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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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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광령리·외도동 고인돌군
| 이칭별칭=제주 광령리·외도동 고인돌군, 제주 광령리·외도동 지석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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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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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 20-1·애월읍 광령리 1609-1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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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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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자=김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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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설명==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광령(리)지석묘 1~10호, 외도지석묘 1~5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 20-1·애월읍 광령리 1609-1 일원에 위치한다. 외도동과 광령리 경계에 해당하며, 무수천 서쪽에서 남북으로 1.7㎞, 동서로 1.2㎞ 범위에 해당한다. 전체적인 지형은 남에서 북으로 경사졌으며 고인돌은 평탄면이 형성된 곳이나 경사면 또는 경사면 상단에 자리한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광령(리)지석묘 1~10호, 외도지석묘 1~5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 20-1·애월읍 광령리 1609-1 일원에 위치한다. 외도동과 광령리 경계에 해당하며, 무수천 서쪽에서 남북으로 1.7㎞, 동서로 1.2㎞ 범위에 해당한다. 전체적인 지형은 남에서 북으로 경사졌으며 [[고인돌|고인돌]]은 평탄면이 형성된 곳이나 경사면 또는 경사면 상단에 자리한다.


1959년 김철준이 제주도종합학술조사단의 일원으로 제주에 와서 현재 용담동과 오라동 일대의 [[고인돌|고인돌]] 15기를 발견하였고, 외도동과 광령리에도 고인돌이 있음을 인지하였으나 외도동 고인돌 1기만 확인하였다. 광령리·외도동 고인돌군은 광령리에서 19기, 외도동에서 12기 총 31기가 조사되었다. 그중 11기(외도동 고인돌 5기, 광령리 고인돌 6기)가 유실되어 20기가 남아있다. 1985년 제주대학교박물관에서 외도동 9호 고인돌을 발굴 조사하였으며, 2002년 광령리 13호 고인돌이 유실되어 기존 위치에 대해 제주문화예술재단 문화재연구소에서 긴급 조사를 실시하였다.
1959년 김철준이 제주도종합학술조사단의 일원으로 제주에 와서 현재 용담동과 오라동 일대의 고인돌 15기를 발견하였고, 외도동과 광령리에도 고인돌이 있음을 인지하였으나 외도동 고인돌 1기만 확인하였다. 광령리·외도동 고인돌군은 광령리에서 19기, 외도동에서 12기 총 31기가 조사되었다. 그중 11기(외도동 고인돌 5기, 광령리 고인돌 6기)가 유실되어 20기가 남아있다. 1985년 제주대학교박물관에서 외도동 9호 고인돌을 발굴 조사하였으며, 2002년 광령리 13호 고인돌이 유실되어 기존 위치에 대해 제주문화예술재단 문화재연구소에서 긴급 조사를 실시하였다.


외도동 9호 고인돌의 [[덮개돌|덮개돌(上石)]]은 길이 2.04m, 너비 1.34m, 두께 0.77m이며 장축은 북동 방향이다. 덮개돌 아래에는 길이 3.05m, 너비 2.55m 범위에 잔돌로 깐 [[돌무지시설|돌무지 시설(積石施設)]]이 확인되었고, 그 아래에 길이 2.72m, 너비 1.45m의 [[석관|돌덧널(石槨)]]이 확인되었다. 무덤방의 남동벽은 기존의 자연 암반을 이용하여 축조하였고 다른 한 쪽은 잔돌로 낮게 쌓아 축조하였다.
외도동 9호 고인돌의 [[덮개돌|덮개돌(上石)]]은 길이 2.04m, 너비 1.34m, 두께 0.77m이며 장축은 북동 방향이다. 덮개돌 아래에는 길이 3.05m, 너비 2.55m 범위에 잔돌로 깐 [[돌무지시설|돌무지 시설(積石施設)]]이 확인되었고, 그 아래에 길이 2.72m, 너비 1.45m의 돌덧널(石槨)이 확인되었다. 무덤방의 남동벽은 기존의 자연 암반을 이용하여 축조하였고 다른 한 쪽은 잔돌로 낮게 쌓아 축조하였다.


광령리 13호 고인돌은 덮개돌이 유실되어 고인돌이 위치했던 자리가 파괴되어 교란된 상태로 자갈과 부식토가 퇴적되어 있었다. 1985년 조사 내용을 보면 ‘고인돌은 광령리 1661에 있었다. N10°E의 장축 방향으로 놓인 길이 3.15m, 너비 2.34m, 두께 0.78m의 비교적 고른 두께에 윗면이 평평한 장방형 덮개돌을 갖고 있으며, 그 덮개돌의 남쪽에 길이 1.1m, 너비 0.55m, 두께 0.19m의 큼직한 판돌(板石)이 수평으로 받치고 있고 덮개돌의 북쪽 주위를 돌아가면서는 자잘한 깬돌이 받침돌(支石) 역할을 하고 있다. 덮개돌과 앞쪽의 판돌형 받침돌이 물리는 곳의 덮개돌 하단은 일부 깨어내어 서로 맞물리게 하였고, 덮개돌 아랫면은 [[지하매장부|지하 매장부(地下埋葬部)]]와 닿아 있다. 덮개돌 윗면에는 마멸이 심한 17개의 [[알구멍|알 구멍性穴]]이 보이고 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이동된 덮개돌 실측 조사 과정에서 알 구멍은 모두 20개가 확인되었고 미미한 흔적까지 포함하면 그 이상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상석의 크기는 길이 2.82m, 너비 1.9m, 두께 0.25~0.61m이다.
광령리 13호 고인돌은 덮개돌이 유실되어 고인돌이 위치했던 자리가 파괴되어 교란된 상태로 자갈과 부식토가 퇴적되어 있었다. 1985년 조사 내용을 보면 ‘고인돌은 광령리 1661에 있었다. N10°E의 장축 방향으로 놓인 길이 3.15m, 너비 2.34m, 두께 0.78m의 비교적 고른 두께에 윗면이 평평한 장방형 덮개돌을 갖고 있으며, 그 덮개돌의 남쪽에 길이 1.1m, 너비 0.55m, 두께 0.19m의 큼직한 판돌(板石)이 수평으로 받치고 있고 덮개돌의 북쪽 주위를 돌아가면서는 자잘한 깬돌이 받침돌(支石) 역할을 하고 있다. 덮개돌과 앞쪽의 판돌형 받침돌이 물리는 곳의 덮개돌 하단은 일부 깨어내어 서로 맞물리게 하였고, 덮개돌 아랫면은 [[지하매장부|지하 매장부(地下埋葬部)]]와 닿아 있다. 덮개돌 윗면에는 마멸이 심한 17개의 [[알구멍|알 구멍(性穴)]]이 보이고 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이동된 덮개돌 실측 조사 과정에서 알 구멍은 모두 20개가 확인되었고 미미한 흔적까지 포함하면 그 이상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상석의 크기는 길이 2.82m, 너비 1.9m, 두께 0.25~0.61m이다.


광령리·외도동 고인돌군(群)은 제주도 최대 고인돌군에 해당하며, 시신 매장을 지상에 둔 [[돌두름식고인돌|지상 돌 두름식 고인돌(圍石式支石墓)]]과 알 구멍이 특징적이다. 돌 두름식 고인돌은 7기가 확인되었으며 이중 광령리 2호 고인돌은 용담동 6호 고인돌과 같이 현무암 판돌을 덮개돌 가장자리에 돌려 세운 [[지상위석형돌방|지상 위석형 돌방]]을 갖춘 형식으로 ‘제주도식 고인돌’이라고 불리는 형태이다. 외도동 12호 고인돌은 매장 시설이 [[석관|돌널(石棺)]]로 제주도에서는 유일하게 확인된 예이다. 알 구멍은 31기 고인돌 중 16기에서 확인되며 최대 104개가 조사되었다. 광령리 7호 고인돌에서는 광령리 [[바위그림|바위그림(岩刻畵)]]과 같은 수법으로 제작한 것으로 판단되는 알 구멍과 홈 줄이 확인되었다.
광령리·외도동 고인돌군(群)은 제주도 최대 고인돌군에 해당하며, 시신 매장을 지상에 둔 지상 돌 두름식 고인돌(圍石式支石墓)과 알 구멍이 특징적이다. 돌 두름식 고인돌은 7기가 확인되었으며 이중 광령리 2호 고인돌은 용담동 6호 고인돌과 같이 현무암 판돌을 덮개돌 가장자리에 돌려 세운 지상 위석형 돌방을 갖춘 형식으로 ‘제주도식 고인돌’이라고 불리는 형태이다. 외도동 12호 고인돌은 매장 시설이 돌널(石棺)로 제주도에서는 유일하게 확인된 예이다. 알 구멍은 31기 고인돌 중 16기에서 확인되며 최대 104개가 조사되었다. 광령리 7호 고인돌에서는 광령리 [[바위그림|바위그림(岩刻畵)]]과 같은 수법으로 제작한 것으로 판단되는 알 구멍과 홈 줄이 확인되었다.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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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광령리·외도동 고인돌군_제주 광령리·외도동 고인돌군 내 광령리 9호 고인돌_B등급_김진환.jpg | 제주 광령리·외도동 고인돌군 광령리 9호 고인돌
File:제주_광령리_외도동_고인돌군_광령리_9호_고인돌.jpg
File:광령리·외도동 고인돌군_제주 광령리·외도동 고인돌군 외도동 3호 고인돌_B등급_김진환.JPG | 제주 광령리·외도동 고인돌군 외도동 3호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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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1985년 || 제주도유적-선사유적지표조사보고- || 1986 || 제주대학교박물관
|-
| 발굴조사 || 2002년 || 제주시 지석묘 종합정비 기본계획 || 2015 || 제주고고학연구소
|}


==지정정보==
==지정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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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참고문헌==
* 제주대학교박물관. (1986). <i>제주도유적-선사유적지표조사보고</i>. https://www.riss.kr/link?id=M1318928
* 김진환. (2016). 제주도 지석묘의 재검토. <i>제주도 청동기~초기 철기문화의 전개양상</i>. 한국청동기학회.
* 제주고고학연구소. (2015). <i>제주시 지석묘 종합정비 기본계획</i>. https://www.riss.kr/link?id=M14525240
* 제주고고학연구소. (2015). <i>제주시 지석묘 종합정비 기본계획</i>. https://www.riss.kr/link?id=M14525240
* 김진환. (2016). 제주도 청동기~초기 철기문화의 전개양상. 한국청동기학회(편저), <i>제주도 지석묘의 재검토</i>.
* 제주대학교박물관. (1986). <i>제주도유적–선사유적지표조사보고–</i>. https://www.riss.kr/link?id=M1318928
 
 


[[분류: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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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8일 (화) 09:41 기준 최신판


광령리·외도동 고인돌군
기본 정보
동의어 제주 광령리·외도동 고인돌군, 제주 광령리·외도동 지석묘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 20-1·애월읍 광령리 1609-1 일원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알 구멍, 바위그림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진환



설명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광령(리)지석묘 1~10호, 외도지석묘 1~5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 20-1·애월읍 광령리 1609-1 일원에 위치한다. 외도동과 광령리 경계에 해당하며, 무수천 서쪽에서 남북으로 1.7㎞, 동서로 1.2㎞ 범위에 해당한다. 전체적인 지형은 남에서 북으로 경사졌으며 고인돌은 평탄면이 형성된 곳이나 경사면 또는 경사면 상단에 자리한다.

1959년 김철준이 제주도종합학술조사단의 일원으로 제주에 와서 현재 용담동과 오라동 일대의 고인돌 15기를 발견하였고, 외도동과 광령리에도 고인돌이 있음을 인지하였으나 외도동 고인돌 1기만 확인하였다. 광령리·외도동 고인돌군은 광령리에서 19기, 외도동에서 12기 총 31기가 조사되었다. 그중 11기(외도동 고인돌 5기, 광령리 고인돌 6기)가 유실되어 20기가 남아있다. 1985년 제주대학교박물관에서 외도동 9호 고인돌을 발굴 조사하였으며, 2002년 광령리 13호 고인돌이 유실되어 기존 위치에 대해 제주문화예술재단 문화재연구소에서 긴급 조사를 실시하였다.

외도동 9호 고인돌의 덮개돌(上石)은 길이 2.04m, 너비 1.34m, 두께 0.77m이며 장축은 북동 방향이다. 덮개돌 아래에는 길이 3.05m, 너비 2.55m 범위에 잔돌로 깐 돌무지 시설(積石施設)이 확인되었고, 그 아래에 길이 2.72m, 너비 1.45m의 돌덧널(石槨)이 확인되었다. 무덤방의 남동벽은 기존의 자연 암반을 이용하여 축조하였고 다른 한 쪽은 잔돌로 낮게 쌓아 축조하였다.

광령리 13호 고인돌은 덮개돌이 유실되어 고인돌이 위치했던 자리가 파괴되어 교란된 상태로 자갈과 부식토가 퇴적되어 있었다. 1985년 조사 내용을 보면 ‘고인돌은 광령리 1661에 있었다. N10°E의 장축 방향으로 놓인 길이 3.15m, 너비 2.34m, 두께 0.78m의 비교적 고른 두께에 윗면이 평평한 장방형 덮개돌을 갖고 있으며, 그 덮개돌의 남쪽에 길이 1.1m, 너비 0.55m, 두께 0.19m의 큼직한 판돌(板石)이 수평으로 받치고 있고 덮개돌의 북쪽 주위를 돌아가면서는 자잘한 깬돌이 받침돌(支石) 역할을 하고 있다. 덮개돌과 앞쪽의 판돌형 받침돌이 물리는 곳의 덮개돌 하단은 일부 깨어내어 서로 맞물리게 하였고, 덮개돌 아랫면은 지하 매장부(地下埋葬部)와 닿아 있다. 덮개돌 윗면에는 마멸이 심한 17개의 알 구멍(性穴)이 보이고 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이동된 덮개돌 실측 조사 과정에서 알 구멍은 모두 20개가 확인되었고 미미한 흔적까지 포함하면 그 이상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상석의 크기는 길이 2.82m, 너비 1.9m, 두께 0.25~0.61m이다.

광령리·외도동 고인돌군(群)은 제주도 최대 고인돌군에 해당하며, 시신 매장을 지상에 둔 지상 돌 두름식 고인돌(圍石式支石墓)과 알 구멍이 특징적이다. 돌 두름식 고인돌은 7기가 확인되었으며 이중 광령리 2호 고인돌은 용담동 6호 고인돌과 같이 현무암 판돌을 덮개돌 가장자리에 돌려 세운 지상 위석형 돌방을 갖춘 형식으로 ‘제주도식 고인돌’이라고 불리는 형태이다. 외도동 12호 고인돌은 매장 시설이 돌널(石棺)로 제주도에서는 유일하게 확인된 예이다. 알 구멍은 31기 고인돌 중 16기에서 확인되며 최대 104개가 조사되었다. 광령리 7호 고인돌에서는 광령리 바위그림(岩刻畵)과 같은 수법으로 제작한 것으로 판단되는 알 구멍과 홈 줄이 확인되었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1985년 제주도유적-선사유적지표조사보고- 1986 제주대학교박물관
발굴조사 2002년 제주시 지석묘 종합정비 기본계획 2015 제주고고학연구소

지정정보

구분 지정 종목 지정 명칭 자세히 보기
국가유산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광령지석묘 10호 🔗
국가유산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광령지석묘 1호 🔗
국가유산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광령지석묘 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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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광령지석묘 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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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외도지석묘4호 🔗
국가유산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외도지석묘5호 🔗

참고문헌

  • 김진환. (2016). 제주도 지석묘의 재검토. 제주도 청동기~초기 철기문화의 전개양상. 한국청동기학회.
  • 제주고고학연구소. (2015). 제주시 지석묘 종합정비 기본계획. https://www.riss.kr/link?id=M14525240
  • 제주대학교박물관. (1986). 제주도유적–선사유적지표조사보고–. https://www.riss.kr/link?id=M1318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