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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를 참고할 때 유적은 청동기 시대의 이른 시기에 점유된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의 형태와 출토 유물의 형식 등을 보면 미사리 유형의 늦은 단계부터 점진적인 가락동 유형으로의 변화 양상이 관찰된다. 대평리 유적 발굴 조사의 가장 큰 성과는 호서 지역의 충적지에도 대단위 청동기 시대 취락이 존재함을 실증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또한 그동안이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미사리 유형의 실체를 확인함으로써 청동기 시대의 시작과 관련된 기초 자료를 확보하였다는 점에도 의미를 둘 수 있다. |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를 참고할 때 유적은 청동기 시대의 이른 시기에 점유된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의 형태와 출토 유물의 형식 등을 보면 미사리 유형의 늦은 단계부터 점진적인 가락동 유형으로의 변화 양상이 관찰된다. 대평리 유적 발굴 조사의 가장 큰 성과는 호서 지역의 충적지에도 대단위 청동기 시대 취락이 존재함을 실증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또한 그동안이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미사리 유형의 실체를 확인함으로써 청동기 시대의 시작과 관련된 기초 자료를 확보하였다는 점에도 의미를 둘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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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백제문화재연구원. (2012). <i>행정중심복합도시 부지 내 3-1-A지점 연기 대평리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2791838 | |||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12). <i>행정중심복합도시 부지 내 3-1-C지점 연기 대평리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3216871 | |||
* 한국고고환경연구소. (2012). <i>행정중심복합도시 부지 내 3-1-B지점 연기 대평리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4783211 | |||
* 한국고고환경연구소. (2017). <i>행정중심복합도시 부지 내 3-1-D지점 연기 대평리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6267902 |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5월 4일 (월) 11:21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세종 대평동 유적, 연기 대평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세종특별자치시 대평동 83-4 일원(舊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대평리)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구덩이, 논, 미사리 유형, 역삼동 유형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손준호 |
설명
세종특별자치시 대평동 83-4 일원(舊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대평리)에 위치한다. 유적은 금강 남안의 자연 제방 정상부를 포함하여 해발 17~18m의 전사면과 후사면 위쪽에 형성되어 있다. 발굴은 4개 지점으로 나누어 실시되었는데, 대평들에 형성된 2개의 자연 제방 중 서쪽에 A지점, 동쪽에 B~D지점이 각각 자리한다. 2009년 6월부터 2010년 8월까지 A~C지점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이후 2012년 11월부터 2015년 4월까지 수 차례에 걸쳐 D지점의 추가 조사가 이루어졌다.
청동기 시대의 유구는 A지점에서 집자리 12기와 작은 구덩이 3기, B지점에서 집자리 20기와 작은 구덩이 1기, C지점에서 집자리 27기, 작은 구덩이 3기와 열을 이룬 기둥 구멍, D지점에서 집자리 11기와 논이 조사되었다. 유구의 분포는 주로 자연 제방의 방향을 따라 배치되는데, 중복 관계도 다수 확인되었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방형, 장방형, 세장방형으로 구분되며, 이가운데 장방형이 다수를 차지한다. 집자리의 내부 시설은 돌 깐 돌 두름식 혹은 돌 두름식 화덕 자리, 무시설식 혹은 구덩식 화덕 자리, 저장 구덩이, 도랑 등이 확인 되었으며, 일부 집자리에서는 기둥 받침돌도 관찰된다. 한편, 다른 유적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자료로 C지점의 열을 이룬 기둥 구멍과 D지점의 논이 주목된다. 전자의 기둥 구멍은 크게 3개의 열을 이루는데, 2~3개씩이 약 1.5m의 간격으로 설치되어 짧은 것은 길이 65m, 긴 것은 140m에 달한다. 후자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를 바탕으로 가장 이른 시기의 논으로 보고되었으나, 상대적으로 불확실한 토양 시료에 의한 결과이기 때문에 앞으로 자료의 증가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
유물은 돋을띠 골무늬 토기, 손잡이 달린 토기,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골아가리 토기, 슴베 없는 간 돌살촉, 장방형 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유물의 출토 양상이나 집자리의 모양 등을 볼 때 청동기 시대 가장 이른 시기의 미사리 유형과 후속하는 가락동 유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양자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고 점진적인 변화상을 보이기 때문에, 공백기 없이 점유된 취락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출토 유물 가운데 A지점 5호, B지점 KC-002호 집자리에서 발견된 새김무늬 토기는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자료로서 문양의 출자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된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를 참고할 때 유적은 청동기 시대의 이른 시기에 점유된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의 형태와 출토 유물의 형식 등을 보면 미사리 유형의 늦은 단계부터 점진적인 가락동 유형으로의 변화 양상이 관찰된다. 대평리 유적 발굴 조사의 가장 큰 성과는 호서 지역의 충적지에도 대단위 청동기 시대 취락이 존재함을 실증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또한 그동안이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미사리 유형의 실체를 확인함으로써 청동기 시대의 시작과 관련된 기초 자료를 확보하였다는 점에도 의미를 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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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백제문화재연구원. (2012). 행정중심복합도시 부지 내 3-1-A지점 연기 대평리 유적. https://www.riss.kr/link?id=M12791838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12). 행정중심복합도시 부지 내 3-1-C지점 연기 대평리 유적. https://www.riss.kr/link?id=M13216871
- 한국고고환경연구소. (2012). 행정중심복합도시 부지 내 3-1-B지점 연기 대평리 유적. https://www.riss.kr/link?id=M14783211
- 한국고고환경연구소. (2017). 행정중심복합도시 부지 내 3-1-D지점 연기 대평리 유적. https://www.riss.kr/link?id=M16267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