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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목리·신리 유적은 집자리 내부 시설과 출토 유물을 통해 [[역삼동유형|역삼동 유형]]과 [[송국리유형|송국리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를 참고한다면 기원전 10세기를 상한으로 하며 이후 송국리 유형 취락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 예산 목리·신리 유적은 집자리 내부 시설과 출토 유물을 통해 [[역삼동유형|역삼동 유형]]과 [[송국리유형|송국리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를 참고한다면 기원전 10세기를 상한으로 하며 이후 송국리 유형 취락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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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충청문화재연구원. (2014). <i>예산 목리·신리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3885138 |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5월 4일 (월) 17:05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예산 목리·신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목리 1847(3-5지점)·신리 산 31(3-4지점)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구덩이, 역삼동 유형, 송국리 유형, 송국리식 집자리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황재훈 |
설명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목리 1847(3-5지점)·신리 산 31(3-4지점) 일원에 위치한다. 충남도청 (내포)신도시 건설 사업에 따라 2010~2012년에 걸쳐 발굴 조사 되었다. 유적은 총 5개 지점으로 신석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집자리와 건물터, 무덤, 가마, 구덩이 등 많은 유구가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의 유적은 3-4, 3-5지점에 해당하며 집자리 26기와 구덩이 2기가 조사되었다. 조사 지역의 동쪽에는 차령산맥이 뻗어 있고, 서쪽으로는 가야 산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산지 사이에는 예당 평야가 펼쳐져 있다. 3-4지점은 용봉산과 수암산에서 동쪽으로 분기하는 구릉 지대에 속하며 3-5지점은 단독 발달한 소구릉 지대에 해당한다.
3-4지점에서 조사된 집자리는 구릉 정상부와 사면부에 위치한다. 모두 14기로 세장방형 2기와 말각 방형 12기가 조사되었다.
세장방형 집자리는 구릉과 능선 정상부에 입지한다. 9호는 길이 16m, 너비 4.7m, 깊이 0.6m이다. 내부 바닥면에는 화덕 자리와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 저장 구덩이 등이 확인되는데, 화덕 자리는 무시설식(無施設式)으로 지름 0.46~0.64m이며 중앙에 3기가 2.9~5.3m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기둥 구멍은 중앙부와 벽에 열을 지어 있으며 벽 도랑은 군데군데 시설되어 있다. 북동벽과 남서벽 모서리와 동쪽 긴 벽의 중앙부에는 지름 0.3~0.9m, 깊이 0.2~0.3m의 저장 구덩이 10개가 설치되어 있다. 11호는 길이 10.8m, 너비 3.76m, 깊이 0.44m이다. 벽면 바닥에는 기둥 구멍이 열을 지어 확인되며 장축을 따라 벽 도랑이 시설되었다. 벽 모서리에는 평면 원형의 저장 구덩이가 설치되었다. 화덕 자리는 무시설식으로 모두 3기가 확인되는데 중앙 장축을 따라 조성되었다. 화덕 자리는 지름 0.64m, 저장 구덩이는 지름 0.48~0.64m, 기둥 구멍은 지름 0.18~0.28m 정도이다. 겹아가리 짧은 빗금 구멍 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孔列土器),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文土器), 반달 돌칼, 간 돌검 편, 격지 등이 출토되었다.
말각 방형 집자리는 모두 송국리식으로 구릉과 능선의 정상부, 사면부에 입지한다. 타원형 구덩이 양 끝에 기둥 구멍이 한 개씩 배치된 2주식(柱式) 구조와 외곽에 4개의 기둥 구멍이 추가로 설치된 4주식 구조로 구분할 수 있다. 2주식은 길이 3~4.6m, 너비 3.7~4.7m, 잔존 높이 0.2~0.48m이며 4주식은 길이 5.3~6m, 너비 5.4~6.8m, 잔존 높이 0.56~0.8m 정도이다. 4주식이 2주식에 비해 규모가 크며 깊이 또한 더 깊게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타원형 구덩이의 규모는 길이 0.44~1.06m, 너비 0.42~0.69m이다. 송국리식 토기, 바닥 구멍 토기, 버들잎 모양 돌살촉(柳葉形石鏃), 간 돌살촉(石鏃) 편, 숫돌(砥石), 갈판(碾石), 돌끌(石鑿), 외날 돌도끼(片刃石斧) 등이 출토되었다.
3-5지점에서 조사된 집자리는 구릉 정상부와 사면부에 입지하며 세장방형 1기, 장방형 6기, 말각 방형 5기 등 모두 12기가 조사되었다.
세장방형 집자리인 7호는 능선 정상부에 위치하며, 길이 12.8m, 너비 3.6m, 깊이 0.3m이다. 내부 바닥면에는 화덕 자리와 기둥 구멍, 저장 구덩이 등이 확인된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竪穴式)으로 지름 0.5~0.56m이며, 중앙 장축선상에 2기가 1.6m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기둥 구멍은 화덕 자리 사이에서 1기만이 남아 있고, 긴 벽 중앙부와 벽 모서리에서는 모두 4개의 저장 구덩이가 설치되어 있다. 지름 0.46~0.52m, 깊이 0.18~0.22m 정도이다.
장방형 집자리는 능선 정상부와 사면에 입지한다. 길이 3.6~6.53m, 너비 2.35~4.15m 정도이다. 3·10·12호 집자리에서는 화재 폐기된 것으로 보이며 내부에서 무시설식 화덕 자리 1기가 확인되었으며, 4·5·11호에서는 타원형의 화덕 자리 2기와 저장 구덩이가 확인된다. 골아가리 겹아가리 짧은 빗금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二重口緣短斜線孔列土器),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토제 가락바퀴, 반달 돌칼, 간 돌검 편 등이 출토되었다.
말각 방형 집자리는 구릉 정상과 사면에 입지하는데, 타원형 구덩이 양단에 기둥 구멍이 한 개씩 배치된 송국리식이다. 타원형 구덩이 외곽으로 보조 기둥 1기가 설치되거나 벽면에 인접하여 기둥 구멍이 확인되기도 한다. 전체적인 규모는 길이 3.4~4.9m, 너비 3.3~4.88m, 잔존 높이 0.09~0.56m 정도이고, 타원형 구덩이는 길이 0.76~1.14m, 너비 0.5~0.9m 정도이다. 송국리식 토기, 골아가리 토기, 바닥 구멍 토기, 통슴베 돌살촉(一段莖式石鏃) 등이 출토되었다.
예산 목리·신리 유적은 집자리 내부 시설과 출토 유물을 통해 역삼동 유형과 송국리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를 참고한다면 기원전 10세기를 상한으로 하며 이후 송국리 유형 취락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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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충청문화재연구원. (2014). 예산 목리·신리 유적. https://www.riss.kr/link?id=M138851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