 그대로 아가리를 형성한다. 아가리에 둥근 덧띠를 부착하였으나 덧띠 두께는 일정하지 않다. 높이 14.5㎝, 구경 10.3㎝, 바닥 지름 6.8㎝, 몸통의 최대 지름 11.8㎝이다.


선제리 돌무지나무널무덤은 기존에 조사된 [[남성리유적|아산 남성리]], [[동서리유적|예산 동서리]], [[괴정동유적|대전 괴정동]] 돌무지나무널무덤들과는 달리 규모가 소형에 속한다. 특히 선제리에서 출토된 검파형 청동기는 지금까지 아산 남성리, 예산 동서리, 대전 괴정동 등 3개 유적에서만 각 3점씩 출토되었을 뿐이다. 위의 세 유적은 모두 무덤이 파괴된 상태로 신고되어 수습 조사되었지만, 선제리는 정식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으로 무덤의 구조와 [[껴묻거리|꺼묻거리]]의 출토 상태가 명확하게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선제리 돌무지나무널무덤은 기존에 조사된 [[아산남성리유적|아산 남성리]], [[예산동서리유적|예산 동서리]], [[대전괴정동유적|대전 괴정동]] 돌무지나무널무덤들과는 달리 규모가 소형에 속한다. 특히 선제리에서 출토된 검파형 청동기는 지금까지 아산 남성리, 예산 동서리, 대전 괴정동 등 3개 유적에서만 각 3점씩 출토되었을 뿐이다. 위의 세 유적은 모두 무덤이 파괴된 상태로 신고되어 수습 조사되었지만, 선제리는 정식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으로 무덤의 구조와 [[껴묻거리|꺼묻거리]]의 출토 상태가 명확하게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군산 지역 초기 철기 시대 유적으로는 선제리 외에 나무널무덤이 확인된 [[나운동유적|군산 나운동]]과 매납 유구가 조사된 [[관원리유적|관원리]]가 있있다. 선제리 유적이 돌무지나무널무덤인데 비해, 금강과 만경강 일대에서 조사된 이 시기의 무덤이 대부분 나무널무덤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선제리 돌무지 나무널무덤은 금강 하구에 위치하는 데 당시 해로를 통해 서해안의 남성리·동서리와 금강중류의 괴정동을 연결해 주는 교통로상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선제리 유적은 이 시기 금강 유역과 만경강 유역과의 차이 및 관계를 엿보는 데에 중요한 자료이다.
군산 지역 초기 철기 시대 유적으로는 선제리 외에 나무널무덤이 확인된 [[군산나운동유적|군산 나운동]]과 매납 유구가 조사된 관원리가 있있다. 선제리 유적이 돌무지나무널무덤인데 비해, 금강과 만경강 일대에서 조사된 이 시기의 무덤이 대부분 나무널무덤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선제리 돌무지 나무널무덤은 금강 하구에 위치하는 데 당시 해로를 통해 서해안의 남성리·동서리와 금강중류의 괴정동을 연결해 주는 교통로상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선제리 유적은 이 시기 금강 유역과 만경강 유역과의 차이 및 관계를 엿보는 데에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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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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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15년 || 2015년도 소규모 발굴조사 보고서Ⅷ -전북- || 2017 || 한국문화재재단
|}
 
==참고문헌==
* 한국문화재재단. (2017). <i>2015년도 소규모 발굴조사 보고서Ⅷ -전북-</i>.  https://www.riss.kr/link?id=M15371891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5월 6일 (수) 14:32 기준 최신판


선제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군산 선제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구읍 선제리 108-16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고인돌, 패총, 돌무지널무덤, 나무널무덤, 검파형 청동기, 청동 검, 청동 도끼, 청동 지우개, 청동 끌, 검은 간 토기, 덧띠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규정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구읍 선제리 108-16 일원에 위치하며 옥구읍 선제리의 북동쪽 해발 17.5m 내외의 독립 구릉상에 입지한다. 유적 주변으로 고인돌, 청동기~삼국 시대 패총, 유물 산포지, 고분군 등이 분포하고, 주변으로 낮은 구릉과 너른 평지가 펼쳐져 있다. 유적이 형성될 당시에는 유적 가까이까지 바닷물이 유입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제 강점기에 간척 사업으로 대부분 농경지로 변했다. 선제리에서는 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 1기와 시대 미상의 구덩이, 조선 시대 나무널무덤(木棺墓)이 확인되었다.

돌무지나무널무덤(積石木棺墓)의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하는 남북 방향에 가깝고, 평면 형태는 말각 장방형이다. 무덤은 생토층인 회백색 및 적갈색 풍화 암반층을 수직에 가깝게 판 후 바닥에 판판한 깬돌(割石)을 깔고 부장품을 넣고 4벽에 판판한 깬돌을 놓은 후 그 위에 장방형 판돌(板石) 여러 매를 이용하여 뚜껑을 덮었다.

무덤 구덩이의 규모는 길이 2.19m, 너비 0.54~0.64m, 깊이 0.3~0.54m이다. 뚜껑돌과 바닥 면에 깔려 있는 돌 사이의 공간은 0.1m 정도로 토층상에서 나무널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무덤 구덩이 가장자리를 따라 판판한 깬돌이 놓여 있고 상부에 석재들이 전체적으로 중앙부로 함몰된 것으로 보아 나무널(木棺)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벽 가장자리에 돌들이 놓여있는 상태에서 종단면이 ‘U’자 모양을 띠어, 통나무로 만든 널이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닥 면에 깔린 판판한 깬돌 위에는 일부 유기물 흔적이 확인되었다.

부장품은 대부분 바닥에서 출토되었는데 검파형 청동기(劍把形銅器) 3점, 청동 검(靑銅劍) 8점, 청동 도끼(銅斧) 1점, 청동 지우개(銅釶) 1점, 청동 끌(銅鑿) 1점, 미상 청동기 1점 등의 청동기류와 검은 간 토기(黑色磨硏土器) 1점, 덧띠 토기(粘土帶土器) 1점 등의 토기류, 천하석제 구슬(丸玉) 113점이 출토되었다.

검파형 청동기는 중앙부와 서쪽 긴 벽에 인접하여 출토되었는데 가운데가 절단된 상태로 출토되었으며, 청동 검은 검파형 청동기가 출토된 중앙부에 집중적으로 놓여 있었으며, 일부 청동 검은 일부러 파쇄하여 매납하였다. 또한 벽석 해체 과정에 서쪽 긴 벽석과 무덤 구덩이면 사이에서 청동 검 편 1점이 수습되었다. 청동 도끼와 청동 지우개는 검은 간 토기와 덧띠 토기가 껴묻어진 북쪽 짧은 벽에 인접하여 출토되었다. 청동 지우개의 경우 흩어져서 편으로 출토되어 의도적으로 파쇄하여 부장한 것으로 판단된다. 구슬은 바닥 면에 전체적으로 깔려서 출토되었다.

검파형 청동기는 부식이 심하게 진행되어 전체적으로 청동녹혹이 남아 있으며, 잔존 상태가 좋지 않다. 길이 24.5㎝, 중앙부 너비(상단5.9㎝, 하단 5.7㎝), 마디 복원 너비 7.7㎝, 상단부 복원 길이 15.3㎝, 너비 2.2㎝, 하단부 복원 길이 11.5㎝, 너비 2㎝, 전면 꼭지 길이 1.8㎝, 꼭지 너비 1㎝, 꼭지 높이 1~2.7㎝, 꼭지 고리 지름 2.7㎝, 내면 꼭지 길이 0.9~1.1㎝, 꼭지 너비 0.5~0.7㎝, 꼭지 높이 0.7㎝이다. 잔존 상태가 양호한 검파형 청동기는 중앙에 마디가 형성되어 있으며 마디를 경계로 상·하단으로 구분된다. 마디 부분은 약간 돌출되어 있으며 상·하단 중앙부가 최소 너비가 형성되어 있고, 양쪽 가장자리는 나팔상으로 벌어져 있다. 상·하단 양쪽 가장자리는 초승달 모양 에 가깝다. 중앙의 마디를 중심으로 상·하단에 각각 주연의 윤곽과 병행하게 내구와 외구로 나누어 2조의 선문대를 돌리고 각 선문대에는 다시 외구와 내구로 나누어 빗금무늬(斜線文)와 삼열점선문이 새겨져 있다. 상단부와 하단부 문양은 외구와 내구에 동일하게 밖에는 단사집선문, 안쪽에는 삼열 점선문이 표현되어 있다. 단사집선문대에는 좌·우 대칭하여 ‘Z’자 문양대로 구획되었고, 상·하단에도 ‘Z’자 문양이 반복적으로 구획되었다. 상·하 양단 중앙에서 약간 위쪽으로 치우쳐 반원형 꼭지가 부착되어 있다. 꼭지는 반원형이고 상·하단 모두 꼭지의 표면에 수평의 집선문이 있다. 꼭지에는 새끼를 꼬아 만든 것같은 원형 고리가 달려 있는데 상단은 대부분 결실되었으나, 하단은 완벽하게 남아 있다. 상단에 부착된 꼭지를 중심으로 ‘Y’자 문양대가 형성되었고, 꼭지 위쪽에는 2열 방형의 점열문, 꼭지 아래쪽은 2조의 2열 방형 점열문이, 꼭지 표면에는 수평의 집선문이 새겨져 있다. 하단부에도 꼭지를 중심으로 아래쪽에 하단이 넓은 ‘I’자 문양대가 있으며 위쪽은 수평의 2열의 방형점열문, 아래는 4열의 이등변 삼각형 무늬가 하단으로 가면서 넓어지게 새겨져 있다. 내면은 주연부를 따라 4조 선문이 확인되며 안쪽은 비교적 매끄럽지만, 마연흔이 확인되지 않는다. 내면에는 상단 2개, 하단 1개의 반원형 꼭지가 부착되어 있다. 내면의 꼭지는 전면에 부착된 꼭지에 비해 소형이며 문양은 없다.

청동 검은 모두 8점이 출토되었는데 부식이 심하여 상태가 좋지 않다. 동검은 결입부와 절대가 형성되어 있다. 잘 남아 있는 동검은 길이 30.3~31.7㎝로 대체로 30㎝ 내외로 추정된다. 청동 도끼는 길이 4.6㎝, 견부 너비 3.5㎝, 신부 너비 2.55㎝, 신부 두께 0.8㎝, 공부 너비 3㎝, 공부 두께 1.4㎝, 인부 너비 0.4㎝로 소형이다. 날刃部은 반달 모양을 이루고 있다. 공부에는 3조의 돌선으로 만들어진 돌대부로 마무리하였다. 돌대부와 경부 사이가 최소 너비가 형성되어 있다. 날은 한쪽에만 날을 세웠으며 공부와 신부 측면은 합범 흔이 잘 남아 있다. 청동 지우개는 신부 일부만 남아 있으며 신부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으로 추정된다. 중앙부는 등날이 돌출되어 있으며 양 측면에 인부가 형성되어 있다. 단면은 등면이 볼록하고 뒷면은 직선을 이룬다. 청동 끌은 공부와 인부가 결실되었다. 전체적으로 부식이 심하게 진행되어 잔존 상태가 좋지 않다. 신부 측면은 합범흔이 잘 남아 있다. 관상형 청동기는 한쪽 부분이 결실되고 전체적으로 부식이 심하게 진행되어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중앙부가 넓고 양쪽 가장자리로 가면서 좁아져 있고. 평면 형태는 원통형이며 단면 형태는 원형이다. 천하석제 환옥은 모두 131점이 출토되었다. 크기는 길이 0.4~0.7㎝, 지름 0.1~0.65㎝이다. 가운데 원공은 한 쪽에서 뚫은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양쪽에서 투공하였으며 크기에 비해 구멍이 넓다.

검은 간 토기는 아가리가 약간 결실되었다. 저부는 평저로 약하게 굽이 형성되었고 곡선을 그리며 벌어져 올라가 몸통 하위에서 최대 지름을 이룬다. 몸통는 완만한 곡선으로 내만하여 올라가 직립된 아가리와 연결된다. 몸통와 아가리가 연결되는 부분은 약하게 홈이 돌아간다. 아가리는 직립되어 올라가 밖으로 살짝 바라진다. 전체적으로 검게 마연하였으나 대부분 박락되었다. 태토는 세사립이 포함된 점토이다. 잔존 높이 13.1㎝, 경부 지름 7.8㎝, 바닥 지름 7.5㎝, 몸통의 최대 지름 13.8㎝이다.

덧띠 토기는 바닥은 편평하고 약하게 굽이 형성되었다. 약간 사선으로 벌어져 올라가 몸통 아래쪽에서 가장 넓고 거의 수직에 직립에 가깝게 완만하게 내만하여 올라가 그대로 아가리를 형성한다. 아가리에 둥근 덧띠를 부착하였으나 덧띠 두께는 일정하지 않다. 높이 14.5㎝, 구경 10.3㎝, 바닥 지름 6.8㎝, 몸통의 최대 지름 11.8㎝이다.

선제리 돌무지나무널무덤은 기존에 조사된 아산 남성리, 예산 동서리, 대전 괴정동 돌무지나무널무덤들과는 달리 규모가 소형에 속한다. 특히 선제리에서 출토된 검파형 청동기는 지금까지 아산 남성리, 예산 동서리, 대전 괴정동 등 3개 유적에서만 각 3점씩 출토되었을 뿐이다. 위의 세 유적은 모두 무덤이 파괴된 상태로 신고되어 수습 조사되었지만, 선제리는 정식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으로 무덤의 구조와 꺼묻거리의 출토 상태가 명확하게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군산 지역 초기 철기 시대 유적으로는 선제리 외에 나무널무덤이 확인된 군산 나운동과 매납 유구가 조사된 관원리가 있있다. 선제리 유적이 돌무지나무널무덤인데 비해, 금강과 만경강 일대에서 조사된 이 시기의 무덤이 대부분 나무널무덤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선제리 돌무지 나무널무덤은 금강 하구에 위치하는 데 당시 해로를 통해 서해안의 남성리·동서리와 금강중류의 괴정동을 연결해 주는 교통로상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선제리 유적은 이 시기 금강 유역과 만경강 유역과의 차이 및 관계를 엿보는 데에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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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15년 2015년도 소규모 발굴조사 보고서Ⅷ -전북- 2017 한국문화재재단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