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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류는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와 [[손잡이달린바리토기|손잡이 달린 바리 토기(把手附鉢形土器)]]에 낟알무늬를 새긴 [[검단리식토기|검단리식 토기]]가 완전한 상태로 확인되었다. [[석기|석기류]]는 [[반달돌칼|반달 돌칼]],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미완성품, 숫돌(砥石)이 확인되어 집자리에서 석기 제작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미완성 제품의 석기는 타격 기법으로 형태를 다듬은 것으로, 집자리에서 파편이 확인되지 않는 점으로 볼 때 외부에서 형태를 가공하고 집자리에서 완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적의 시기는 단독무늬와 민무늬가 중심인 토기로 볼 때 [[검단리유형|검단리 유형]] 단계로 추정된다. | 토기류는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와 [[손잡이달린바리토기|손잡이 달린 바리 토기(把手附鉢形土器)]]에 낟알무늬를 새긴 [[검단리식토기|검단리식 토기]]가 완전한 상태로 확인되었다. [[석기|석기류]]는 [[반달돌칼|반달 돌칼]],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미완성품, 숫돌(砥石)이 확인되어 집자리에서 석기 제작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미완성 제품의 석기는 타격 기법으로 형태를 다듬은 것으로, 집자리에서 파편이 확인되지 않는 점으로 볼 때 외부에서 형태를 가공하고 집자리에서 완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적의 시기는 단독무늬와 민무늬가 중심인 토기로 볼 때 [[검단리유형|검단리 유형]] 단계로 추정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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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2014). <i>울주 구미리 709-3번지 유적</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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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8일 (화) 09:49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울산 구미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구미리 709-3 |
| 관련 정보 | |
| 성격 | 집자리 |
| 키워드 | 검단리 유형, 검단리식 토기, 구멍무늬 토기, 돌대팻날, 반달 돌칼, 집자리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황창한 |
설명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구미리 709-3에 위치한다. 공장 신축으로 2008년 조사하여, 집자리 15기 및 삼국 시대 무덤이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전체적으로 파괴가 심하지만 형태는 잘 남아 있다. 집자리 15기 중 6기가 서로 중복되었다. 형태는 장방형이고, 기둥의 배치에 따라 4·6주식(柱式)으로 구분된다. 규모는 13호가 길이 5.75m, 너비 3.1m로 가장 크며, 내부에는 화덕 자리 1개를 갖추고 있다. 출토 유물은 석기와 토기류가 소량 확인되었다.
토기류는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와 손잡이 달린 바리 토기(把手附鉢形土器)에 낟알무늬를 새긴 검단리식 토기가 완전한 상태로 확인되었다. 석기류는 반달 돌칼,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미완성품, 숫돌(砥石)이 확인되어 집자리에서 석기 제작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미완성 제품의 석기는 타격 기법으로 형태를 다듬은 것으로, 집자리에서 파편이 확인되지 않는 점으로 볼 때 외부에서 형태를 가공하고 집자리에서 완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적의 시기는 단독무늬와 민무늬가 중심인 토기로 볼 때 검단리 유형 단계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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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2014). 울주 구미리 709-3번지 유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