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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정자와쯔 유적(瀋陽 鄭家窪子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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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선양 정자와쯔 유적, 심양 정가와자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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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시 지역의 [[비파형동검문화|비파형동검 문화]], 즉 [[스얼타이잉쯔문화|스얼타이잉쯔 문화(十二臺營子文化)]]가 기원전 6~5세기경에 랴오둥 지역으로 확산되어 기원전 4세기경까지 지속되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특히 6512호 무덤은 규모와 유물이 월등하여 고조선 최고 지배자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선양과 랴오양을 중심으로 하는 랴오중 지역에는 이와 같은 성격의 유적들이 다수 분포하고 있어 ‘[[정자와쯔유형|정자와쯔 유형]]’으로 설정되었다.
랴오시 지역의 [[비파형동검문화|비파형동검 문화]], 즉 [[스얼타이잉쯔문화|스얼타이잉쯔 문화(十二臺營子文化)]]가 기원전 6~5세기경에 랴오둥 지역으로 확산되어 기원전 4세기경까지 지속되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특히 6512호 무덤은 규모와 유물이 월등하여 고조선 최고 지배자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선양과 랴오양을 중심으로 하는 랴오중 지역에는 이와 같은 성격의 유적들이 다수 분포하고 있어 ‘[[정자와쯔유형|정자와쯔 유형]]’으로 설정되었다.
==참고문헌==
* 조중 공동 고고학 발굴대. (1966). <i>중국 동북 지방의 유적 발굴 보고 1963-1965</i>. 사회과학원출판사.
* 安志敏, 郑乃武. (1989). 沈阳肇工街和郑家洼子遗址的发掘. <i>考古, 10</i>. https://xueshu.baidu.com/usercenter/paper/show?paperid=e84684f3ce0ea1c3463032fe2e03702f
* 沈阳市文物工作组. (1964). 沈阳地区出土的青铜短剑资料. <i>考古, 1</i>.
* 沈阳市文物考古硏究所. (2008). <i>沈阳考古发现六十年</i>. 辽海出版社. https://ndlsearch.ndl.go.jp/books/R100000136-I1130000797579014016
* 沈阳故宫博物馆, 沈阳市文物管理办公室. (1975). 沈阳郑家洼子的两座青铜时代墓葬. <i>考古学报, 1</i>. https://xueshu.baidu.com/usercenter/paper/show?paperid=648fe2ddeddbbf3448ffe73e31508279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30 기준 최신판


정자와쯔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선양 정자와쯔 유적, 심양 정가와자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중국
소재지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선양시(瀋陽市) 위훙구(于洪區) 셴뉘허베이로(仙女河北路) 정자3위(鄭家3委)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움무덤, 널무덤, 비파형동검, 덧널무덤, 석제 검파두식, , 덧널, 청동 검초, 골잠, 골침, 다뉴동경, 경형 동기, 정자와쯔 유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후석



설명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선양시(瀋陽市) 위훙구(于洪區) 셴뉘허베이로(仙女河北路) 정자3위(鄭家3委)에 위치한다. 훈허강(渾河) 북쪽으로 약 3㎞ 떨어진 충적 대지에 입지하는 대규모의 생활·무덤 복합 유적이다. 유구는 마을 저지대와 주변의 낮은 언덕에서 지점을 달리하여 조성되었으며 대부분은 무덤이다.

1958년 1지점, 1962년 2지점, 1965년 3지점 등이 조사되었다. 3지점은 조·중 공동 고고학 발굴대가 조사한 구역으로 현재 전시관이 건립되었다. 유적의 규모는 남북 길이 약 2㎞, 동서 너비 약 1㎞ 이다.

1지점은 과거 자오공가(肇工街)로 불렸으며,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대지이다. 1958년 농장 우물 굴착 공사 중에 약 1m 깊이에서 토기(罐) 1점이 수습되었으며, 그 아래에서 청동 유물 30점이 일괄 수습되어 알려졌다. 유구는 움무덤(土壙墓) 또는 널무덤(木棺墓)일 가능성이 높다. 출토 유물 가운데 무기류는 비파형동검 1점, 청동 검병(靑銅劍柄) 1점, 공구류는 선형 동부(扇形銅斧) 1점, 동착(銅鑿) 1점, 동추(銅錐) 2점이 확인되었다. 마구류와 장식류에는 청동 절약(靑銅節約) 10점, 포형 동식(泡形銅飾) 5점, 경형 동기(鏡形銅器) 3점, 다공원형 동기(多孔圓形銅器) 1점, 쌍월형 동기(雙月形銅器) 4점이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출토 지점에서 약 10m 떨어진 곳에서 동도(銅刀) 1점이 수습되었다. 연대는 유물 구성이나 특징이 정자와쯔 3지점의 6512호 무덤 출토품과 유사하여 거의 같은 시기로 추정된다.

2지점은 1지점의 남쪽 또는 남동 뱡항으로 약 50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1962년 관공서의 뒷뜰에서 땅을 파다 약 1m 깊이에서 비파형동검 1점이 수습됨에 따라 알려졌다. 출토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연대는 비파형동검의 형태가 1지점 출토품과 비슷하여 같은 시기로 추정된다.

3지점은 1965년 조·중 공동 고고학 발굴대가 조사한 구역이다. 중국 측이 주도한 조사 구역은 3지점의 북쪽 구역에 해당된다. 2지점의 남서 방면으로 약 500m 떨어진 늪지대 주변의 낮은 언덕이다. 무덤 14기가 분포하는 묘지인데, 약 80m 간격으로 북쪽(또는 북동쪽) 구역과 남쪽(또는 남서쪽) 구역에 무덤이 밀집되어 있다. 북쪽 구역에는 659호 무덤을 비롯한 소형 움무덤 12기가 분포하며, 남쪽 구역에는 652호나 6512호 무덤 같은 대형 널무덤(木棺墓) 또는 덧널무덤(木槨墓)이 분포한다. 북쪽 구역의 6503호나 656호 무덤은 돌무지(積石)돌 두름(圍石) 시설이 있는 구조로 추정된다. 6512호 무덤을 제외하면 동검이나 골검(骨劍), 토기 1~2점이 출토된다거나, 파괴되어 동표(銅鏢), 동부, 청동 장식, 토기 등의 유물만이 수습되는 무덤들이 많다.

한편 북한 측이 참여한 조사 구역은 3지점의 남쪽 구역에 해당된다. 중국 측 조사 구역에서 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낮은 언덕이다. 소규모의 시굴 조사에서 문화층을 비롯하여 소형 움무덤과 독무덤(甕棺墓)이 확인되었다. 상문화층(2층)은 무문 토기타날문(打捺文) 토기가 함께 출토되는 서한 시기 문화층으로도 인식되나, ·원나라 시기 유물들이 함께 출토되는 후대 교란층에 해당된다. 중문화층은 퇴적층이 거의 없어 실재로는 2층과 3층의 경계에 조영되어 있는 서한 초기 독무덤 1기(M3)만 확인되었다. 하문화층(3층)은 갈색 무문 토기 등의 토착 유물만 출토된다. 3층은 다시 3-1층(또는 3A층)과 3-2층(또는 3B층)으로 세분되며, 3-2층을 기반으로 축조된 움무덤 2기(M1·2)가 확인되었다. 주요 유물에는 점토대토기두(豆), 환형 파수(環形把手), 삼각형 파수, 석제 검파두식(劍把頭飾) 등이 확인되었는데, 대부분은 3-1층에서 출토된 전국 시대 유물이다. 비파형동검과 석제 검파두식, 장경호가 출토된 움무덤(M2)은 전국 시대 이른 시기로 추정된다.

정자와쯔 유적을 대표하는 것은 3지점의 6512호 무덤이다. 6512호 무덤은 널(木棺)덧널(木槨) 안에 안치되어 있는 대형 덧널무덤이다. 무덤 주축은 동서 방향에 가깝고, 머리 방향은 서쪽 방향이다. 무덤 구덩이는 반듯하게 파지 않아 고르지 않다. 규모는 길이 5m, 너비 3m, 깊이 약 0.5m이다. 덧널은 중앙부에 설치하였으며, 길이 3.2m, 너비 1.6m이다. 무덤 구덩이와 덧널 사이에는 고운 흙을 다져 넣었으며, 덧널 바닥에는 삿자리가 깔린 흔적이 남아 있다. 널은 덧널 중앙에서 한쪽으로 약간 치우치게 안치되어 있고, 길이 2m, 너비 0.7m이다. 널에는 바로 펴묻기(仰身直肢葬) 된 50세 이상의 노년 남성 뼈가 잘 남아 있었다.

널과 덧널 내부에는 무기류, 공구류, 마구류, 의기류, 장식류 등 400여 건의 청동기를 비롯하여 토기류, 석기류, 골기류 등 49종 797건, 총 9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발치 아래쪽에 해당되는 무덤 구덩이와 덧널 동벽 사이에서 소의 머리 뼈와 허벅지 뼈가 출토되어 동물 희생(殉牲)이 있었음도 알 수 있다.

부장 유물은 주로 널과 덧널 사이의 4곳과 널의 아래쪽에 밀집되어 있다. 먼저 널 바깥의 머리 방향에는 부장함(櫝)을 두어 장착되어 있는 비파형동검-석제 검파두식-청동 검초(靑銅劍鞘) 2개체와 다뉴동경(多鈕銅鏡) 1점, 동잠(銅簪)골잠(骨簪) 각 1점, 골침(骨針) 1점을 부장하였다. 잠이나 침은 원래 머리 고정용으로 사용했던 것일 가능성도 있다. 널 바깥의 다리 방향에는 장경호 3점을 부장하였다. 상반신의 왼쪽(북쪽)에는 궁미(弓弭)궁낭(弓囊), 유공식 삼익동촉(有銎式三翼銅鏃) 71점을 부장하였고, 상반신의 오른쪽(남쪽)에는 마두정식(馬頭頂飾)으로 추정되는 나팔형 동기(喇叭形銅器) 4점, 말을 장식했던 원개형 동기(圓蓋形銅器) 2점과 경형 동기(鏡形銅器) 6점, 동함(銅銜) 4점, 사형 동표(蛇形銅鑣) 8점, 골표(骨鑣) 8점, 청동 하형 절약(靑銅蝦形節約) 16점, 동포(銅泡) 7점, 동환(銅環) 여러 점과 청동 교구(靑銅鉸具) 1쌍, 고삐 장식으로 추정되는 동관(銅管) 33매와 동주(銅珠) 224매 등의 마구류를 일괄 부장하였다. 거여구(車輿具)는 확인되지 않았다.

널의 내부에는 머리맡과 발치 쪽에 대형 경형 동기 각 1점을 세워 놓았고, 가슴-사타구니-무릎-발목에도 소형 경형 동기 각 1점을 마포로 감싸 올려 놓았다. 목 부근에는 녹송석 목걸이와 머리걸이 각 1건이, 허리 오른쪽에서는 장착되어 있는 비파형동검-석제 검파두식-청동 검초 1개체가 놓여 있었다. 또한 무릎 오른쪽에서는 도낭(刀囊)으로 추정되는 견갑형 동기(肩甲形銅器)에 동도(銅刀)와 동추(銅錐) 각 1점이 밀착되어 있었고, 부낭(斧囊)으로 추정되는 방패형 동기(防牌形銅器)에 동부(銅斧)와 동착(銅鑿) 각 1점이 밀착되어 있었다. 정강이뼈와 발뼈 부근에는 가죽신에 장식했던 동포 180점이 모여 있었고, 그 오른쪽에는 유경식 양익 동촉(有莖式兩翼銅鏃) 71점이 꾸러미로 놓여 있었다.

6512호 무덤은 널이나 덧널의 사용, 서쪽을 선호하는 머리 방향 배치, 소머리를 희생하여 묻는 방식, 토기류의 발치 부장, 경형 동기의 신체 부장 방식 등의 무덤 구조와 장법은 물론 유물 구성과 형식에서 차오양 일대를 중심으로 한 랴오시 지역과의 관련성이 확인된다. 연대는 최근 조사된 싱청 주자춘 유적 출토 유물과 비교하여 춘추시대 말기 또는 기원전 6세기 후반~5세기 전반으로 보는 견해들이 많다.

랴오시 지역의 비파형동검 문화, 즉 스얼타이잉쯔 문화(十二臺營子文化)가 기원전 6~5세기경에 랴오둥 지역으로 확산되어 기원전 4세기경까지 지속되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특히 6512호 무덤은 규모와 유물이 월등하여 고조선 최고 지배자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선양과 랴오양을 중심으로 하는 랴오중 지역에는 이와 같은 성격의 유적들이 다수 분포하고 있어 ‘정자와쯔 유형’으로 설정되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