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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야요이 시대의 대형 환호 취락에는 수장 거택, 신전, 공방, 시장 등의 여러 시설이 만들어져 당시 사회의 [[거점취락|거점 취락]] 역할을 하였다. 또한 외부와의 경계로써 환호가 설치되어 있는 구조는 이후 고대의 도시와 본질적인 의미에서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대형 환호 취락을 ‘야요이 도시’로 파악하기도 한다. 환호 취락은 기원후 2세기 후반, 3세기 초두 각 개별 취락의 자립성이 약화되면서 소멸한다. | 이렇듯 야요이 시대의 대형 환호 취락에는 수장 거택, 신전, 공방, 시장 등의 여러 시설이 만들어져 당시 사회의 [[거점취락|거점 취락]] 역할을 하였다. 또한 외부와의 경계로써 환호가 설치되어 있는 구조는 이후 고대의 도시와 본질적인 의미에서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대형 환호 취락을 ‘야요이 도시’로 파악하기도 한다. 환호 취락은 기원후 2세기 후반, 3세기 초두 각 개별 취락의 자립성이 약화되면서 소멸한다. | ||
==참고문헌== | |||
* 大阪府立弥生文化博物館. (2001). <i>弥生都市は語る 環濠からのメッセージ</i>. 大阪府立弥生文化博物館. https://www.riss.kr/link?id=M8031841 | |||
* 池上曾根遺蹟史蹟指定20周年記念実行委員会. (1996). <i>弥生の環濠都市と巨大神殿</i>. https://ndlsearch.ndl.go.jp/books/R100000002-I000002575870 | |||
* 甲元眞之, 寺沢薫. (2011). <i>講座 日本考古学 弥生時代5</i>. 青木書店.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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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9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관련 정보 | |
| 유적 | 요시노가리 유적, 이케가미소네 유적, 가라코·가기 유적, 아사히 유적 |
| 키워드 | 야요이 시대, 환호, 거점 취락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기성 |
설명
환호 취락은 마을 주위에 너비 3~4m, 깊이 1m, 단면 ‘V’자 모양의 도랑(溝)을 돌린 야요이 시대의 대표적인 취락 형태 중 하나이다. 환호 취락은 도작 농경과 함께 한반도로부터 전파되어, 일본의 규슈 지역에서 간토 지역까지 각지에 분포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사가현 요시노가리 유적, 오사카부 이케가미소네 유적, 나라현 가라코·가기 유적, 아이치현 아사히 유적 등이 있다.
일본에 환호 취락이 등장하는 시기는 기원전 5세기경 북부 규슈의 후쿠오카현 에쓰지 유적, 나카 유적(那珂遺跡) 등으로, 야요이 시대 조기에 해당된다. 이후 전기가 되면 후쿠오카현의 이타즈케 유적, 긴키 지역의 다이카이 유적(大開遺跡) 등에서 환호 취락이 확인된다. 중기에는 아사히 유적, 가나가와현 오쓰카·사이카치도 유적 등 동일본에서도 대규모의 환호 취락이 조성된다.
환호의 기능은 아사히 유적에서 사카모기(逆茂木)라고 불리는 끝이 뾰족한 말뚝을 박아 놓은 시설 등이 확인되어 적에 대한 방어 기능과 취락의 내외를 구별하는 경계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케가미소네 유적의 환호는 매몰과 다시 굴착하는 과정이 수십 년마다 반복되었으며, 점차 너비나 깊이가 축소되어 마지막에는 방어적 기능이 사라지게 된다.
환호를 가진 취락은 대부분 대규모로, 요시노가리 유적과 가라코·가기 유적의 면적은 30만㎡, 이케가미소네 유적과 아사히 유적은 10만㎡가 넘는다. 이러한 환호 취락은 일반적인 농경 취락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케가미소네 유적과 가라코·가기 유적에서는 바닥 면적 100㎡가 넘는 대형 굴립주 건물 등이 확인되었다. 시가현의 이세 유적(伊勢遺跡)에서는 대형 환호 중앙부에 주위를 벽으로 둘러싼 바닥 면적 88㎡의 대형·중소형 건물이 확인되었다. 또한 요시노가리 유적에서는 도랑으로 둘러싸인 내곽(內郭)이 확인되며, 이는 신전 또는 수장의 거택으로 추정된다. 가라코·가기 유적에서는 청동 종방울(銅鐸)의 거푸집이 출토되어 청동기 제작 공방이 확인되는 등 일반 농경 취락에서는 보이지 않는 수공업 생산 시설이 다수 조사되었다.
이렇듯 야요이 시대의 대형 환호 취락에는 수장 거택, 신전, 공방, 시장 등의 여러 시설이 만들어져 당시 사회의 거점 취락 역할을 하였다. 또한 외부와의 경계로써 환호가 설치되어 있는 구조는 이후 고대의 도시와 본질적인 의미에서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대형 환호 취락을 ‘야요이 도시’로 파악하기도 한다. 환호 취락은 기원후 2세기 후반, 3세기 초두 각 개별 취락의 자립성이 약화되면서 소멸한다.
참고문헌
- 大阪府立弥生文化博物館. (2001). 弥生都市は語る 環濠からのメッセージ. 大阪府立弥生文化博物館. https://www.riss.kr/link?id=M8031841
- 池上曾根遺蹟史蹟指定20周年記念実行委員会. (1996). 弥生の環濠都市と巨大神殿. https://ndlsearch.ndl.go.jp/books/R100000002-I000002575870
- 甲元眞之, 寺沢薫. (2011). 講座 日本考古学 弥生時代5. 青木書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