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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1일 (수) 12:03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시대 | 신석기 시대 |
| 지역 | 한반도 남부 지역 |
| 관련 정보 | |
| 유적 | 기장 삼성리 유적, 부산 동삼동 조도 조개더미, 여수 안도 조개더미, 울주 신암리 유적, 통영 우도 울막개 조개더미, 일본 고시다카 유적, 일본 메오토이와 유적 |
| 키워드 | 신석기 시대 토기 문화, 일본의 신석기 문화, 구루하마식 토기, 나카쓰식 토기, 난부쿠지식 토기, 도도로키식 토기, 사카노시타식 토기, 소바타식 토기, 아타카식 토기, 후나모토식 토기, 가네자키식 토기, 가스가식 토기, 기타구네야마식 토기, 나미키식 토기, 니시바라식 토기, 니시카라쓰식 토기, 니시카와즈식 토기, 마소승문계 토기, 미만다식 토기, 미타라이a식 토기, 세노칸식 토기, 이즈미식 토기, 히라카고이식 토기, 고이케바루 상층식 토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24 |
| 집필자 | 최종혁 |
설명
신석기 시대 토기 문화를 구분하는 기준은 토기의 형태(기종)와 무늬의 형식적 특징이다. 형태는 토기 용도와 관련되며, 먹거리 등을 보관하는 저장기(바리·독·항아리 등), 식료를 조리하는 조리기(바리·독·시루 등), 조리된 음식을 담아 내는 식기(얕은 바리·사발·접시 등), 의례 등 특수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의례기(제기·미니어처·붉은 칠 토기 등)로 나눌 수 있다. 무늬는 시문 방법, 시문 부위, 모티브 등을 기준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요소가 한일 양 지역의 반입품, 모방품, 재지화된 토기에 반영되어 교류의 증거로 남아 있다.
신석기 시대 한일 토기 교류의 증거는 주로 한반도 남해안 지역과 일본 쓰시마를 비롯해 북부 규슈(九州) 지역에서 발견된다. 한반도 신석기 시대 조기의 덧무늬[隆起文] 토기와 규슈 지역의 도도로키 B식(轟B式) 토기, 한반도 신석기 시대 전기의 영선동식 토기와 규슈 지역의 소바타식(曾畑式) 토기는 그 관련성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한반도 남해안 유적 토기와 일본 쓰시마(対馬)나 북부 규슈 지역에서 출토되는 반입품 토기의 유사성은 단편적으로 연구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토기나 석기 등 유물의 교류뿐 아니라 생업 형태와 문화상 교류 연구도 진전되고 있다.
시간상으로는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의 전 시기, 일본에서는 초창기를 제외한 시기에 한일 간의 토기 교류가 확인된다. 여수 안도 조개더미에서는 일본 조몬(繩文) 시대 조기 말에 해당하는 쿠바마식(苦浜式) 토기와 원통형의 눌러찍은 무늬[押捺文] 토기가 출토된다. 도도로키 B식 토기는 굴곡형 토기, 무늬 시문 방법, 기면 조정(패각조흔) 등이 우리나라 덧무늬 토기와 유사해 토기 간의 형식적인 연관성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남해안뿐 아니라 일본 쓰시마섬(對馬島)에서도 우리나라 덧무늬 토기(반입품)가 출토되어, 양 지역이 활발히 교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전기에는 무늬 새기개[施文具]를 이용해 토기의 표면을 찌르거나, 눌러 당기거나, 선을 그어 시문한 무늬들이 주요 무늬로 변화하여 한반도와 일본 모두 이전 시기와는 전혀 다른 무늬가 우위를 점한다. 한반도에서는 덧무늬가 쇠퇴하고 덧무늬의 부속 무늬였던 찌른 무늬[刺突文], 눌러그은 무늬[押引文], 가는 새김 줄무늬[細沈線文] 등이 주요 무늬 요소가 된 소위 영선동식 토기가 중심을 이룬다. 일본 조몬 시대 전기에도 무늬 시문 방법이나 기형(器形) 등이 앞 시기와 차이를 보이는 소바타식(曾畑式) 토기가 주류가 된다. 그런데 니시카라쓰(西唐津) 해저 유적에서 출토한 토기군은 소바타식 토기보다 영선동 토기와 더 유사하다. 조기와 비교하면 반입품은 현격히 줄어드는 반면 모티브나 시문 기법 등이 유사한 토기 무늬는 양 지역에서 확인되어, 신석기 시대 전기에는 양 지역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매우 유사한 토기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신석기 시대 중기는 3부위 시문 토기인 빗살무늬 토기의 광역화, 간석기의 보편화, 농경 활동의 정착 등 신석기 시대 문화가 가장 크게 변화하는 시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청천강 이남이 중심이 되며, 남부 지역도 3부위 시문 토기가 확산되고 활발하게 행해지던 외양성 어로는 쇠퇴한다. 일본에서는 전기에 폭발한 기카이-아카호야(鬼界-アカホヤ) 화산의 영향으로 생활의 주 무대가 육지에서 바다로 전환된다. 이에 양 지역의 교류 활동이 줄고 관계가 약해지며, 일본 조몬 시대 중기부터는 전기와 전혀 다른 무늬가 나타난다. 그렇지만 일본 쓰시마섬에서는 한반도에서 반입된 토기가 여전히 확인된다.
후기와 말기는 우리나라 남부 지역에서 잠시 주춤했던 어로 활동이 다시 활발해지고, 일본에서도 어로 활동이 가장 빈번해지는 시기이다. 중기에 약해졌던 양 지역의 교류 관계가 다시 왕성해짐에 따라, 반입품이나 모방품 토기가 확인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기장 삼성리 유적, 울주 신암리 유적, 통영 우도 울막개 조개더미 등 남해안 유적에서 사카노시타식(坂の下式), 가네자키식(鐘崎式), 이즈미식(出水式), 고이케바루 상층식(小池原上層式) 토기 등 조몬 시대 후기 토기가 다수 출토한다. 이 토기들은 바탕흙[胎土]에 활석이 함유되어 있으며 시문 기법이나 무늬의 모티프, 형태 등이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토기와는 달라 지금까지는 완전히 이질적인 반입품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시문 기법이나 무늬 구성 등이 조몬 토기와 다르다는 점, 최근 발견된 조몬 토기에는 활석이 혼입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반입품이 아니라 모방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모방품은 조몬 사람들이 한반도 남해안에 건너와 제작했을 가능성이 크므로, ‘조몬계 토기’라고 부른다. 쓰시마섬과 북부 규슈 지역에서도 겹아가리 토기를 비롯해 항아리 모양 토기, 손잡이 달린 토기 등 우리나라 후·말기 토기의 반입품과 모방품이 확인된다.
한일 간의 토기 문화 교류는 시기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신석기 시대 전 시기에 걸쳐 전개되었다. 조기에는 우리나라 남해안과 일본 쓰시마, 서북 규슈를 중심으로 교류 양상을 보이며, 전기에는 양 지역에서 공통된 토기 문화를 형성하였다. 중기에는 약간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후기 이후에는 다시 활발해진다. 그리고 후기와 말기에는 토기보다는 조개 팔찌를 비롯한 장신구를 교류하였으며, 정신적인 교류도 함께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교류의 배경에는 생업 활동과 자연환경의 변화가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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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최종혁. (2008). 신석기시대 남부지방 문물교류 양상: 생업을 중심으로. 석당논총, 40, 95-134. https://www.riss.kr/link?id=A82604505
- 廣瀨雄一. (2022). 대한해협을 둘러싼 신석기시대 교류연구. (박사 학위 논문). 부산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16457528
- 木村幾多郞. (1997). 交易のはじまり. 西谷 正(編), 考古学による日本歷史. 10, 対外交涉. 雄山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