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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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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계수동 유적(始興 桂壽洞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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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55-5 유적 집자리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값은 1호 집자리 241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760~400년), 2호 283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10~920년), 3호 258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810~590년)이다.
산55-5 유적 집자리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값은 1호 집자리 241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760~400년), 2호 283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10~920년), 3호 258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810~59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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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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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07년 || 시흥 계수동 유적 || 2010 || 한강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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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기전문화재연구원. (2000). <i>시흥시의 역사와 문화유적</i>.  https://www.riss.kr/link?id=M7928607
* 기전문화재연구원. (2002). <i>시흥 계수동 안골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2944080
* 한강문화재연구원. (2010). <i>시흥 계수동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2346500
* 한양대학교박물관. (1999). <i>시흥시 계수동 지석묘 발굴보고서</i>.  https://www.riss.kr/link?id=M10993797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14일 (화) 15:58 기준 최신판


계수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시흥 계수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기도 시흥시 계수동 260-4, 산55-5, 산75-6 일대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바둑판식 고인돌, 집자리, 구덩이, 민무늬 토기, 화덕자리, 기둥 구멍, 구멍무늬 토기, 긴 배 모양 반달 돌칼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강병학



설명

경기도 시흥시 계수동 260-4, 산55-5, 산75-6 일대에 위치한다. 세 지점은 각각 1999년(한양대학교박물관), 2000~2001년(기전문화재연구원), 2007년(한강문화재연구원)에 도로 개설공사의 일환으로 발굴하여 바둑판식(基盤式) 고인돌 1기(한양), 청동기 시대 집자리 8기(기전 4기, 한강 4기), 구덩이 1기(기전)가 조사되었다. 유적은 해발 20~69m 사이의 구릉 동사면부에 해당한다.

고인돌의 덮개돌(上石)은 부정형 마름모꼴(菱形)인데, 크기는 길이 3.15m, 너비 2.62, 두께 0.55m이다. 덮개돌 아래에는 괴석형(塊石形)의 받침돌(支石)이 있다. 매장 주체부(埋葬主體部)는 교란이 심하고 대부분 파괴되어 정확히 알 수 없다. 덮개돌 아래에서 출토된 유물은 없으나, 주변의 구덩이 조사에서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고, 서남쪽 마을회관 뒤편의 밭경작지에 대한 지표 조사 과정 중에 간 돌끌(磨製石鑿) 편이 수습되었다.

산55-5 유적에서는 집자리 4기, 구덩이 1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방형 내지 세장방형으로 추정되며 잔존 규모는 1호가 길이 2.7m, 너비 3.04m, 깊이 0.4m, 3호는 길이 2.9m, 너비 1m, 깊이 0.17m, 4호는 길이 10.6m, 너비 2.2m, 깊이 0.5m이다. 방형인 1호에서는 내부 시설이 확인되지 않았고, 세장방형 4호에서는 중앙 장축을 따라 화덕 자리로 추정되는 부분과 기둥 구멍이 확인되었다. 바닥은 특별한 처리를 하지 않고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출토 유물은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긴 배 모양(長舟形) 반달 돌칼, 돌도끼(石斧), 돌끌(石鑿) 등이 있다. 구덩이의 평면 형태는 부정형이며, 크기는 대체로 길이 2.17m, 너비 0.8m, 깊이 0.62m로 벽면과 바닥면은 불규칙하고 울퉁불퉁하다. 출토 유물은 항아리 모양 토기 편, 바리 토기(鉢形土器) 편, 바닥에 구멍이 뚫려있는 토기(底部透孔土器) 편, 달도끼(環狀石斧) 편, 돌끌 편 등이다.

산75-6 유적에서 확인된 집자리는 대부분 삭평되어 정확한 평면 형태 및 구조 파악이 어렵다. 그러나 잔존 규모로 볼 때 방형 1기, 장방형 3기로 판단된다. 4호는 소형에 속하며 나머지는 모두 20㎡ 이상이다. 장축(長軸)이 제일 긴 3호와 소형의 4호 집자리에서 기둥 구멍과 저장 구덩이가 확인될 뿐, 기둥 구멍이 불명확한 1호와 2호에서는 일체의 시설이 확인되지 않는다. 바닥은 별도의 시설을 하지 않고 풍화 암반면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유물은 골아가리 무늬와 골아가리 구멍무늬(口脣刻目孔列文)가 새겨진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와 항아리 모양의 민무늬 토기, 간 토기(磨硏土器) 편이 출토되었으며, 1호에서 배 모양(舟形)의 반달 돌칼이 출토되었다.

산55-5 유적 집자리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값은 1호 집자리 241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760~400년), 2호 283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10~920년), 3호 258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810~590년)이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1999년 시흥시 계수동 지석묘 발굴조사보고서 1999 한양대학교박물관
발굴조사 2001년 06월 14일~2001년 08월 31일 시흥 계수동 안골유적 2002 기전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7년 시흥 계수동 유적 2010 한강문화재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