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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갈리 퇴장 유적에서 묘사된 장면들은 중앙아시아 투르크 계통 주민들의 축제인 나우리스(Наурыз)와 유사하다. 나아가서 이 나우리스 축제가 디오니소스 축제에 대응된다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의견을 수용한다면 우순 문화는 투르크 계통으로, 중국 한나라 및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으로 인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 카르갈리 퇴장 유적에서 묘사된 장면들은 중앙아시아 투르크 계통 주민들의 축제인 나우리스(Наурыз)와 유사하다. 나아가서 이 나우리스 축제가 디오니소스 축제에 대응된다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의견을 수용한다면 우순 문화는 투르크 계통으로, 중국 한나라 및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으로 인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 ||
==참고문헌== | |||
* Байпаков, K. M. 외. (2017). 실릭티의 황금 쿠르간, 바이게토베. 국립문화재연구소(편저), <i>카자흐스탄의 실크로드</i>. 국립문화재연구소. https://www.riss.kr/link?id=M146963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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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30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오손 문화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지역 | 제티수 일대 |
| 관련 정보 | |
| 유적 | 카르갈리 퇴장 유적 |
| 키워드 | 우순, 정착생활, 물레, 토기, 장신구, 금관 장식, 투르크 계통 주민, 동물형 장식, 동물상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강인욱 |
설명
카자흐스탄 제티수(Жетысу) 일대에 분포하는 흉노 시기(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의 우순(烏孫)이 남긴 고고학적 문화를 말한다. 기록에 따르면 우순은 기원전 176년에 월지와 이웃하여 살다가 이식쿨(Ысык көл)호수 근처로 이주했다고 한다. 이후 곤막(昆莫)이라는 왕이 등장하여 우순은 강성한 세력이 되었으나, 흉노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우순은 서역에서 유목을 하던 인도-유럽인 계통으로 추정된다. 소련시절 고고학자들은 이들의 이름을 따서 고고학적 문화로 명명하였고, 지금도 ‘오손 문화(烏孫文化)’라는 용어가 쓰인다. 하지만 우순 문화를 문헌에 기록된 우순국과 직접 대입하기는 어렵다.
우순 문화는 베른시탐(Бернштам А.Н.)에 의해 명명되었다. 그는 현재의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Кыргызстан) 일대의 고고학적 유적을 최초로 조사하여 체계적인 편년 체계를 수립하였다. 특히 제티수와 톈산산맥(天山山脈) 파미르(Памир)와 페르가나(Фергана)의 유적을 조사하면서 기원전 1000년기 시기 유목 문화가 발생하던 시기를 사카(Саки)계와 우순계로 구분하였다. 사카계는 대형 고분이 발달한 유목민의 성격이 강하며, 우순계는 정착생활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베른시탐의 구분은 다소 애매하여 우순 문화의 표지적인 유적에 대해서는 학자간 이견차가 있다. 카자흐스탄의 학자들은 대체로 우순 문화를 투르크(Тюрки)계통의 주민들로 간주한다.
우순은 사카인 이후에 번성했으며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살았다고 본다. 하지만 두 집단은 전쟁을 통해 한쪽을 일방적으로 몰아낸 것이 아니므로 상당 기간 공존하였다. 사카인과 우순인들을 구분하는 또 다른 특징은 토기에 있다. 우순 문화는 1세기경부터 물레를 이용하여 토기를 제작하였고, 토기 표면에 붉은 칠을 한 경우가 많다.
우순 문화는 사카 이후 흉노와 동시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표적인 황금 유적은 알마티(Алматы) 인근의 카르갈리 퇴장 유적(Памятник Каргалы)이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는 쌍봉 낙타 모양의 반지 2점, 산양 소상 10점, 사람을 깨물고 있는 쥐가 새겨진 귀고리 1점, 장신구가 다수 발견되었다. 특히 길이는 35㎝, 너비 4.7㎝인 금관 장식은 당시의 예술 및 지역간 교류를 잘 보여준다. 금관 장식에는 동물, 새, 사람의 모습과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되는 용을 타고 있는 사람 등이 새겨져 있다.
카르갈리 퇴장 유적에서 묘사된 장면들은 중앙아시아 투르크 계통 주민들의 축제인 나우리스(Наурыз)와 유사하다. 나아가서 이 나우리스 축제가 디오니소스 축제에 대응된다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의견을 수용한다면 우순 문화는 투르크 계통으로, 중국 한나라 및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으로 인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Байпаков, K. M. 외. (2017). 실릭티의 황금 쿠르간, 바이게토베. 국립문화재연구소(편저), 카자흐스탄의 실크로드. 국립문화재연구소. https://www.riss.kr/link?id=M14696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