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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청 문화의 사회 경제에 대해서는 각종 [[농경구|농경도구]]의 공반을 근거로 전기 단계로부터 이미 일정 수준의 [[농경사회|농경 사회]]로 전환되었고, 농경의 진전에 따라 [[수렵활동|수렵]]과 [[가축사육|가축 사육]] 또한 겸하여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제적 기반을 배경으로 하여 대형 토기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장인과 수공업이 발달하는 등 사회적인 분업화가 가속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경제적인잉여축적|경제적인 잉여 축적]]과 [[사회적인분업화|사회적인 분업화]]의 진전에 따라 싱청 문화 후기에는 완전한 [[부계사회|부계사회]]로 전환된 것으로 파악된다. | 싱청 문화의 사회 경제에 대해서는 각종 [[농경구|농경도구]]의 공반을 근거로 전기 단계로부터 이미 일정 수준의 [[농경사회|농경 사회]]로 전환되었고, 농경의 진전에 따라 [[수렵활동|수렵]]과 [[가축사육|가축 사육]] 또한 겸하여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제적 기반을 배경으로 하여 대형 토기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장인과 수공업이 발달하는 등 사회적인 분업화가 가속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경제적인잉여축적|경제적인 잉여 축적]]과 [[사회적인분업화|사회적인 분업화]]의 진전에 따라 싱청 문화 후기에는 완전한 [[부계사회|부계사회]]로 전환된 것으로 파악된다. | ||
==참고문헌== | |||
* 오강원. (2000). 서단산문화의 권역에 관한 연구. <i>한국상고사학보, 33</i>, 49–88. https://www.riss.kr/link?id=A76598704 | |||
* 최경숙. (2009). <i>두만강유역 청동기시대 문화 연구</i>. (석사 학위 논문). 충남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11784238 | |||
* 林省文物考古硏究所, 沿边朝鲜族自治州博物馆. (2001). <i>和龙兴城</i>. 文物出版社. https://ndlsearch.ndl.go.jp/books/R100000136-I11302822712977812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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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9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흥성 문화(興城文化)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지역 | 옌볜 조선족 자치주 일대 |
| 관련 정보 | |
| 유적 | 싱청 유적 |
| 키워드 | 타제석기, 마제 석기, 농경 사회, 수렵, 가축 사육, 경제적인 잉여 축적, 사회적인 분업화, 부계사회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오강원 |
설명
중국 지린성 동부 지역 싱청 유적을 표지로 하는 초기 청동기 문화를 말한다. 류팅둥 문화(柳庭洞文化)보다 선행하는 물질문화로서, 지금까지 옌볜 조선족 자치주 일대에서 확인된 청동기 문화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한다. 싱청 유적은 크게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문화층으로 구분되며, 집자리 29기, 무덤 3기를 확인하였다.
보고자는 싱청 유적을 유구의 중첩 관계와 유물 구성 및 형태 변화를 고려하여 전체 5기층(신석기 시대 1·2기층, 청동기 시대 3~5기층)으로 구분하였다.
청동기 시대 층(3~5기 층)은 신석기 시대의 흑요석기와 ‘T’자형 굴지구 등이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일부 유사성을 보인다. 하지만 토기에서는 태토와 소성 온도에서 차이를 보이며, 형태적으로는 구연부의 형태와 바리의 기형이 세장하게 변하며 무문으로 전환되는 양상을 보인다. 석기류는 타제 석기에서 마제 석기로의 변화가 확인된다는 점에서 시대적인 차이가 뚜렷이 확인된다. 이러한 청동기 시대 문화층에서 나타나는 유물 양상은 옌볜, 동북한, 러시아 연해주(Приморский край) 남부 등과 비교된다.
보고자는 싱청 유적의 3~5기층을 각각 싱청 문화의 전기, 중기, 후기로 획기한 다음,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값과 각 층간의 상대적인 관계를 고려하여 전기를 기원전 20~18세기, 중기를 기원전 17~15세기, 후기를 기원전 14~13세기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싱청 문화의 형성 시점과 존속 기간에 대해서는 상한을 하향 조정하는 등의 이견이 있다. 싱청 문화의 중심 지역에 대해서는 하이란강(海蘭江)과 부얼하퉁강(布爾哈通河) 유역에 관련 유적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옌지 일대로 보았다.
싱청 문화의 사회 경제에 대해서는 각종 농경도구의 공반을 근거로 전기 단계로부터 이미 일정 수준의 농경 사회로 전환되었고, 농경의 진전에 따라 수렵과 가축 사육 또한 겸하여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제적 기반을 배경으로 하여 대형 토기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장인과 수공업이 발달하는 등 사회적인 분업화가 가속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경제적인 잉여 축적과 사회적인 분업화의 진전에 따라 싱청 문화 후기에는 완전한 부계사회로 전환된 것으로 파악된다.
참고문헌
- 오강원. (2000). 서단산문화의 권역에 관한 연구. 한국상고사학보, 33, 49–88. https://www.riss.kr/link?id=A76598704
- 최경숙. (2009). 두만강유역 청동기시대 문화 연구. (석사 학위 논문). 충남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11784238
- 林省文物考古硏究所, 沿边朝鲜族自治州博物馆. (2001). 和龙兴城. 文物出版社. https://ndlsearch.ndl.go.jp/books/R100000136-I1130282271297781248