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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거푸집[鎔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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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푸집은 청동기가 현지에서 제작된 것을 알려주는 직접적인 증거로 기원전 1,000년기 전반의 비파형동검 문화 시기에 랴오시·랴오둥 지역에서 시작해서 1,000년기 후반의 세형동검 문화 시기에 이르면, 한반도 지역에서도 청동기를 활발하게 생산해서 사용하였음을 알려 준다.
거푸집은 청동기가 현지에서 제작된 것을 알려주는 직접적인 증거로 기원전 1,000년기 전반의 비파형동검 문화 시기에 랴오시·랴오둥 지역에서 시작해서 1,000년기 후반의 세형동검 문화 시기에 이르면, 한반도 지역에서도 청동기를 활발하게 생산해서 사용하였음을 알려 준다.
==참고문헌==
* 윤용현. (2013). <i>청동 유물의 주조와 복원기술 연구</i>. (박사 학위 논문). 고려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13241069
* 이강승 외. (2011). <i>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거푸집과 청동기</i>.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https://museum.ssu.ac.kr/학술도서발간/학술연구서
* 이건무. (2005). <i>한국 선사시대 청동기 제작과 거푸집</i>.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https://dl.nanet.go.kr/search/searchInnerDetail.do?controlNo=KINX2007065913
* 조진선. (2007). 전 영암 용범의 연대와 출토지. <i>호남고고학보, 25</i>, 45-73. https://www.riss.kr/link?id=A75397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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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16 기준 최신판


거푸집
기본 정보
동의어 용범, 주형
시대 청동기 시대
지역 랴오시
관련 정보
유적 완주 갈동 유적, 부여 송국리 유적, 시거우다두이 유적, 산완쯔 유적, 타완춘 유적, 강상 유적, 얼다오허쯔 유적
키워드 주조, 주물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조진선



설명

거푸집은 구리(銅)나 쇠(鐵) 같은 금속을 녹여 만들기 위한 물건의 모양대로 빈 속을 갖춘 틀을 말하며, ‘용범(鎔范)’이나 ‘주형(鑄型)’이라고도 한다.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물건을 만드는 것은 주조(鑄造)라고 한다. 거푸집은 주로 돌이나 흙으로 만들며, 쇠로 만들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얼리터우(二里頭)나 은허(殷墟) 같은 상(商)나라 유적에서 청동기를 주조하였던 흙 거푸집(土范)이 다량 발견된 바 있다. 그러나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에 분포하는 비파형동검 문화권에서는 주로 돌 거푸집(石范)을 사용해서 청동기를 주조하였다.

이러한 비파형동검 문화의 청동기 주조(鑄造) 기술은 세형동검 문화로 이어지는데, 이형 청동기(異形銅器)청동 방울(銅鈴), 고운무늬 거울(精文鏡)에 대한 연구에서 보는 것처럼 흙 거푸집을 이용해서 주조한 사례도 있다. 그래서 한국 청동기 문화권에서는 먼저 돌 거푸집을 사용해서 청동기를 주조(鑄造)하기 시작했으며, 점차 흙 거푸집도 사용하게 되었다. 한국 청동기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일본 야요이 시대(彌生時代)의 청동기 역시 돌 거푸집을 많이 사용하였지만 최근에는 흙 거푸집의 사례도 확인되고 있다.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에서는 거푸집의 돌감으로 입자가 곱고 파거나 새기기 쉬운 활석(滑石)을 가장 많이 사용했으며, 편암(片巖)이나 사암(砂巖), 각섬석암(角閃石巖)도 일부 사용하였다. 일본 열도의 북부 규슈(北部九州)에서는 대부분 석영반암(石英斑岩)을 사용해서 돌 거푸집을 만들었다.

돌 거푸집은 대부분 두 짝이 한 쌍을 이루는데, 물건의 형태와 크기에 따라 약간씩 다르게 만든다. 검이나 도끼 등은 두 짝 모두에 동일한 형태로 기물(器物)의 주형을 새기고 이를 합범해서 주조하는데, 이를 쌍합범(雙合范)이라고 한다. 이와 달리 송곳(銅錐)이나 낚시바늘 등은 거푸집 한 짝에만 기물의 주형을 새기고 여기에 밋밋한 다른 한 짝을 합범해서 주조하는데, 이를 단합범(單合范)이라고 한다. 검(銅劍)이나 거울(銅鏡)처럼 속이 채워져 있는 청동기들은 내범(內范)이 필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청동 투겁창(銅矛)이나 청동 도끼(銅斧)처럼 자루를 끼울 투겁(銎部)을 만들기 위해서는 별도로 내범을 만든 다음 외범(外范)과 조립해서 거푸집을 완성해야 한다. 돌 거푸집은 돌의 재질과 기물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한 번 만들어 수 십번까지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다. 검, 청동 투겁창,청동 꺾창(銅戈) 등의 무구(武具)나 청동 도끼, 청동 자귀(銅錛), 청동 끌(銅鑿), 청동 지우개(銅鍦) 등의 공구(工具)처럼 형태가 단순한 물건을 만드는 데 주로 사용한다. 문양이 성긴 거친무늬 거울(粗文鏡)도 돌 거푸집을 사용해서 만들었다. 대체로 복잡한 모양이나 정교한 무늬를 갖춘 제품을 돌 거푸집으로 만들기는 어렵지만 잔무늬 거울을 질이 좋은 활석 거푸집으로 제작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복잡하고 정교한 물건을 만들기는 쉽지만 재사용하기는 어려운 흙 거푸집을 만드는 방법은 청동기 종류에 따라 다양하다. 첫째, 주물토(鑄物土)로 만든 흙판에 물건의 형태를 새기고 나서 불에 구워서 만든 방법이다.

둘째, 밀랍(蜜蠟)으로 만들고자 하는 물건의 모형을 만들고 그 위에 주물토를 씌워 거푸집의 형태를 만든 다음 열을 가해서 밀랍을 녹여내서 완성하는 방법이다. 셋째, 나무나 금속 등으로 물건의 모형을 만들고, 이를 암수 두 틀 속에 넣어 주물사(鑄物砂)로 다지고 나서 모형을 빼내어 완성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주물사 거푸집은 다른 흙 거푸집들과는 달리 불에 굽지 않기 때문에 만들기가 쉽고 거푸집을 깨뜨려 물건을 꺼내기도 쉽다.

비파형동검 문화에 속하는 청동기 거푸집들은 랴오시(遼西)와 랴오둥(遼東) 지역에서 많이 확인된다. 차오양 시거우다두이(朝陽 西溝大隊)아오한기 산완쯔(敖漢旗 山灣子), 랴오양 타완춘(遼陽 塔灣村) 유적 등에서는 비파형동검을 주조한 돌 거푸집들이 출토되었다. 다롄 강상(大連 崗上), 랴오양 얼다오허쯔(遼陽 二道河子) 유적 등에서는 청동 도끼와 청동 살촉(銅鏃) 등을 주조한 돌 거푸집들이 확인되었다. 한반도에서도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부채 도끼(扇形銅斧) 거푸집이 출토되는 등 여러 곳에서 돌 거푸집들이 확인되었다.

세형동검 문화에 속하는 여러 유적들에서 다양한 종류의 돌 거푸집들이 확인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傳 영암 거푸집 일괄 유물과 완주 갈동 거푸집 등을 들 수 있다. 전 영암 거푸집 일괄 유물은 모두 8조 14점인데, 두 짝이 모두 남아 있는 것이 6조 12점이며, 한 짝만 남아있는 것이 1점, 한 짝의 파편만 남아 있는 것이 1점이다. 傳 영암 거푸집 일괄 유물에는 세형동검, 꺾창, 창과 도끼, 자귀, 끌, 송곳, 낚시바늘 등 11종 26점이 있다. 완주 갈동 거푸집은 1쌍을 이루는데, 앞·뒷면에 세형동검과 꺾창의 주형이 새겨져 있다.

거푸집은 청동기가 현지에서 제작된 것을 알려주는 직접적인 증거로 기원전 1,000년기 전반의 비파형동검 문화 시기에 랴오시·랴오둥 지역에서 시작해서 1,000년기 후반의 세형동검 문화 시기에 이르면, 한반도 지역에서도 청동기를 활발하게 생산해서 사용하였음을 알려 준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