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322: 두 판 사이의 차이
dkamaster 600-0322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
dkamaster 600-0322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
||
|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2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 |||
| 2번째 줄: | 2번째 줄: | ||
{{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귀일리 고인돌군 | |||
| 이칭별칭=평양 귀일리 고인돌군, 평양 귀일리 지석묘군 | | 이칭별칭=평양 귀일리 고인돌군, 평양 귀일리 지석묘군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위치=북한 | |||
| 소재지=평양직할시 상원군 귀일리 | |||
| 성격=고인돌 | |||
| 키워드=[[고인돌]], [[오덕형 고인돌]], [[사람 뼈]], [[민무늬 토기]], [[침촌형 고인돌]], [[조가비 팔찌]], [[곱은옥]], [[돌창]] | | 키워드=[[고인돌]], [[오덕형 고인돌]], [[사람 뼈]], [[민무늬 토기]], [[침촌형 고인돌]], [[조가비 팔찌]], [[곱은옥]], [[돌창]] | ||
|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장호수 | | 집필자=장호수 | ||
}} | }} | ||
| 20번째 줄: | 20번째 줄: | ||
귀일리 2호 고인돌은 무덤 구조와 껴묻거리 출토 상황으로 보아 사회 계급에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 함께 묻힌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유사한 형식의 고인돌은 [[연탄오덕리유적송신동20·22·31호고인돌|연탄 오덕 지구의 송신동 20·22·31호 고인돌]]이 있다. 또한 [[성천룡산리고인돌군|성천 룡산리 무덤]]은 [[침촌형고인돌|침촌형 고인돌]] 형식으로 개별 무덤방이 있으나, 가운데의 것이 주인공 무덤방으로 규모가 크고 바닥을 높게 한 형식 등 여러 특징에서 유사하여 고인돌 사회를 파악하는데 비교 자료가 된다. 무덤에서 나온 토기를 이용하여 [[핵분열손상연대측정법|핵분열 흔적법(fisson-track)]]을 통한 절대 연대 측정 결과, 4611±724년 전으로 나왔다고 한다. | 귀일리 2호 고인돌은 무덤 구조와 껴묻거리 출토 상황으로 보아 사회 계급에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 함께 묻힌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유사한 형식의 고인돌은 [[연탄오덕리유적송신동20·22·31호고인돌|연탄 오덕 지구의 송신동 20·22·31호 고인돌]]이 있다. 또한 [[성천룡산리고인돌군|성천 룡산리 무덤]]은 [[침촌형고인돌|침촌형 고인돌]] 형식으로 개별 무덤방이 있으나, 가운데의 것이 주인공 무덤방으로 규모가 크고 바닥을 높게 한 형식 등 여러 특징에서 유사하여 고인돌 사회를 파악하는데 비교 자료가 된다. 무덤에서 나온 토기를 이용하여 [[핵분열손상연대측정법|핵분열 흔적법(fisson-track)]]을 통한 절대 연대 측정 결과, 4611±724년 전으로 나왔다고 한다. | ||
==참고문헌== | |||
* 차달만. (1996). 상원군 귀일리 2호고인돌무덤에 대하여. <i>조선고고연구, 3</i>. |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4월 2일 (목) 12:17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평양 귀일리 고인돌군, 평양 귀일리 지석묘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북한 |
| 소재지 | 평양직할시 상원군 귀일리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오덕형 고인돌, 사람 뼈, 민무늬 토기, 침촌형 고인돌, 조가비 팔찌, 곱은옥, 돌창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장호수 |
설명
평양직할시 상원군 귀일리에 위치한다. 1995년 6월에 발굴 조사되었다. 상원읍에서 남쪽으로 12㎞에 있는 하무산 동남쪽 기슭의 밭 가운데 고인돌 4기가 1열로 나란히 놓여 있는데 원래 이 곳에는 10여 기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귀일리 2호 고인돌은 오덕형 고인돌이며 그 아래 집합식(集合式) 무덤방(墓室)의 형식을 보여준다. 뚜껑돌(上石)은 길이 3.6m, 너비 2.5m, 두께 0.3m이며, 판돌(板石)을 동서로 마주 세워 받침돌(支石)로 하고 양 끝에 막음돌(閉塞石)을 막아 무덤방을 만들었다. 남쪽 막음돌은 출입문으로서 기능을 한다. 무덤방은 길이 1.9m, 너비 0.8m, 높이 0.7~8m이며, 내부에 다시 판돌을 세워 주검(屍身)을 묻는 공간을 4칸으로 구획하였다. 북쪽으로부터 1~4호 순이며 2호가 다른 무덤방에 비해 조금 넓은 편이다. 무덤방은 납작한 강돌을 깔았는데 2호는 다른 무덤방보다 0.05m 높다. 무덤방마다 불탄 사람 뼈와 껴묻거리들이 나왔는데, 2호에서는 한 사람분의 뼈가 들어 있었고 나머지에는 3~4명분의 뼈들이 들어 있었다. 껴묻거리로는 2호에서 흰 돌구슬, 조가비 팔찌(貝釧), 곱은옥(曲玉)을 비롯해 돌창(石槍) 끝, 민무늬 토기 편이 나왔고 나머지 무덤방에서는 민무늬 토기 편만 보인다.
귀일리 2호 고인돌은 무덤 구조와 껴묻거리 출토 상황으로 보아 사회 계급에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 함께 묻힌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유사한 형식의 고인돌은 연탄 오덕 지구의 송신동 20·22·31호 고인돌이 있다. 또한 성천 룡산리 무덤은 침촌형 고인돌 형식으로 개별 무덤방이 있으나, 가운데의 것이 주인공 무덤방으로 규모가 크고 바닥을 높게 한 형식 등 여러 특징에서 유사하여 고인돌 사회를 파악하는데 비교 자료가 된다. 무덤에서 나온 토기를 이용하여 핵분열 흔적법(fisson-track)을 통한 절대 연대 측정 결과, 4611±724년 전으로 나왔다고 한다.
참고문헌
- 차달만. (1996). 상원군 귀일리 2호고인돌무덤에 대하여. 조선고고연구,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