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600-0854: 두 판 사이의 차이

한국고고학사전
dkamaster 600-0854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dkamaster 600-0854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하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2번째 줄: 2번째 줄:


{{유적정보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룡산리 유적(成川 龍山里遺蹟)
| 한글표제어=룡산리 유적
| 이칭별칭=성천 룡산리 유적, 성천 용산리 유적, 성천 룡산리 돌관무덤, 성천 용산리 돌관무덤
| 이칭별칭=성천 룡산리 유적, 성천 용산리 유적, 성천 룡산리 돌관무덤, 성천 용산리 돌관무덤
| 시대=청동기 시대
| 시대=청동기 시대
16번째 줄: 16번째 줄:
==설명==
==설명==
평안남도 성천군 룡산리에 위치한다. 비류강 오른쪽 기슭 충적 대지에서 강을 따라 700~800m 정도 내려가면 널리 알려진 [[성천룡산리고인돌군|룡산리 고인돌군]]이 있다. [[돌널무덤|돌널무덤]]의 장축은 남북 방향이며,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동서 방향의 긴 벽은 판돌(板石) 여러 매를 잇대어 세웠고, 북쪽 짧은 벽은 1매의 판석을 세웠으며 남쪽 짧은 벽은 깬돌(割石)을 두 단으로 쌓아 축조하였다. 뚜껑돌(蓋石)과 함께 벽석 일부가 결실되었으나, 긴 벽은 모두 5매의 판돌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돌널(石棺)은 길이 1.9m, 너비 0.6m, 높이 0.3m이며, 바닥면에는 [[신전장|펴묻기]]한 피장자의 머리뼈, 팔뼈, 다리뼈가 잘 남아 있었다. 이 무덤은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지만 판돌 세우기식과 깬돌 쌓기식을 결합한 돌널 구조와 펴묻기(伸展葬)가 확인되어 평양 일대 돌널무덤의 형식과 장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평안남도 성천군 룡산리에 위치한다. 비류강 오른쪽 기슭 충적 대지에서 강을 따라 700~800m 정도 내려가면 널리 알려진 [[성천룡산리고인돌군|룡산리 고인돌군]]이 있다. [[돌널무덤|돌널무덤]]의 장축은 남북 방향이며,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동서 방향의 긴 벽은 판돌(板石) 여러 매를 잇대어 세웠고, 북쪽 짧은 벽은 1매의 판석을 세웠으며 남쪽 짧은 벽은 깬돌(割石)을 두 단으로 쌓아 축조하였다. 뚜껑돌(蓋石)과 함께 벽석 일부가 결실되었으나, 긴 벽은 모두 5매의 판돌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돌널(石棺)은 길이 1.9m, 너비 0.6m, 높이 0.3m이며, 바닥면에는 [[신전장|펴묻기]]한 피장자의 머리뼈, 팔뼈, 다리뼈가 잘 남아 있었다. 이 무덤은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지만 판돌 세우기식과 깬돌 쌓기식을 결합한 돌널 구조와 펴묻기(伸展葬)가 확인되어 평양 일대 돌널무덤의 형식과 장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 고고학연구소. (2004). 룡산리돌관무덤. <i>조선고고연구, 4</i>, 1-32. http://db.history.go.kr/id/hb_127_02_000827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19 기준 최신판


룡산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성천 룡산리 유적, 성천 용산리 유적, 성천 룡산리 돌관무덤, 성천 용산리 돌관무덤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북한
소재지 평안남도 성천군 룡산리
관련 정보
성격 고분
키워드 돌널무덤, 펴묻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배진성



설명

평안남도 성천군 룡산리에 위치한다. 비류강 오른쪽 기슭 충적 대지에서 강을 따라 700~800m 정도 내려가면 널리 알려진 룡산리 고인돌군이 있다. 돌널무덤의 장축은 남북 방향이며,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동서 방향의 긴 벽은 판돌(板石) 여러 매를 잇대어 세웠고, 북쪽 짧은 벽은 1매의 판석을 세웠으며 남쪽 짧은 벽은 깬돌(割石)을 두 단으로 쌓아 축조하였다. 뚜껑돌(蓋石)과 함께 벽석 일부가 결실되었으나, 긴 벽은 모두 5매의 판돌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돌널(石棺)은 길이 1.9m, 너비 0.6m, 높이 0.3m이며, 바닥면에는 펴묻기한 피장자의 머리뼈, 팔뼈, 다리뼈가 잘 남아 있었다. 이 무덤은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지만 판돌 세우기식과 깬돌 쌓기식을 결합한 돌널 구조와 펴묻기(伸展葬)가 확인되어 평양 일대 돌널무덤의 형식과 장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