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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이서면 갈산리 703 일원에 위치한다. 전북 혁신 도시 개발 사업에 따라 2009~2010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유적은 해발 30m 내외의 남서사면에 자리하고, 북쪽으로는 [[완주갈동유적|완주 갈동 유적]]과 [[완주원장동유적|완주 원장동 유적]]이, 남쪽으로 [[완주금평리유적|완주 신풍 유적]]이 가시권내에 위치한다.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움무덤|움무덤(土壙墓)]] 7기(D지구 3기, F지구 2기, G지구 2기)와 도랑溝 12기가 조사되었다. | |||
움무덤은 중앙에 위치한 4기(D-1·2, F—1·2호)가 무리를 이루어 서로 연접하고, 나머지 3기는 단독으로 분포한다. 움무덤의 평면 형태는 말각 장방형으로 장축 방향은 모두 등고선과 직교한다. 벽면은 대체로 수직을 이루지만, D-1호는 [[묘광|무덤 구덩이(墓壙)]]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약간 좁아들게 굴착하였다. 움무덤의 규모는 가장 작은 D-3호가 길이 1.6m, F-1호와 D-2호가 길이 2~2.2m, 그리고 나머지 4기는 길이 2.5~2.6m 내외이다. 바닥의 양 끝단에 판돌형 석재로 관대를 시설한 D-1호 움무덤을 제외하면, 특별한 내부 시설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D-1호와 G-1호 움무덤에서 [[나무널|나무널(木棺)]] 흔적이 확인되었다. | 움무덤은 중앙에 위치한 4기(D-1·2, F—1·2호)가 무리를 이루어 서로 연접하고, 나머지 3기는 단독으로 분포한다. 움무덤의 평면 형태는 말각 장방형으로 장축 방향은 모두 등고선과 직교한다. 벽면은 대체로 수직을 이루지만, D-1호는 [[묘광|무덤 구덩이(墓壙)]]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약간 좁아들게 굴착하였다. 움무덤의 규모는 가장 작은 D-3호가 길이 1.6m, F-1호와 D-2호가 길이 2~2.2m, 그리고 나머지 4기는 길이 2.5~2.6m 내외이다. 바닥의 양 끝단에 판돌형 석재로 관대를 시설한 D-1호 움무덤을 제외하면, 특별한 내부 시설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D-1호와 G-1호 움무덤에서 [[나무널|나무널(木棺)]] 흔적이 확인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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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무덤 중 D-1호와 G-2호는 [[청동기|청동기]]를 파쇄하고 흩뿌렸던 장례 풍습을 잘 보여주며, 12기의 도랑은 의례 행위와 관련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 출토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덕동 유적은 [[초기철기시대|초기 철기 시대]] 사람들의 죽음을 대하는 의식을 보여줄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 움무덤 중 D-1호와 G-2호는 [[청동기|청동기]]를 파쇄하고 흩뿌렸던 장례 풍습을 잘 보여주며, 12기의 도랑은 의례 행위와 관련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 출토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덕동 유적은 [[초기철기시대|초기 철기 시대]] 사람들의 죽음을 대하는 의식을 보여줄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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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전라문화유산연구원. (2012). <i>완주 덕동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29320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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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14일 (화) 15:46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완주 갈산리 덕동 유적, 완주 덕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이서면 갈산리 703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움무덤, 잔무늬 거울, 거친무늬 거울, 집선문, 세형동검, 청동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송종열 |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이서면 갈산리 703 일원에 위치한다. 전북 혁신 도시 개발 사업에 따라 2009~2010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유적은 해발 30m 내외의 남서사면에 자리하고, 북쪽으로는 완주 갈동 유적과 완주 원장동 유적이, 남쪽으로 완주 신풍 유적이 가시권내에 위치한다.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움무덤(土壙墓) 7기(D지구 3기, F지구 2기, G지구 2기)와 도랑溝 12기가 조사되었다.
움무덤은 중앙에 위치한 4기(D-1·2, F—1·2호)가 무리를 이루어 서로 연접하고, 나머지 3기는 단독으로 분포한다. 움무덤의 평면 형태는 말각 장방형으로 장축 방향은 모두 등고선과 직교한다. 벽면은 대체로 수직을 이루지만, D-1호는 무덤 구덩이(墓壙)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약간 좁아들게 굴착하였다. 움무덤의 규모는 가장 작은 D-3호가 길이 1.6m, F-1호와 D-2호가 길이 2~2.2m, 그리고 나머지 4기는 길이 2.5~2.6m 내외이다. 바닥의 양 끝단에 판돌형 석재로 관대를 시설한 D-1호 움무덤을 제외하면, 특별한 내부 시설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D-1호와 G-1호 움무덤에서 나무널(木棺) 흔적이 확인되었다.
D-1호 움무덤은 그 구조와 유물의 출토 상태 등에서 다른 움무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한쪽 짧은 벽에서 약 50㎝ 떨어진 지점에 화강암으로 다듬은 판돌형 석재를 반듯하게 놓아 관대를 시설하였다. 머리 쪽에 해당하는 경사면 상부에는 1매의 석재를 놓았고, 약 1.3m 떨어진 발치에는 3매의 석재를 쌓아 높이를 맞췄다. 유물은 나무널 내부와 봉토에서 확인되었다. 나무널 내부에는 발치쪽에 토기 4점을 부장하였으며, 봉토에는 잔무늬 거울(細文鏡), 세형동검(細形銅劍), 청동 지우개(銅鉈)를 파쇄하여 흩뿌렸다. G-2호 움무덤에서도 거친무늬 거울(粗紋鏡)과 세형동검을 파쇄하여 흩뿌린 양상이 확인된다.
유물은 덧띠 토기, 검은 간 긴 목 항아리(黑陶長頸壺), 굽다리 항아리(臺附壺), 항아리(壺), 거친무늬 거울, 잔무늬거울, 세형동검, 칼자루 끝 장식(劍把頭飾), 청동 꺾창(銅戈), 청동 도끼(銅斧), 청동 지우개, 청동 끌(銅鑿), 돌살촉(石鏃) 등이 확인되었다.
거친무늬 거울은 평면경으로 중앙에 집선문(集線文)을 시문한 성문(星文) 1개가 배치되고 성문의 첨부 안에는 삼각 집선문을 채웠다. 현재 첨부가 5개 남아 있는데, 복원하면 대략 8개로 추정된다. 잔무늬 청동거울은 평면경으로 주연부의 단면은 반원형을 이룬다. 내구에 서로 다른 문양을 구획하지 않고 내외로 배치했는데, 이는 선문과 교차선문이라는 문양의 형태와 더불어 주변 유적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조합이다.
도랑은 평면 형태가 다양하고, 길이는 3.7m부터 46m에 이른다. 내부에서 덧띠 토기(粘土帶土器) 편, 손잡이(把手) 편, 굽다리(臺附) 편 등이 출토되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D-4호 도랑에서 1920±50 BP, 2000±50 BP, 2090±50 BP, 2270±50 BP, 25400±50 BP, 2340±50 BP 등의 값이 산출되었고 유물의 특징을 고려할 때 대체로 기원전 3세기~기원후 2세기에 유적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움무덤 중 D-1호와 G-2호는 청동기를 파쇄하고 흩뿌렸던 장례 풍습을 잘 보여주며, 12기의 도랑은 의례 행위와 관련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 출토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덕동 유적은 초기 철기 시대 사람들의 죽음을 대하는 의식을 보여줄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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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전라문화유산연구원. (2012). 완주 덕동 유적. https://www.riss.kr/link?id=M129320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