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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자리는 모두 화재의 흔적이 잘 남아 있었고, 평면 장방형이며 기둥 구멍이나 [[초석|주춧돌(楚石)]]은 설치되지 않았다. 1호 집자리는 길이 5.5m, 너비 4m로 바닥에 전체적으로 목탄과 재가 깔려 있어 화재로 인해 지붕이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벽 가장자리에는 지름 0.1~0.12m의 불탄 나무 기둥들이 붙어 있다. 2호는 길이 10.5m, 너비 5.2m이며 [[화덕자리|화덕 자리]]가 3개 있다. 3호는 길이 5.5m, 너비 3.1m이며 바닥에 재와 목탄이 깔려 있고 화덕이나 기둥 구멍은 확인되지 않는 대신, 서남쪽 벽가에 강돌 7개가 반원형으로 놓여 있다. 4호는 길이 6.6m, 너비 2.9m이며 중앙부에 화덕 자리 1개가 있다. 야외 화덕 자리는 길이 1.6m, 너비 1.4m이며, 내부에 가득 찬 재에서 돼지 아래턱뼈 2점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팽이토기|팽이 토기(角形土器)]]를 비롯하여, [[슴베간돌검|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간돌살촉|간 돌살촉]], [[돌창|돌창(石槍)]], [[돌도끼|돌도끼]], [[돌끌|돌끌(石鑿)]], [[돌대팻날|돌 대팻날(扁平片刃石斧)]], [[반달돌칼|반달 돌칼]], [[달도끼|달도끼(環狀石斧)]], [[돌돈|돌돈(石貨)]], [[그물추|그물추]], [[가락바퀴|가락바퀴]], [[숫돌|숫돌(砥石)]] 등이 있다. 그리고 돼지 아래턱뼈를 비롯하여 소, 사슴, 족제비, 개 등 12종 35마리 분의 동물 뼈와 [[골제송곳|뼈송곳(骨錐)]]도 출토되었다. 1호는 [[팽이토기문화1기|팽이 토기 문화 1기]], 유물 구성이 유사한 2~4호는 [[팽이토기문화3기|팽이 토기 문화 3기]]로 편년되는데, [[팽이토기문화|팽이 토기 문화]] 내에서도 늦은 시기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 집자리는 모두 화재의 흔적이 잘 남아 있었고, 평면 장방형이며 기둥 구멍이나 [[초석|주춧돌(楚石)]]은 설치되지 않았다. 1호 집자리는 길이 5.5m, 너비 4m로 바닥에 전체적으로 목탄과 재가 깔려 있어 화재로 인해 지붕이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벽 가장자리에는 지름 0.1~0.12m의 불탄 나무 기둥들이 붙어 있다. 2호는 길이 10.5m, 너비 5.2m이며 [[화덕자리|화덕 자리]]가 3개 있다. 3호는 길이 5.5m, 너비 3.1m이며 바닥에 재와 목탄이 깔려 있고 화덕이나 기둥 구멍은 확인되지 않는 대신, 서남쪽 벽가에 강돌 7개가 반원형으로 놓여 있다. 4호는 길이 6.6m, 너비 2.9m이며 중앙부에 화덕 자리 1개가 있다. 야외 화덕 자리는 길이 1.6m, 너비 1.4m이며, 내부에 가득 찬 재에서 돼지 아래턱뼈 2점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팽이토기|팽이 토기(角形土器)]]를 비롯하여, [[슴베간돌검|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간돌살촉|간 돌살촉]], [[돌창|돌창(石槍)]], [[돌도끼|돌도끼]], [[돌끌|돌끌(石鑿)]], [[돌대팻날|돌 대팻날(扁平片刃石斧)]], [[반달돌칼|반달 돌칼]], [[달도끼|달도끼(環狀石斧)]], [[돌돈|돌돈(石貨)]], [[그물추|그물추]], [[가락바퀴|가락바퀴]], [[숫돌|숫돌(砥石)]] 등이 있다. 그리고 돼지 아래턱뼈를 비롯하여 소, 사슴, 족제비, 개 등 12종 35마리 분의 동물 뼈와 [[골제송곳|뼈송곳(骨錐)]]도 출토되었다. 1호는 [[팽이토기문화1기|팽이 토기 문화 1기]], 유물 구성이 유사한 2~4호는 [[팽이토기문화3기|팽이 토기 문화 3기]]로 편년되는데, [[팽이토기문화|팽이 토기 문화]] 내에서도 늦은 시기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 ||
==참고문헌== | |||
* 고고학연구소. (2004). 새로 발굴된 립석리유적. <i>조선고고연구, 3</i>, 34. https://db.history.go.kr/id/hb_126_02_000431 | |||
* 김광철. (2005). 립석리팽이그릇집자리. <i>조선고고연구, 1</i>, 21-24. https://db.history.go.kr/id/hb_128_02_000678 | |||
* 리원근, 백룡규. (1962). 평양시 승호 구역 립석리 원시 유적 발굴 간략 보고. <i>문화유산, 4</i>.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6938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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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4월 2일 (목) 12:19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평양 립석동 유적, 평양 입석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북한 |
| 소재지 | 평양직할시 승호구역 립석동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야외 화덕 자리, 팽이 토기, 슴베 간 돌검, 돌돈, 그물추, 뼈송곳, 팽이 토기 문화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배진성 |
설명
평양직할시 승호구역 립석동에 위치한다. 립석리역에서 서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남강 하안 단구에 입지한다. 1962년에 빗살무늬 토기 출토 층에서 집자리 2기, 2003년에 집자리 2기와 야외 화덕 자리(野外爐址) 1기가 발굴되었다.
집자리는 모두 화재의 흔적이 잘 남아 있었고, 평면 장방형이며 기둥 구멍이나 주춧돌(楚石)은 설치되지 않았다. 1호 집자리는 길이 5.5m, 너비 4m로 바닥에 전체적으로 목탄과 재가 깔려 있어 화재로 인해 지붕이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벽 가장자리에는 지름 0.1~0.12m의 불탄 나무 기둥들이 붙어 있다. 2호는 길이 10.5m, 너비 5.2m이며 화덕 자리가 3개 있다. 3호는 길이 5.5m, 너비 3.1m이며 바닥에 재와 목탄이 깔려 있고 화덕이나 기둥 구멍은 확인되지 않는 대신, 서남쪽 벽가에 강돌 7개가 반원형으로 놓여 있다. 4호는 길이 6.6m, 너비 2.9m이며 중앙부에 화덕 자리 1개가 있다. 야외 화덕 자리는 길이 1.6m, 너비 1.4m이며, 내부에 가득 찬 재에서 돼지 아래턱뼈 2점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팽이 토기(角形土器)를 비롯하여, 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간 돌살촉, 돌창(石槍), 돌도끼, 돌끌(石鑿), 돌 대팻날(扁平片刃石斧), 반달 돌칼, 달도끼(環狀石斧), 돌돈(石貨), 그물추, 가락바퀴, 숫돌(砥石) 등이 있다. 그리고 돼지 아래턱뼈를 비롯하여 소, 사슴, 족제비, 개 등 12종 35마리 분의 동물 뼈와 뼈송곳(骨錐)도 출토되었다. 1호는 팽이 토기 문화 1기, 유물 구성이 유사한 2~4호는 팽이 토기 문화 3기로 편년되는데, 팽이 토기 문화 내에서도 늦은 시기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참고문헌
- 고고학연구소. (2004). 새로 발굴된 립석리유적. 조선고고연구, 3, 34. https://db.history.go.kr/id/hb_126_02_000431
- 김광철. (2005). 립석리팽이그릇집자리. 조선고고연구, 1, 21-24. https://db.history.go.kr/id/hb_128_02_000678
- 리원근, 백룡규. (1962). 평양시 승호 구역 립석리 원시 유적 발굴 간략 보고. 문화유산, 4.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693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