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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충남문화재연구원. (2008). <i>부여 나복리 통실·석우리·원문리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6901197 | |||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04). <i>부여 나복리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i>. https://www.riss.kr/link?id=M10013779 |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5월 4일 (월) 10:46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부여 나복리 유적, 부여 나복리 통실·석우리·원문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유적은 충청남도 부여군 나복리 456(나복리), 나복리 528·석우리 74-14(나복리 통실·석우리)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널무덤, 독무덤, 송국리식 집자리, 송국리 유형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창호·황재훈 |
설명
유적은 충청남도 부여군 나복리 456(나복리), 나복리 528·석우리 74-14(나복리 통실·석우리) 일원에 위치한다. 나복리 유적은 2002년 부여 종합 체육 시설 조성 과정에서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집자리와 돌널무덤(石棺墓), 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널무덤(土壙墓), 독무덤(甕棺墓) 등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송국리식으로, 평면 형태는 원형과 방형으로 구분된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와 집자리의 구조로 보아 방형이 원형보다 선행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규모가 큰 9호와 20호는 타원형 구덩이를 중심으로 4개의 기둥 구멍이 배치되어, 크기에 따라 기둥 배치에 차이를 보인다. 특히 9호는 내부 벽가에 장방형의 수혈 2기가 확인되어 특징적이다. 12호와 13호에서는 타원형 구덩이가 장축 방향에 맞춰 복수로 배치되어 있어, 증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은 집자리와 60m 정도 거리를 두고 별도의 공간에 조성되어 있다. 특히 규모가 큰 1호 돌널무덤을 중심으로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널무덤이 둘러싸고 있다.
나복리 통실·석우리 유적은 부여 규암 우회 도로 건설 공사에 따라 2005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금강 변의 충적지와 낮은 구릉지에 자리한다. 조사 결과 나복리 통실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및 토기 매납 유구, 소성 유구, 추정 경작지 등이 석우리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와 구덩이, 독무덤이 조사되었다.
나복리 통실·석우리 유적의 집자리는 구릉에 자리하며, 송국리식이다. 나복리 통실 유적 1호의 내부 퇴적층에서는 130개체의 토기와 다수의 석기와 유기물 및 목탄층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집자리는 폐기 후 폐기장과 소성 유구로 재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기 시대 경작지는 구릉 남쪽 하단의 곡부 저습지에 형성되었다. 곡부 양쪽 외면에 자리한 수로에서는 송국리 유형의 토기와 석기가 출토되어 집자리와 동일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각 유적의 집자리에서는 송국리식 토기,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文土器), 두드림무늬 토기(打捺文土器) 등의 토기와 삼각 돌칼, 통슴베 돌살촉(一段莖式石鏃), 버들잎 모양 돌살촉(柳葉形石鏃), 홈자귀(有溝石斧), 갈판(碾石), 돌끌(石鑿), 숫돌(砥石) 등의 유물이 출토되고, 무덤에서는 간 돌검이 출토되었다. 나복리 유적의 송국리식 집자리 내에서 둥근 덧띠 토기(圓形粘土帶土器)가 출토되어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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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충남문화재연구원. (2008). 부여 나복리 통실·석우리·원문리유적. https://www.riss.kr/link?id=M16901197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04). 부여 나복리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https://www.riss.kr/link?id=M100137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