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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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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덕천리 유적(慶州 德泉里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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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 산18-1, 산27-1, 484-2 일원에 위치한다. 경부 고속 철도 건설에 앞서 2004~2006년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덕천리 484-2) 과 신라문화유산연구원(덕천리 산18-1·산27-1)이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64기,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1기, [[구덩이|구덩이]], [[돌더미|돌더미(集石)]], [[구|도랑(溝)]] 및 [[원삼국시대|원삼국 시대]], [[통일신라|통일 신라]]~[[조선시대|조선 시대]]까지 다양한 유구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덕천리 평야의 북쪽 일부인 현동들의 북편 구릉 말단부와 현동지 부근의 고안골 북편 구릉에 입지하다. 북쪽으로는 성부산과 수부산, 탈바꿈산 등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484-2 유적은 해발 62m의 평지이고, 산18-1·산27-1 유적은 해발 71~126m의 구릉상에 위치하며, 약 0.5~1㎞ 떨어져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 산18-1, 산27-1, 484-2 일원에 위치한다. 경부 고속 철도 건설에 앞서 2004~2006년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덕천리 484-2) 과 신라문화유산연구원(덕천리 산18-1·산27-1)이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64기,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1기, [[구덩이|구덩이]], [[돌더미|돌더미(集石)]], [[구|도랑(溝)]] 및 [[원삼국시대|원삼국 시대]], [[통일신라|통일 신라]]~[[조선시대|조선 시대]]까지 다양한 유구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덕천리 평야의 북쪽 일부인 현동들의 북편 구릉 말단부와 현동지 부근의 고안골 북편 구릉에 입지하다. 북쪽으로는 성부산과 수부산, 탈바꿈산 등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484-2 유적은 해발 62m의 평지이고, 산18-1·산27-1 유적은 해발 71~126m의 구릉상에 위치하며, 약 0.5~1㎞ 떨어져 있다.


평지에 위치하는 집자리는 3개 무리(群)로 나뉘며 약 100m 떨어져 있다. 중앙에 위치하는 무리가 가장 크고 밀집도가 높다. 구릉 위에 입지하는 집자리는 완만한 구릉 남사면에 위치한다. 형태는 장방형, 방형이 대부분이며, 세장방형도 일부 확인되었다. 규모는 길이 2.8~7.4m, 너비 2.3~4.5m로 중소형에 속하며, 평지의 11호는 세장방형으로, 길이 14.38m, 너비 4.52m, 깊이 0.3m로 가장 크다.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불 다짐 처리하였으며, 평지는 구릉지보다 불다짐한 바닥이 많다. 내부 시설은 [[화덕자리|화덕 자리]], [[기둥구멍|기둥 구멍]], [[벽도랑|벽 도랑(壁溝)]]이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바닥을 얕게 파거나 바닥에 시설 없이 1~3개를 설치하였다. 기둥 구멍은 바닥에 4·6·8주식(柱式)으로 배치하고, 벽 아래에서도 일정한 간격으로 확인되었다. 벽 도랑은 구릉지에서 다수 확인되었으며, [[외부돌출구|외부 돌출구]]와 연결되기도 한다. 벽 기둥 구멍과 함께 설치된 벽 도랑은 벽을 세우기 위한 기초 시설로, 내부에는 불탄 판재와 나무 기둥이 흙벽 덩어리가 함께 확인되기도 한다.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는 모서리에 1개 또는 2개가 세트로 설치되는데 대체로 북동쪽에 위치한다. 출입구 시설은 평지에 있는 14호 남쪽 긴벽에서 평면 반원형으로 돌출되어 확인된다. 길이는 0.8m로 바닥보다 0.15m 높게 설치되었다. 선반 시설은 평지에 있는 23호에서 확인되는데 짧은 벽 전체를 2단으로 굴착해 바닥보다 0.2m 정도 높게 만들었다. 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는 구릉지에서만 확인되고 [[무시설식|무시설식(無施設式)]], [[돌두름식|돌 두름식(圍石式)]], [[암거식|암거식(暗渠式)]]으로 나뉜다. 집자리는 자연 폐기 이외에 화재 폐기와 집석 폐기가 확인되었다.
평지에 위치하는 집자리는 3개 무리(群)로 나뉘며 약 100m 떨어져 있다. 중앙에 위치하는 무리가 가장 크고 밀집도가 높다. 구릉 위에 입지하는 집자리는 완만한 구릉 남사면에 위치한다. 형태는 장방형, 방형이 대부분이며, 세장방형도 일부 확인되었다. 규모는 길이 2.8~7.4m, 너비 2.3~4.5m로 중소형에 속하며, 평지의 11호는 세장방형으로, 길이 14.38m, 너비 4.52m, 깊이 0.3m로 가장 크다.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불 다짐 처리하였으며, 평지는 구릉지보다 불다짐한 바닥이 많다. 내부 시설은 [[화덕자리|화덕 자리]], [[기둥구멍|기둥 구멍]], [[벽도랑|벽 도랑(壁溝)]]이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바닥을 얕게 파거나 바닥에 시설 없이 1~3개를 설치하였다. 기둥 구멍은 바닥에 4·6·8주식(柱式)으로 배치하고, 벽 아래에서도 일정한 간격으로 확인되었다. 벽 도랑은 구릉지에서 다수 확인되었으며, 외부 돌출구와 연결되기도 한다. 벽 기둥 구멍과 함께 설치된 벽 도랑은 벽을 세우기 위한 기초 시설로, 내부에는 불탄 판재와 나무 기둥이 흙벽 덩어리가 함께 확인되기도 한다.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는 모서리에 1개 또는 2개가 세트로 설치되는데 대체로 북동쪽에 위치한다. 출입구 시설은 평지에 있는 14호 남쪽 긴벽에서 평면 반원형으로 돌출되어 확인된다. 길이는 0.8m로 바닥보다 0.15m 높게 설치되었다. 선반 시설은 평지에 있는 23호에서 확인되는데 짧은 벽 전체를 2단으로 굴착해 바닥보다 0.2m 정도 높게 만들었다. 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는 구릉지에서만 확인되고 무시설식(無施設式), 돌 두름식(圍石式), 암거식(暗渠式)으로 나뉜다. 집자리는 자연 폐기 이외에 화재 폐기와 집석 폐기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겹아가리토기|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 [[짧은빗금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짧은 빗금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短斜線口脣刻目孔列土器)]], [[짧은빗금무늬골아가리토기|짧은 빗금무늬 골아가리 토기(短斜線口脣刻目土器)]], [[짧은빗금구멍무늬토기|짧은 빗금 구멍무늬 토기(短斜線孔列土器)]], [[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짧은빗금무늬토기|짧은 빗금무늬 토기(短斜線文土器)]],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가로줄무늬토기|가로줄무늬 토기(橫線文土器)]], [[간돌검|간 돌검]], [[돌살촉|돌살촉]], [[반달돌칼|반달 돌칼]], [[돌도끼|돌도끼(石斧)]], [[숫돌|숫돌(砥石)]], [[가락바퀴|가락바퀴]], [[갈판|갈판]], [[갈돌|갈돌]] 등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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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널무덤(484-2)은 평지 북쪽에 치우쳐 있고 북벽과 동벽이 유실된 상태다. 남아 있는 돌널은 길이 0.8m, 너비 0.4m이다. [[묘광|무덤 구덩이(墓壙)]]를 파고 [[판돌|판돌]]을 세워 벽을 만들고 구덩이와 벽 사이는 길이 10~15㎝의 [[강돌|강돌]]과 흙으로 보강하였다. 바닥은 길이 10~20㎝의 납작한 강돌을 1겹으로 3~4열 깔았다. 바닥에는 다량의 목탄과 함께 사람 뼈가 소량 관찰되고 바닥석과 벽석이 불을 맞아 돌널 내에서 화장한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붉은 간 토기 편, 돌검, [[슴베없는돌살촉|슴베 없는 돌살촉(無莖式石鏃)]], [[슴베돌살촉|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이 출토되었다.
돌널무덤(484-2)은 평지 북쪽에 치우쳐 있고 북벽과 동벽이 유실된 상태다. 남아 있는 돌널은 길이 0.8m, 너비 0.4m이다. [[묘광|무덤 구덩이(墓壙)]]를 파고 판돌을 세워 벽을 만들고 구덩이와 벽 사이는 길이 10~15㎝의 강돌과 흙으로 보강하였다. 바닥은 길이 10~20㎝의 납작한 강돌을 1겹으로 3~4열 깔았다. 바닥에는 다량의 목탄과 함께 사람 뼈가 소량 관찰되고 바닥석과 벽석이 불을 맞아 돌널 내에서 화장한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붉은 간 토기 편, 돌검, [[슴베없는돌살촉|슴베 없는 돌살촉(無莖式石鏃)]], [[슴베돌살촉|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목탄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484-2 유적 집자리 2호 295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1190년), 8호 285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50년), 25호 298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220년), 돌널무덤 277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940년)의 결과를 얻었다.
유적의 연대는 목탄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484-2 유적 집자리 2호 295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1190년), 8호 285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50년), 25호 298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220년), 돌널무덤 277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940년)의 결과를 얻었다.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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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경주_덕천리_유적_집자리_및_구덩이_유구_출토_토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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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5년 6월 23일 ~ 2006년 9월 19일 || 경주 덕천리유적 || 2008 || 신라문화유산조사단
|-
| 시굴조사 || 2002년 11월 ~ 2003년 3월 || 경주 덕천리유적Ⅰ || 2008 || 영남문화재연구원, 국립경주박물관
|-
| 발굴조사 || 2004년 6월 18일 ~ 2006년 12월 23일 || 경주 덕천리유적Ⅰ || 2008 || 영남문화재연구원
|}
==참고문헌==
* 신라문화유산조사단. (2008). <i>경주 덕천리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1519619
* 영남문화재연구원. (2008). <i>경주 덕천리유적Ⅰ</i>.  https://www.riss.kr/link?id=M11550759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18 기준 최신판


덕천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경주 덕천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 산18-1, 산27-1, 484-2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돌널무덤, 구덩이, 돌더미, 도랑, 붉은 간 토기, 겹아가리 토기,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토기, 간 돌검, 반달 돌칼, 돌살촉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신영애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 산18-1, 산27-1, 484-2 일원에 위치한다. 경부 고속 철도 건설에 앞서 2004~2006년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덕천리 484-2) 과 신라문화유산연구원(덕천리 산18-1·산27-1)이 조사하여 집자리 64기, 돌널무덤(石棺墓) 1기, 구덩이, 돌더미(集石), 도랑(溝)원삼국 시대, 통일 신라~조선 시대까지 다양한 유구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덕천리 평야의 북쪽 일부인 현동들의 북편 구릉 말단부와 현동지 부근의 고안골 북편 구릉에 입지하다. 북쪽으로는 성부산과 수부산, 탈바꿈산 등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484-2 유적은 해발 62m의 평지이고, 산18-1·산27-1 유적은 해발 71~126m의 구릉상에 위치하며, 약 0.5~1㎞ 떨어져 있다.

평지에 위치하는 집자리는 3개 무리(群)로 나뉘며 약 100m 떨어져 있다. 중앙에 위치하는 무리가 가장 크고 밀집도가 높다. 구릉 위에 입지하는 집자리는 완만한 구릉 남사면에 위치한다. 형태는 장방형, 방형이 대부분이며, 세장방형도 일부 확인되었다. 규모는 길이 2.8~7.4m, 너비 2.3~4.5m로 중소형에 속하며, 평지의 11호는 세장방형으로, 길이 14.38m, 너비 4.52m, 깊이 0.3m로 가장 크다.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불 다짐 처리하였으며, 평지는 구릉지보다 불다짐한 바닥이 많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이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바닥을 얕게 파거나 바닥에 시설 없이 1~3개를 설치하였다. 기둥 구멍은 바닥에 4·6·8주식(柱式)으로 배치하고, 벽 아래에서도 일정한 간격으로 확인되었다. 벽 도랑은 구릉지에서 다수 확인되었으며, 외부 돌출구와 연결되기도 한다. 벽 기둥 구멍과 함께 설치된 벽 도랑은 벽을 세우기 위한 기초 시설로, 내부에는 불탄 판재와 나무 기둥이 흙벽 덩어리가 함께 확인되기도 한다. 저장 구덩이는 모서리에 1개 또는 2개가 세트로 설치되는데 대체로 북동쪽에 위치한다. 출입구 시설은 평지에 있는 14호 남쪽 긴벽에서 평면 반원형으로 돌출되어 확인된다. 길이는 0.8m로 바닥보다 0.15m 높게 설치되었다. 선반 시설은 평지에 있는 23호에서 확인되는데 짧은 벽 전체를 2단으로 굴착해 바닥보다 0.2m 정도 높게 만들었다. 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는 구릉지에서만 확인되고 무시설식(無施設式), 돌 두름식(圍石式), 암거식(暗渠式)으로 나뉜다. 집자리는 자연 폐기 이외에 화재 폐기와 집석 폐기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붉은 간 토기, 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 짧은 빗금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短斜線口脣刻目孔列土器), 짧은 빗금무늬 골아가리 토기(短斜線口脣刻目土器), 짧은 빗금 구멍무늬 토기(短斜線孔列土器),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짧은 빗금무늬 토기(短斜線文土器),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가로줄무늬 토기(橫線文土器), 간 돌검, 돌살촉, 반달 돌칼, 돌도끼(石斧), 숫돌(砥石), 가락바퀴, 갈판, 갈돌 등이 확인되었다.

돌널무덤(484-2)은 평지 북쪽에 치우쳐 있고 북벽과 동벽이 유실된 상태다. 남아 있는 돌널은 길이 0.8m, 너비 0.4m이다. 무덤 구덩이(墓壙)를 파고 판돌을 세워 벽을 만들고 구덩이와 벽 사이는 길이 10~15㎝의 강돌과 흙으로 보강하였다. 바닥은 길이 10~20㎝의 납작한 강돌을 1겹으로 3~4열 깔았다. 바닥에는 다량의 목탄과 함께 사람 뼈가 소량 관찰되고 바닥석과 벽석이 불을 맞아 돌널 내에서 화장한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붉은 간 토기 편, 돌검, 슴베 없는 돌살촉(無莖式石鏃), 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목탄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484-2 유적 집자리 2호 295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1190년), 8호 285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50년), 25호 298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220년), 돌널무덤 277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940년)의 결과를 얻었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5년 6월 23일 ~ 2006년 9월 19일 경주 덕천리유적 2008 신라문화유산조사단
시굴조사 2002년 11월 ~ 2003년 3월 경주 덕천리유적Ⅰ 2008 영남문화재연구원, 국립경주박물관
발굴조사 2004년 6월 18일 ~ 2006년 12월 23일 경주 덕천리유적Ⅰ 2008 영남문화재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